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역사 창비시선 280
최금진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차는 계곡에서 한달 뒤에 발견되었다
 꽁무니에 썩은 알을 잔뜩 매달고 다느는
 가재들이 타이어에 달라붙어 있었다


 너무도 완벽했으므로 턱뼈가 으스러진 해골은
 반쯤 옷고만 있었다


 접근할 수 없는 내막으로 닫혀진 트렁크의
 수상한 냄새 속으로 파리들이 날아다녔다


 움푹 꺼진 여자의 눈알 속에 떨어진 담뱃재는
 너무도 흔해빠진 국산이었다


 함몰된 이마에서 붉게 솟구치다가 말라갔을
 여자의 기억들은 망치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흐물거리는 지갑 안에 접혀진 메모 한 장
 ‘나는 당신의 무엇이었을까’
 헤벌어진 해골의 웃음이
 둘러싼 사람들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무엇, 무엇이었을까...... 메아리가
 축문처럼 주검 위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져갔다     


  -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최금진 -     0901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