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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다른 이들은 그와 같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 -노발리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첫 장에서부터 느껴진 책의 힘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내 몸이 앉아 있던 책상과 의자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실제로 내 몸이 나로부터 분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존재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나의 영혼뿐 아니라 나를 나이게 만드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책이 놓여 있는 바로 그 책상 앞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이는, 마치 내가 읽고 있던 책장들로부터 내 얼굴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그러한 강력한 힘 때문이었다. 그 빛은 나의 이성을 무디게 만드는 동시에 환하게 밝혀 주고 있었다. 나는 이 빛 안에서 다시 태어날 수도 있었다. 혹은 그 안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나는 이미 이 빛 안에서, 내가 훗날 알게 되고 또 가까워지게 될 어떤 삶의 그림자를 느꼈다. 책상에 앉아서 책장을 넘기는 동안, 내 머릿속 한구석은 내가 지금 책상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페이지들에서 새로운 단어들을 접할 때마다 내 삶은 송두리째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내게 일어날 모든 일들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고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에, 한순간 나는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얼굴을 책장으로부터 멀리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계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했다는 것을 깨닫곤 공포에 휩싸였다. 그 다음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고독감에 압도되었다. 그것은 지리도, 언어도, 관습도 모르는 나라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러한 고독이 가져다준 속수무책을 경험하고 나자, 나는 더욱더 책에 얽매이게 되었다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혹은 조심해야 하는지,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낯선 나라에서 내 삶이 어떤 길을 택하게 될 것인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이 책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낯선 오지에서 나를 인도해 줄 안내서를 읽듯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책을 읽어 나갔다. 도와 달라고, 내가 아무런 사고 없이 안전하고 무사하게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인생이 이 안내서 속에 들어 있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어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나의 갈 길을 찾으려 애썼고, 한편으로는 완전히 길을 잃게 만들 수도 있는 경이로운 상상들을 하나하나 꿈꾸고 있었다.

책은 여전히 내 얼굴에 빛을 비추며 책상 위에 놓여 있었지만, 방에 있는 다른 친숙한 물건들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내 앞에 놓인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생의 존재를 놀라워하며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토록 강렬한 힘으로 내 삶을 바꾸어 놓은 이 책이 사실은 평범한 물건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책 속의 단어들이 내게 약속한 새로운 세계의 경이를 향해 나의 마음이 그 창문과 문 들을 서서히 열어 가고 있을 때, 문득 나를 이 책으로 이끈 우연한 계기가 다시 한 번 떠올랐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은 나의 의식에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피상적인 영상에 불과했다. 책을 계속 읽어 내려가자, 어떤 공포가 나에게 이 영상을 떠올리게 했다. 책이 내게 보여 준 새로운 세계는 너무나 낯설고 너무나 이상하면서도 놀라운 것이어서, 이 세계 속에 완전히 빠져 들지 않기 위해 현재와 관련된 무엇인가를 느껴야 한다는 소급함이 일었다 책에서 고개를 들고 내 방이나 옷장, 침대 혹은 창밖을 보았을 때 내가알던 세상을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시간과 책장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흘러가고 있었다. 멀리 기차가 지나갔다. 어머니가 나가는 소리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도시의 일상적인 소음들에 귀를 기울였다 거리에서 요구르트 장수가 종을 딸랑이는 소리, 자동차 엔진 소리.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소리들을, 생소한 소리처럼 들었다. 처음에 소나기 내리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곧 여자 애들이 줄넘기하는 소리로 변했다 또 날씨가 개는구나 생각했을 때에는,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려 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음 페이지 그다음 페이지, 또 그 다음 페이지를 읽었다. 다른 생의 문틈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보였다 내가 알았던 것과 알지 못했던 것 들이 보였다. 그리고 내 삶과 내 삶이 가게 되리라고 생각되는 길이 보였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내가 상상하지도, 생각하지도, 인식하지도 못했던 어떤 세계가 점점 더 내 존재 속으로 침투하며 내 영혼을 사로잡았다 내가 알았거나 한때 고민했던 모든 것은 사소한 것으로 변했고, 예전에 내가 몰랐던 것들은 숨어 있던 곳으로부터 하나씩 나타나 내게 신호를 보냈다 이것들이 무엇인지 말해 보라고 했다 해도,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과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사물에 대한 관심이나 호기심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내 앞에 펼쳐진 새로운 인생에 대한 기대와 흥분 때문에 이곳엔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건 관심을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엄청나고 다양하면서도 복잡한 가능성들이 일종의 공포와 같이 변해 버렸을 때,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기대에 들떠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내 얼굴 위로 비친 책에서 뿜어져 나온 빛 속에서 허름한 방들, 폭주하는 버스들, 지친 사람들, 희미한 글자들, 사라진 마을과 사람들, 유령들을 보고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여행이 있었다. 항상 여행이 있었다. 모든 것은 여행이었다. 그때 나는 이 여행을 하는 내내 나를 따라다니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내 앞에 나타날 것 같다 가도 사라져 버리고, 사라졌기 때문에 더욱더 찾고 싶게 만드는 시선을, 오랜 세월 동안 죄악이나 불명예와는 거리가 멀었던 부드러운 시선을 보았다. 나는 그 시선이 되고 싶었다. 그 시선을 통해 바라본 세계 속에 존재하고 싶었다. 그것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지, 정말로 그가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스스로를 납득시킬 필요조차 없었다. 나는 정말로 그곳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 곳에 살고 있다면, 이 책은 당연히 나에 관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누군가가 나의 생각들을 나보다 먼저 생각해서 적어 내려간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단어들과 그것들이 지닌 의미가 일반적인 경우와는 완전히 다르게 이해되어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이 이젠 이해가 됐다. 처음부터 나는 이 책이 처음부터 나를 위해 쓰였음을 감지했다. 모든 단어, 모든 비유가 마음에 와 닿았던 이유는 문장이 비범하거나 단어가 특별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책이 나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러한 느낌에 휩싸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살인, 사고, 죽음, 놓쳐 버린 신호 들 사이에서 나의 길을 찾으려 애쓰는 동안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시선은 책의 말들로 그리고 책의 말들은 나의 시선으로 변했다. 그리고 눈부신 빛 때문에 내 눈은 더 이상 책 속의 세계와 바깥 세계 속의 책을 분간하지 못하게 되었다 마치 온갖 종류의 색깔들과 사물들을 모두 갖춘 하나의 완전한 세계가 책 속에 존재하는 단어들 안에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즐겁게 책 속으로 빠져 들 수 있었다 처음에는 속삭이다가, 그다음엔 두드리듯, 그다음엔 막무가내로 책이 내 머릿속에 욱여넣으려 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처음부터 내 영혼의 심연 속에 존재해 왔음을 나는 읽을수록 깨닫게 되었다. 책은 오랫동안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사라진 보물들을 건져 올리고 있었다. 나는 행과 행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찾아낸 것들을 이제는 나의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 어딘가에서는 나도 이것과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실제로 동트기 직전의 여명 속에서 천사처럼 빛나는 죽음을 본 것은 책에서 묘사된 세계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고 나서도 한참후의 일이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의 죽음이었다.

