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의 고향을 찾아서] 침묵의 도시에 선 ‘어린왕자’
“내가 죽은 것처럼 보일 거야. 하지만 그게 아니야….”
프랑스 제2의 도시 리옹의 벨쿠르 광장에 서있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Saint Exupery)의 동상. 기단에 새겨진 그 짧은 문장이 긴 여운을 남긴다.
생텍쥐페리의 대표작 ‘어린 왕자’에서 왕자가 던진 말이다.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를 만나 꿈같은 우화를 빚어낸 왕자는 자신의 별로 돌아가기 위해 지상을 뜨기 전에 그렇게 말했다.
“내 몸은 버려야 할 낡은 껍데기 같은 거야. 껍데기를 버린다고 슬퍼할 건 없어.”
그 어린 왕자의 작별 인사는 홀연히 인간의 대지를 뜬 생텍쥐페리의 최후를 떠올리게 한다. 1944년 7월 31일 오전 8시 45분 P38 라이트닝 비행기에 몸을 싣고 정찰 비행에 나섰다가 끝내 귀환하지 않은 생텍쥐페리는 확인되지 않은 죽음으로 인해 영생을 누리고 있다.
‘어린 왕자’를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 독자라면 생텍쥐페리의 비행기가 지상을 이륙해서 지구 바깥까지 나갔을 것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어느 별에서 밤마다 등에 불을 붙여 지구인들에게 별빛으로 인사하는 점등인으로 살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 생텍쥐페리가 태어나서 아홉살까지 살았던 리옹시. | |
동상에서 눈을 돌리면 곧바로 마주치게 되는 생텍쥐페리 거리 8번지. 생텍쥐페리의 생가다.
“생텍쥐페리는 이 집 3층에서 1900년에 태어났지요. 물론 내가 이 집에 살기 훨씬 전의 일이지요. 그는 우리의 전쟁 영웅이에요. 용감한 사람이었고, 대지를 떠나 신화가 된 삶을 살았지요.”
생텍쥐페리 생가 건물의 1층에 살고 있는 드뤼포르(Druffort)씨. 아침 식사용 바게트 빵을 사들고 오다가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기자를 보자 그는 대뜸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기자가 고개를 젓자 “일본인 관광객들이 꽤나 많이 찾아오거든…” 했다.
그는 집 옆에 있는 서점에 가면 참고 도서들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줬다. 시킨 대로 서점에 가서 책들을 뒤적거리다가 생텍쥐페리의 전기를 담은 만화책을 한 권 골랐다.
서점 주인은 “리옹 사람이라면 어릴 때부터 어린 왕자가 그려진 연필과 학용품을 쓰면서 자란다”며 “2000년 생텍쥐페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리옹시가 이 거리에 작가의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동상도 그때 세워졌고, 리옹 공항은 리옹 생텍쥐페리 공항으로 개명됐다.
생텍쥐페리는 “우리가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한다면, 그는 산 자보다 더 강하다”고 쓴 적이 있다. 고향은 그의 말을 따랐다.
생텍쥐페리는 리옹에서 9살 때까지 살았고. 리옹 부근의 레망에서 사춘기를 보냈다. 그는 언젠가 “내가 리옹에서 태어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라면서 “리옹은 아름다운 침묵 속의 도시”라고 찬미했다. 그의 생가 바로 부근에서 손강이 소리없이 흐르고 있다.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소년 생텍쥐페리는 강의 끝이 어디일까를 상상하다가, 더 멀리 가기 위해 점차 하늘로 눈을 돌렸던 것이 아닐까.
그의 유년기는 최첨단 문명의 상징인 비행기의 선구자들이 현대의 영웅으로 숭상되던 20세기 초였다. 리옹 부근의 비행장에 친구들과 놀러가기를 즐겼던 그는 창공을 누비는 비행사를 선망하면서 상상력을 키웠고, 수업 시간이면 교실 창밖에 어른거리는 나비의 날갯짓에 넋을 놓으면서 문학적 감성에 눈을 떴다고 한다. 그가 하늘과 땅에 그린 삶의 궤적에서 리옹 시절은 짧은 구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대표작 ‘어린 왕자’는 리옹에서 보낸 유년기와 떼어놓을 수 없었다.
