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 이덕무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9
이덕무 지음, 강국주 편역 / 돌베개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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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무는 조선 후기 실학자이다. 박지원을 위시한 지식인 학파 ‘연암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정조가 설치한 규장각 초대 검서관으로 재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높은 학식과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없었다. 서얼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서얼에 대한 차별과 제약은 세상을 향해 큰 뜻을 펼치는 것을 가로막았다. 그의 문장에서 발견되는 침울함은 그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답답함에서 비롯하였다.


    낙숫물을 맞으면서 헌 우산을 깁고, 섬돌 아래 약 찧는 절구를 괴어 두고, 새들을 문생(門生)으로 삼고, 구름을 친구로 삼는다.  이런 형암(炯菴 - 이덕무의 호)의 일생을 두고 “그것 참, 편안한 생활이군”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니, 참으로 우습다, 참으로 우스워!

                                             - '나의 일생' 전문


     서얼 출신이었지만 글짓기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그를 시기하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러한 신분상의 차별과 제약에서 가난과 굶주림, 슬픔과 절망, 병을 얻은 이덕무. 그러나 그의 문장을 흐르고 있는 “깨끗한 매미, 향기로운 귤” 같은 고아한 마음이 그 침울함을 극복하고 있다.


    조급하고 망령된 생각을 오래도록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절로 꽃이 필 것이고, 거칠고 상스러운 말을 오래도록 입에 담지 않는다면 절로 향기가 날 것이다.

                                          - '참된 대장부' 중에서


     세상의 불합리한 처우와 조롱에도 마음을 고요히 지킬 수 있게 해준 것은 ‘글짓기’와 ‘책 읽기’였다. 그는 참된 글이란 “아이가 장난치며 즐기는 것”이며 “글 짓는 사람은 의당 처녀처럼 부끄러워할 줄 알아 자신을 잘 감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글이란 내보이기 위한 기교가 아니라 순수한 마음이 발현된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 표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 읽는 자세 또한 아이의 마음, 처녀의 마음으로 허영심을 버리고 겸허한 마음가짐이 따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책이란 자신을 치장하는 허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는 글짓기를 통해 자연과 하나 되는 즐거움을 누렸으며, 책 읽기를 통해 자기 자신의 내면을 고요히 응시하여 흐려진 마음을 다잡았다. 그의 문장 곳곳에서 책 읽기를 즐기고 중히 여기는 태도가 드러난다.



    나는 지극한 슬픔을 겪더라도 한 권의 책을 들고 내 슬픈 마음을 위로하며 조용히 책을 읽는다.

                                               - '슬픔과 독서' 중에서


    눈 오는 아침이나 비 오는 저녁에 다정한 친구가 오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와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시험 삼아 내 입으로 직접 글을 읽어 보니 나의 귀가 들어주었고, 내 손으로 직접 글을 써 보니 나의 눈이 보아 주었다.

                                               - '나 자신을 친구로 삼아' 중에서


     책 읽기를 통해 가난과 굶주림, 병, 슬픔과 절망을 달래며 자기를 지켰던 선비 이덕무. 외롭고 고단한 삶, 세상에서 무력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슬퍼하며 한 잔 술에 비틀거리기도 하는 인간 이덕무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향기가 배어난다.


     자연 속에서 ‘나’의 위치를 가늠하여 바로세우고, 글짓기와 책 읽기를 통해 자기를 돌아보고 위무했던 이덕무의 문장을 통해 나의 글짓기와 책 읽는 태도를 돌아보았다. 나는 과연 책 읽기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가. 무엇을 얻고 있는가. 나의 글에는 과연 참된 ‘나’가 담겨 있는가. “봄을 즐기며 깃을 아끼는 오리처럼, 만 리를 내려다보며 발톱과 부리를 가다듬는 날랜 매”처럼 책을 읽고 글을 썼던가. 반성을 한다.


     한 권의 책을 들고 슬픈 마음을 조용히 다독이는 그의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책 읽기와 글짓기에 대한 회의가 밀려올 때, 마음이 해이해질 때에 나는 눈을 감고 그 모습을 떠올릴 것 같다. 마음을 다잡을 것 같다. 그러면 나의 마음도 ‘향기로운 귤처럼, 깨끗한 매미처럼’ 정갈해질까. 나의 문장에서도 향기가 배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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