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편지 - 유목여행자 박동식 산문집
박동식 글.사진 / 북하우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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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 열아홉, 갓 스무살이 되던 해 나는 푼돈을 들고 여행을 떠났다. 뾰족뾰족 날카로운 햇볕에 사정없이 찔려가면서 허위허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녔다. 아니, 어쩌면 나는 끌려 다닌 건지도 몰랐다. 새순 같은 청춘과 한여름의 비현실적인 무더위, 햇볕. 그런 것에 내 마음은 정신없이 끌려다녔던 건지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나는 '자유'를 위장하였고, 푸른 눈동자를 또록또록 굴려가며 세상 구경을 하였다. 쉽게 분노하고 쉽게 실망하고 쉽게 동정하고 쉽게 상처받으면서 나는 그 비현실적인 햇볕 아래를 종횡무진 나다녔다. 어쩌면 청춘의 갈증이었을까, 아니면 오만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순진함이었나. 그때는 무엇이 그토록 궁금하였던가. 아니, 나는 다만 집으로부터, 고향으로부터, 낯익은 것들로부터 멀리, 멀리 달아나고 있었던 것이었을 뿐인지도 몰랐다. 그러면서 미지의 것, 사람들을 찾아 헤매었던 것이었는지도. 그런데 이상했다. 낯익은 것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올수록 나는 그것들에 더 가까이, 더 깊이 밀착되었으니까 말이다. 나의 첫 '떠남'은 그렇게 제자리걸음이었다.

 

 

 

    이후 나는 '여행'에 대한 기대나 환상을 품지 않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여행'이라고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는 어쩐지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내가 바라본 대부분 사람들의 여행은 너무 무겁고 피곤한 것이었다. 온 살림살이를 바리바리 싸들고, 꽉 막힌 자동차의 늪 에서 허우적대다 마침내 여행지에 도착하면 온몸은 녹초가 되고 만다. 그렇다고 여행지가 휴식에 마침맞은 장소인 것도 아니다. 여행지에는 그들과 똑같이 피곤한 사람들이 바글바글, 살림살이를 풀어헤쳐놓고 녹초가 되어 있다. 이런 것을 나는 '여행'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가벼워지는 것'이다. 휴식을 취하며 나 자신과 만나는 순간이다. '여행'이란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마음의 흐름'이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마음이 흘러 흘러 마침내 나의 가장 깊은 내면에 가 닿는 것. 그러면 거기는 얼마쯤 쓸쓸하지만 아늑한 여행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행'은 돈 없이도, 차 없이도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박동식 씨의 여행 산문집, 두 번째 만남이다. 지난 해, 티베트 여행기 '열병'을 만나고 난 다음이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쪽빛의 하늘, 티베트 사람들의 발갛게 튼 볼, 깊은 우물 같은 검은 눈동자를 나는 잊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색감의 사진과 작가의 담박한 감성이 흐르고 있는 글맛이 인상적이었다. 좋은 느낌으로 만났던 책이라 이번 산문집도 망설임 없이 집어들었다. 지난 산문집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순박한 사람들의 짙은 검은 눈동자, 자연과 어우러진 그들의 생활 모습, 붉은 법의를 두른 승려들의 모습(등등)은 이제 익숙하게 다가왔다. 감성이 흐르다 못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그의 문장 또한 그대로였다. 반가움 반, 식상함 반.

 

 


소똥을 펴바른 바닥이 마른 뒤

하얀 가루로 그림을 그리는 계집아이.

코끼리 한 마리 소원 하나,

코끼리 두 마리 소원 두 개 . . . . . .

엄마 아빠는 이미 밭에 나갔고

이제 걸음을 시작한 동생은 신발도 없는 언니의 몫.

