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쓰고 싶은 글을 한 편이라도 쓰고 죽는 작가는 거의 없다. 그런데 백척간두의 고통 속에서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작품을 쓸 수 있었고, 독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으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유쾌한 웃음이 줄곧 폭죽처럼 터졌다. 뭔가 생생히 묘사하고 싶을 때는 손짓과 몸짓이 커졌다. 목소리는 약간 쉰 듯 들렸으나 인터뷰 하는 3시간 내내 그는 기운차게 대화를 이끌었다. 수술과 치료의 흉터가 남은 목을 가리기 위해 두른 목도리, 헐렁한 옷 아래 수척해진 몸을 빼면 그가 3년째 투병 중이란 사실을 깜박 잊을 뻔했다.

12일 낮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작업실에서 만난 작가 최인호 씨(66)의 표정은 밝고 홀가분해 보였다. 암과 처절하게 싸우면서 썼던 신작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여백)가 출간 한 달여 만에 15만 부를 돌파했고 16일 오후 4시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리는 사인회를 시작으로 전국 독자들과 만날 채비도 마쳤다. 그는 “책 낸 뒤 장시간 대화와 사진기자의 촬영에 응한 것은 처음”이라며 “인터뷰 종결자 격인 인터뷰”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에 앞서 방안을 둘러보니 그가 삐뚤빼뚤 연습한 한문 붓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世與靑山何者是 春光無處不開花(세여청산하자시 춘광무처불개화·세상과 청산은 어느 쪽이 옳은가. 봄볕 있는 곳에 꽃피지 않는 곳이 없도다)’. 일찍이 그가 쓴 소설 ‘길 없는 길’의 주인공 경허 스님이 남긴 선시다.

“이 말이 좋다. 나의 좌우명이다. 속세다 청산이다, 친구냐 적이냐, 여당이냐 야당이냐, 네가 옳나 내가 옳나 우리는 시비를 따지고 들지만 봄볕만 있다면 어디든 어김없이 꽃이 피는 것, 내 마음 속에서 분별심을 버리고 봄볕을 찾아야 한다는 거다. 근데 병을 걸린 뒤 암이 내게는 봄볕이라는 것을 알았다.”

암과의 만남이 어떻게 봄볕이란 걸까. 그가 설명했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나는 지금까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본 적이 없다. 병원은 재수 없고 불운한 사람들이나 가는, 나하고는 상관없는 격리된 특별한 장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가 어영부영하다가 들쑥날쑥하다가 허겁지겁 죽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암은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 “이 자식들아 난 살아있다” 매일 외쳐 ▼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병은 자랑거리도 아니고, 숨겨야 할 수치도 아니다. 다만 병들어 구질구질하게 힘든 모습을 남에게 보여줘 쓸데없는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기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3년 동안 은둔했다. 그러나 이번에 신작을 펴내 어쩔 수 없이 세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은 내가 암을 팔아 앵벌이하려는 생각 때문도 아니다. 내가 만났던 수많은 환자에게 그나마 희망과 기쁨을 주고 싶은 소박한 꿈 때문이다. 지난 3년 동안 내 머릿속에 머물러 있던 영상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예수의 모습이었다. 예수는 나사로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의 집을 찾아가 말한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환자 여러분에게 이 장면과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모든 환자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자기 스스로의 동굴에 갇혀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시체처럼 냄새를 풍기면서 누워 있다. 우리들은 동굴에서 나가야 한다. 나는 환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나오세요. 병상에서 일어서세요.’ 그래야만 우리는 환자로 죽지 않고 작가로, 아버지로, 남편으로, 인간으로 죽을 수 있다. 영화 빠삐용을 보면 마지막에 스티브 매퀸이 야자열매를 채운 자루와 함께 절벽에서 뛰어내려 망망대해를 헤엄치며 이렇게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 이 자식들아, 나는 살아 있다.’ 환자들은 끊임없이 외쳐야 한다. ‘, 이 자식들아, 나는 살아 있다.’ 병의 동굴에 갇혀 있지 말고 푸른 바다 위에 떠 있어라. 헤엄치려 하지 말고 파도에 몸을 맡겨라. 두려워하지 마라. 파도가 그대를 대륙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그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 탁자 위 양철통에서 고무 골무를 꺼내 보여준다. 원고지와 만년필을 고수하는 작가는 지난해 1027일부터 1226일까지 날마다 이 탁자에 앉아 스스로의 열망으로 쓴 최초의 전작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발톱과 손톱이 빠지자 약방에서 골무를 사다 손가락에 끼우고 고통의 축제 속에 글을 완성했다. 그에겐 작가 인생 50년에 쓴 수백 편의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고독한 독자인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쓴 소설이라고 했는데 벌써 15만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익숙한 일상에서 길을 잃은 남자의 사흘간 기록이란 내용이 자칫 난해할 수 있는데, 이런 뜨거운 반응을 기대했는지.

정말 고마운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고통 끝에 탄생된 작품에 독자들이 큰 힘을 보태줘서 나로서는 큰 위안이자 기쁨이다. 돌이켜보면 50년 가까운 작가 인생에서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독자였다. 마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거인 안타이오스처럼 땅에 쓰러지면 나는 독자의 땅에 의해서 더욱 힘을 얻었다. 이번에 쓴 작품도 엄청난 에너지로 항상 나를 사랑해주는 독자들의 응원 덕분이다.”

