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교수님,[집 나간 책, 세상을 향하다] 강연 후기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나같이 모르는 사람은 몰랐던

알라딘의 전설, 마태우스(마태우스는 서민 교수님 최초 소설 제목이랍니다)!!

 

그 분이 바로 서민 교수님이었다죠~~

 

서평가 로쟈 이현우보다 한 때 우위를 차지했었다며 강연 때 슬쩍 자랑하셨던 교수님.

알라디너 2년차를 조금 넘긴 햇병아리라서 마태우스란 필명을 이달의 당선작 코너에서 보고 슬쩍 넘어가곤 했었는데요...

사실 알라딘엔 굉장히 넘사벽의 글실력을 가진 분들이 오랜 세월 진을 치고 있어서 '떠오르는 샛별'들이 빛을 보려면 오랜 시간의 공력을 키워야겠구나 실감하곤 했답니다.

간혹 가다 하나씩 댓글이 달리는 제 블로그에

서민 교수님ㅇ의 후광을 얻어

이 글 밑에 댓글이 다다닥~ 달리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부산 금정산 자락에 위치한 화명동 <강아지똥 서원>에 교수님이 강연하러 와 주셨습니다.

<강아지똥>은 애견샵이 아닙니다. ^^(서원지기님의 농담 인용)

동네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며 아이들 책 서점으로 점점 커나가고 있는 작은 서점이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이렇게 유명한 분들을 모셔 강연도 열고 있고요,

아이들 역사 수업, 책 읽고 글쓰기 수업 등도 있답니다.

어쨌든~

 

영화 <연가시> 흥행 이후 화악~ 떴다던 교수님은 기생충학자로 유명하시죠.

이번에 [집 나간 책] 이라는 서평집을 내시고 강연차 울 동네로 오셨어요.

TV에서만 보던 유명한 분을 직접 보게 되다니.

사실 30명 정원의 강연이라 빛의 속도로 접수하지 않으면 만나뵐 수 없었을 텐데.

저의 빠른 손 덕택에 당당히 2등으로 접수 완료!!

확실히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강연 후에 얼마나 마음이 뿌듯하던지요.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강의실로 들어선 서민 교수님.

너무 낯가리셔서 어쩌나~ 제가 다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는데요,

웬걸~ 사진 요청을 하자 귀여운 미소를 날려주시며 함께 사진 찍기에 호응해 주셨습니다.

찰칵, 찰칵 할 때마다 포즈를 달리 하시고 표정도 다양하게 지어주셔서 모두들 서민 교수님의 색다른 모습에 즐거워했답니다.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슬라이드를 넘기며 강의를 해나가셨지만 뜻하지 않게 재미있는 장면이 많아서 자주 빵 터지는 웃음을 가릴 수 없었습니다.

 

기생충 관련 책이 아니라 서평집을 주제로 하여 강연을 꾸려나가시느라

과학자다운 면모는 잠시 접어두시고

인생편력으로부터 글쓰기와의 인연이 이어진 과정을 죽~ 이야기해주셨는데요

(물론, 나중에 미라의 변에서 기생충을 발견해 논문으로 쓴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나온답니다. 역시 기생충학자~ 라며 속으로 엄지 척!!)

 

 

 

 

 

 과학자에게 독서와 글쓰기는 중요하다.

책을 읽어야 상성력이 생기고 글쓰기 능력이 있어야 연구비도 잘 타내고 연구결과를 논문으로 잘 쓸 수 있다.

 

특히 강연 중에 깊이 와닿은 부분입니다.

전공을 무엇으로 하든 글쓰기가 기본이 되어 있으면 더욱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겠죠.

 

 

 

기생충과의 인연도 인연이지만 글쓰기에 매료되어 소설도 내시고 (마태우스, 같은...), 기대에 못 미치는 세상의 평가에 좌절했다가 글쓰기 지옥훈련에 돌입했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드라마였어요.

스스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안좋은 기억도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로) 있을 테지만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긍정마인드로 세상을 바라보려 하신 노력이 언뜻언뜻 엿보였습니다.

