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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산진 평전
신한균.박영봉 지음 / 아우라 / 2015년 5월
평점 :
모양이 다르면 맛과 기분도 다르다. 가끔 살균 탁주를 와인 잔에 따라 마셔 보면 프랑스 와인과 같다. 노란색 양은 잔의 그 맛과는 다르다. 어떤 일이나 공간 그리고 개인의 상황에 따라 효과 또는 느낌이 다르다. 곧 다름은 공존의 이유이기도 하다.
막걸리 잔으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흰 보세기다(보세기는 보시기의 전라도 방언). 땅에 묻어 둔 독안의 막걸리를 표주박으로 휘저어 흰 보세기 잔에 나눠 마셨다. 둘러 앉아 마시는 마을 어른들의 옆모습은 내 유년의 다정한 기억이다. 마을 어른들은 그 기운으로 가을걷이 볏짐을 지게에 지고 나르듯 논과 마당을 부산나게 오고 갔었다.
한국사람이 일본인에 대한 평전을 썼다하니, 번역을 하였다면 납득이 가겠지만. 그것은 '로산진'이라는 인물이 한국의 옛그릇을 통해 도예철학을 터득했다는 인연 때문이다. ‘로산진’은 조선의 옛 도자기에 대한 공부를 통해 일본 요리에 어울리는 그릇을 만들었던 인물이다.
사기장(도공)은 ‘도자기를 판다’고 하지 않고 ‘작품을 시집 보낸다’고 한다. 도자기는 사기장에게는 딸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잘 만들어진 도자 그릇을 ‘맛난 그릇’이라고 했다. 좋은 그릇은 음식을 더욱 맛나게 하기 때문이다.
저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일본의 음식과 그릇의 어울림이었다. 그 어울림은 기억을 끄집어 내는 라벨같은 것이다. 가끔 점심 때나 출장 중에 자주 갔던 식당의 특징은 찬과 그릇의 어울림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한 참 후에 알았다.
기타오지 로산진(1883-1959)는 천재 예술가였다. 서예에서 시작해 전각과 건축 등으로 영역을 넓혀으며, 식도락과 도자기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이상향을 구현했다. 그는 절대미각의 소유자였으며 1920년대에 미식으로 일본의 정재계를 좌지우지했던 인물이었다. 15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