신작에서 청년작가의 신선함이 느껴진다는 평이 나온다

두 달 동안 항암치료를 받으며 끝없는 구역질과 가려움증에 시달리면서도 불가사의한 집중력으로 이 소설을 완성했다.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이 작품이 고통 중에 쓴 작품이기 때문에 잘 봐달라는 어리광적 하소연이 깃들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명품을 짝퉁화하는 교묘한 수법으로 짜깁기하듯 매너리즘에 빠져 봄날에 군내 나는 김치와 같은 작품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고통의 공간과 5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이번 소설과 승부를 벌이고 싶었다. 이 작품을 통해 청춘의 용기와 패기가 느껴진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나는 젊어지는 물을 먹어 회춘한 기분이다. 그래서 기쁘다.”

 새로운 출발점에 다시 서겠다고 했는데.

 내 문학인생의 제1기는 데뷔해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이었고, 2기는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하여 암에 걸리기까지의 기간이었다. 이번에 나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제3기의 문학을 시작하려 한다. 3기의 문학에서는 지금까지와 달리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쓰겠다. 나중에는 절대독자인 나까지도 사라져버리는 그런 무위(無爲)의 작품을 쓰고 싶다. 모네의 예를 들자. 모네는 알다시피 인상파 그림의 아버지다. 젊은 시절 그는 하루 종일 호숫가에 앉아 수련 위에 비치는 햇빛의 반사를 시시각각 관찰하고 있었다. 그때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모네가 병원에 달려갔을 때 아내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모네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숨져가는 아내의 얼굴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었다. 모네의 치열한 작가정신을 나는 본받고 싶다.”

어느덧 점심시간. “먹는 게 대단한 전쟁이야.” 점심 식사로 준비한 콩국수를 먹기 전에 그가 말했다. 남들이 수저를 놓은 뒤에도 서두르지 않고 국수를 건져먹고 나선 국물을 나눠 마시며 한마디 던진다. 아내, , 그리고 손녀를 위한 한 모금씩이라고.

3년 전 침샘암 진단을 받은 이후 지도 없는 길에 내팽개쳐진 상태지만 그는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인생 공부 많이 했다. 야코 많이 죽었지. 그래도 내가 낙천주의자라서.” 아프고 나서 자신의 장점도 깨달았다. “내가 단점이 많은 사람인 줄 알았거든. 와이프도 칭찬 잘 안하는 편인데 장점이 많다고 인정했어. 하여튼 내가 잘 견디는 편이야. 희귀한 환자라고 하더라. 그래도 고비를 넘겼다고 할 수 있나, 늘 현재진행형이지. 작년 겨울에 가장 힘들 때 일주일간 주사 맞고 집에 가면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 그때 아파트 앞 복도를 걸으니 55걸음이야. 그걸 50여 번 왕복하면 6000걸음쯤 되더라고.”

  돌아보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였는지.

나는 작가다. 일곱 살 때부터 나는 오직 작가만을 꿈꿔왔다. 그러므로 좋은 글을 쓰는 것은 내 생의 목표다. 정말 쓰고 싶은 글을 한 편이라도 쓰고 죽는 작가는 거의 없다. 그런데 백척간두의 고통 속에서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작품을 쓸 수 있었고, 그것이 또한 독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으니 바로 이 순간이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최근에 나는 이태석 신부님이 임종하기 직전에 들렀던 매괴성당에 다녀왔다. 그곳에는 외국인 신부님 동상이 있고,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사랑받아 온 존재다. 태어났을 때부터 나의 인생은 축제고, 카니발이었으며, 매 순간이 전성기가 아닐 때가 없었다. 요즘이야말로 나의 황금기다. “

인터뷰 말미에 그는 우리네 삶을 매표소에서 표를 사기 위해 무작정 기다리는 모습에 비유했다. 언제쯤 표를 구할지 모르겠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어느덧 내 뒤로 줄선 사람들을 보며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위안을 삼는다. 언젠가 우리는 표를 구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곧 독자들을 만나러 서점에 간다. 의사는 내게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나는 그토록 사랑해준 독자를 만나 인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악수는 청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감기에 걸릴 가능성이 많으니까. 그리고 잠깐 열었던 사립문을 닫을 것이다.”

그가 남은 것, 내가 바라는 소원 한 가지라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년 41일 만우절에 기자회견을 열 것이다. 기자들을 앞에 두고 나는 솔직하게고백할 것이다. 그동안 여러분을 속여서 미안하다고. 내가 암에 걸렸다고 거짓말한 것은 외로워서 관심을 끌기 위함이었다고. 그리고 껄껄 웃으며 큰소리로 소리칠 것이다. “뻥이야!”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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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한국문학
1. 고전시가선집
2. 연암집
3. 구운몽
4. 춘향전
5. 한중록
6. 청구야담
7. 무정
8. 삼대
9. 천변풍경
10. 고향
11. 탁류
12. 인간문제
13. 정지용 시집
14. 백석시선집
15. 카인의 후예
16. 토지
17. 광장