우리네 설화 속 서사구조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영웅"의 탄생과정을 한 발 한 발, 몸소 체험하셨다고나 할까요^^

 

비범한 출생 ---> 어린 시절의 고난 ---> 추방(혹은 가출) ---> 조력자와의 만남 ---> 능력의 발휘 ---> 성공, 부귀영화를 누림

 

자신의 길을 찾고 전공을 파고드는 남자다운 집념에 더하기, 지옥훈련으로 얻어낸 글쓰기 실력이 오늘날의 반짝반짝 빛나는 교수님의 모습을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기저기 심심풀이로 서평을 올리고 있는 저는 알라딘에서 마태우스란 필명으로 활동하면서 글쓰기 공부에도 매진하셨다는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너무 반가워서 사인 신청을 하러 갔더니 이렇게나 정성스럽게 글을 남겨주셨네요.

 

 

 

 

 

 

 

 

 

7월 17일 제헌절

뜻깊은 날에 만난 서민 교수님.

뜻깊은 강의 잘 들어습니다.

한바탕 웃음과 위트가 가득한 강의 뒤에 진한 인생의 교훈이 숨겨져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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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19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번째 사진 속 마태우스님 자세가 귀여워요. ^^

남희돌이 2015-07-19 15:37   좋아요 0 | URL
요렇게, 저렇게~ 손과 어깨를 살짝 틀어가면서 포즈를 취해 주셔서 모두들 꺄르르~ 넘어갔답니다.
어쩜 저 연세에^^ 귀여울 수 있을까~ 감탄!

마태우스 2015-07-2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남희돌이님 이리 멋진 강연후기 올려주시다니, 감사합니다 흑흑. 글구 제 사진, 제가 봐서 그런지 심하게 흉하네요 ㅠㅠ 외모가 안받쳐주는데 귀여운 척을 한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암튼 알라딘서 자주 뵈요. 그러다보면 글은 저절로 나아집니다.

남희돌이 2015-07-21 16:31   좋아요 0 | URL
어머나~ 에 또 한 번 깜짝 놀랐어요. 귀요미 폭발이에요.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매력이 듬뿍 담겨 있어서 볼 때마다 너무 좋아요.
알라딘 활동을 좀 등한시했는데, 이제 마태우스님 덕분에 자주 오게 되고 더욱 신경쓰게 될 것 같아요.

CREBBP 2015-07-21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민 교수님의 후광을 얻어 글 밑에 댓글이 다다닥~ 달리는 기적이˝ 일어났네요~ 마태우스님의 댓글은 기적 위의 기적이라 할 수 있겠는걸요. 반가와요 마태우스님~(저도 덩달아 아는척)

서민님 같은 유명한 분을 동네 작은 글방에서 모셔와 조촐하게 강연을 하는 커뮤니티의 활성화된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입니다.

남희돌이 2015-07-21 16:32   좋아요 1 | URL
그죠~ 울 동네가 그런 동네에요^^(제가 덩달아 잘난 척!)

거의 강요된 댓글이지만 이렇게 길~ 게 달려 있으니 기분 좋네요.
서민 교수님! 감사합니다^^

 
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비포 아이 고]

 

 

내가 만약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다면?

가장 먼저 눈에 밟힐 사람은 아이들이다.

이제 한창 자신의 꿈을 키워가며

조잘조잘 떠들어대기도 하고 장난도 치며 시도 때도 없이 까르르 웃어대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무진장 기대되는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을 얼마 보지 못하고 사라져야 하는 것이 가장 아쉬울 터이다.

남편은 아마 그 뒤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데이지는 아직 젊고, 신혼이고, 아이가 없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일은 없었다.

좀 더 자기 자신을 우선시하는, 말하자면 이기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인 것이다.

그런 그녀가, 3개월 혹은 6개월의 이른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첫 번째 유방암은 그럭저럭 넘기고 주기적으로 검사도 받았지만, 젊은 육체에 깃든 암이라는 놈은

가혹할 정도로 재빠르게 그녀의 몸 속에서 꿈틀거리며 살아남아

온몸에 전이를 일으켰고 심지어 뇌에도 들어가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데이지는 텔레마케터로 일하다가 마음 속 꿈을 실현하기 위해 심리학 학위 과정에서 논문만을 남겨 놓고 있는  상태이고 그녀의 남편 잭은 역시 수의학 학위와 동시에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전도 유망한 사람이다.

