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나’는 ‘똥친 막대기’입니다. 조무래기 사내놈들도 코를 막고 줄걸음을 치는 똥 묻은 막대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똥간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요. 양지 마을 박기도 씨의 논두렁 옆 봇도랑이 ‘나’의 고향입니다. ‘나’의 어미는 20년 동안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 서 있는 백양나무입니다. ‘나’는 2년 전 그 나무의 옹이에서 곁가지로 태어났지요. 든든한 어미나무의 품에서 햇빛과 양분을 받으며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나’의 운명은 박기도 씨의 암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박기도 씨와 써레질을 하고 있던 그 암소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따라 기차의 기적 소리가 너무 길게 울렸습니다. 신경이 날카로운 암소는 기적 소리에 놀라 먼팔뜀을 해대며 논두렁 밖으로 달아났습니다. 흥분한 암소의 궁둥이를 매질하기 위해 박기도 씨는 ‘나’를 어미에게서 떼어냈습니다. '나‘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다행히 ‘나’는 암소의 궁둥이를 매질하다 부러질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해질녘, 박기도 씨의 손에 들려 간 곳은 그의 집이었습니다. ‘나’는 울보 소녀 재희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올랐지요. 재희는 박기도 씨의 어린 딸입니다. 그러나 기대감도 잠시, 사립문 싸리나무들 사이에 꽂힌 ‘나’는 절망하였습니다. 생명이 다한 싸리나무들은 눈앞의 내 운명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손길이 있어 ‘나’를 거기에서 구원해 주리라 믿었지요.



“야, 너는 어디서 굴러온 못난 막대기냐?”

“나요? 나는 저 멀리 들판 한가운데에서 살던 백양나무 가지 새끼입니다. 나를 함부로 막대기라고 깔보지 마세요. 살아날 가망이 있는 막대기이니까요.” (p.56)



구원의 손길은 가혹하였습니다. 성적이 나쁜 재희의 회초리가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재희의 가녀린 종아리에 멍 자국을 남기면서 ‘나’는 괴로웠습니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때때로 누군가에게 아픔과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습니다.







재희의 종아리에 멍 자국을 남긴 벌을 받은 것일까요. 박기도 씨의 손길에 따라 ‘나’는 거름으로 쓰일 똥을 휘저어야 했습니다. ‘똥친 막대기’가 된 것이지요. 똥에 흠씬 젖은 내 몸은 양분을 공급할 구멍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숨이 막혔지요. 이렇게 똥친 막대기로 생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지요. 그런데 ‘나’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의 귀여운 소녀 재희, 내가 아픔을 주었던 그 아이가 ‘나’를 똥간에서 꺼내주었던 것입니다. ‘나’는 재희의 손에 휘둘려 골목에서 놀던 짖궂은 사내 녀석들을 위협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재희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냄새 나는 똥간에서 생을 마감하지는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지요.








‘나’는 재희의 손에 이끌려 어미나무가 보이는 논두렁에 가게 되었습니다. 어미나무는 여전히 의연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지요. 하지만 다시는 어미나무의 품에 안길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재희는 ‘나’를 개구리 낚싯대로 이용했습니다. “요놈의 개구리 잡아서 울 엄마 몸보신해 주어야지.” ‘나’는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습니다. 이대로 죽기는 싫었습니다. ‘제발 날 좀 살려 줘.’ ‘나’는 재희에게 있는 힘껏 애원했지요. 하지만 재희에게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보았습니다. 열심히 개구리를 잡을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한 줄기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내 희망의 대답이기라도 한 것일까요. 개구리를 잡던 재희의 손길이 멈추고 ‘나’는 봇도랑에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는 이튿날도 그치지 않고 죽죽 내렸습니다. 나는 봇도랑 하류로 떠내려가기 시작했지요. 힘겨운 유랑의 시작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홍수에 떠내려고 있는 검은 돼지 등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작정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니깐 그러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기회를 엿보는 거야. 그래야 이 난리 법석에서 벗어날 수 있다니깐.” 내가 아무리 충고하여도 돼지는 소리를 꾸엑꾸엑 질러가며 바둥거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우리 앞에 대들보 기둥 하나가 떠내려왔습니다. 돼지는 두 앞발을 대들보 위에 얹었습니다. 간신히 강변으로 올라갔지요. 그런데 ‘나’는......





얼마나 흘러온 것일까요. 주위를 살펴보니 내가 있는 곳은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넓은 들판 한가운데였습니다. 사나운 물결에 시달렸지만, 덕분에 내 몸에는 충분한 양분이 축적되어 있었지요. 내 몸 한쪽 끝이 간지러웠습니다. ‘나’는 흙 속에 박혀 있었던 것이지요. 비로소 ‘나’는 내가 뿌리내릴 장소를 찾았습니다.




나는 지금 꼿꼿한 자세로 서서 가지 한쪽 끝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고, 다른 한쪽 끝에서는 뿌리를 내리려고 간지럼을 태우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비로소 홍수에 떠내려 오면서도 살아야 한다는 내 꿈을 접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pp.162~163)



‘나’는 ‘똥친 막대기’였습니다. 수많은 우연과 인연을 거쳐 ‘나’는 여기 뿌리내렸습니다. 박기도 씨와 암소, 재희와 돼지, 큰비와 홍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기 이렇게 있지 않았겠지요. 그 수많은 손길들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나’는 생에의 의지를 버리지 않았지요. ‘똥친 막대기’로 인생을 마감할지도 모르는 절망감 앞에서도 ‘나’는 생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생명 가진 자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까요. 내게 다시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그것은 내가 받아내야 할 몫이겠지요. 이렇게 우리는 흘러 흘러갑니다. 어디에 도착하든 그곳이 우리가 있어야 할 곳, 살아내야 할 곳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파란만장한 ‘똥친 막대기’의 이야기를 듣고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시는가요. 나는 생명의 귀중함을 생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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