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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글쓰기
셰퍼드 코미나스 지음, 임옥희 옮김 / 홍익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나는 짤막한 글조차 써내기 힘들다. 생각은 머릿속을 소용돌이치는데, 그 생각을 붙들어 종이 위 - 혹은 모니터의 하얀 공백 -에 옮기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이다. 어릴 때에는 그렇지 않았다. 초등학교 육 년 동안 문예반에서 글쓰기를 배웠던 나에게 글쓰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따분한 일상에서 나를 건져올려 준 고마운 친구였다. 나는 글쓰기가 무척 재미있었다. 그때에는 명확하게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글쓰기를 통해 내면 깊숙이에 있는 나 자신과 가장 정직한 유대를 맺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일기를 꾸준히, 정성껏 썼다. 그것은 의식적이라기보다 무의식적인 몰입이었다. 안네의 일기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소녀는 일기장에 이름을 붙여주고 친구를 삼아 가장 은밀한 얘기까지 낱낱이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아이 생활에서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직면하고 또한 포용할 수 있었다. 겨울방학 기간에 담임선생님께 받은 엽서에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일기를 가장 솔직하게 쓰고 있는 xx에게".
단짝 친구와 편지 주고받는 일도 나에게 은밀한 즐거움과 달콤한 위안이 되었다. 아이만의 고초와 피로감에 휩싸인 한밤중, 흐릿한 스탠드 불빛 아래 써내려가던 편지글들은 그것을 쓰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위안과 행복감을 주었던 기억.
"일기를 가장 솔직하게 쓰던" 아이는 어디로 갔나. 이제 나는 침묵이 금이라는 듯, 눈 감고, 귀 막고, 입 막고 있다. 나의 표면은 잠잠하나 그 이면 - 내면은 걱정과 격정, 불안과 불만 등이 뒤죽박죽 뒤섞여 바람에 휩쓸려 다니고 있다. 나는 그 폭풍의 심연을 잘 알고 있다. 흔들리고 흔들리다 때로 중심을 잃고 갸우뚱, 위태로운 걸음을 옮겨놓고 있다. 이런 내 앞에 『치유의 글쓰기』가 왔다.
『치유의 글쓰기』는 제목에 암시되어 있듯이 글쓰기를 통해 몸과 마음의 치유, 회복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지은이 코미나스 박사는 50년 넘게 일기를 써왔다고 한다. 그 일상적이고 정직한 글쓰기는 일상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몸과 마음의 회복을 되찾게 해주었다. 하여 그 '치유의 글쓰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참으로 자상하고 세심한 구성이다. 처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1장 '글쓰기의 시작'에는 글쓰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친절하고도 찬찬한 설명을 해놓고 있다. 글쓰기를 하기 위한 필수품으로는 종이, 펜, 장소, 시간, 글의 분량, 주제, 독자(자기자신), 날짜표시, 마지막으로 긍정을 두고 있다. 나에게 익숙한 종이와 펜, 편안한 장소, 마음을 내쫓기지 않을 만큼의 평온한 시간, 글의 분량과 주제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필수품 '긍정'에서 나는 마음이 멎는다.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와 오해와 비난, 부정에 상처입은 우리들에게는 '긍정'과 '칭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이해, 자기배려, 자기수용을 할 수 있으려면 긍정의 힘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다.
2장 '치유를 향한 글쓰기의 힘'에서는 글쓰기를 통해 영적 평온을 찾고, 정신적, 육체적 회복을 찾는 이야기가 실제 경험자들 실화와 함께 소개되고 있다.
캐서린 맨스필드는 인생의 마지막에 '나의 이야기를 더 이상 신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렵다'고 일기에 적었다. 그렇다. 나를 신에게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글쓰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일이다. (p.76)
이 장에서 역설하는 것은 내적 자아, 갇혀 있는 '나'와 직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상황은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괴로움이 따르는 일일 것이다. 상처와 슬픔, 불안, 분노를 꽁꽁 감춰놓은 기억의 창고. 그 문을 열어젖히는 일이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듯 연약하고 무력한 것만은 아니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다. 우리는 다만 시작하지 않았을 뿐이다. 학창시절, 운동화끈 질끈 매고 새하얀 줄이 그어진 출발선 앞에 서는 일은 언제나 두려웠다. 빵! 총소리에 이어 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두려움은 사라진다. 무엇이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아직 해보지 않아서, 잘 할 수 있을지 몰라서 망설이고 회피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3장, 4장에는 '치유의 글쓰기 연습 I, II'로 구성되어 있다. 글쓰기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이제는 실제적인 글쓰기를 해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장.
아들아, 살아가면서 네가 이 세상 무엇보다도 명심해주었으면 하는 게 있다. 시간의 소중함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누구나 입으로는 시간의 고귀함을 말하지만, 이를 제대로 알고 귀중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시간이란 한 번 잃어버리면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것이기에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그 시간에 네가 남기는 발자국을 되돌릴 수 없기에 더 중요한 것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시간은 결코 네 편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p.165)
'미리 쓰는 유언 편지'에서 발췌한 누군가의 유언편지 내용이다. 저자는 유언편지를 써야 하는 이유로 자기배려의 하나로서 나 자신의 유산이 곧 '나'라는 진실을 토대로 남겨진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진정한 유산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 치유의 글쓰기를 돕는 '내면의 통찰'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 장에는 다양한 글쓰기와 자기표현 방법이 소개되어 있어 실제로 글쓰기를, '삶을 위한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유익할 것이다.
나는 출발선 앞에 서서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곧 출발신호가 터질 것이다. 나는 이제 출반선 앞에 서서 지나친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빵! 달리기 시작하는 순간 그 두려움은 날아가버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치유의 글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