네 마리 코끼리들이 분홍 옷 초록 옷을 입을 때

아이의 소원은 어느 별을 서성이고 있었을까




 

 

    박동식 씨는 '여행'은 '가는 것'과 '떠나는 것'이 있다 한다. '가는 것'은 새로운 만남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고 있지만, '떠나는 것'은 익숙한 것들과의 필연적인 '이별'을 껴안고 가야 하는 담담한 슬픔이 있다. 박동식 씨에게 '여행'은 '떠남'이라 한다. '여행'은 '이별'이라 한다. 여행이 이별이라는 담담한 목소리는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누구는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 하고, 또 누구는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여행'이라 한다. 결국 '삶은 여행'이라는 식상한 대답만이 허공을 친다. 그러나 이 진부한 대답 앞에서 숙연해지는 것은 왜일까. 오늘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내가 떠나온 그곳, 아직 건재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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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라, 남자 - 농부 김광화의 몸 살림, 마음 치유 이야기
김광화 지음 / 이루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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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에서 남자로 살아가는 일은 어떤 것일까. 남자로 살아본 일 없는 나는 잘 모른다. 예부터 여성의 고달픈 삶과 그네들의 한()은 문학, 사회적으로 많이 언급되어 왔다. 그에 반하여 남자의 삶과 속내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남자는 세 번 운다, 하는데 - 태어날 때 한 번, 부모님 돌아가실 때 한 번, 마지막으로 나라가 망했을 때 한 번이다. 잘은 모르지만,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이 말을 자주 듣고 자라왔을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속으로 울음을 삼켜야 했다. 남자라면 자신의 감정 표현에 선을 그을 줄 알아야 한다고, 보고 들으며 성장해 온 것이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 라는 말은 그러나 울음을 참으라는 말이 아니라 한다. 태어나서 한 번 우는 것은 '생명의 존속성'을 뜻한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선포하는 울음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우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남'을 뜻한다. 생명을 준 부모에게 효()로써 그 은혜를 다 하라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부모에 대한 효를 다 해야 한다는 것. 세 번째로 나라가 망했을 때 우는 것은 '자아완성'을 뜻한다.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의연함이 바탕에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의연함은 자아가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는 증거라는 것. 한국 남자들이여,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어라.

 

 

    어릴 때부터 학습되고 습관화되어 이제는 인격으로 굳어져버린 '강한 남자'라는 가면은 그러나 쉽게 벗어던질 수 없을 것이다. 강철심장이라도 달고 있는 듯 무심해 보이는 남자들의 삶은 얼마나 고달플까. 일찍이 내 아버지의 이중적인 모습을 모두 보아버린 나는 남자들도 연약한 생명체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남자의 등을 토닥여줄 수 있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슬픔을 드러낼 줄 아는 그 남자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남자였는지 모른다.

 

 

    여기, 한 사람의 남자가 있다. 여느 남자들처럼 치열한 도시에서 밥벌이를 하다 떠나와 시골살이를 하고 있는 김광화 씨이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웃는 얼굴이 환한 그는 행복해 보인다. 강한 남자, 능력 있는 아버지, 좋은 남편에는 못 미치지만 자유롭고 당당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강하고 능력 있는 남자 콤플렉스에서, 그 무모한 집착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는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피어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나. 인위적이고 딱딱한 콘크리트 건물들을 벗어나 보드랍고 촉촉한 흙으로 돌아온 김광화 씨는 자연의 원형인 흙을 통해 건강한 삶을 시작한다. 흙 속에서 땀 흘려 일하고 밤이 오면 자고, 또 아침이 오면 흙 속에 파묻혀 보내는 그의 일과는 불면증을 없애주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게 된 것이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 가장 원초적인 욕구에서 우리는 몸의 건강신호를 알아낼 수 있다. 김광화 씨는 몸살림, 마음살림, 그리고 부부사랑살림을 꾸려가는 부자가 되었다. 추운 겨울에는 몸을 옹크리고 있어 건강을 잃기 십상인데, 그럴 때 그는 직접 빨래를 한다. 빨래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는 것이다. 빨래 외에도 설거지, 요리까지 배우고 있는 김광화 씨의 인생은 참으로 맛나 보인다. 부부 관계를 개선시킬 부부연애까지 시작했다고 자랑하는 그의 글줄은 수줍은 소년처럼 설레임으로 가득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흙집을 짓고 흙을 밟으며 흙 속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역시 자연에서 살아갈 때 가장 건강하고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인생의 즐거움과 직결될 것이다. 김광화 씨의 소박한 '자연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직도 강한 남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애처로운 한국 남자들의 삶을 생각하였다. 그들이 용기를 내어 가면을 벗을 때, 가장 자연스럽고 원초적인 살림살이를 배울 때 비로소 그들의 인생은 활짝 피어날 것이다. 아들, 아버지, 남편. 푹 꺼진 그들의 무거운 어깨 너머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울고 싶으면 울어라. 피어라,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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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자연사 - 동물과 식물, 그리고 인간의 섹스와 구애에 관한 에세이
애드리언 포사이스 지음, 진선미 옮김 / 양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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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학교에서 보았던 성교육 비디오 속 수정 과정은 참으로 신비로웠다. 올챙이처럼 생긴 수많은 정자들이 꼬리를 곰틀거리며 열심히 헤엄을 치는 장면에서 이미 나는 생명의 치열함을 보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섹스라고 하면 나는 자주 그 올챙이들의 치열한 경주를 떠올렸다. 하나의 생명이 만들어지기까지 벌어지는 놀라운 사투를 생각하고 있으면 '나'의 존엄이 저절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부풀어오른 커다란 배를 앞세우고 힘겹게 걷는 임산부들을 쳐다볼 때도, 아이를 품에 안고 불어터진 젖을 물리는 어머니들을 볼 때에도 나는 생명의 존엄성을 목격하게 된다.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하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생태계에서도 자손에 대한 암컷의 희생은 위대하다. 암컷들의 알은 수컷들의 정자에 비해 훨씬 큰 경우가 대부분이며 알을 만드는 데 비용도 더 많이 필요하다. 또한 임신에 지출해야 하는 비용도 암컷이 더 많이 든다.