Part 2 외국문학
18. 당시선
19. 홍루몽
20. 루쉰소설전집
21. 변신인형
22. 마음
23. 설국
24.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25. 변신 이야기
26. 그리스 비극
27. 신곡
28. 그리스 로마 신화
29. 셰익스피어: 햄릿 외 3편
30. 위대한 유산
31. 주홍글자
32. 젊은 예술가의 초상
33. 허클베리 핀의 모험
34. 황무지
35. 마담 보바리
36. 스완씨 댁 쪽으로
37. 인간의 조건
38. 파우스트
39. 마의 산
40. 변신
41. 양철북
42. 돈키호테
43. 백년 동안의 고독
44. 픽션들
45. 고도를 기다리며
46.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47. 안나 카레니나
48. 체호프 희곡선

Part 3 동양사상
49. 삼국유사
50. 보조법어
51. 퇴계문선
52. 율곡문선
53. 다산문선
54. 주역
55. 논어
56. 맹자
57. 대학·중용
58. 제자백가 선독
59. 장자
60. 아함경
61. 사기
62. 우파니샤드

Part 4 서양사상
63. 역사
64. 의무론
65. 국가
66. 니코마코스 윤리학
67. 고백록
68. 군주론
69. 방법서설
70. 리바이어던
71. 정부론 2편
72. 법의 정신
73. 에밀
74. 국부론
75. 실천이성비판
76. 페더랄리스트 페이퍼
77. 미국의 민주주의
78. 자유론
79. 자본론 1권
80. 도덕계보학
81. 꿈의 해석
82.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83. 감시와 처벌
84. 간디자서전
85.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86. 근현대사 4부작
-혁명의 시대,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극단의 시대
87. 슬픈 열대
88.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89. 미디어의 이해

Part 5 과학기술
90. 과학고전선집
91. 신기관
92. 종의 기원
93. 과학혁명의 구조
94. 괴델, 에셔, 바흐
95. 부분과 전체
96. 엔트로피
97. 이기적 유전자
98. 카오스
99. 객관성의 칼날
100.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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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학위원회(SAT) 추천도서

1. 걸리버 여행기 - 조너선 스위프트
2. 고도를 기다리며 - 사뮈엘 베케트
3.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 조라 닐 허스튼
4. 나사의 회전 - 헨리 제임스
5.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 윌리엄 포크너
6. 네이티브 선 - 리처드 라이트
7. 노트르담의 꼽추 - 빅토르 위고
8. 닥터 지바고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9. 단편선집 - 에드거 앨런 포
10. 단편선집 - 유도라 웰티
11. 대주교의 죽음 - 윌라 캐더
12.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13. 돈키호테 - 세르반테스
14. 동물농장 - 조지 오웰
15. 두 도시 이야기 - 찰스 디킨스
16. 둥근 항아리 - 실비아 플라스
17. 등대로 - 버지니아 울프
18. 로미오와 줄리엣 - 세익스피어
19. 로빈슨 크루소 - 대니얼 디포
20. 마의 산 - 토마스 만
21. 맥베스 - 세익스피어
22. 멋진 신세계 - 올더스 헉슬리
23. 모든 것은 무너진다. - 치누아 아체베
24. 모비 딕(백경) - 허먼 멜빌
25. 모히칸 족의 최후 - 제임스 쿠퍼
26. 무기여 잘있거라 - 어니스트 헤밍웨이
27. 바틀비 이야기 - 허먼 멜빌
28. 밤으로의 긴 여로 - 유진 오닐
29. 배빗 - 싱클레어 루이스
30. 백년의 고독 - 가브리엘 마르케스
31. 벚꽃동산 - 안톤 체호프
32. 베오울프 - 영국 중세전래
33. 변신 - 프란츠 카프카
34. 보물섬 - 로버트 스티븐슨
35. 보바리부인 - 귀스타브 플로베르
36. 분노의 포도 - 존 스타인벡
37. 붉은 무공훈장 - 스티븐 크레인
38. 빌러비드 - 토니 모리슨
39. 산에 가서 외치라 - 제임스 볼드윈
40. 삼총사 - 알렉상드르 뒤마
41. 서부전선 이상없다 - 레마르크
42. 세리머니 - 레슬리 마먼 실코
43. 수필선집 - 랠프 에머슨
44. 스완네 집 쪽으로 - 마르셀 프루스트
45. 슬로터하우스-5 - 커트 주니어 보네거
46. 시나로 드 벨주락 - 에드몽 로스탕
47. 시련 - 아서 밀러
48. 아메리카의 비극(젊은이의 양지) - 시어도어 드라이저
49. 아버지와 아들 - 이반 투르게네프
50. 안티고네 - 소포클레스
51. 앵무새 죽이기(앨라배마에서 생긴 일) - 하퍼 리
52. 야성의 부름 - 잭 런던
53. 어둠의 속 - 조지프 콘래드
54. 어웨이크닝 - 에이트 초핀
55. 여인의 초상 - 헨리 제임스
56. 여전사 - 맥신 홍 킹스턴
57. 오기 마치의 모험 - 솔 벨로
58. 오디세이 - 호메로스
59. 오이디푸스 왕 - 소포클레스
60.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61. 월든 - 헨리 소로
62. 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피츠제럴드
63. 유리동물원 - 테너시 윌리엄스
64. 음향과 분노 - 윌리엄 포크너
65.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솔제니친
66. 이방인 - 알베르 카뮈
67. 인형의 집 - 헨리크 입센
68. 일리아드 - 호메로스
69. 전쟁과 평화 - 톨스토이
70. 젊은 예술가의 초상 - 제임스 조이스
71. 제49호 품목의 경매 - 토마스 핀천
72. 제인 에어 - 샬럿 브론테
73. 죄와 벌 - 도스토예프스키
74. 주홍글씨 - 너대니얼 호손
75. 지옥 - 단테
76. 캉디드 - 볼테르
77. 캔터베리 이야기 - 제프리 초서
78. 캣치22 - 조지프 헬러
79. 컬러 퍼플 - 앨리스 워커
80. 테스 - 토마스 하디
81. 톰 아저씨의 오두막 - 해리엇 스토
82. 톰 존스 - 헨리 필딩
83. 투명인간 - 랠프 엘리슨
84. 파리대왕 - 윌리엄 골딩
85. 파우스트 - 괴테
86.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87. 풀잎 - 윌트 휘트먼
88. 프랑켄슈타인 - 메리 셸리
89. 프레드릭 더글러스의 삶 - 프레드릭 더글러스
90. 플로스강의 물방앗간 - 조지 앨리엇
91. 피그말리온 - 조지 버나드 쇼
92. 한여름 밤의 꿈 - 세익스피어
93. 햄릿 - 세익스피어
94. 허영의 시장 - 윌리엄 새커리
95. 허클베리 핀의 모험 - 마크 트웨인
96. 호밀밭의 파수꾼 - J D 샐린저
97. 환락의 집 - 이디스 워튼
98. A Dath in the Family - 제임스 아치
99. A Goodman is hard to Find - 플래너리 오코너
100. Call it Sleep - 헨리 로스
101. The Good Soldier - 포드 매덕스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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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타임지 선정 100대 영문소설
*1923년부터 현재까지 출간된 영문소설 중 타임지 전문 비평가들이 선정한, 100대 소설.

