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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라, 남자 - 농부 김광화의 몸 살림, 마음 치유 이야기
김광화 지음 / 이루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한국 사회에서 남자로 살아가는 일은 어떤 것일까. 남자로 살아본 일 없는 나는 잘 모른다. 예부터 여성의 고달픈 삶과 그네들의 한(恨)은 문학, 사회적으로 많이 언급되어 왔다. 그에 반하여 남자의 삶과 속내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남자는 세 번 운다, 하는데 - 태어날 때 한 번, 부모님 돌아가실 때 한 번, 마지막으로 나라가 망했을 때 한 번이다. 잘은 모르지만,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이 말을 자주 듣고 자라왔을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속으로 울음을 삼켜야 했다. 남자라면 자신의 감정 표현에 선을 그을 줄 알아야 한다고, 보고 들으며 성장해 온 것이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 라는 말은 그러나 울음을 참으라는 말이 아니라 한다. 태어나서 한 번 우는 것은 '생명의 존속성'을 뜻한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선포하는 울음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우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남'을 뜻한다. 생명을 준 부모에게 효(孝)로써 그 은혜를 다 하라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부모에 대한 효를 다 해야 한다는 것. 세 번째로 나라가 망했을 때 우는 것은 '자아완성'을 뜻한다.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의연함이 바탕에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의연함은 자아가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는 증거라는 것. 한국 남자들이여,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어라.
어릴 때부터 학습되고 습관화되어 이제는 인격으로 굳어져버린 '강한 남자'라는 가면은 그러나 쉽게 벗어던질 수 없을 것이다. 강철심장이라도 달고 있는 듯 무심해 보이는 남자들의 삶은 얼마나 고달플까. 일찍이 내 아버지의 이중적인 모습을 모두 보아버린 나는 남자들도 연약한 생명체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남자의 등을 토닥여줄 수 있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슬픔을 드러낼 줄 아는 그 남자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남자였는지 모른다.
여기, 한 사람의 남자가 있다. 여느 남자들처럼 치열한 도시에서 밥벌이를 하다 떠나와 시골살이를 하고 있는 김광화 씨이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웃는 얼굴이 환한 그는 행복해 보인다. 강한 남자, 능력 있는 아버지, 좋은 남편에는 못 미치지만 자유롭고 당당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강하고 능력 있는 남자 콤플렉스에서, 그 무모한 집착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는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피어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나. 인위적이고 딱딱한 콘크리트 건물들을 벗어나 보드랍고 촉촉한 흙으로 돌아온 김광화 씨는 자연의 원형인 흙을 통해 건강한 삶을 시작한다. 흙 속에서 땀 흘려 일하고 밤이 오면 자고, 또 아침이 오면 흙 속에 파묻혀 보내는 그의 일과는 불면증을 없애주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게 된 것이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 가장 원초적인 욕구에서 우리는 몸의 건강신호를 알아낼 수 있다. 김광화 씨는 몸살림, 마음살림, 그리고 부부사랑살림을 꾸려가는 부자가 되었다. 추운 겨울에는 몸을 옹크리고 있어 건강을 잃기 십상인데, 그럴 때 그는 직접 빨래를 한다. 빨래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는 것이다. 빨래 외에도 설거지, 요리까지 배우고 있는 김광화 씨의 인생은 참으로 맛나 보인다. 부부 관계를 개선시킬 부부연애까지 시작했다고 자랑하는 그의 글줄은 수줍은 소년처럼 설레임으로 가득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흙집을 짓고 흙을 밟으며 흙 속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역시 자연에서 살아갈 때 가장 건강하고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인생의 즐거움과 직결될 것이다. 김광화 씨의 소박한 '자연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직도 강한 남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애처로운 한국 남자들의 삶을 생각하였다. 그들이 용기를 내어 가면을 벗을 때, 가장 자연스럽고 원초적인 살림살이를 배울 때 비로소 그들의 인생은 활짝 피어날 것이다. 아들, 아버지, 남편. 푹 꺼진 그들의 무거운 어깨 너머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울고 싶으면 울어라. 피어라,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