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섣달 그믐밤이다.
해마다 이 때가 되면 오래전에 읽었던 노신의 단편 <축복>이 생각나곤 한다. 화자(Speaker)는 세모에 고향에 있는 사숙 집에 와 묵으며 그 집에 식모로 있었던 한 기구한 운명의 여인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두 번 시집을 가서 두 번 다 남편이 일찍 죽고 아들마저 이리에게 물러 죽는 바람에 서서히 폐인이 되어 일을 잘한다고 칭찬받던 그 집에서 쫓겨나 거지 신세가 된다.
화자를 우연히 만나자 죽은 사람에게 영혼이 있느냐, 죽으면 다시 만나게 되냐고 묻는다. 난처해 우물쭈물하다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무심코 말해 버린다. 편리한 대답을 했을 뿐인데, 다음 날 그 여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울히 그녀를 회상하는데 폭죽이 터진다.
중국의 세모의 풍속인 부엌 신인 조왕신(竈王神)이 승천하는 송조(送竈) 때 엿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며 터트리는 폭죽이다. 그녀의 죽음이 자신의 편리한 대답 때문일 수 있다는 우울한 마음이 폭죽 소리를 들으며 개운해지는 것을 느낀다. 사실 자신으로선 영혼의 유무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제물의 신인 조왕신이 세모에 하늘에 올라가서 옥황상제에게 그 집안일을 보고한다는 것이다. 나쁜 일을 많이 한 집에선 조왕신이 입을 열지 못하게 부뚜막에 엿을 발라 놓는 풍속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는데 비슷한 것 같다.
착하게 산 사람에게 산타가 선물을 준다는 서양 풍속과 일맥상통한 게 아닐까....
영혼의 유무를 떠나 어디에서나 착하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