1. The Adventures of Augie March _ Saul Bellow _ 오우기 마치의 모험
2. All the King's Men _ Robert Penn Warren _ 모두가 왕의 부하들
3. American Pastoral _ Philip Roth _ 미국 Pastoral
4. An American Tragedy _ Theodore Dreiser _ 미국의 비극 / 아메리카의 비극
5. Animal Farm _ George Orwell _ 동물농장
6. Appointment in Samarra _ John O'Hara _ Samarra 안의 약속
7. Are You There God? It's Me, Margaret _ Judy Blume _ 안녕하세요, 하느님? 저 마거릿이에요
8. The Assistant _ Bernard Malamud _ 점원
9. At Swim-Two-Birds _ Flann O'Brien
10.Atonement _ Ian McEwan _ 속죄
11.Beloved _ Toni Morrison _ 빌러비드 / Beloved
12.The Berlin Stories _ Christopher Isherwood _ 베를린 이야기
13.The Big Sleep _ Raymond Chandler _ 빅 슬립
14.The Blind Assassin _ Margaret Atwood _ 눈 먼 자객
15.Blood Meridian _ Cormac McCarthy _ 혈액 자오선
16.Brideshead Revisited _ Evelyn Waugh _ 옥스포드의 떠돌이들
17.The Bridge of San Luis Rey _ Thornton Wilder _ 운명의 다리
18.Call It Sleep _ Henry Roth
19.Catch-22 _ Joseph Heller _ 캐치-22
20.The Catcher in the Rye _ J.D. Salinger _ 호밀밭의 파수꾼
21.A Clockwork Orange _ Anthony Burgess _ 시계태엽 오렌지
22.The Confessions of Nat Turner _ William Styron _ 넷 터너의 고백
23.The Corrections _ Jonathan Franzen _ 개정
24.The Crying of Lot 49 _ Thomas Pynchon _ 제49호 품목의 경매
25.A Dance to the Music of Time _ Anthony Powell
26.The Day of the Locust _ Nathanael West _ 메뚜기의 하루
27.Death Comes for the Archbishop _ Willa Cather _ 대주교의 죽음
28.A Death in the Family _ James Agee _ 만장
29.The Death of the Heart _ Elizabeth Bowen
30.Deliverance _ James Dickey
31.Dog Soldiers _ Robert Stone
32.Falconer _ John Cheever _ 팰커너
33.The French Lieutenant's Woman _ John Fowles _ 프랑스 중위의 여자
34.The Golden Notebook _ Doris Lessing _ 황금 노트북
35.Go Tell it on the Mountain _ James Baldwin _ 산에 가서 말하라
36.Gone With the Wind _ Margaret Mitchell _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37.The Grapes of Wrath _ John Steinbeck _ 분노의 포도
38.Gravity's Rainbow _ Thomas Pynchon _ 중력의 무지개
39.The Great Gatsby _ F. Scott Fitzgerald _ 위대한 개츠비
40.A Handful of Dust _ Evelyn Waugh _ 한 줌의 흙
41.The Heart Is A Lonely Hunter _ Carson McCullers _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42.The Heart of the Matter _ Graham Greene _ 사건의 핵심 (영한대역)
43.Herzog _ Saul Bellow _ 허조그
44.Housekeeping _ Marilynne Robinson _ 가사
45.A House for Mr. Biswas _ V.S. Naipaul
46.I, Claudius _ Robert Graves _ 나, 클라우디우스
47.Infinite Jest _ David Foster Wallace
48.Invisible Man _ Ralph Ellison _ 보이지 않는 인간
49.Light in August _ William Faulkner _ 8월의 빛
50.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 _ C.S. Lewis _ 사자와 마녀와 옷장
51.Lolita _ Vladimir Nabokov _ 롤리타
52.Lord of the Flies _ William Golding _ 파리대왕
53.The Lord of the Rings _ J.R.R. Tolkien _ 반지의 제왕
54.Loving _ Henry Green
55.Lucky Jim _ Kingsley Amis
56.The Man Who Loved Children _ Christina Stead
57.Midnight's Children _ Salman Rushdie _ 한밤의 아이들
58.Money _ Martin Amis
59.The Moviegoer _ Walker Percy
60.Mrs. Dalloway _ Virginia Woolf _ 댈러웨이 부인
61.Naked Lunch _ William Burroughs _ 벌거벗은 점심
62.Native Son _ Richard Wright _ 검둥이 소년
63.Neuromancer _ William Gibson _ 뉴로맨서
64.Never Let Me Go _ Kazuo Ishiguro
65.1984 _ George Orwell _ 1984
66.On the Road _ Jack Kerouac _ 길 위에서
67.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_ Ken Kesey _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68.The Painted Bird _ Jerzy Kosinski _ 채색된 새
69.Pale Fire _ Vladimir Nabokov _ 창백한 불꽃
70.A Passage to India _ E.M. Forster _ 인도에의 길
71.Play It As It Lays _ Joan Didion
72.Portnoy's Complaint _ Philip Roth _ 포트노이 씨의 불만
73.Possession _ A.S. Byatt _ 소유
74.The Power and the Glory _ Graham Greene _ 권력과 영광 (영한대역)
75.The Prime of Miss Jean Brodie _ Muriel Spark
76.Rabbit, Run _ John Updike _ 달려라 토끼야
77.Ragtime _ E.L. Doctorow _ 래그타임
78.The Recognitions _ William Gaddis
79.Red Harvest _ Dashiell Hammett _ 피의 수확
80.Revolutionary Road _ Richard Yates
81.The Sheltering Sky _ Paul Bowles _ 모두가 고독한 사람들
82.Slaughterhouse-Five _ Kurt Vonnegut _ 제5도살장
83.Snow Crash _ Neal Stephenson _ 스노우 크래쉬
84.The Sot-Weed Factor _ John Barth
85.The Sound and the Fury _ William Faulkner _ 음향과 분노
86.The Sportswriter _ Richard Ford
87.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 _ John le Carre _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88.The Sun Also Rises _ Ernest Hemingway _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
89.Their Eyes Were Watching God _ Zora Neale Hurston _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90.Things Fall Apart _ Chinua Achebe _ 모든 것은 무너진다
91.To Kill a Mockingbird _ Harper Lee _ 앵무새 죽이기
92.To the Lighthouse _ Virginia Woolf _ 등대로
93.Tropic of Cancer _ Henry Miller _ 북회귀선
94.Ubik _ Philip K. Dick
95.Under the Net _ Iris Murdoch _ 그물을 헤치고
96.Under the Volcano _ Malcolm Lowry
97.Watchmen _ Alan Moore & Dave Gibbons
98.White Noise _ Don DeLillo _ 화이트 노이즈
99.White Teeth _ Zadie Smith
100Wide Sargasso Sea _ Jean Rhys _ 광막한 바다 사르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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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이 있어 우리는 행복하다