잭은 ,유방암에서 회복된 이후 데이지가 심혈을 기울여 챙겨먹는 유기농 케일을 집에서 기르는 기니피그에게 양보해서 안 그래도 뭔가를 꾹 참고 있는 데이지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하는, 드물게 무감각한 남자이긴 하지만

데이지가 무한정 애정을 표하는 남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갑작스런 암 재발 선고를 받고 그녀가 가장 먼저 그녀 사후의 일을 걱정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남편 잭인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암세포가 정상적인 데이지의 상식을 좀먹어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그녀의 오지랖은 좀 펼칠 자리를 잘못 선택한 것만 같다.

혼자 남게 될 남편 잭을 위해 아내를 찾아주겠다는 데이지.

 

<엽기적인 그녀>에서 견우가 떠나가는 그녀를 다른 남자에게 부탁하는 심정이 그러했을까.

잭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고 자신만큼, 아니 자신 이상으로 잭과 대화가 통하는 여자를 고르고 고르던 데이지 앞에 마침내 파멜라가 나타났을 때.

데이지의 반응은, 나의 상상을 뒤엎었다.

조용히 응원해주고 잭과 파멜라가 맺어지기는 것을 두손 두발 다 걷어붙이고 도와주러 나설 줄 알았는데...

 

자신이 수술하는 동안 남편이 곁에 있어주길 바라면서도, 곧 세상에서 사라질 자신 때문에 잭의 커리어가 완성되지 못할 것을 견딜 수 없어

"필요 없다,"며 딱 잘라 말하는 것으로 잭에게 상처를 입혀버린다.

어쩌면 서로간에 가장 이해와 공감이 오고 가야 할 때에,

독립적이고 이기적인 그 심성이 툭 튀어나와 관계를 해치고야 마는 것인지.

엇갈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의 감정이라지만

평생 싸우고 화해하면서 신뢰를 쌓아갈 시간이 남아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야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겨우 몇 달 뒤면 볼 수 없는 서로가 남아 있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고 자신들의 길을 고집하는 장면에서는 가만히 앉아 관조하는 입장인데도, 내 마음이 확확 달아올랐다.

 

죽음을 앞둔 데이지가 너무나도 이상적인 방향으로 남편의 아내를 찾아줄 리 없다.

암에 걸려 보지도 않은 내가 로맨스와 현실을 착각해서 해피엔딩을 꿈꾼 게 잘못이다.

현실은 그저 현실일 뿐.

아직 사랑할 시간이 많이 남은 젊은 이들의 안타까운 사랑에 눈멀어 제 2의 아내를 기도했다면, 나는 대책없는 낭만파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로서의 데이지와 그것을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잭이 있을 뿐이다.

눈물바람으로 책을 덮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끝낼 수 있었다.

인생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지만, 그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적절한 균형을 맞추어 가는 것이 현명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임을...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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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한시 - 사랑의 예외적 순간을 붙잡다
이우성 지음, 원주용 옮김, 미우 그림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로맨틱한....시 [로맨틱 한시]

 

 

 

 

절묘한 방점으로 인해 '로맨틱한 시 ' 로도, '로맨틱 한시' 로도 읽힌다.

 

한시라 하면,

 

한자로 된 시여서

왠지 한자에 정통하지 않으면

감히 범접하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먼저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기피하게 되곤 했다.

 

사대부나 근엄하게 수염 휘날리는 분들이

엄격한 격식에 맞춰 지은 시라

도무지 취향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머리만 아파오는

이른바, 공자왈 맹자왈

격의 시들은

내 정신건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로맨틱 한시라는 제목을 보자 하니

한시 중에서도 로맨틱 한 게 있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아~

가끔 가다

조선 후기에

기녀들이 썼다고 하는

애절한 사랑의 시가 몇 편 떠오르기는 했다.

그런데 그게 책 한 권으로 엮을 만큼

많았었나?

 

 

 

으흠...

 

사랑의 거의 모든 순간에 대한 기억들이

시가 되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제목만 봐도 알 수 있겠다.

