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TV에서 노블레스오브리쥬(noblésse oblíge),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에 대해 다루었다. 우리 사회에서 높은 신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도덕성이 아예 없다. 그들 거의 대부분 정경유착의 산물이었기에 불법으로 얻기 위해 바친 획득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란 것을 의식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우리에게도 노블레스오블리쥬의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12대, 300년 간 만석꾼, 경주 지역 최고의 부자였던 최 부잣집을 그 예로 들고 있다. 구한 말, 부잣집만을 골라 강탈했던 활빈당의 습격을 유일하게 받지 않고, 오랜 기간동안 지역 사람들의 존경을 받은 이유는 최 부잣집의 가풍 있었다.

'만석이상은 하지 마라, 주변 100리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흉년일 때 땅을 사지 마라, 벼슬은 진사이상 하지 마라.'

지금도 준수해야 할 지침들이다. 우리 사회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소수이지만, 분명히 우리 사회를 지탱시켜 주고 있는 소리없는 힘으로 존재하고 있기에 우리 사회가 살아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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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력 섣달 그믐밤이다.

 

해마다 이 때가 되면 오래전에 읽었던 노신의 단편 <축복>이 생각나곤 한다. 화자(Speaker)는 세모에 고향에 있는 사숙 집에 와 묵으며 그 집에 식모로 있었던 한 기구한 운명의 여인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두 번 시집을 가서 두 번 다 남편이 일찍 죽고 아들마저 이리에게 물러 죽는 바람에 서서히 폐인이 되어 일을 잘한다고 칭찬받던 그 집에서 쫓겨나 거지 신세가 된다.

 

화자를 우연히 만나자 죽은 사람에게 영혼이 있느냐, 죽으면 다시 만나게 되냐고 묻는다. 난처해 우물쭈물하다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무심코 말해 버린다. 편리한 대답을 했을 뿐인데, 다음 날 그 여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울히 그녀를 회상하는데 폭죽이 터진다.

 

중국의 세모의 풍속인 부엌 신인 조왕신(竈王神)이 승천하는 송조(送竈) 때 엿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며 터트리는 폭죽이다. 그녀의 죽음이 자신의 편리한 대답 때문일 수 있다는 우울한 마음이 폭죽 소리를 들으며 개운해지는 것을 느낀다. 사실 자신으로선 영혼의 유무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제물의 신인 조왕신이 세모에 하늘에 올라가서 옥황상제에게 그 집안일을 보고한다는 것이다. 나쁜 일을 많이 한 집에선 조왕신이 입을 열지 못하게 부뚜막에 엿을 발라 놓는 풍속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는데 비슷한 것 같다.

 

착하게 산 사람에게 산타가 선물을 준다는 서양 풍속과 일맥상통한 게 아닐까....

 

영혼의 유무를 떠나 어디에서나 착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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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 위 댄스]는 일본 영화다.  직장과 가정 밖에 모르고 시계추처럼 충실
히 출퇴근하던 어느 셀러리맨이  우연히 전철 차창으로 댄스 교습소의 창
가에 서서 뭔가를 기다리듯 바라보는 미모의 여인이 눈에 뜨였다. 그리고
날마다 퇴근길에 그 여인을 지켜보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마력에 끌린
듯 전철에서 내려 교습소까지 가게 되고 떠밀려 들어가 댄스 교습을 받게
된다.

그로부터 그의 생활은 활기에 넘친다. 그가 피곤해 한다고 걱정하던 아내
가 그의 변화를 기뻐하면서도  불안한 나머지 탐정에 의뢰해 그의 변화의
원인을 다 알고서도 내색하지 않고  그가 먼저 털어놓기를 조용히 기다리
는 따스한 가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결혼과 출산, 내 집 마련을 위해 혼신을 다해 오다가 마침내 성취한 다음
에 중년이 느끼게 되는 허탈한 심정과 일상 탈출 이야기는 뻔한 스토리라
고 할 수 있다.

10가지나 되는 사교 댄스를 배우는 과정이 재미있게 펼쳐지는데  이 영화
의 매력이 있다.  주인공이 교습소에 끌려가게 되었던 창가에 서 있던 미
모의 여인은 2년전 세계 대회에 도전하다 파트너의 배신으로 좌절해 있던
뛰어난 댄서였다.