독일 월드컵 본선진출 주역
쿠웨이트시티=최보윤기자 spica@chosun.com
입력 : 2005.06.10 03:16 05' / 수정 : 2005.06.10 03:21 54'
 

 

여드름 투성이의 스무 살 청년은 거울을 보면 스스로 “못생겼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9일 새벽 잠을 설쳐가며 한국이 독일 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에서 쿠웨이트를 4대0으로 꺾는 모습을 지켜본 국민들에겐 축구대표팀 막내 박주영은 그 누구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 '소년의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됐다. 지난 1996년 대구 반야월초등학교 5학년이던 박주영(가운데 10번)이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린 한 축구대회 결승전에서 상대 선수들을 제치고 드리블 하고 있다. /스포츠하우스 제공
◆ 무뚝뚝한 골잡이

경기가 끝난 뒤 한국 선수들끼리 어깨동무를 한 채 노래를 부르고 깡충깡충 뛸 때, 일등공신 박주영은 그 자리에 없었다. 경기 MVP로 뽑혀 상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상품을 손에 들고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얼굴은 예의 그 무표정 그대로다.

“기분 좋고요. 골 넣은 거보다도 월드컵 나갈 수 있게 된 게 무엇보다 좋았고요.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는데요. 수비 뒷공간으로 파고든 게 먹힌 거 같고요….”