나는 불현듯 내 삶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해졌음을 깨달았다 그때 유일하게 두려웠던 것은 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내 방이나 거리에 있는, 내 주변의 평범한 사물들 속에서 책이 내게 말해 준 것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더 이상 느끼지 않았다나는 책을 양 손바닥 사이에 끼우고, 어린 시절 만화책을 다 읽으면 하던 것처럼 책장에서 풍기는 종이와 잉크 냄새를 맡았다 그때와 똑같은 냄새가 났다. 나는 책상에서 일어나, 어렸을 때 하던 것처럼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다섯 시간 전 정오가 조금 지나 내가 책을 책상 위에 놓고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인도에 있던 트럭이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은 거울 달린 옷장, 묵직한 탁자들, 상자들, 스탠드들이 부려져 있었고, 비어 있던 맞은편 아파트에는 새로운 가족이 이사 와 있었다. 아직 커튼을 달지 않은 탓에, 전등갓도 없는 환한 전구 불빛 아래 중년의 부부와 내 또래의 아들과 딸을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딸의 머리칼은 밝은 갈색이었고, 텔레비전 화면은 초록색이었다.

나는 잠시 동안 새로운 이웃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들을 구경하는 것을 즐겼던 이유는 단지 그들이 새로 이사 왔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그들을 바라봄으로써 나 자신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나는 아직 나에게 친숙한 이 세계가 송두리째 변하길 원치 않았다. 그러나 내 방이 예전의 그 방이 아니고, 거리도 예전의 그 거리가 아니며, 어머니와 친구들 또한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일종의 적대감, 딱히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두렵고도 위협적인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서 한 걸음 물러났지만, 나를 부르고 있는 책에게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내 인생을 원래의 궤도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등 뒤의 책상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등을 돌려도 모든 것의 시작은 책속에 있었고, 이제 더 이상은 그 여행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예전 삶과의 연결 고리가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려워졌다 그래서 어떤 재앙에 의해 삶이 돌이킬 수 없이 변해 버린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나 또한 내 삶이 다시 예전의 궤도로 돌아갈 것이고, 지금 내 앞에 벌어진 일은 어떤 끔찍한 사고도 재난도 아니라고 믿음으로써 마음의 평온을 되찾고 싶었다. 그러나 내 등 뒤에 펼쳐져 있는 책의 존재가 손에 닿을 듯이 너무도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에, 내 인생이 어떻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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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린시절


나는 대공황이 시작될 무렵인 1920년대 말에 태어났다. 미국은 10년이 넘는 동안 대공황의 재앙에 시달렸다. 물론 나는 어린 나이에 대공황을 겪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났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다섯 살 때 빵을 구하려고 장사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저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는 거예요? 하고 부모님께 질문했던 기억은 남아 있다. 내가 성년이 되어서 자본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지니게 된 것은 이런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애틀랜타 시 오번 가에서 태어났다. 애틀랜타는 조지아의 주도(州都)로 `남부지역의 관문'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나에게 오번 가는 집이나 다름없다. 어려서부터 다녔고 지금 공동목사로 일하는 에버니저 침례교회도 오번 가에 있다. 현재 내가 일하는 SCLC(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 남부기독교지도자협의회) 사무실도 오번 가에 있다.
나는 애틀랜타에서 공립학교를 졸업하고 애틀랜타 대학 부설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런데 그 학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2년 만에 부커 T. 워싱턴 고등학교로 전학해야 했다.
내가 태어난 동네는 서민층에 속했다. 재산가도, `상류계층'에 속하는 사람도 없었다. 부유한 흑인들은 대부분 `헌터 힐'이라는 다른 지역에 살았다. 우리 동네 주민들은 순박하고 검소하며 지나치게 가난한 사람도 없었다. 주민들을 굳이 분류한다면 보통 수준의 소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우리 동네는 범죄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건전한 마을이었으며, 사람들은 대부분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다.
날 때부터 건강체질이었던 나는 몸이 아픈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를 정도로 건강하게 자랐다. 물론 정신적인 면에서도 건강했다. 어려서부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소 조숙했으니, 나는 핏줄을 통해서 건강이라는 타고난 축복을 물려받은 사람인 것 같다. 집안 분위기는 화목했다. 부모님은 훌륭한 분들이셨다. 나는 두 분이 언쟁을 벌이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는 나의 종교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내가 사랑을 베푸는 주님의 존재를 별 어려움 없이 확신할 수 있었던 것과 낙관적인 세계관을 가지게 된 것은 모두 타고난 건강 체질과 화목하고 사랑이 넘쳐흐르는 가정 덕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거친 면과 부드러운 면을 동시에 가진 사람도 있고, 이상적인 면과 현실적인 면을 함께 가진 사람도 있다. 내 경우, 강인하고 열정적인 성격의 아버지에게서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단호한 결단력을 물려받고, 부드럽고 상냥한 어머니에게서는 온화한 품성을 물려받은 것 같다.


나의 어머니

어머니 앨버타 윌리엄스 킹 여사는 나를 따스한 사랑으로 감싸 키워주셨다. 어머니의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독실한 신앙을 가졌으며, 아버지와는 달리 부드러운 말씨에 모난 곳이 없는 성격이셨다. 약간 내성적이지만 매우 상냥해서 누구나 쉽게 사귈 수 있는 분이다.
어머니는 유명한 A. D. 윌리엄스 목사의 딸로 비교적 안락하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흑인이 갈 수 있는 학교 중에서 가장 좋은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인종차별을 경험하지 않고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흑백분리제도에 결코 순응하지 않았으며, 어릴 때부터 자식들의 마음속에 자부심을 심어주셨다.
미국에 사는 흑인들은 누구나 '아이들에게 인종차별과 흑백분리제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자신이 '당당한 인간'임을 잠시라도 잊지 말아라. 사회에 나가서 '열등하다'거나 '못났다'는 말을 듣는 일이 생기더라도 언제나 당당한 태도로 맞서야 한다"고 일깨워주셨다. 노예제도와 남북전쟁, 그리고 노예제도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도 어머니를 통해서였다. 어머니는 남부의 일부 지역에선 아직도 학교와 식당, 극장, 주택, 술집, 대합실, 화장실 등에 흑백분리제도가 잔존해 있지만 그것은 자연적인 질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상황일 뿐이니 이런 제도에 순응해서도 안 되고`열등감'을 느껴서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내게 `너는 누구 못지않게 뛰어난 아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대부분의 흑인아이들이 `불평등'이 무엇인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시절부터 늘 듣는 말이다. 나를 품에 안고 인종차별제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던 어머니도 후일 내가 인종차별 철폐투쟁에 나서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