그녀는 주인공에게 자기 때문에 댄스를 배우려 한다면 그만두라고 냉정하
게 말하지만 이미 댄스의 세계에 도취하게 된 주인공은 그게 아니라는 것
을 증명하기 위해  더욱 진지하게 연습을 해서  댄스 경연 대회에 나가게
된다.  대회에 나가게 된 그를 위해 특별 지도하던 그녀는 주인공의 진지
한 자세에서 포기했던 자신의 꿈을 위해 다시 도전하게 된다.

유학을 떠나게 된 그녀를 위한 환송연에서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파트너를
선택해서 댄스를 추라고 하자 주인공을 선택하고 댄스를 환상적으로 추면
예술 영화에 가까운 매력적인 영화가 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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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신문에 11월 개봉 영화 중 프리퀸시가 괜찮다고 해서 평촌 킴스클럽에 갔다.

오전 첫회인지 사람이 없어 혼자 들어가 앉았다. 그래도 한 두명을 오겠지

했는데  웬걸 나 혼자만 앉아 있는데도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하는 게 아닌가!

썰렁하게 빈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기분이란, 영화관을 독점하고
오븟하게 본다는 느낌도 들고, 이렇게 인기없는 영화를 혼자 죽치고 보고
있다는 청승맞다는 느낌도 들고.

영화는 기발한 아이디어이라고 할지 황당무계한 설정이라고 할지  그런대
로 볼만 했다. 끝나고 나오면서  관리인에게 나도 안 들어 갔었으면 상영
했을 거냐고 물었더니, 관객이 없어도 예정대로 상영하단다.

오래 전에 신문에서  어느 극장에 관객이 한 명만 들어가서 수지가 안 맞
는다고 상영을 할 수 없다고 환불해 주고 커피까지 대접해 돌려 보냈다는
걸 본 적이 있다. 영화를 상영하는 방식이 바뀐 모양이다.

그 때 그 관객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하고 웃었는데  난 영화관을 공짜로
세를 내고 보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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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2004-01-1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리 퀀시, 짐 카비젤이란 배우 때문에 기억납니다. 소방관 아버지에는 데니스 퀘이드였죠? 동감이라는 우리나라 영화와 비슷한 시기에 보고 재미있다 나쁘지 않다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과거를 바꾸면 현재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상상을 쉽게 했는데 악을 응징하는 선이라는 일방적인 시각에서 보아서 마지막 장면에 감동을 받고 말았다는.....

느티나무 2004-01-23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관에서 혼자만 영화를 본 적이 있답니다. 두 번이었는데... 아주 아주 묘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영화관을 전세냈다는 기분!! 영화도 좋았지만... 혼자 앉아 있는 기분도 짜릿했죠!

marine 2004-08-13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친이랑 둘이서 영화관 세 내고 볼 때는 좋던데, 어린이 영화 사촌 동생이랑 둘이 텅 빈 극장에 앉아 보려니까 진짜 썰렁하더군요 계속 자다 왔습니다^^
 

사이버리터러시(cyberliteracy)란 신조어는 최근 번역되어 나온 <거미줄에 걸린 웹>(로라 J. 구락,강수아역, 들녘)의 원제이다.

요즘 뉴스를 보고 있으면 인터넷에서는 온갖 더러운 못된 짓거리만 행하는 것 같이 여겨지게 된다. 그러나 인터넷은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해 쓰이는 편리하기 그지없는 도구일 뿐이다. 그러기에 근본적으로 사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리터러시(literacy)란 읽고 쓰는 능력을 일컫는 말이다. 예전에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을 문맹(文盲)이라고 한 것을 빗대어 요즘은 컴퓨터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을 컴맹이라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저자가 말하는 사이버리터러시(cyberliteracy)란 컴퓨터를 쓸 줄 아는 능력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즉, 비판적인 인터넷 사용 능력을 말하고 있다.

인터넷에서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익명성이다. 자신이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투명 인간이라도 된 듯 현실 세계에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장난을 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야기되는 얼마나 큰  문제인가를 이책의 2장에서 다루고 있는데, 인터넷에서의 익명성 - 그 허와 실을 시사 만화 두 컷으로 극명하게 보여 보여 주고 있다.


인터넷 익명성의 그
허와 실

 

디지털 정체성은 전자상거래와 연관된다. 오늘날의 익명으로 남기란 초기 시절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뉴요커) 만평의 속편이 2070년 봄 디트로이트 신문에 실렸다(그림). 이 만평은 아무도 당신을 모른다고 생각할 때에도, 백그라운드 소프트웨어가 (특히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당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그러므로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정체를 왜곡할 수 있다고 해도, 바로 그 순간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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