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방울새]

찢어진 종이 사이로 살짝 보이는 황금방울새가 호기심을 자아낸다.
어떤 화가의 그림일까?
전체 모습은 어떨까?
황금방울새가 저렇게 모습을 숨기고 있으니 그 온전한 모습을 찾아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일단 책을 읽으면 황금방울새에 대한 설명이 어딘가에 나오겠지,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이른바 천재작가 라는 도나 타트가 전작에 이어 11년 만에 내놓은 어마어마한 작품이라는 설명과 함께 2014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해골을 든 소년'이라는 1장의 소제목에서 소년이 주인공일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호텔이라는 낯선 공간에 처박힌 소년이 느끼는 갑갑하고 엉망진창인 기분이 빽빽하게 나타나 있었다.
신비함과 기묘함을 겸비한 아름다운 엄마를 잃고나서 회상하는 소년은, 미술관 테러에서 살아남은 엄청난 아이였다.
소년 치고는 빼어난 통찰력을 지닌 탓인지 그날의 기억조차 너무나 생생하고 현장감이 넘쳐서 소년이 그려내는 모든 것은 꾹꾹 눌러쓴 연필
글씨가 뒷장까지 새겨지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들어와 박혔다.
소년은 마치 어제 일처럼 그 날의 일을 회상한다.
엄마와의 마지막 추억이 담겨 있는 미술관 전시회에서의 일.
전시회에서 제일 작고 제일 단순한 황금방울새 앞에서 엄마는 그 그림이 정말로 사랑한 첫 번째 그림이었다고 말한다.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황금방울새>
델프트 화재 때 화가는 죽었고 그의 작품 또한 대여섯 점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소년 시오의 엄마는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기라도 한 듯 황금방울새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자신이 그림과 사랑에 빠졌던 그 순간을
시오에게 조잘조잘 이야기하고, 이미 죽어 사라진 화가의 영원불멸함을 힘주어 말한다.
"파브리티우스는 혼자서 발견한 것을, 전에는 세상의 그 어떤 화가도, 렘브란트조차도 몰랐던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어."
"사람들은 죽어, 당연하지."엄마가 말했다. "하지만 물건이 사라지는 건 참 가슴이 아프고 불가피한 게 아니지 싶어.(...)내 생각엔
우리가 과거에서 뭔가를 구해내는 것 자체가 기적 같아."-43
지나치게 착 가라앉은 분위기로 시작해서 계속 이렇게 우울하면 어쩌나 하면서 주춤주춤 거렸었다.
하지만 정교하고 아름답게 수놓인 비단의 색이 좀 어둡다 하여 그 결을 느껴보고 싶은 유혹조차 물리쳐버릴 수 없는 것과 같이 머뭇머뭇, 그
유혹적인 비단의 자태를 감상하며 살짝 더듬어 보는 사이 이미 손바닥과 손끝은 그 황홀한 감촉 아래서 넓게 펼쳐진 비단을 바삐 오르내리고 있었다.
천천히 정교한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다 보니 소년 시오의 성장을 어느새 마음 속으로 응원하게 되었고 소년 시오가 우연히 손에 넣은 명화의
행방을 뒤쫓게 되었다.
상실과 집착, 운명이라는 주제를 오늘날 미국 사회의 면면들과 예술 시장의 뒷면 등 세밀한 리얼리티로 돌파해내는 작가의 저력이 느껴지는
소설이라고 했던가.
도나 타트가 빚어낸 황금비단의 결을 직접 느끼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