 

 

 

누구나 떠올리는 아련하고 가슴 두근거리는 첫사랑에서부터

환희에 차 막 소리를 지르고 싶어지는 사랑의 기쁨

곧이어 찾아오는 변심

그리하여 원망이 깊어지고

결국은 이별에 이르는 과정을 겪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고야 마는 사랑의 슬픔

마지막으로

시간이 흘러흘러

곱씹어보는 사랑의 추억까지.

 

사랑의 7가지 빛깔이

한시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한시로 익히 알고 있었으면서

한시 자체의 음으로 외고 있었던 시들조차

새로운 한글 언어의 옷을 입자

완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고즈넉한 그림도 한 몫 했으며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담 또한

현대적 감성으로

한시를 이해하는 데

색다른 묘미를 더해주었다.

 

물론 시가 사람의 정을 노래하는 것이니만큼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는 것이

당연한데

유독 사랑의 감정을 담은 로맨틱한 한시들이

유교적이고 교훈적이며

전형적인 한시들에 가리워져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가

이번 [로맨틱 한시]를 만나

먼지를 떨궈내고

다시금 반짝반짝

빛나게 된 것 같다.

 

일본 잇큐 선사의 선시 중에

선을 추구한답시고

꽤 음란한 내용을 담은 것들이 있었는데 (선의 입장에서 보면 또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것들과 궤를 달리하는

오로지, 사랑의 감정, 그것에만

치중한 자연스런 감정의 발로가

고스란히 담긴 한시들이

잠시 잊고 살았던  내 안의 애틋한 마음을 소환한 듯하다.

 

황진이, 홍랑, 허난설헌 등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시인들이 전면에 나선 것도 흥미로웠고

그들과 애틋한 정을 나누었던

사대부들의

화답시 또한

새로웠다.

 

로맨틱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때

이제는 소리내어

한시를 읽어보자.

 

한자로도 좋고

한글로도 좋다.

 

방향성을 가지지 않고 떠돌던 마음들이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로맨틱 한시들의 일곱 가지 빛깔들 중

하나의 색깔에 속하기만 한다면

그 마음 둘 곳을 찾아

어여쁘게 채색해주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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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황금방울새 - 전2권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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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방울새]

 

 

찢어진 종이 사이로 살짝 보이는 황금방울새가 호기심을 자아낸다.

어떤 화가의 그림일까?

전체 모습은 어떨까?

황금방울새가 저렇게 모습을 숨기고 있으니 그 온전한 모습을 찾아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일단 책을 읽으면 황금방울새에 대한 설명이 어딘가에 나오겠지,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이른바 천재작가 라는 도나 타트가 전작에 이어 11년 만에 내놓은 어마어마한 작품이라는 설명과 함께 2014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해골을 든 소년'이라는 1장의 소제목에서 소년이 주인공일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호텔이라는 낯선 공간에 처박힌 소년이 느끼는 갑갑하고 엉망진창인 기분이 빽빽하게 나타나 있었다.

신비함과 기묘함을 겸비한 아름다운 엄마를 잃고나서 회상하는 소년은, 미술관 테러에서 살아남은 엄청난 아이였다.

소년 치고는 빼어난 통찰력을 지닌 탓인지 그날의 기억조차 너무나 생생하고 현장감이 넘쳐서 소년이 그려내는 모든 것은 꾹꾹 눌러쓴 연필 글씨가 뒷장까지 새겨지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들어와 박혔다.

 

소년은 마치 어제 일처럼 그 날의 일을 회상한다.

엄마와의 마지막 추억이 담겨 있는 미술관 전시회에서의 일.

전시회에서 제일 작고 제일 단순한 황금방울새 앞에서 엄마는 그 그림이 정말로 사랑한 첫 번째 그림이었다고 말한다.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황금방울새>

 

 

델프트 화재 때 화가는 죽었고 그의 작품 또한 대여섯 점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소년 시오의 엄마는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기라도 한 듯 황금방울새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자신이 그림과 사랑에 빠졌던 그 순간을 시오에게 조잘조잘 이야기하고, 이미 죽어 사라진 화가의 영원불멸함을 힘주어 말한다.

 

"파브리티우스는 혼자서 발견한 것을, 전에는 세상의 그 어떤 화가도, 렘브란트조차도 몰랐던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어."