아버지 마틴 루터 킹 1세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강인하며 활달한 성격이셨다. 아버지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 만큼 체격이 컸으며 의지가 굳센 자신만만한 분이다. 나는 아버지보다 더 대담하고 용감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난폭한 백인들을 겁내지 않았다. 모욕적인 말을 내뱉는 백인들에게 아버지는 단호하게 '그런 말투는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난폭한 백인들을 직접 겪으며 자랐고, 어렸을 때부터 백인들에게 반항적이었다. 아버지는 애틀랜타에서 18마일 떨어진 작은 마을, 스톡브리지에서 자랐다. 농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농장주인이 할아버지를 속여서 피땀 흘려 번 돈을 부당하게 빼앗는 현장을 목격했다. 아버지는 농장주인 앞에서 할아버지에게 주인이 부당한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렸다. 그러자 농장주인은 "짐, 이 검둥이 입을 당장 틀어막지 않으면 내 주먹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하며 몹시 화를 냈다. 그 농장주인에게 밉보였다가는 밥줄이 끊길 형편이었기에 할아버지께서는 아버지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가장 훌륭한 덕목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의 품성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정직하고 헌신적으로 도덕적 원칙을 지키셨으며 어떤 일에도 성실하게 임하셨다. 아버지의 솔직한 태도를 마땅찮게 여기는 사람들조차도 아버지의 정직한 동기와 행동에 대해서는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진실을 말하거나 자신의 속마음을 밝힐 때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솔직성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내게 `자네 아버지는 너무 무서워' 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실 아버지는 여러 면에서 엄격한 분이시다.
아버지는 시민권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NAACP(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 유색인종의 향상을 위한 전국협회)의 애틀랜타 지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사회개혁에 앞장서고 계시다. 아버지는 버스에 탄 흑인들에게 퍼부어지던 폭력과 모욕을 목격한 다음부터는 버스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애틀랜타에서 교원급여 평준화투쟁을 주도했고, 법원 내 엘리베이터의 흑백차별을 철폐하는 데 기여하셨다.
아버지는 에버니저 침례교회 목사로 재직하면서 흑인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백인들 중에도 아버지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버지는 물리적인 공격을 받은 적도 없었는데, 이 점은 흑백차별의 긴장감 속에서 자란 우리 형제들에게는 신기한 일이었다. 내가 흑백분리제도의 부당성과 부도덕성을 확신하게 된 것은 이런 가정 환경에서 자라났기에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어릴 적에는 거의 생활의 어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가족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셨으며 항상 모든 필수품을 부족하지 않게 마련해주셨다. 아버지는 월급 외에는 별다른 수입이 없었지만 예산에 따라 절약하며 생활하는 법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궁색함을 모르고 지냈다. 아버지의 검소한 생활 태도가 아니었다면 나는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일자리를 찾아야 했을 것이다.
스물다섯 살이 될 때까지 나는 안락한 생활을 했다. 문제가 생길 때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해결되었다. 인생은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멋지게 포장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나는 항상 일자리를 찾아다녔고 해마다 여름방학이면 돈벌이에 뛰어들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혹

내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다섯 살 때부터였다. 당시의 기억은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때 교회에서는 부활절 행사가 한창이었다. 버지니아에서 초빙되어온 전도자 한 분이 구원에 대해서 설교하고 나서 교회에 오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날 아침 맨 처음으로 교회에 간 것은 바로 누나였다. 나도 누나에게 뒤질세라 교회로 달려갔다. 그때만 해도 교회에 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세례를 받을 즈음에도 나는 건성으로 교회를 다녔다.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누나에게 뒤지고 싶지 않다는 어린아이다운 욕심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교회는 내게 있어 제2의 집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주일마다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갔다. 주일학교에서 친구들도 사귀고 사이좋게 지내는 법도 배웠다. 목사의 아들답게 나는 대학 2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교회에 다니기 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주일학교에서는 근본주의적인 교의를 배웠다. 주일학교 교사들은 대부분 학력이 낮았고 성서비평이란 말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런 교사들의 무비판적인 성서 해설을 아무런 의문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나는 천성적으로 끊임없이 질문을 퍼붓는 조숙한 아이였으므로 이런 무비판적인 태도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열세 살 때 나는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인지 어떻게 알 수 있어요?" 하고 질문해 주일학교 아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 뒤부터 신앙적인 의혹은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를 미워하는 인종을 사랑하라니?

소년기가 끝날 무렵 나는 정신적 성장의 계기를 맞게 되었다. 첫번째 계기는 외할머니의 죽음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외할머니를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나는 유난히 외할머니를 좋아했다. 외할머니는 손자들을 모두 아끼셨지만 나를 가장 아끼셨다. 외할머니를 유난히 좋아했던 나는 도저히 그분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영생의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부모님의 자상한 설명 덕분에 외할머니는 아직도 살아 계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영생에 대해서 확고한 믿음을 가졌다.
두번째 계기는 여섯 살 무렵의 일이었다. 세 살 때부터 나는 한 백인 아이와 친해져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함께 놀며 자랐다. 서로 집이 가깝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가 우리 집 맞은 편에 있어 매일 함께 어울려 다녔다. 여섯 살이 되어 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우리는 다른 학교로 갈라져야 했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자 그 아이는 함께 노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사이가 틀어지게 된 것은 그 아이가 `우리 아버지가 이제부터는 너랑 같이 놀지 말래' 하고 말한 뒤부터였다. 그 말에 충격받은 나는 당장 부모님께 달려가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 여쭤보았다.
그날 저녁 식탁에서 나는 난생 처음으로 인종문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인종문제로 빚어지는 여러 비극과 모욕들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하셨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아 앞으로는 모든 백인들을 미워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생각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굳어져 갔다.
부모님은 한결같이 `백인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백인을 사랑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의무다'라고 가르치셨다. 내 마음속에서는 의문이 일기 시작했다. 나를 미워하는 백인들, 천진한 아이들의 우정까지 짓밟는 백인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의문은 여러 해 동안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I have a dream that one day on the red hills of Georgia the son of former slaves and the sons of former slave owners will be able to sit down together at the table of brotherhood. I have a dream that my four little children will one day live in a nation where they will not be judged by the color of their skin but by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 I have a dream today!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나라에서 언젠가 살게 되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 (킹 목사 연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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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서주의자의 책/ 표정훈 지음 / 마음산책 