그는 이 책의 첫장에 죽마고우였던 레옹 베르트를 위한 헌사를 쓰면서 “어린아이였을 때의 그에게 이 책을 바치기로 한다”고 밝혔다. 그는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생텍쥐페리의 동상을 다시 천천히 들여다보니, 작가는 비행복을 입고서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 벨쿠르광장에 선 생택쥐페리와 어린왕자의 동상. | |
바로 그 옆에 어린 왕자가 “아저씨, 양 한 마리만 좀 그려줘”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붙어 서 있다. ‘어린 왕자’의 삽화는 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것이다. 그는 ‘어린 왕자’에 넣을 그림들을 먼저 완성한 뒤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해군사관학교에 낙방한 뒤 파리에서 미술에 몰두하면서 익힌 그림 솜씨였다. 어느날 그가 어린 왕자를 끄적거리는 것을 보고 누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내 영혼을 사로잡는 어린 왕자야. 외로운 왕자”라고 그는 말했다. 어린 왕자의 얼굴에 깃든 알 수 없는 슬픔은 작가의 영혼에 어른거리는 실존의 그림자였다.
“마음이 슬플 때는 지는 해의 모습이 정말 좋아…”라고 읊었던 어린 왕자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어린 왕자의 얼굴은 작가의 영혼이 피운 한 송이 꽃이기 때문에 슬픈 아름다움의 잔영이다.
생텍쥐페리의 동상은 어디론가 가다가 지구라는 별에 불시착한 채 먼 곳에서 올 구조대를 기다리는 비행사를 형상화한 듯하다. 하지만 어린 왕자가 바로 곁에 있기에 그는 외롭지 않다. 그가 아름다운 침묵의 도시라고 부른 고향에 영원한 침묵의 깊이를 선사한 생텍쥐페리의 동상을 좀 더 오랫동안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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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휴머니즘 원초적 순수 그려
박해현기자
입력 : 2005.06.09 18:30 43'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일 거야….”
소행성 B612호에서 홀로 살다가 여러 별을 거친 여행 끝에 지구의 사막에 떨어진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는 어린 시절의 순수를 잊어버리고 어른이 되어야 하는 인간에 대한 연민 끝에 어른과 어린이가 모두 읽을 수 있는 책 ‘어린 왕자’를 썼다. 1943년 4월 6일 미국 뉴욕에 체류 중이던 생텍쥐페리가 발표한 이 작은 책은 오늘날 120개 언어로 번역된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이 됐다. 한국에서도 30종이 넘는 번역본이 나왔고, 젊은 날 누구나 한 번씩은 읽고 넘어가는 ‘마음의 고전’이 됐다.
생텍쥐페리(1900~43)는 ‘야간 비행’ ‘인간의 대지’ 등의 소설을 통해 자유의 본질적 가치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인간의 희망을 표현했다. 그의 휴머니즘은 이론이 아니라 행동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어린 왕자’는 그 휴머니즘의 원초적 순수를 아름답게 보여주었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럽고, 그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 술을 마시지.”
“무엇인가를 길들이지 않고서는 그걸 정말로 알 수는 없어. 사람들은 이젠 뭔가를 진정으로 알게 될 시간이 없어졌어. 그들은 이미 다 만들어져 있는 물건을 가게에서 살 뿐이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으니까 이제 그들은 친구가 없는 거지.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줘!”
“아주 간단한 건데… 그건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어린 왕자’는 이처럼 연인에게 편지를 보낼 때 종종 건네주고 싶은 명대사들로 짜여 있다.
‘어린 왕자’는 그것을 읽는 사람들에게 착한 심성을 일깨워주는 성스러운 텍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