   지구 생명체 대부분은 유성생식을 통해 자손을 얻는다. 무성생식의 이점 - 교미 상대를 찾거나 교미를 하는 데 따르는 노력이나 시간이 필요 없으며 교미 과정에서 천적의 공격을 받거나 교미로 전염병이 옮겨올 위험도 없는 - 이 있음에도 수고로운 유성생식을 선택하는 것은 왜일까.

 

 

 

    솔레노비아(Solenobia)는 처녀생식, 곧 무성생식을 하는 생명체이다. 생의 대부분을 애벌레 상태로 보내며 몸 주위에 신비로운 갈색 케이스를 끌고 다니는 솔레노비아는 성충이 되어도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고 자신의 케이스 안에 머무르는 모양이 수도원 안에서 생활하는 수녀와 같다. 솔레노비아 성충은 알을 낳고 처녀인 채로 죽는다. 한 번도 날아보지 못하고 한 번의 교미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처녀생식을 통해 낳은 알은 어미와 유전학적으로 동일하며, 유전자는 영원히 전수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성생식보다 수고로움도 덜 하며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는 처녀생식(무성생식)은 왜 이 지구상에서 자리 잡지 못한 것일까. 유성생식 중에 일어나는 염색체의 분열, 교차, 재조합이라는 복잡한 과정과 여러 세포학적 기제들을 자기 자신을 단순히 그대로 복제하는 처녀생식 시스템으로 전수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라고 한다. 지구 생명체의 유성생식은 적응론적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처녀생식을 하는 소수의 생명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구 생명체들은 섹스를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여기서 '섹스'라는 말을 인간의 보편적인 성(姓)으로 한정지어 이해해서는 안 되겠다.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있고, 그 생명체들 만큼 다양한 섹스 행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姓'이라고 했지만,  인간의 섹스  역시 복잡하고 다양한 행태를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유전에 근거한 고정되고 본능적인 반응에서부터 학습되고 문화적으로 변형된 행태에 이르기까지 다형적인 패턴을 보인다. 다른 생명체들도 마찬가지이다. 『성의 자연사』는 각기 다른 유전인자와 생활환경을 가진 생명체들의 다양한 구애와 섹스, 여기서 드러나는 신비로운 자연의 법칙을 충분한 가설과 검증된 이론으로 풀어내고 있다.