 

 

  

 

 

 

서울, 1969년 겨울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 ─ 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등을 팔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고, 그 안에 들어서면 카바이드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軍用 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 주고 있는 그러한 선술집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새뮤얼 베케트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박경리는 『토지』를 집필하기 시작했으며, 중학교 1학년이던 송승환이 TV 연속극 〈똘똘이의 모험〉에 출연했고, 미 상원의원 에드워드 케네디의 차가 채퍼퀴딕 다리 밑으로 떨어져 동승했던 28세 여비서가 익사했다. 제3한강교(한남대교)가 준공되었고, 경인고속국도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됐으며, 아폴로 11호 착륙선 이글호가 달의 ‘고요의 바다’에 착륙했고, 소련 유인우주선 소유즈 4호와 5호가 최초로 우주 공간에서 도킹했으며, 보잉747 여객기가 첫 상업 비행에 나섰다.


지미 핸드릭스의 공연을 끝으로 ‘우드스탁 69(The Woodstock music and art fair 1969)’가 성황리에 치러졌고, 보성중학 3학년 김의철이 첫 창작곡 〈뭉게구름〉을 작곡했고, 레드 제플린이 첫 앨범을 내놓았으며, 조영남은 〈딜라일라〉로 김추자는 신중현으로부터 받은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로 각각 데뷔했고, 비틀스는 ‘옐로 서브머린’ 앨범을 내놓았으며, 남산 중턱에는 친일 혐의자 김경승이 조각한 백범 김구의 동상이 세워졌고, 문희, 남정임, 윤정희가 스크린을 석권하고 있는 동안 피터 폰다(제작 및 출연), 데니스 호퍼(감독 및 출연), 잭 니콜슨 등이 〈이지 라이더〉에서 오토바이를 탔다.


미국 프로야구 뉴욕 메츠는 창단 7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으며, 메이저리그의 마운드 높이가 15인치에서 10인치로 낮아졌고, 뉴욕 경찰이 게이바 ‘스톤월’에 들이닥쳐 동성애자들을 거칠게 연행했으며, 한국 중앙정보부는 위장 간첩 이수근을 체포했다고 발표했고, 리비아의 청년 장교 가다피가 왕정을 무너뜨리고 실권을 장악했으며,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월드컵 예선전에서 감정이 극으로 치달은 끝에 5일간 전쟁을 벌였고, 박정희 대통령의 뜻대로 3선 개헌안이 통과됐다.


천주교 서울교구장 김수환 대주교는 추기경이, 야세르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됐고, 육군사관학교 교관 신영복은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됐으며, 미 공군 B-52 폭격기 60여 대가 캄보디아 상공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고, ‘중공’과 소련이 우수리강 국경 지대에서 무력 충돌했다. 우리나라 정기발행복권의 효시인 주택복권이 처음 발행됐으며, 미국 벨 연구소가 유닉스UNIX 운영 체제를 개발했고, 오늘날 인터넷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아르파넷ARPANET이 시작됐다.


어느 해든 그렇겠지만 1969년에도 세상은 숨가쁘게만 달렸다. 그해 마지막 달 어느날의 《동아일보》 1면을 보니, 미국이 대한對韓 원조를 5천만 달러 삭감했고, 비축미를 확보하기 위해 현물상환 조건으로 일본쌀 50만 톤을 차입했으며, 통일원이 ‘북괴’의 유엔 인정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남북한 총선’ 대책 연구에 착수할 계획임을 국정감사에서 밝혔다. 1969년에 시작된 아르파넷을 원조로 하여 발전한 인터넷으로 옛날 신문을 검색할 수 있게 된 세상이니, ‘북괴’ ‘대한 원조’ ‘일본쌀 차입’ 등의 표현은 차라리 수백년 전의 것만 같다.

 

 첫 아이가 태어난 날 모든 신문을 한 부씩 사놓았다는 분이 있다. 아이가 성인成人이 됐을 때 그 신문 뭉치를 건네줄 계획이라고 한다. 그럴듯하다. 만일 내가 아버지로부터 그런 선물을 받았다면, 광고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면을 샅샅이 훑어 읽었을 것 이다. 모니터에서 PDF 파일로 그 내용을 볼 수 있다 해도, 그날 부모가 직접 산 신문 실물이 주는 각별한 느낌에야 비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은 위에서 언급한 ‘그해 마지막 달의 어느날’은 나의 생일이다. 날짜만 고려한다면 1679년 토머스 홉스가 세상을 떠난 날이고, 1795년 토머스 칼라일이, 1875년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태어난 날이며, 1912년 그날에는 전쟁이 일어났다. 독일 함대가 네 척의 미 군함을 침몰시키고 호놀룰루를 포격했던 것이다.



다음날 독일과 미국은 전쟁을 선포했고 사회주의자들은 독일과 미국에서 총파업에 돌입했다. 그런 전쟁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아마 그럴 것이다. 한 주 만에 끝난 이 전쟁은 역사가 아닌 소설,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가의 탄압을 적나라하게 그려 레닌의 극찬을 받기도 한 작품, ‘소설 자본론’이라는 별칭이 무색하지 않은 잭 런던의 『강철군화』(차미례 옮김, 한울)에 나오기 때문이다.



1969년 그날의 《동아일보》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1면 하단의 책 광고다. ‘인간의 욕망을 풀어주는 기상천외한 마력의 서書! 천天과 지地를 마법단지에 담아 남과 여 그 쾌락의 모험을 한껏 펼친다. 무삭제원본비장판 전8권.’ 이 문구만으로는 도대체 어떤 책인지 감을 잡기 힘들 것이다. 다만 ‘쾌락의 모험’이라는 표현이 묘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광고 문구를 좀더 보자.



폭풍처럼 이는 격상激賞


삼국지와 수호전을 압도하는 무진한 감흥!


샘물처럼 넘쳐나는 마약적인 매혹의 보고!


사상 가장 화려한 꿈의 도취, 불멸의 고전!


아름다운 밤의 영상, 놀라운 관능의 추구!



책은 다름아니라 『천야일야千夜一夜』, 즉 ‘아라비안 나이트’ 혹은 ‘천일야화千一夜話’ 번역서다. 위의 광고 문구 뒤로는 이런 내용이 이어진다. ‘이 기나긴 겨울밤 천야일야의 마녀신은 당신을 황홀경으로 안고 날읍니다. 동서문화사 창업 15주년 기념출판 전8권 특가 7,000원 7개월 월부 공급.’