"사람들은 죽어, 당연하지."엄마가 말했다. "하지만 물건이 사라지는 건 참 가슴이 아프고 불가피한 게 아니지 싶어.(...)내 생각엔 우리가 과거에서 뭔가를 구해내는 것 자체가 기적 같아."-43

 

 

지나치게 착 가라앉은 분위기로 시작해서 계속 이렇게 우울하면 어쩌나 하면서 주춤주춤 거렸었다.

하지만 정교하고 아름답게 수놓인 비단의 색이 좀 어둡다 하여 그 결을 느껴보고 싶은 유혹조차 물리쳐버릴 수 없는 것과 같이 머뭇머뭇, 그 유혹적인 비단의 자태를 감상하며 살짝 더듬어 보는 사이 이미 손바닥과 손끝은 그 황홀한 감촉 아래서 넓게 펼쳐진 비단을 바삐 오르내리고 있었다.

 

천천히 정교한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다 보니 소년 시오의 성장을 어느새 마음 속으로 응원하게 되었고 소년 시오가 우연히 손에 넣은 명화의 행방을 뒤쫓게 되었다.

상실과 집착, 운명이라는 주제를 오늘날 미국 사회의 면면들과 예술 시장의 뒷면 등 세밀한 리얼리티로 돌파해내는 작가의 저력이 느껴지는 소설이라고 했던가.

 

도나 타트가 빚어낸 황금비단의 결을 직접 느끼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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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리처드 브라우티건 스타일을 느끼자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어쩌다 에메랄드빛 푸른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광경에 정신을 빼앗겨 홀리듯이 책을 집어들었건만...

첫 번째 표제작 <잔디밭의 복수>에서부터, 이 책은 내가 이제껏 게으른 독서만 해온 것을 무지무지 반성하게 만들었다.

알 카폰에 버금가는 밀주 (특기는 '버본') 제조가인 할머니로부터 술술 풀려나온 이야기는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할어버지가 소유했던 잔디밭의 무시무시한 이력을 소개한다. 의붓할아버지 잭은 플로리다에서 물건을 팔던 이탈리아 사람인데 앞마당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해서 앞마당을 미워했다.

어느날 잭의 지갑에 숨어 있던 벌이 시가에 내려앉았다가 윗입술을 쏘자 잭은 반사적으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진해 잔디밭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또 한 번은 술지게미를 먹고 취한 거위떼들의 털을 벗겨놓고 할머니가 나간 사이 벌거벗은 거위들을 본 잭은 벌이 쏘인 때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시가를 찢어 던지다가 차 유리를 뚫어 상처를 입었다. 곧 제 2의 잔디밭 돌진이 이루어졌다.

능청맞은 이 이야기의 결말을 보라지.

 

내가 태어나서 처음 기억하는 것은 할머니 집 앞마당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1936년 혹은 1937년의 일로, 어떤 남자가, 아마도 잭 같은데, 배나무를 베어서는 9미터나 뻗어 있는 그 커다란 나무에 여러 갤런의 석유를 붓고 아직 녹색의 배가 달려 있는 채로 불을 당기는 장면이었다-18

 

푸른 바다에서 한가로운 여유를 즐기는 장면을 찾으려고 했건만 첫 번째 작품부터 잔디가 없는 울퉁불퉁하고 메마른 잔디밭에서 일어난 복수 장면이라니...

그것도 화자가 처한 현실의 이야기에서 한참 오래 전 할아버지 할머니 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 자체로만 즐기자면 한바탕 웃고 넘길 에피소드를 기발하게 엮어 놓은 것으로 읽고 넘어갈 수 있으나 뭔가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자면 좀 더 깊은 뜻이 있을 것만 같은데

내 가난한 독서로는 쉽사리 그 의미를 알아낼 수 없었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목가주의의 상징적 종말을 목격한 화자. 벌과 거위와 정신병원에 들어간 친할아버지는 자연과 전원의 상징이라고 한다.

뒷 부분의 작품 해설을 읽자 그제서야 전체 내용이 다시 한 번 눈에 들어온다.

첫 작품부터 이렇게 의미를 찾아나서야 하는 책이라면 이 책, 쉽사리 읽어낼 만한 만만한 책이 아닐 텐데, 하고 지레 겁부터 먹게 된다.