 

 

   겨울나기에 필수적인 지방을 몸속에 저장해두기 위해 벌들의 무차별적 공격 위험성을 감수하고 꿀벌에 뛰어드는 곰처럼 모든 생명체의 행동에는 자연 적응론적 법칙이 숨어 있다. 낙태와 영아살해, 근친혼과 족외혼, 성도착, 강간 등에도 자연의 법칙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수컷과 암컷, 혹은 어미의 희생 또한 하나의 자연법칙, 곧 사회화 현상이라는 것. 다시 말해,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익을 취하는 수단이라는 사실.

 

 

   앨리스와 레드퀸은 거대한 체스판 모양의 나라를 힘껏 달리지만 그들이 멈추었을 때는 달리기 전과 꼭 같은 나무 옆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여전히 숨을 헐떡이며 앨리스가 말한다. "아직 우리나라 안에 있어." "보통 이 정도면, 우리처럼 오랫동안 빨리 달려왔다면 다른 곳에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느림보의 나라에 있나 봐." 그러자 레드퀸이 말한다. "자, 네가 보았듯이 같은 장소에 있기 위해서는 온 힘을 다해서 계속 달려야 한단다."



 







       -   루이스 캐럴, 《거울나라의 앨리스 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 중에서

 

 

    자연이 반드시 정의롭고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진실은 별로 유쾌하지 못하다. 자연의 일부인 우리는 그렇더라도 자연을 부인하고 거부할 수 없다. 생명체는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야만 한다. 거울나라 레드퀸의 나라와 같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정자들은 올챙이춤을 추며 열띤 경주를 할 것이고, 힘겹게 하나의 생명체가 만들어질 것이다. 어디에선가 생명이 다한 생명체는 마지막 숨을 할딱일 것이다. 태양은 저 산을 넘어 붉은 피를 토하며 죽을 것이지만, 내일 또 다시 떠오를 것이다. 그 태양은 오늘의 태양과 같으면서도 다른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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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내기한 선비 샘깊은 오늘고전 8
김이은 지음, 정정엽 그림, 김시습 원작 / 알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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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때 <구운몽>과 <금오신화>가 늘 헛갈렸다. 무슨 공통점이 있어서 그렇게 자주 혼동했을까. 모르겠다. <부처님과 내기 한 선비>는 <금오신화>를 김이은 씨가 새롭게 풀어낸 책이다. 간단히 쉽게 읽힌다고 하기에는 시공간적인 장애물이 산재해있다. 그렇지만 읽기에는 무리가 없다. 아무래도 감성적인 측면에서의 이해는 시대를 뛰어넘고 공간을 허무는가 보다.

 

 

   당연히 머리말은 원작자 '김시습'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간단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설명이다. 김이은 씨가 풀어낸 <금오신화>는 역사적 배경을 중시하고 있는 인상을 받는다. 책 후반부에 수록된 심경호 씨의 해설에서도 머리말에서와 같은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머리말과 해설부를 읽으면서 <금오신화>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미처 몰랐던 작품 <금오신화>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느끼지는 못했다. 구성이 얼마나 탄탄하게 짜여져 있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판별하지 못했지만 <금오신화>를 읽으면서 얻은 수확은 두 가지다. 이제는 <구운몽>(이 책은 이전 학교 다닐 때에 읽었다)과 <금오신화>를 더 이상 혼동하지 않고 구분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첫째고 두 번째는 전쟁터 한 가운데 놓여진 듯 생생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책 읽는 동안 무서웠다. <이생규장전>과 <만복사저포기>는 수업시간에 듣던 줄거리뿐이었던 얄팍한 상식에 일정분 무게감을 더해 주었다.

 

 

   <금오신화> 다섯 편의 이야기 가운데 김이은 씨가 풀어쓴 <부처님과 내기 한 선비>는 두 편 이야기가 수록되었다. <이생규장전>은 <이생이 담 안을 엿보다>라는 제목을 얻었다. 제목이 뜻하는 바는 큰 차이는 없지만 문장으로 풀어쓴 제목에서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만복사저포기> 역시 제목에서 압박감이 덜하다.