1969년, 일본 최초의 성인용 애니메이션 영화 〈천야일야 이야기 千夜一夜物語〉(감독 데즈카 오사무)가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했다. 데즈카 오사무는 이듬해에도 성인물 〈클레오파트라〉를 발표했지만 흥행에 실패하여 성인용 애니메이션은 이후 오랜 동안 만들어지지 못했다. 〈천야일야 이야기〉와 〈클레오파트라〉는 성인용답게 누드와 정사 장면이 가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서문화사〉의 『천야일야』는 영국의 탐험가, 외교관, 동양학자로, 30여 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 Richard Francis Burton(1821~1890)의 『아라비안 나이트』를 오정환 씨가 옮긴 것이다. 오정환 번역의 『아라비안 나이트』는 현재는 〈명문당〉에서 전10권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버턴의 영역본을 옮긴 것인지 일역본을 옮긴 것인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영역본과 일역본을 모두 저본底本으로 삼지 않았나 싶다. 일역본은 1929년에 오야 소이치大宅壯一(1900~1970) 번역으로 〈주오고론샤中央公論社〉에서 12권으로 출간됐고, 1967년에 〈슈에이샤集英社〉에서 『千夜一夜 : 全譯』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온 적이 있다.


문필가이자 저널리스트 오야 소이치는 1969년에 데즈카 오사무 감독의 〈천야일야 이야기〉 제작 과정에도 참여했으며, 자신이 수집한 방대한 단행본 및 잡지 자료를 오야 소이치 문고로 남긴 장서가이기도 하다. 6, 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나온 서양의 고전 작품 번역서들이 정확히 어떤 일역본과 상관 있는지 조사해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잊혀진 원본들’이라고나 할까?


내가 태어난 해와 태어난 날짜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태어났으며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물론 내가 태어난 해와 날짜라는 것이, 다른 해와 날짜에 비해 지금의 나 자신에게 더 큰 의미와 중요성을 갖는다고 보기는 힘들다. 고금의 많은 현자賢者들이 충고하듯,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니던가.



작가 로렌스 G. 더렐의 말이라고 기억한다. “누구에게나 두 곳의 출생지가 있다. 몸이 태어난 출생지가 있고, 삶의 진실과 세상의 실재를 깨달은 곳이 있다.” 시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몸이 태어난 시간이 있다면 ‘삶의 진실과 세상의 실재를 깨달은 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자꾸만 ‘서울 1969 겨울’이라는 내가 태어난 장소, 연도, 계절에 편파적으로 마음이 끌린다. 아직까지 삶의 진실과 세상의 실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한 욕망에 관한 기억


나는 태어나 지금까지 두 번 책을 훔친 적이 있다. 첫번째는 중학교 1학년 때 학급 문고에서 에세이집 한 권을 훔친 일이다. 새빨간 천 표지만 기억나고 정확한 제목이나 책 내용은 잊어버렸다. 우리나라 작가들과 이른바 명사들의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이었는데, 그걸 도대체 왜 훔치려 했는지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청소 당번이었던 날 몰래 책가방에 넣어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조심스럽게 꺼내본 순간 쿵쾅거리던 가슴! 하지만 정작 끝까지 다 읽지도 않았고, 읽으면서 실망했던 기억만 난다. 그 책에 관해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까닭이 어쩌면 절도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두번째로 훔친 책은 ‘중국 고전 해제집’이었는데, 인사동의 어느 술집 겸 식당에서 술자리를 파하고 일어설 때 몰래 집어들어 책가방에 넣었었다. 하지만 그 책 역시 몇 번 들춰보지도 못했음은 물론, 이사할 때 잃어버리고 말았다.


… (하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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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 상·하/ 샨사 지음/ 이상해 옮김/ 현대문학 

 

 

 

 

끝없이 이어지는 달들, 불투명한 세계, 으르렁거림, 돌풍, 지진. 휴식의 순간은 드물었다. 무릎에 이마를 대고 팔로 머리를 감싼 채 나는 생각하고, 귀 기울이고, 존재하지 않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거기 생명이 있었다. 천천히 자전하는 별이, 투명한 진주가. 나는 장님이었다. 내 눈은 매일 조금씩 지워지는 다른 세계, 다른 삶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색깔들은 이미 퇴색해버렸고, 이미지들도 흐릿하게 변해버렸다. 귓가에는 여전히 외마디 비명소리와 희미한 울음소리가 맴돌았다. 아득한 기억이 날 짓누르고, 짙은 우수憂愁가 날 태웠다. 난 누구지? 내 발치에 웅크리고 있던 죽음에게 물었다. 죽음은 으르렁거릴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지? 웃음소리,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아들이 틀림없어요, 대감. 아, 움직여요. 성깔이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아요.”


내가 누가 되든, 그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그 무한함에 싫증이 나 있었다. 희망하고, 기다리고, 내 자신,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것에 싫증이 나 있었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날 진정시켜주었다. 나는 흘러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결코 태양이 뜨지 않는 내 하늘 속에서 어린 소녀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 부드럽고 순결한 목소리가 날 잠재워주었다. 내 언니, 나는 그녀에게 큰 불행이 닥칠까봐 두려웠다. 손 하나가 날 어루만지려 했다. 하지만 벽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었다. 어머니, 내 생각의 벽에 비치는 그림자여, 당신은 내가 당신의 몸이라는 감옥에 갇혀버린 늙은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호수 깊은 곳, 세피아빛 물속에서 나는 뒤척이고, 움츠리고, 기지개를 펴고, 빙글빙글 돌았다. 몸이 하루가 다르게 붓고 무거워져 날 질식시켰다. 바늘 끝, 모래알갱이, 물방울에 비친 태양이 되고 싶었던 내가 부풀어 터지는 살, 주름과 피의 산, 바닷괴물이 되어갔다. 어떤 숨결이 날 들어올려 흔들어주었다. 나는 걸핏하면 성깔을 부렸다. 내 자신에게, 간수였던 여자에게, 나의 유일한 친구인 죽음에게 화를 냈다.


그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조照라는 이름을 붙여줄 거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출산준비의 소란이 나의 명상을 방해했다. 그들은 옷, 기저귀, 잔치, 뚱뚱하고 살결이 희며 튼튼한 유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귀신들이 내 영혼을 앗아갈까 두려워 내 이름을 입 밖에 내는 것을 금했다. 그들은 그들의 운명이 끝나는 바로 그곳에서 내가 다시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나는 호들갑스럽고 상냥하고 탐욕스러운 그 존재들이 불쌍했다. 그들은 내가 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그들 세상을 파괴하리라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화염으로, 얼음으로 해방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나는 소스라치듯 놀랐다. 물이 들끓고 있었다. 성난 파도가 내게로 밀려와 부서졌다. 나는 몸을 웅크린 채 호흡에, 진통의 경련에 집중하며 두려움에 대항해 싸웠다. 쇄도하는 늪의 물결은 나를 좁은 하구로 몰아넣었다. 나는 바위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몸에서 피가 났다. 피부가 찢어졌다. 머리가 파열됐다. 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주먹을 움켜쥐었다.