하지만 화자는 황폐한 현대문명, 기계와 자동차와 돈이 지배하는 세상과 대척점에 서 있는 자연을 슬쩍슬쩍 보여주긴 하지만 대놓고 으르렁대려 하지는 않는다.

큰 틀을 이해했다면 모두 62개나 되는 단편들을 관통하는 정서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잔디밭의 복수>를 읽은 뒤에는 같이 분노하거나 화내는 대신 '와하하' 웃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대면하더라도 거세게 비판의 목소리를 올리게 되지는 않는다.

그저 조용히 깨닫게 될 뿐.

그렇게 본다면 이 단편들에서 캘리포니아의 자연을 노래하는 서정적이면서도 시적인 면모를 영 찾아볼 수 없다고도 할 수 없겠다.

어떤 단편에서는 잠시 문명사회에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기 보다는 아름다운 언어에 푹 빠져 그 세계 속에 들어가 앉아 있게 되기도 한다.

 

캘리포니아가 그려 내는 환상에 이끌려 몽유병자처럼 무턱대고 걸어들어가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던 게지.

 

이상하게도 캘리포니아는 다른 모든 곳에서 사람들을 불러서는 예전의 삶을 잊어버리게 한다. 이곳의 에너지 자체가, 혹은 금속을 먹는 꽃의 그림자가 우리를 다른 삶으로부터 불러와 길거리 주차 미터기가 타지마할처럼 늘어선 캘리포니아의 주민으로 만든다.-34

 

생각지도 못했던 참신한 표현 덕에 잠시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되는 곳도 종종 등장한다.

 

계곡의 구비로 천천히 내려가노라면 발걸음마다 특이한 꽃들이 피어 있고, 드디어는 태평양이 나오며 그리스도가 살았을 때 카메라가 있었더라면 찍었을 사진 같은, 그러나 지금은 자기가 사진의 일부가 되는 드라마틱한 해변이 펼쳐진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진짜 거기에 있는지 자신을 꼬집어보아야 한다. -211

 

우리는 망각 사이의 캡슐 속을 걷고 있었다. 꽃들이 우리 주위에 조용히 만개해 있었다 꽃들은 마치 14세기의 이름 없는 프랑스 화가가 그린 것처럼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내 친구는 한참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아마도 우리의 혀가 그 화가의 붓에 합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12

 

시간은 클라크 게이블 영화를 볼 때 먹는 팝콘처럼 없어져갔다. -197

 

이제 완벽한 하루를 만들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노쇠한 소방차를 찾아 길을 건너게 해주는 것이었다.

"고맙네."관절염에 걸린, 노인 냄새가 나는 붉은 페인트, 백발로 뒤덮인 사다리, 사이렌 스피커 위의 약한 백내장 같은 경광등-204

 

바로 그 때 비눗방울 하나가 30번 스톡턴 버스에 치였다. 퍽! 신이 오른 트럼펫과 위대한 콘체르토가 충돌하듯 방울은 부서져 사라졌다. 그리고 상징적으로 다른 거품들이 어떻게 위대한 스타일로 사라지는가를 보여주었다. -205

 

비눗방울들은 각기 위대한 스타일로 부서져 사라졌지만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스타일은 사라지지 않았다.

상큼한 해변과 보석같이 반짝이는 물결, 훈훈하게 귓가에 스치는 바람,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를 그려보며 휴식을 취하고픈 마음에 완벽하게 흡족하도록 들어맞는 단편들은 아니었을지라도, 그의 새로운 스타일을 느끼며 현대문명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도 괜찮았다.

수도관의 배관을 시에 비유하고 노인을 소방차에 빗대는 자유로운 상상력이 시대를 통찰하는 혜안을 만나 멋들어진 단편들로 탄생했다.

 

아.

첫 번째 <잔디밭의 복수>를 읽고 이 책을 덮지 않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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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29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우티건의 신작이 나왔군요. 여름휴가로 피서지에 갈 때 읽으면 좋겠어요. 표지가 시원스러워서 마음에 듭니다. ^^

남희돌이 2015-06-30 15:21   좋아요 0 | URL
저도 표지가 무지 마음에 들었어요. 휴가 떠나고 싶어질 만큼~~아름답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