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인문학 [사랑이 필요한 시간]

아이가 간밤에 독감으로 열이 펄펄 끓었다.
39.6도라는...
우리집 체온계로는 39도로만 기록되던 열이 응급실에 가니 39.6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열에 들뜬 얼굴을 옷 속에 푹 묻어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딸아이를 제대로 이끌고 가야 하건만
마음이 바빠 병원 입구조차 제대로 찾지 못했다.
어두컴컴한 입구가 나란히 둘 있었는데 하나는 장례식장 입구였고 하나는 병원 입구였다.
정신줄을 잠시 놓았던지 내 발이 장례식장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뒤에서 "빵"하는 경적 소리가 울렸다.
남편이었다.
"그 쪽이 아니잖아. 정신 안 차려?"
펴뜩 눈을 들어 보니 붉은 색으로 빛나는 장례식장 입구라는 간판이 그제서야 보였다.
이런...
아직은 그 쪽으로 발 돌릴 때가 아닌데...
사랑하는 아이의 어깨를 부축해 얼른 병원 입구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이런저런 응급 처치를 마치고 나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12살이라 좀 컸다고 수액 맞을 주사를 꽂는 동안에도 잘생긴 청년 간호사에게
"정말 안 아파요? 아플 것 같은데..." 처럼 엄살도 떠는 걸 보니 제법 의젓해진 것 같았다.
독감으로 입원까지 해야 했던 몇 년 전보다 훌쩍 큰 느낌이다.
때마침 아이 옆 베드에 2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를 들쳐 업고 부모가 들어왔다.
독감인 아이가 열이 떨어지지 않아 응급실로 온 모양이었다.
입원을 결정하고 수액을 맞는데 그 조그만 손에 바늘을 꽂으려니 아이가 그만 자지러지게 운다.
"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
우는 소리 내내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응애도 아니고 엉엉도 아닌 엄마엄마 소리가 가슴 속에 훅 들어왔다.
남의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2살 즈음의 내 아이가 나를 찾는 듯해서
갑자기 울컥했다.
남편이 묻는다. "왜 울어? 이제 열만 떨어지면 될 텐데..."
응급실에 와서 열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우리 아이를 보고 이제 그만 안심이 되어 눈물을 흘리는 줄 안 남편이 위로랍시고 무뚝뚝한 말을
건넨다.
옆 베드 아기 울음 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올 것 같아
휴지를 들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잠자야 할 시간에 누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병원행을 하게 된 둘째가 문을 삐걱 열고 나와 내 옆에 섰다.
"엄마 왜 울어?"
아이구...그래도 엄마 걱정이 돼서 따라 나왔나 보네.
입 안 가득 울음이 차서 한 마디 입 밖에 내면 와르르 슬픔의 쓰나미를 보여줄 것 같기에
애써 눈물을 닦으며 뒤돌아 섰다.
짧은 몇 시간 사이에 여러 가지 감정이 마구 뒤섞인 경험을 했다.
그 시간 동안 느낀 감정 속에
"사랑"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게 몇 가지나 될까.
아이와 엄마, 남편과 아내 같은 가족 간의 사랑 뿐만 아니라
내 아이 또래의 다른 아이에게도 미루어 번져간 사랑도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때로 사람을 아프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지만
중간중간 희미한 웃음을 짓게도 하고 너무 기뻐 주체할 수 없이 크게 웃게도 한다.
[사랑이 필요한 시간]이란 책에서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사랑'이라는 영원한 수수께끼에 접근한다.
몇 장 넘기지 않아
우리 모두가 궁금해 마지 않는
'사람은 왜 사랑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툭 던진다.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일은 혼자서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
사랑은 인간의 근원에 가까운 욕구, 어떤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게 해주는 에너지의 근원.
이 말을 들으면 아이의 존재 자체가 사랑이라서 아이가 아플 때마다 같이 눈물 짓게 되는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사랑의 힘에 주목하면서, 인간답게 살고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고전문학, 역사, 종교, 철학, 영화 등 다양한 관점의 인문학적 고찰을 통해 우리는 왜 사랑을 하는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한다.
사랑에 대한 깊은 물음에 빠져 있다면, 이 책을 읽고 함께 답을 구하는 여정에 동참하기 바란다.
아직도 열이 내리지 않아 발그레한 볼을 한 아이가 눈에 밟혀 이만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