 

 

   김시습은 살아생전, 그리고 지금까지 '천재'로 일컫는다. 문화적 자긍심이 낮은 땅에서 살았던 그는 오히려 일본에서 더 큰 사랑을 받았다. 그의 글에는 어떠한 매력이 있을까. 순간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기는 했으나 정확히 감지해내지 못하고 있다. 친절한 부연설명과 각주가 작품의 이해를 돕고 있는데, 처음 읽을 때는 몰입에 방해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경우 친절이 불편이 되는 경우는 무지를 탓해야 한다. 어렵지 않은 이야기, 이해가 쉬웠지만 나는 이 책을 원작자의 천재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따지듯 읽은 듯하다. 다시 한 번 더 읽어야겠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읽어야겠다.  <금오신화>의 일부인 두 편만을 우선 읽었지만, 나머지 세 작품까지 모든 편을 찾아보는 성의도 보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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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처럼 화내라 -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분노의 심리학
크리스토프 부르거 지음, 안성철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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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내는 법. 내가 화내는 법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사실 없다. <왕처럼 화내라>의 제목을 보면서 과연 내가 화내는 방식은 왕인가, 혹은 귀족인가, 그도 아니면 걸인인가. 그런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나는 천민이다. 물질적인 것은 물론이고 이제 화내는 것조차 그런 부류에 속한다는 것이 못내 짜증이 난다.

 

 

  화의 사전적 의미부터 짚고 책을 읽었다. 화, 분노.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 사전을 펼치면 또 다른 어휘에 내리꽂혀서 찾기 시작한다. 주객이 전도된다. 못마땅이 뭐고, 또 언짢아서는 또 무엇일까. 그렇다면 분노는 또 뭔지. 나는 '아름다운 가치사전'을 펼쳤다. 학령초기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다. 내게 가치 규범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우선 내 존재를 위협하는 대상이나 행동에 나는 성급히 격분한다.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한 무조건적인 반사 작용의 하나이다. 나를 그토록 화나게 하는 대상은 무엇일까. 남편이다. 말 안 듣고 지독스레 뒤숭궂은 남편이 나를 화나게 한다. 그 다음은 동생이다. 그리고 다음은 아버지일 수도 있겠다. 물론 이들의 우선순위는 자주 뒤바뀐다.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은 그렇게 서로 우열을 가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모든 대상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나와 연관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2.

   <왕처럼 화내라>는 하나의 제국을 들어서 화를 다루고 있다. 소심함과 격분하는 것은 결국 극과 극은 하나로 통한다는 이치와 동일하다. 우화다. 가상의 세계를 전개해나가면서 '화'를 면밀히 다루고 있다.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화'를 다루는 것이 훨씬 더 속이 편하다면 <왕처럼 화내라>의 이야기 방식에 몰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화'라는 감정을 다루고, 그 뿌리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개별차를 성찰하기 위해서 '우화'까지 살펴야 한다면, 너무 힘들다. '화'가 당장의 문제라면 더더욱 힘들다. 이미 화를 내며 스스로를 파괴해나가는 일에 진저리가 쳐진다면 너무 가혹한 작업이다. 우화는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흡인력이 있지만 때때로는 이야기의 본질에서 읽는이를 밀쳐내는 막강한 힘 또한 가지고 있다. 일장일단이다.

 

 

   글쓴이는 심리학 석사다. 약력을 살피면 글쓴이의 글쓰기 방식을 이해하게 된다. '분노 대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글쓴이의 의도를 이해하게 된다.

 

 

3.

   분노가 무엇이고, 화는 또 무엇인가.  감정의 파괴적 측면에만 집중해서는 안된다. 분노가 생존에 얼마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또 왜 필요한지를 또한 알아야 한다. 우화를 걷어낸 <왕처럼 분노하라>는 분노의 심층까지로 뻗어나가고 있다.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된 <왕처럼 분노하라>는 지금 우리, 시시때대로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일상적 삶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자주 화를 내지만, 과연 화 내는 방식에까지 전문적이라 할 수 있을까. 내 감정 하나하나에 민감성을 보여야 할 때이다. 생존과 직결되는 일이다. 부주의는 곧 스스로를 수렁으로 몰아넣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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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2-16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감정을 드러냄에 부주의할 때가 많아요.
그러지 않으려고 애쓰다 결국 드러내지도 못하고 속이 끓어오를 때도 많지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