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학교에서 보았던 성교육 비디오 속 수정 과정은 참으로 신비로웠다. 올챙이처럼 생긴 수많은 정자들이 꼬리를 곰틀거리며 열심히 헤엄을 치는 장면에서 이미 나는 생명의 치열함을 보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섹스라고 하면 나는 자주 그 올챙이들의 치열한 경주를 떠올렸다. 하나의 생명이 만들어지기까지 벌어지는 놀라운 사투를 생각하고 있으면 '나'의 존엄이 저절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부풀어오른 커다란 배를 앞세우고 힘겹게 걷는 임산부들을 쳐다볼 때도, 아이를 품에 안고 불어터진 젖을 물리는 어머니들을 볼 때에도 나는 생명의 존엄성을 목격하게 된다.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하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생태계에서도 자손에 대한 암컷의 희생은 위대하다. 암컷들의 알은 수컷들의 정자에 비해 훨씬 큰 경우가 대부분이며 알을 만드는 데 비용도 더 많이 필요하다. 또한 임신에 지출해야 하는 비용도 암컷이 더 많이 든다.
지구 생명체 대부분은 유성생식을 통해 자손을 얻는다. 무성생식의 이점 - 교미 상대를 찾거나 교미를 하는 데 따르는 노력이나 시간이 필요 없으며 교미 과정에서 천적의 공격을 받거나 교미로 전염병이 옮겨올 위험도 없는 - 이 있음에도 수고로운 유성생식을 선택하는 것은 왜일까.
솔레노비아(Solenobia)는 처녀생식, 곧 무성생식을 하는 생명체이다. 생의 대부분을 애벌레 상태로 보내며 몸 주위에 신비로운 갈색 케이스를 끌고 다니는 솔레노비아는 성충이 되어도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고 자신의 케이스 안에 머무르는 모양이 수도원 안에서 생활하는 수녀와 같다. 솔레노비아 성충은 알을 낳고 처녀인 채로 죽는다. 한 번도 날아보지 못하고 한 번의 교미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처녀생식을 통해 낳은 알은 어미와 유전학적으로 동일하며, 유전자는 영원히 전수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성생식보다 수고로움도 덜 하며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는 처녀생식(무성생식)은 왜 이 지구상에서 자리 잡지 못한 것일까. 유성생식 중에 일어나는 염색체의 분열, 교차, 재조합이라는 복잡한 과정과 여러 세포학적 기제들을 자기 자신을 단순히 그대로 복제하는 처녀생식 시스템으로 전수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라고 한다. 지구 생명체의 유성생식은 적응론적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처녀생식을 하는 소수의 생명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구 생명체들은 섹스를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여기서 '섹스'라는 말을 인간의 보편적인 성(姓)으로 한정지어 이해해서는 안 되겠다.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있고, 그 생명체들 만큼 다양한 섹스 행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姓'이라고 했지만, 인간의 섹스 역시 복잡하고 다양한 행태를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유전에 근거한 고정되고 본능적인 반응에서부터 학습되고 문화적으로 변형된 행태에 이르기까지 다형적인 패턴을 보인다. 다른 생명체들도 마찬가지이다. 『성의 자연사』는 각기 다른 유전인자와 생활환경을 가진 생명체들의 다양한 구애와 섹스, 여기서 드러나는 신비로운 자연의 법칙을 충분한 가설과 검증된 이론으로 풀어내고 있다.
겨울나기에 필수적인 지방을 몸속에 저장해두기 위해 벌들의 무차별적 공격 위험성을 감수하고 꿀벌에 뛰어드는 곰처럼 모든 생명체의 행동에는 자연 적응론적 법칙이 숨어 있다. 낙태와 영아살해, 근친혼과 족외혼, 성도착, 강간 등에도 자연의 법칙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수컷과 암컷, 혹은 어미의 희생 또한 하나의 자연법칙, 곧 사회화 현상이라는 것. 다시 말해,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익을 취하는 수단이라는 사실.
앨리스와 레드퀸은 거대한 체스판 모양의 나라를 힘껏 달리지만 그들이 멈추었을 때는 달리기 전과 꼭 같은 나무 옆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여전히 숨을 헐떡이며 앨리스가 말한다. "아직 우리나라 안에 있어." "보통 이 정도면, 우리처럼 오랫동안 빨리 달려왔다면 다른 곳에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느림보의 나라에 있나 봐." 그러자 레드퀸이 말한다. "자, 네가 보았듯이 같은 장소에 있기 위해서는 온 힘을 다해서 계속 달려야 한단다."
- 루이스 캐럴, 《거울나라의 앨리스 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 중에서
자연이 반드시 정의롭고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진실은 별로 유쾌하지 못하다. 자연의 일부인 우리는 그렇더라도 자연을 부인하고 거부할 수 없다. 생명체는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야만 한다. 거울나라 레드퀸의 나라와 같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정자들은 올챙이춤을 추며 열띤 경주를 할 것이고, 힘겹게 하나의 생명체가 만들어질 것이다. 어디에선가 생명이 다한 생명체는 마지막 숨을 할딱일 것이다. 태양은 저 산을 넘어 붉은 피를 토하며 죽을 것이지만, 내일 또 다시 떠오를 것이다. 그 태양은 오늘의 태양과 같으면서도 다른 태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