▲ 자전거를 타고 있는 '꼬마' 박주영. /조선일보 DB
그의 말대로라면 정말 뛸 듯이 기뻐, 목소리라도 들떠야 하는데 이거 참 담담하다. 선배들이 덥석 껴안으며 토닥거리고, 코칭 스태프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해도 처진 눈인사로 살짝 답례를 할 뿐이다. 야스퍼트 피지컬 코치는 뭐가 그리도 예쁜지 냉큼 달려가서 ‘굿잡(good job)’이라며 그를 얼싸안기까지 한다. 이번에도 역시 살짝 띤 미소가 전부다. 하지만 사석에서 또래들을 만나면 ‘수돗물 쏟아지듯’ 수다를 늘어놓는 게 박주영의 또 다른 일면이다.

그가 환하게 웃을 때는 역시 공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빌 때다. 이제 그렇게도 좋아하는 축구를 또 하게 생겼다. 10일부터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세계청소년(20세 이하) 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 박주영은 9일 쿠웨이트에서 곧바로 현지 한국청소년대표팀에 합류했다. “워낙 호흡이 잘 맞는 친구들이라, 경기하는 데는 문제 없을 것 같고요. 대표팀에서 하던 대로 똑같이만 하면 잘 될 거 같은데요.” 박주영이 내던지는 당찬 출사표다.

◆ 부드러움과 스피드로 승부

겨우 20살. 그러나 이미 한국 축구의 미래로 우뚝 서버린 자랑스런 청년. 그에게 공이 가면 안심이 된다. IQ 150의 머리에서 나오는 지능적인 플레이, 표범이 먹이 낚아채듯 기회를 놓치지 않는 능력, 반박자 빠른 슈팅, 성실한 훈련자세…. 이회택, 차범근, 최순호, 황선홍, 최용수 등등 역대 스트라이커들이 체격과 파워를 바탕으로 했다면 박주영은 부드러움과 스피드로 상대를 제압한다. 100m 달리기 기록이 12초. 공격수로서 최상위권은 아니지만, 박주영은 그냥 달릴 때나 공을 드리블하며 달릴 때나 속도가 똑같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1m82, 71㎏의 체격은 가냘퍼 보이기까지 한다. 본프레레 감독이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고 발탁을 꺼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박주영은 A매치 2경기 연속 풀타임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주위의 우려를 깨끗이 씻어냈다. 불필요한 체력소모를 하지 않는 영리한 플레이가 그 비결이다. 또 하나의 강점은 큰 부상이 없었다는 것. 대표팀 최주영 의무팀장은 “주영이 몸은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하다”고 했다.


▲ 캐리커처=이철원기자
◆ 미니홈피서 싸이질도 열심

1985년 7월 10일생, 축구화 사이즈 265~270㎜, 수면시간 6시간, 자주 가는 곳 PC방, 이상형 ‘기도할 때 모습 예쁜 여자’, 성격의 단점 ‘잘 삐침’, 싫어하는 말 “교회 뭐할라구 가노”….

박주영의 팬이라면 그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를 알아내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박주영이 직접 자신의 팬클럽에 100문100답을 통해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두 살 위의 누나가 주는 ‘도토리’를 갖고 자신의 미니홈피(www.cyworld.com/cyp10)에서 ‘싸이질’도 열심히 하는 신세대다.

대구에서 교회를 다닐 때 만난 한 살 연상의 여자친구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4월 24일 프로축구 대전과의 경기에서 골 세러모니로 속옷에 ‘굼벵이’ 그림을 그린 것에 대해 “별명이 굼벵이인 여자친구에게 사랑고백을 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각종 광고 모델로도 인기가 높은 박주영의 한 달 용돈은 50만원. 그저 이것 저것 사먹는 데 쓰는 정도다. 골을 넣은 뒤 기도 세러모니를 빼놓지 않는 박주영의 장래 희망은 ‘축구 선교사’다.

◆ 박주영 축구의 비밀

대구 반야월초등학교 4학년 때 선수 생활을 시작한 박주영은 자신만의 비법으로 축구를 색다르게 익혀나갔다. 첫 번째 비밀은 ‘맨발 축구’. 축구화를 잃어버려 맨발로 축구를 해야 했던 적이 있는데, 그 덕분에 세심한 볼 터치의 감을 잡았다. 이후로도 가끔씩 맨발 축구로 볼 감각을 점검한다. 두 번째 비밀은 ‘시장통 축구’.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돌파력을 높이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재래시장에서 드리블 연습을 했다. 세 번째는 ‘놀이축구’. 항상 볼과 함께했던 박주영은 길을 걷다가도 벽에 붙여진 포스터에 축구공을 명중시키는 놀이로 슈팅의 정확도를 길렀다. 초등학교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는 지금껏 빠짐없이 쓰고 있다. 박주영은 A4 용지 반만한 크기의 일기장에 신앙과 축구로 가득찬 하루하루를 정리해가고 있다.

 

’마침내 터진 아름다운 발의 축포’

’순둥이’ 박지성이 본프레레호 데뷔골을 작렬하며 독일행 축포에 대미를 장식했다.

박지성은 9일 새벽 쿠웨이트시티 가즈마스타디움에서 열린 쿠웨이트와의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A조 최종예선 5차전에서 후반 16분 팀 승리에 디딤돌을 놓는 4번째 골을 작렬하며 독일행 진출을 자축했다.

