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이 문제다. 살살 달래면서 잘 버텨왔는데 근래 일주일은 머리를 들 수 없을 정도다.
할 수 있으면 두개골 속에 들어있는 것들을 모조리 꺼내 찬물에 좀 씻었으면 좋겠다. 여하간 덕분에 일요일은 집에서 쉴 수 있었다. 황군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며 맛있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고 썰어다 준 수박을 먹으며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는 음악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축복인 것 같았다. 단 한 소절을 부르고 그 한 소절을 들었을 뿐인데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니 말이다. 여튼 열심히 노래를 하는 가수들이 있고 또 그 노래를 기쁘게 듣는 사람들이 있는 풍경은 훈훈했다. 물론 출연한 모든 가수의 노래를 다 좋아할 수는 없지만 그건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다. 다행인 것은 황군과 내가 음악적으로 연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하는 말을 황군은 금새 알아들었고, 황군이 하는 말 역시 설명이 필요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분명 행운이다.
음악프로그램은 끝났고 순위가 발표되었다. 그 순위를 보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대중'이라는 단어였다. 또한 임재범씨가 BMK를 위로하며 한 말이 계속 맴돌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동료들이 이해하면 되는 거다'라는 식의 말이었다. 그 생각은 꼬리를 물고 김어준과 노회찬이 나누었던 대화로 이어졌다.
김어준 그러니까 진보진영은 거의, 언제나, 항상, 도덕적 우위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리고 옳은 말이에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옳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반박할 수 없어요. 그런데 국민들이 학생은 아니거든요. 훈계 받거나 가르침을 받고 싶진 않은 거예요. 그런 얘길 듣다보면, 안 그러면 나쁜 놈처럼, 물론 안 그러면 나쁜 놈이야 말하진 않았지만, 스스로 그렇게 느껴지니까 그쪽을 안 쳐다보도 싶은 거예요. 그게 죄의식 마케팅의 한계인데, 그 마케팅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끼리 운동을 하기도 하죠. 그런데 그게 확장이 안 된다는 거죠, 전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게 엄청난 갭인데 그 갭을 어떻게 넘어가느냐....이 설득을 하는 방법론에 있어서의 연구는 안 한다는 거죠. 왜냐하는 우리는 옳고, 이것이 정교하고 훌륭한 플랜이고, 다른 정책보다 우위에 있으니 이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멘탈리티가 마치 종교운동의 그것과 비슷하다, 이런 생각도 합니다.
노회찬 극복되어야 할 부분이죠.
김어준 그런데 대표님처럼 이미 대중정치를 하시는 분들은 그 한계를 자각하지만, 그래도 안하시는 분들도 물론 있지만, 문제는 그 한계를 인식하는 것까지만 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것을 극복하고 연구하고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다른 것만큼의 우선순위, 혹은 그보다 더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연구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느끼는 안타까움이 항상 있어요. 나는 저 사람들이 좋은데, 저 사람들이 얼마나 좋은지 사람들이 스스로 와서 공부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한. 그건 소비자 보고 이 물건이 얼마나 좋은지 지가 알아서 공부하라 이거거든요. 장사를 하면서 팔 생각은 안 한다는 거죠. 우리 물건이 좋으니까 팔릴 거야. 우리 물건은 짱이야. 자기들끼리 이런 얘기만 한다는 거죠. 자기들끼리 옳으면 뭐해. 이런 것도 있습니다. 똑같은 맥락인데 종교는 구원으로 장사를 하는 거죠, 비유하자면, 그럼 진보진영은 뭘로 장사할 거냐. 진보진영의 장사 패키지가 잘 안 보여요, 대중들한테는. 교회를 가는 건 구원 받으려고 가는 거거든요. 절에 가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고, 당연히. 그걸로 장사한다고 치면 그럼 진보진영의 구원은 뭐냐, 진보진영의 구원이 예를 들어 무상교육이고 서민들 모두에게 집을 가지게 하는 거라면 말이죠. 교외의 구원이 영생인데 그 사람들이 교회에 안 가고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잖아요. 그래서 교회는 일단 예배를 보게 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거든요. 그걸 너무 많이 해서 욕먹죠. 그런데 진보진영은 자신들의 예배당에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데 대단히 무심하다. 자신들의 교리만 발표하고 있어요, 맨날.
노회찬 (묵묵)
김어준의 말에는, 적어도 내가 듣기에는 상대방을 향한 혹은 진보진영을 향한 애정이 충만해 보였다. 물론 미운 구석이 있겠지만 말이다. 또한 노회찬의 대답없음에는 현실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답답함이 묻어난다.
노회찬 제 식으로 얘기하자면, 우리가 어렵게 일을 하다 보니까,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보다는 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또는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데에 너무 매몰되어온 건 사실이에요. 제가 가장 문제 있다고 여기는 자세가 뭔가 하면, 나는 감옥 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 감옥 가는 걸 감수하거나 감옥 가도 변치 않겠다는 말이에요. 이것은 좋은 태도긴 하지만 사실 감옥 간다는 것은 진다는 얘기거든요.
김어준 그리고 당한다는 얘기죠.
노회찬 당한다는 거죠, 당하지 않고 적을 무찔러야 되는데, 무찔러서 어떻게 하겠다는 포부보다는 패배주의가 앞서거든요, 그러니까 그 속에는 뭐가 있냐면, 이기기는 힘들 것이다, 질 가능성이 더 높다, 지더라도 변치는 않겠다, 이런 얘기라고요. 그건 생존을 위한 철학은 될 지 몰라도, 변혁을 위한, 변화를 시키는, 이겨야 변화를 시키는 건데, 그 길은 많이 못 미치는, 그런 점에서 패배주의가 짙게 깔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행태나 운동방식도 그걸 못 벗어나고 있다.
음악프로그램을 보다가 자연스레 이어질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나는 계속 <진보의 재탄생>을 뒤적였다. 음악에도 낡은 진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좀 분열되어 다양한 지점들이 생기고 점점 괜찮아 보여서 따라하고 싶고 좋아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유는 한가지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 좋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회찬이 선거에서 졌다고 갑자기 홍정욱의원 흉내를 내라는 것은 아니며 이소라에게 후렴으로 가득찬 댄스곡을 주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흉하다. 아니 울 것 같다. 단지 친절하고 세련되고 달콤하게 대중을 설득하는 방법을 알아냈으면 좋겠다. 건투를 빈다. 내가 좋아하는 당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