누군가가 내 발을 잡아당기고는 엉덩이를 때렸다. 거꾸로 들린 채 나는 울음을 토해냈다. 누군가가 피부가 벗겨질 듯 따가운 천으로 날 감쌌다. 나는 불안으로 가득한 한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들이요, 딸이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사내가 나를 안아 배내옷을 찢을 듯이 벗겨내려 했다.


한 여인의 신음소리에 그가 동작을 멈추었다.


“또 딸이에요, 대감.”


“아!” 그가 탄식하며 눈물을 쏟았다.

 

 십여 명의 여자들이 나의 성장을 보살폈다. 세 명의 유모가 번갈아가며 갈증을 해소시켜주었다. 나의 왕성한 식욕이 그들을 겁먹게 만들었다. 나는 벌써 웃었다. 흑진주같이 검고 큰 눈이 안구 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나는 잠시도 눈을 붙이지 않고 밤낮없이 세상을 바라보았다. 정상적이지 못한 나의 행태에 불안을 느낀 어머니가 귀신 쫓는 중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아무도 내 안에 터를 잡은 악마를 몰아내지 못했다.


나는 결국 그들의 호들갑에 지치고 말았다. 그들이 날 가만히 내버려두도록 나는 망사 모기장 속에서 거짓잠을 청했다. 한 여자는 요람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고, 또 한 여자는 향기 가득한 세계 안으로 비집고 들어온, 몇 안 되는 날벌레를 쫓기 위해 부채질을 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창문 너머 먼 곳으로 생각을 띄워 보냈다.


아버지가 절대적 주인인 왕국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전정前庭은 남자들에게 할애된 공간이었다. 집사, 비서, 회계원, 요리사, 시동, 하인, 마부, 위병, 머슴들이 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관료와 군인들이 명령을 받고는 말을 타고 황급히 어딘가로 떠났고, 병사들은 연병장에서 하루 종일 훈련을 했다. 이 남성적인 세계는 규방이 시작되는 주홍색 대문 앞에서 멈춰졌다. 눈처럼 희고 높은 담 뒤에서 늙거나 젊거나 혹은 어리거나 한 여자 수백 명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쪽찐 머리에 꽃을 꽂았고, 비단 허리띠에 옥고리를 달았다.



무덕武德 여덟 번째 해였던 그해,1) 초봄의 파리한 화사함이 유행이었고, 옷들은 크로커스(사프란 속의 꽃`―`역주)의 황색, 수선화잎의 녹색, 버찌의 사랑스러운 분홍색, 호수에 비친 태양의 양홍洋紅색을 띠고 있었다. 청소하는 여자, 하녀, 옷 짓는 여자, 수놓는 여자, 심부름꾼, 유모, 요리사, 감모監母, 여집사, 치장 담당 시녀, 가희, 무희, 그들은 모두 천천히 걸어다녔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해가 뜰 때 일어났고, 해가 질 때 목욕을 했다. 그들은 아버지의 정원을 장식하는 꽃들로, 단 한 사람을 아름답게 돋보이게 하기 위해 활짝 피어났다.


어머니의 차림새는 검소했다. 하지만 그녀의 기침소리와 눈초리에 따라 온 집안이 움직였다. 그녀는 태생적으로 우아했다. 유행은 한철 나비처럼 지나갔지만, 어머니는 영원한 봄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본가인 홍농弘農 지방 양씨楊氏 집안은 제국에서 가장 지체 높은 서른 개의 가문 중 하나였다. 승상들의 딸이자 조카, 누이이며, 황실 부인들의 사촌, 황제의 가까운 인척인 어머니는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보석, 망토, 후광처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절에 시주를 했고, 걸인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줬다. 열렬한 불교신자였던 그녀는 채식만 고집했으며, 소란스러운 세상사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녀는 정성 들여 경전을 베껴 쓰며 눈부신 광채를 발하는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가기를 꿈꾸었다.


어머니는 차갑고 세심하고 부드러웠다. 날이 선 불투명한 그녀의 부드러움은 내 요람 위에 매달려 있던 옥 원반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늘 그녀가 그리웠다. 기다림에 지친 나는 짜증이 났다. 그녀는 며칠 만에 한 번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날 찾을 때면, 땅에 끌리는 비단 옷자락과 끝없이 긴 모슬린 상의가 내 방의 휘장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그녀의 신발이 닿을 때마다 땅은 쾌락으로 속삭였다. 그녀의 향수가 그녀보다 앞서 왔다. 향수에서는 태양, 눈, 동풍, 행복으로 충만한 꽃부리 냄새가 났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나를 품에 안아주지 않았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했다. 나는 그녀를 집어삼킬 듯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의 입술은 두 장의 빨간 꽃잎이었다. 털이란 털을 모두 뽑은 그녀의 얼굴은 거울처럼 매끄러웠다. 밀어버린 다음, 매미의 날개 모양으로 다시 그려넣은 눈썹 아래의 반짝이는 두 눈에는 떨쳐버릴 수 없는 실망감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아들을 원했던 것이다.


 석류꽃이 만발하자 여름이 왔다. 그리고 내 백일이 다가왔다. 어머니는 연못 한가운데에 있는 정자를 열게 하고 친구와 친지를 초대해 성대한 잔치를 벌였다. 반짝이는 물에 둘러싸인 정자 안에서 나는 이 손 저 손을 타고 돌아다녔다. 그들은 날 쓰다듬고 어루만졌다. 하녀들이 층계를 걸어올라와 선물을 내려놓았다. 어떤 부인은 나에게 에메랄드 팔찌를 선물했다. 그녀는 눈이 이렇게 검고 반짝이니 틀림없이 총명할 거라고 말했다. 다른 부인은 은쟁반에 금괴 아홉 개를 얹어 가져오게 하고는 이마가 이렇게 넓으니 좋은 배필을 만나 유복하게 살 거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부인은 금실 은실로 수놓은 화려한 비단 아홉 필을 선물했다. 그녀는 코가 이렇게 반듯하고, 볼이 이렇게 통통하며, 입이 이렇게 동그라니 틀림없이 아들을 여럿 낳을 거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흡족해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보내자 사람들이 잔치판 중앙에 비단융단을 펼치고, 포대기에서 날 꺼내 그 위에 앉혔다. 하녀들이 열 가지 가량의 물건을 여기저기 흩어놓았다. 나는 그 자리에 모인, 호화롭게 치장한 부인들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대신 차가운 장난감 하나를 집어, 그것을 들어올리려고 애썼다. 웅성거림이 번져가는 가운데 부인 하나가 입을 열어 평했다.


