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과 내시 - 조선조 정치적 복종의 두 가지 형식
박종성 지음 / 인간사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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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정치적 복종의 두 가지 형식 [아전과 내시]

 

머리털이 숭숭 빠지고 등은 굽은 채 헐벗은 모습의 '골룸'은 한때 희화화 되어 표현되었다.

 "마이 프레셔스"를 외치며 기이한 늙은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뭔가에 매료되어 묘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판타지 소설 혹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는 모든 종족이 이른바 '절대반지' 하나를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배신을 일삼는다.

'절대반지'의 속성이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권력'과 많이 닮아 있단 생각이 든다.

그것 하나만 있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만 같고 남의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의 마음 속 욕망을 그렇게 자극하는 것일까.

 

예전 봉건사회 혹은 중세에는 '왕'이 있어 절대권력을 행사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네 고려, 조선을 보면 알 일이다.

왕세자 책봉 이후 쭈욱 일생동안 한 나라를 책임지는 왕의 자리란 위엄 있고도 고독한 것이어서

주위에 살뜰히 보필하는 신하가 있는가 하면, 전복을 꾀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배반의 세력이 득시글거리기도 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를 남발하는 신하들이 왕과 뜻을 같이하면 좋겠지만 그들은 언제고 왕의 대척점에 서서 한사코 반대의견을 내며 왕을 견제해 왔다.

아~ 피곤한 왕의 일생이여.

그리하여 왕은 일신의 안위를 위해 가까이 있는 종복, 내시를 '편애'하기 시작한다.

왕과 신하, 내시 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구조가 부득불 생기게 된다.

 

[아전과 내시]에서는 조선조 정치적 복종의 두 가지 형식으로 "아전"과 "내시"에 주목한다.

유교국가 조선.

전대미문의 세월이 흐르도록 단일 성씨를 중심으로 세습군주체제를 이어간 조선의 정치적 에너지를 탐구대상으로 삼은 저자는 조선의 정치체제와 왕조사회의 내재적 틀을 지탱한 힘의 정체에 골몰한다.

왕조는 변화의 수단보다 보존의 방법을 강구하는 데 치열하게 집착하여 '보존'과 '유지'을 이루어냈다.

27명의 왕이 지배하던 조선조를 훑어보고 저자는 "강자의 강함이란 본디 그들의 노력이나 자질 때문이라기보다 약자의 의도적 굽힘과 자발적 복종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조선에서 독특한 복종을 통해 자신의 힘의 기반과 저력을 이어간 제도 직종인 '아전'과 '내시'의 정치적 존재양식에 주목하는 것은 지금껏 쉬이 접하지 못했던 방식이다.

권력을 부리는 주체인 '강자'에 집중해서 권력의 특성과 전개양상을 살피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이었다.

하지만 약하나 강하고 잠재적으로 튼실하였으나 현실에서는 취약한 신분정치거점을 잃지 않을 애쓴 권력주변부의 중요 자원에 눈을 돌리니 '권력'의 실제 모습이 달리 보인다.

보이지 않을 만큼 '작다'고 하여 '없다'고 인식하는 잘못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과거의 역사를 살펴 현재를 통찰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역사공부의 진의일 터.

이제까지의 정치연구가 주로 제도 권력의 중심과 교체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저자는 '높은 곳', '밝고 환한 곳'에서 벗어나 정치적 그림자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권력과 위세에 눌려 없는 듯 존재했고 여간해선 드러나지 않는 '아전'과 '내시'를 끌어내자 권력의 속성이 ,어두운 골목을 또다른 방향에서 서치라이트를 비추자 가리워진 구석에 숨어있던 그림자를 드러내듯,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굳이 천직이라 이름붙이지 않아도 굽힘의 자세는 그들에게 굴욕도 수모도 아닌 일상의 생활이자 체화한 삶, 바로 그 자체였다. 가없는 존경과 한없는 우러름에서 솟구치는 아연한 굽힘보다 위장된 복종이나 고의적 굴종이 한층 정치적인 이유다.

-174

 

환관의 정치개입은 당연히 억제되어야 하지만 그 업무의 특성상 왕의 가장 측근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정치적 사건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장희홍, 182

 

지금은 현대적인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데, 어째서 몇 백년 전의 행태가 그대로 지속되고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데자뷰라 하기엔 너무나 끔찍한 겹침이 아닌가.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이 드러나고 대통령은 여러가지 이유로  '탄핵'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예전에는 '환관'혹은 '내시'란 직책이라도 맡은 자가 왕의 옆에서 권력의 상관관계에 힘입어 굴종의 대가로 단맛을 보았다면, 지금의 국정농단은 정치와 관련 없는 일반인의 손에 의해 행해진 바, 더욱 공분을 사고 있음이다.

참담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이 대목에서 '권력'의 속성이 다시 한 번 예전의 법칙과 그대로 맞아떨어짐을 확인하고 보니 아연할 따름이다.

 

아전과 내시의 자원은 의외의 '굴신성'이었다.

자존과 긍지만으로는 권력의 정치적 거점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도 추천도 꿈도 꾸지 못할 정치적 호사였던 세상에서 기왕의 좁디좁은 신분상승통로를 단숨에 헤집을 역량이란 좀체 우러나기 힘든 '굽힘'과 '꺾음' 이었다. -261

 

아전과 내시는 오늘도 얼마든지 부활한다는 저자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요 몇 달간의 국정은 혼란 사태를 빚고 있다.

 

몸 생김새로 확인 가능한 기인이나 악마가 아니라 누구라도 천연스레 변모할 일상 속에서 제 모습을 갖추니까. 스스로 변하여 그처럼 바뀌는 존재일 뿐, 누가 시키거나 만들어 생겨나는 타율의 창조물은 더더욱 아니니까. -265

 

기이하게 모습을 바꾸어 현실에 나타나고야 만 '아전'과 '내시'는 최소한 '복종'의 메커니즘 조차 지니고 있지 않다.

변형에 변형을 거듭한 끝에 백신조차 만들 수 없는 유전자를 가지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들의 힘이 너무도 강력해서 '슈퍼'라 이름붙기 전에 현명한 눈으로 이들을 꿰뚫어 볼 지혜로운 지도자의 손에 나라를 맡겼으면 한다.

현대판 아전과 내시의 이름은 또다시 역사의 한페이지에 뚜렷하게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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