특히 박지성이 기록한 본프레레호 마수걸이골은 지난 2002년 박지성이 포르투갈을 격침시킨 결승골을 연상시키는 그림 같은 골.

당시 박지성은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포르투갈의 미드필더 콘세이상을 제치고 트레핑, 강력한 오른발 슛으로 그물을 출렁이며 한국의 16강행을 결정지은 바 있었다.

전반 초반에 다소 몸이 덜 풀린듯 움직임이 밋밋했던 박지성은 전반 중반 이후 특유의 빠른 발과 다이내믹한 몸동작으로 상대 수비수를 농락하며 한국 공격을 조율해 나갔다.

도우미로서 강철체력을 과시하던 박지성이 가장 빛나던 순간은 후반 16분.

박지성은 빠른 발을 이용해 상대 오른쪽 진영을 돌파 수비수 한 명을 가볍게 제치고 페널티지역 오른쪽 구석에서 중앙에 있던 이동국에게 패스하는 듯 하다가 오른발로 슈팅, 네트를 갈랐다.

최근 잉글랜드 명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부터 공식적인 이적 제의를 받은 박지성은 이날 자신의 이름에 걸맞은 움직임으로 국내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

특히 네티즌들로부터 ’굳은살로 가득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발’이란 찬사를 받으며 최근 ’발’로 화제의 주인공이 된 박지성은 그 굳은살 가득한 발로 가장 아름다운 슛을 터뜨리며 본프레레호 마수걸이 골이라는 그림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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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에 대한 재발견


이창호가 지닌 덕목은 워낙 많아서 한두 가지로 정리되지 않는다. 인간적 품성, 승부사적 자질 어느 쪽을 막론하고 두루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 상하이에서 치러진 제6회 농심배 최종라운드를 동행하면서 나는 그의 ‘전혀 새롭지 않은(?)’ 모습들을 ‘매우 새롭게’ 만나곤 했다. 이창호 캐릭터에 대한 내 나름의 복기(復棋) 과정이었다고나 할까. 때때로 그는 승부사라기보다 도인(道人) 쪽에 가까웠고, 대중적 인기인은커녕 수도승 같은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곤 했다. 그 조용하기 그지없는 몸짓이 한 번 펼쳐질 때마다 5명의 자객(刺客)들은 차례로 쓰러져갔다. 외경(畏敬)과 두려움의 5일 간이었다.


<성실성>

금강산 대국 사흘 만에 또 한 번 반복된 외지 원정. 폭주에 가까운 스케줄이었다. 일정이 이렇게 밖에 안나오는 걸까. 한국기원 스케줄러를 향해 이창호는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하지만 그는 눈자위가 푸석푸석한 채로 가장 먼저 인천 공항에 나타났다. 그리고 묵묵히 비행기에 올랐다. 평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방식 이지만 언제 어디서나 약속에 늦는 법이 없다. 절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그의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있었다.


<근성>

첫날 대국에 앞서 오전에 열린 기자회견. 이창호 장쉬 등 오후에 대국할 당일 출전 기사들은 빠졌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한국 팀 김인 단장은 “우리 선수단이 포기한 모양이다”라며 탄식했다. 그 소식을 나중에 전해들은 이창호가 펄쩍 뛰었다. “그럴 순 없죠. 꼭 이기겠습니다.” 양처럼 순하기만 한 이창호의 손바닥엔 매(鳶)의 발톱이 숨겨져 있었다. 훗날 그는 ‘김국수님’의 자극 요법이 큰 힘이 됐다며 웃었다.


<자기 조절>

뒤로는 올 들어 1승 5패란 최악의 전적. 앞에 보이는 것은 5연승이란 태산 같은 짐. 그는 도착 직후부터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차단했다. 동행했던 한국 팀 관계자들과 식사조차도 어울리지 않았다. 마음이 풀어질 수도 있고 부담감이 가중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체력 비축의 의미도 강했다. 베이징서 사업을 하는 한 살 아래 동생 영호 씨가 날아와 형의 일거수일투족을 수발했다. 식사는 동생이 거의 매 끼를 사다 날라 해결했다. 호텔 방에서 가족들의 근황을 반찬삼아 함께 식사를 마치면 날이 어둑해지곤 했다. 형이 바둑판을 당겨놓는 동안 동생은 방을 치웠다.


<치밀함>

첫 날 도착 후 바둑판부터 요청했다. 그리곤 미리 준비해 온 다음 날 대적할 상대의 기보를 놓아보며 포석을 구상했다. 제한 시간 1시간짜리 준(準) 속기인 농심배는 사전 구상이 잘 맞아떨어지면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그는 이런 식으로 매일 밤늦게 까지 다음 ‘제물’감을 바둑판 위에 눕혀놓고 숙달된 조리사처럼 기보를 해부했다. 이 번 대회 기간 중 그가 거의 매 판에 걸쳐 초속기로 빠른 운석(運石)을 보인 이면엔 이 같은 비결(?)이 있었다.


<여유>

중국 기자들은 집요했다. 4명의 중, 일 기사들이 모두 탈락하고 21세의 애송이 왕시만을 남겼을 때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지금까지 처음 만나는 상대에겐 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 혹시 그 전통대로 마지막 단계에서 무너지는 건 아닐까?” 이창호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승부란 상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맞상대는 안 해봤어도 간접적으로 기질(棋質)을 파악할 수 있다.” 그 바둑은 이번 이창호의 5승 가운데 가장 편한 바둑 중 한 판이 됐다.