“이 아이는 아름다움의 분통粉桶도, 고귀함의 옥玉도, 음악의 피리도, 지혜의 책도, 시詩의 붓도, 상商의 주판도, 구도의 염주도 집지 않았어요. 사촌언니, 이 아이의 미래는 아주 특이할 거예요. 사내아이로 태어났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래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다른 부인이 아쉬운 듯 또 한 번 반복해 말했다.


“그렇게 아쉬워할 것 없다.” 위엄이 넘치는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 시대에는 여자들도 얼마든지 위업을 달성할 수 있어. 예전에 평양平陽 공주는 선왕을 대신해 전장에 나갔다. 전사한 그녀의 장례식 때 황제께서는 나팔을 불고 북을 치게 해 남자와 똑같은 예우를 해주셨지. 네 딸은 하늘의 숨결을 받아들일 수 있는 툭 불거진 이마, 반짝이는 눈동자, 단단한 턱, 도톰한 입술을 타고났다. 이 아이가 제 아버지의 검을 집었으니 얼마나 장한 일이냐! 얘야, 앞으로 이 아이를 사내처럼 입히고 타고난 운명에 걸맞는 교육을 시키거라. 장군의 딸은 지휘를 좋아하는 법이니라. 이 아이는 장차 훌륭한 무관 집안의 여주인이 될 게다!”


나는 요람에서 세상을 맞이하기보다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픈 욕구를 느꼈다. 두 발을 딛고 설 수 없었으므로 나는 기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걸음은 내 몸에 있는 모든 근육의 공조를 요구했다. 목표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 없는 포효를 내지르기 위해 입을 벌린 채, 나는 한 팔, 한 다리를 번갈아 들어올려 우주를 가르며 나아갔다.


수염이 덥수룩한 한 남자가 날 굽어보았다. 검은담비로 안을 댄 비단 망토로 몸을 감싼 그는 먼 곳에서, 아주 먼 곳에서 온 것처럼 보였다. 그를 보고 있자니 말발굽 소리, 무기 부딪히는 소리, 바람의 울부짖음, 유녀游女들의 미친 듯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에게서 풍기는 짐승의 냄새는 나를 전율케 했고, 그의 갑작스런 입맞춤은 내 뺨을 찢어놓았다.


한 계집아이가 날 유심히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의 홍조 띤 얼굴빛, 수려한 용모, 단단한 다리, 검은 눈동자, 그녀가 끌고 다니는 나무오리에 매료되었다. 나를 요리조리 살펴보던 그녀는 내 손에 손가락 하나를 올려놓았다. 나는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끝내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그 손가락을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언니를 아프게 하지 마세요.” 유모가 나에게 말했다.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먼 훗날, 아무것도 모르던 이 날처럼 언니가 나에게 자신의 처형자가 되어달라고 애원하게 되리라는 것을.


무덕 아홉 번째 해, 황제가 아들에게 권좌를 물려주었다. 열두 달 후, 새 황제가 임무수행차 양주揚州에 가 있던 아버지를 불러들였다. 아버지는 이세민의 난이 일어난 이주利州의 도독都督(지방 장관`―`역주)으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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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민음사 







만드는 방법




양파는 아주 곱게 다진다. 양파를 다지면서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다면 자그마한 양파 조각을 머리 위에 얹는다. 양파를 다질 때 눈물이 나오면 우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게 그러니까, 한번 눈물이 나왔다 하면 양파를 다지는 동안 내내 울음을 멈출 수 없다는 게 영 안 좋다. 여러분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만날 그랬다. 수도 없이 울었다. 엄마는 내가 양파에 민감한 건 티타 이모할머니를 닮은 거라고 했다.




사람들이 말하길 티타는 증조외할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양파를 다질 때마다 울고 또 울어서 그렇게 양파에 민감한 거라고 했다. 티타가 어찌나 요란하게 울어댔던지 반 귀머거리였던 우리 집 요리사 나차도 그 울음소리를 들었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티타는 하도 울어서 달도 채우지 못한 채 일찌감치 세상 밖으로 나왔다. 증조외할머니가 끙 소리 한번 제대로 내기도 전에 서둘러 세상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것도 백리향 냄새와 월계수 잎사귀 향, 고수* 향, 끓는 우유 향, 마늘 향과 함께 파스타를 넣은 수프 냄새가 진동을 하는 가운데 부엌 식탁 위로 나왔다. 물론 양파 향도 빠지지 않았다. 여러분도 예상했겠지만 아기를 거꾸로 들어올려 엉덩이를 때릴 필요도 없었다. 어쩌면 티타는 자기가 결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미리부터 그렇게 울면서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나차는 티타가 부엌 식탁과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엄청난 눈물 급류에 떠밀려 세상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그날 오후, 놀라움도 어느 정도 진정되고 햇볕 덕분에 물기도 대충 말랐을 때 나차는 붉은 부엌 돌바닥 위에 흩어져 있던 눈물의 흔적을 쓸어 담았다. 그때 주워 담은 소금이 오 킬로짜리 자루 하나를 가득 채웠다. 그 소금은 요리하는 데 한참 동안 요긴하게 사용했다. 이런 예사롭지 않은 출생 때문에 티타는 부엌에 크나큰 애착을 느끼게 되었고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부엌에서 보냈다.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거의 부엌에서 살다시피 했다. 티타가 태어난 지 이틀째 되었을 때 티타의 아버지가, 그러니까 나의 증조외할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그때 증조외할머니인 마마 엘레나는 그 충격으로 젖이 말라버렸다. 그 시절에는 분유나 그 비슷한 것도 없었고, 급히 유모를 구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티타의 배고픔을 달랠 길이 없어서 애를 많이 먹었다. 음식과 관련된 거라면 훤히 꿰뚫고 있을 뿐더러 요즘은 사용되지 않는 다른 많은 것들도 훤히 꿰뚫고 있었던 나차가 티타를 책임지고 먹이겠다며 자청하고 나섰다. 나차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지만, 그래도 자기가 ‘아무 죄 없는 어린것의 배를 채워주는 데’는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나차는 글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하지만 음식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마마 엘레나는 나차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슬픔과 농장을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자식들을 제대로 먹이고 교육도 시켜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 갓난아이까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티타는 아예 부엌으로 옮겨 와, 아톨레*와 차를 마시며 아주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랐다. 그러니 티타가 음식에 특별히 뛰어난 감각을 지니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티타가 밥 먹는 시간은 부엌의 일상에 따라 움직였다. 아침나절에 콩 삶는 냄새가 나거나, 정오에 닭 잡을 물이 준비되었거나, 오후에 저녁 식사를 위한 빵이 오븐에서 구워질 때면 티타는 이제 슬슬 자기가 밥 먹을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티타는 나차가 양파를 다질 때 때때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울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 눈물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둘이 함께 울면서 재미있어하기까지 했다. 티타는 어렸을 때 기뻐서 흘리는 눈물과 슬퍼서 흘리는 눈물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 티타에게는 웃음도 울음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티타는 삶의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을 혼동했다. 부엌을 통해 삶을 알게 된 사람에게 바깥세상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부엌문에서부터 집 안쪽까지 연결된 거대한 세상은 티타의 손안에 있었다. 부엌 뒷문이나 안뜰, 밭, 과수원 같은 세상은 완벽하게 티타의 것이었다. 언니들과는 정반대였다. 언니들에게 부엌은 미지의 위험으로 가득 찬 두려운 세상이었다. 언니들은 부엌에서 노는 건 어리석고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티타는 뜨겁게 달궈진 질냄비 위로 현란하게 춤을 추며 떨어지는 물방울이 얼마나 놀라운 장관을 연출하는지를 언니들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티타가 노래 부르면서 젖은 손을 장단에 맞춰 흔들며 질냄비 위로 물방울을 튀겨서 ‘춤추게’ 하는 동안, 로사우라는 자기가 보고 있는 광경에 괜히 움츠러들어서 한쪽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렇지만 헤르트루디스는 리듬이나 춤, 음악과 관련된 거라면 뭐든지 좋아했기 때문에 그 놀이가 아주 재미있다고 생각했고 신이 나서 함께 놀았다. 그래서 로사우라도 어쩔 수 없이 함께 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손도 거의 물에 적시지 않은 데다 겁을 먹어서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기 때문에 별 재미는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티타는 로사우라의 양손이 질냄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다. 하지만 로사우라가 싫다고 버티는 바람에 둘이 계속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에는 티타가 화가 나서 로사우라의 손을 놓고 말았다.






