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라는 노랫말처럼 가을이 깊어 갈수록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편지를 쓰는 것이 생활이었던 때가 있었다. 언어장애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전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은 편지라는 수단이 절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PC를 사서 어느 정도 익히게 되자 바로 프린터를 사서 편지를 찍어 보내게
되었다. 처음으로 장애우들 모임에 나갔을 때, 언어장애 때문에 다른 장애우들에게
조차 외면 당하기 일쑤였다. 그렇기 때문에 외면 당하지 않으려고 만나는 사람들에
게 편지를 부지런히 써서 보내야 했다.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이나 팔이
아무리 아파 와도 쉴 줄 모르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씀처럼
힘들게 써서 보낸 편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내게로 열게 만들어 줄 때 무엇에 비할
수 없는 희열을 맛보게 해주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편지를 쓰기 위해 한 장을 채워야 한다는 부담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조그맣게 찍히는 9핀 프린터로 A4 용지를 채운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손은 느리고 무수한 오타와 싸우다 보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오래 걸려 쓰다
보면 자꾸 고치게 되어서 더 오래 걸리게 된다.
그만큼 편지마다 공이 더 들어가고 애착이 가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답장이 거의
받지 못해 실망이 들게 되었다. 모임에 자주 나가게 되면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나아져서 마음놓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어 편지를 힘들게 쓸 필요를 점점 덜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서 편지를 쓰는 일이 갈수록 부담스러워져 가게 되었고 쓰는 것이
드물어지게 되었다. 그 후 PC 통신을 하게 되면서 E메일(전자우편)이라는 수단을
쓰게 되어서 더욱 편지를 쓰지 않게되었다.
편지란 쓰기도 힘들지만 내겐 봉투에 넣고 주소를 쓰고 우표를 사서 붙이는 것도 남을 시켜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전 개인의 E메일化가 소원이
되기도 한다.
편지가 종이 위에 쓰는 것이라면 E메일은 PC에 써서 회선을 통해 보내면 되는 것이다. 종이에서처럼 분량을 신경 쓸 일이 전혀 없다. 형식이나 심지어 맞춤법까지
무시하고 서로 뜻만 통하면 된다.
성가신 스팸이나 공지 매일 속에서 친구의 메일을 받게 될 때 그 반가움이란 형식을 갖춘 장문의 편지에 못지 않은 기쁨을 준다. 그렇지만 편지이든 메일이든 마음을
기울인 예의 바른 것을 받게 될 때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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