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대담 시리즈 1
도정일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1월
구판절판


최재천....
우리가 아예 복제과학이란 것을 생각조차 못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수도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는 거죠. 과학기술의발달이 꼭 지금과 같은 형태로 이루어졌어야 할 필요는 절대로 없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뭐 별겁니까?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지만 호기심이 가장 많은 동물은 단연 우리 인간이죠. 저는 과학이란 우리 인간의 알고자 하는 욕망과 행동을 체계적으로 구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앙의 행동'은 우리의 본능이죠. 저는 심지어 기독교도 과학을 부추겼다고 생각합니다. 왜 현대 과학이 동양이 아니라 서양에서 꽃을 피웠느냐 하는 문제에 의견들이 분분한데, 저도 하나 보태렵니다. 하느님은 왜 하필이면 우리에게 '지식의 나무'를 일부러 골라내어 그건 절대로 먹지 말라고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했을까요? 저는 하느님이 당신의 독특한 방식으로 우리 인간에게 과학을 허락하신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멈출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하느냐 하는 방법이 문제일 뿐이죠.

도정일
바로 거기에 중요한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기술과 과학은 상당한 맹목성을 가지고 있죠. 방법의 맹목성이요. 할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하자는 겁니다. 하지만 인문학은 그 방법이란 게 '무엇을 위한' 방법인가를 따집니다. 목적의 정당성 여부를 질문하는 거죠.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효과적 방법이 기술이라는 건데, 이때 방법만 생각하고 목적의 정당성은 따지지 않는 것이 기술의 맹목성입니다 자, 여기 유대인 100만 명이 있다, 이들을 가장 빨리, 가장 효과적으로 죽여 없애는 방법이 뭐냐? 이것이 히틀러의 주문이었어요. 기술자들이 생각해낸 '최선의 방법'이 가스실 처형이었습니다. 방법이 있더라도 목적 자체가 정당하지 않으면 그 방법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인문학적 사고입니다. 흔한 지적이지만 '어떻게?'를 생각하는 사고와 '왜'라고 질문하는 사고의 차이가 거기에 있습니다.-175쪽

최재천
생물의 번식력은 이처럼 어마어마한 겁니다. 누군가가 죽어주기 때문에 내가 살 수 있는 거죠. 죽음이 삶을 허락하는 겁니다. 그러니 모두가 죽지 않게 되는 날이 모두가 함께 죽기 시작하는 날이 되는 겁니다.-177쪽

도정일
대학의 학부 영문학강의는 인문학 교육의 일부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인간은 어째서 인간인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이 인문학의 핵심 질문이죠. 영문학이든 국문학이든, 학부의 문학 강의는 그 질문을 늘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질문이 두어 개 더 있습니다. 하나는 문학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이 사람을 형성하는, 말하자면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데 무슨 중요성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고, 또 하나는 영문학 교육이란 것이 서구 문명과 문화, 그리고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영문학은 서양학의 일종이니까 이런 문제를 때놓을 수 없습니다.-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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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09 0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