<극복력>

초1류 승부사가 되기 위한 조건은 2가지. 하나는 승부처를 찾아내는 동물적 후각이고, 또 하나는 승부처에서 자기 쪽으로 물줄기를 돌려내는 감각이다. 출국 비행기 안에서 이창호는 "농심배 우승을 하긴 해야겠는데, 그러려면 상하이에서의 첫 판, 즉 장쉬와의 대결이 결정적 승부처인 것 같다"고 했다.

그 바둑서 이창호는 초반 여유 있는 우세를 잡고도 갑자기 두 세 차례의 헛손질을 범해 미세한 형세까지 쫓겼다. 엄청난 부담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막판 혼신의 힘으로 결정타를 꽂아 넣는데 성공한다. 극적 5연승으로 대회가 끝난 뒤 그는 “장쉬와의 첫 판 고비를 넘은 뒤 둘째 판부터는 컨디션이 상승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고 술회했다. 출국 직전 최철한에게 당한 3연패, 연 초 1승 5패로 몰렸던 난조는 그 뒤부터 급격히 물줄기를 돌렸다. 이창호만이 할 수 있는 위기 관리 능력이자 극복력이었다.


<소탈함-예의바름>

스타들에게 이른바 ‘팬’이란 사실 무섭고도 성가신 존재다. 특히 중국 내에서 이창호에 대한 인기는 일반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는 가는 데마다 쫓겼다. 심지어는 시상식 도중에, 화장실 갈 때까지도 사인 부대는 강력한 공격을 감행하곤 했다. 그러나 이 번에도 역시 이창호의 찡그리거나 거절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요즘에야 어디 사인으로 끝나던가? 디지틀 카메라를 내밀면 포즈도 취해줬다. 인천 공항 개선(凱旋) 후에도 팬이나 이창호나 전혀 달라짐 없이 똑같은 광경을 연출했다.


<꾸준함>

이상의 덕목들은 이창호란 이름의 시계 속 ‘부속 장치’같은 것 들이다. 앞서 열거한 ‘부속’들 가운데 빠진 것도 제법 있을지 모른다. 어찌됐건 이 시계는 지난 20년 간 해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수 십 년 간 계속 째깍거릴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중간에 잠시라도 쉰다면 그건 시계도 아니지. 이창호는 잠시 반짝했다가 한 동안 잠수해 버리고, 다시 나타나 한 바탕 소동을 벌이고 또 다시 사라지는 류의 기사와 구별된다. 그의 진짜 최대의 덕목은 바로 이 ‘꾸준함’이 아닐까.


‘난청지역’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는 데 칭찬만하고 있을 순 없다. 그도 인간인지라 분명 부족한 점도 있는데, 이 기회를 빌려 마음먹고 흉도 좀 봐야겠다.

(1)절대로 튀지 않는다=어떤 경우에도 과도한 쇼 맨쉽을 피한다. 시상식 때 꽃다발을 높이 쳐든다든가, 하다못해 뛰쳐나온 응원단과 하이 파이브를 나눈다든가…하는 것은 그의 사전엔 없다. 답변도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상대는 훌륭한 기사입니다” 는 등 판에 박은 모범 답안뿐이다. 이세돌과 둘을 섞어 반죽한 뒤 다시 둘로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이런 거야 뭐 아무래도 좋다. 진짜 큰 문제는 다음 2번이다.

 

(2)이창호는 모기 띠?=인터뷰 할 때 그를 중심으로 한 반경 30센티 밖은 난청지역이다. 도대체 몇 데시벨 쯤 될까. 모기 소리보다 결코 더 크지 않다. 국제 대회 때면 한국 기자들만 애먹게 마련이어서 더욱 심각하다. 왜냐하면 이창호의 답변은 외국 기자들에겐 통역을 통해 우렁차게 전달되는데 반해(통역자만 애먹을 뿐이다), 한국 기자들은 ‘이창호의 한국말’을 직접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 기간 동안에도 대국 직후 인터뷰를 앞두곤 '최전방’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러나 이런 정도는 흉이라고 할 것도 못된다. 이창호에게 그런 약점이 애교에 불과하듯 이 글에서도 그냥 애교다. 중국에 머무는 동안, 이창호와 같은 나라 사람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큰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지는 아는 사람만 안다. 그 것은 거의 축복 수준이다.

중국 바둑 팬 중엔 막무가내식 맹목적 국수주의자도 많지만 이창호를 진정으로 존경하고 응원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이번 대회가 한국의 대 역전 우승으로 끝난 뒤 중국 인터넷 사이트엔 “이창호의 5연승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그를 존경한다”는 댓글이 수도 없이 올라왔다.

체단주보 시에레이(謝銳)기자 같은 사람은 평소에도 이런 얘기를 한다. “이창호는 바둑에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희망이자 자존심이다. 이창호처럼 성실하고 겸손하며 노력하는 천재가 쉽게 무너진다면, 바둑 자체의 위상은 물론이고 바둑 종사자 모두가 엄청나게 초라해질 것이다. 그 때를 상상하면 소름이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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