그러자 로사우라의 양손은 뜨겁게 달궈진 질냄비 위로 맥없이 떨어졌다. 티타는 질리도록 매를 맞았고, 그것도 모자라 그녀의 세상인 부엌에서 다시는 언니들하고 놀지 못하는 벌을 받았다. 그때부터는 나차가 티타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두 사람은 항상 음식과 관련된 놀이나 게임을 개발했다. 한번은 마을 광장에서 긴 풍선을 꼬아 동물 모양을 만드는 아저씨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티타와 나차는 초리소*를 가지고 똑같이 해보았다. 두 사람은 평범한 동물 모양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백조의 목에 개 다리나 말 꼬리를 붙인 이상한 동물 모양도 만들어냈다.






문제는 초리소를 튀기기 위해 그 매듭을 풀어야 할 때였다. 거의 매번 티타가 안 된다며 고집을 피웠기 때문이다. 티타는 크리스마스 파이를 만들 때만 유일하게 좋다고 허락했다. 티타는 크리스마스 파이를 아주 좋아했다. 그때는 동물 모양의 매듭을 푸는 걸 허락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초리소가 튀겨지는 모습을 옆에서 즐겁게 바라보기까지 했다.




파이에 넣을 초리소를 튀길 때는 아주 약한 불에서 튀기되 은근히 잘 익으면서도 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초리소가 준비되면 불을 끄고, 미리 가시를 발라둔 정어리를 붓는다. 물론 정어리의 까만 껍질은 칼로 잘 벗겨내야 한다. 정어리와 함께 양파, 다진 칠레고추, 오레가노* 가루를 섞는다. 파이 속을 채우기 전에 이렇게 미리 준비한 것을 잠깐 재워둔다.




티타는 이 과정을 매우 좋아했다. 파이 소가 양념에 재워지는 동안 거기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맡는 것은 정말 흐뭇했다. 냄새는 기억 속의 소리와 향을 전하며 과거의 어떤 시간을 떠오르게 하는 특성을 지녔다. 티타는 냄새를 흠뻑 들이마시며 그 각별한 냄새나 향과 함께 자신의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걸 좋아했다.




 







티타는 맨 처음 이 파이의 냄새를 맡은 게 언제였을까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아무 소득도 얻지 못했다. 어쩌면 태어나기 전이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정어리와 초리소의 묘한 조화가 티타로 하여금 하늘의 평화를 저버리고 마마 엘레나의 배 속으로 들어가게 했는지도 모른다. 마마 엘레나의 딸이 될 수 있도록, 초리소로 아주 특별한 요리를 만드는 데 라 가르사 가문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마마 엘레나의 농장에서 초리소를 만드는 일은 굉장한 의식이었다. 하루 전날 마늘 껍질을 까고, 칠레고추를 깨끗이 씻고, 양념을 빻았다. 집안 여자들 모두가 거들어야 했다. 마마 엘레나와 딸들인 헤르트루디스, 로사우라, 티타, 요리사 나차, 하녀 첸차까지 모두 말이다. 오후 나절에 식탁에 둘러앉아 수다 떨고 농담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마마 엘레나가 말했다.




“오늘은 이만 됐다.”




한마디만 해도 모두 알아들었다.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먼저 식탁을 정리하고 나서 일을 분담했다. 한 사람은 암탉들을 우리에 집어넣고, 다른 한 사람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와 아침에 쓸 수 있도록 준비하고, 또 한 사람은 부뚜막에 불을 지필 장작을 책임졌다. 그날은 다리미질도 하지 않고, 수도 놓지 않고, 바느질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모두 각자 자기 방으로 돌아가 책을 보다가 기도를 드리고 잠을 잤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마마 엘레나가 식탁에서 일어나도 좋다는 말을 내뱉기도 전에 티타가 떨리는 목소리로, 페드로 무스키스가 어머니에게 할 말이 있어 올 거라며 얘기를 꺼냈다. 그때 티타의 나이 열다섯이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나에게 무슨 얘기를 하러 온다는 거냐?”




마마 엘레나는 티타의 영혼까지 얼어붙을 정도로 기나긴 침묵을 지킨 후 입을 열었다.




티타가 거의 들릴락말락하게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마마 엘레나는 티타를 무섭게 한 번 째려본 후 말을 이었다. 티타는 가족 모두를 무겁게 짓누르던 그 따가운 눈총 아래 기나긴 억압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너에게 청혼을 하러 오는 거라면 아예 그만두라고 해라. 그 청년이나 나나 괜한 시간만 낭비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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