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고양이들
짐 튜스 지음, 엘렌 심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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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고양이 속마음 인터뷰[뉴욕의 고양이들]

 

 

고양이는 참 알 수 없는 존재죠.

고양이를 키우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그 눈을 보며 '녀석, 참 묘하네.' 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답니다.

한자로 고양이 "묘"를 쓴다는 것에서부터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묘하다'는 말과 어쩜 그리 잘 어울리는지.

고양이 눈동자를 보면 낮에는 눈동자 조리개가 좁아져 옆으로 세운 동전같이 일자로 변하죠.

밤이 되어 어둑어둑해지면 다시 동그래지곤 하는 고양이 눈을 보며,

쟤들은 마술같이 눈동자를 줄였다, 늘였다 하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했답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방송작가인 작가 짐 튜스가 고양이 117마리를 찾아가 인터뷰를 했네요.

 

"이봐, 날 좀 찍어 봐. 몇 가지 좀 물어 보고. 그런 뒤에 내 사진이랑 인터뷰한 걸 홈페이지에 올리는 거야. 그걸로 책도 낼 수 있지 않을까?"

부탁하는 고양이는 고사하고 말하는 고양이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마침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양이의 말을 따랐다.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 책이 탄생한 과정을 거짓말처럼, 유머처럼 툭 던져놓았네요.

고양이를 사랑하고 키우는 집사라면 이런 상황을 이해하겠죠?

눈빛만 봐도 알아차리는 단계에 이르면 이렇게 막 고양이와 대화하고 그러는 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나요?^^

훗.

어쨌든,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는 않지만 지나가는 길고양이에게 "야옹~"하고 한 마디 말 걸어줄 정도의 열린 마음을 소유하고 있는 저로서는

다양한 표정으로 말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고양이 사진들을 봐도 흐뭇해지는군요.

독특한 유머로 고양이들의 마음을 독심술이라도 펼치듯 읽어내는 작가 덕분에

재미있는 상황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매혹적이고 자부심 강한 뉴욕 거주묘들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듯한 표현에

웃음도 슬쩍 나구요.

글과 사진을 함께 보면 이 이상 잘 어우러질 수가 없어서 그 재미에

한 두 마리 구경한다는 게 어느새 끝까지 읽어내게 됩니다.

 

대개는 시크하고 도도하고 무표정한 표정으로 보이는데, 음...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는 걸까요?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는 고양이들이 꽤 많네요.

 

 

미드타운에 사는 트립이라고 해요.

사람들이 사는 집을 뻔뻔하게 점령해버렸군요.

아주 당당한 표정이 맘에 듭니다.

'이봐, 집사~. 이 정도는 참아줄 수 있지?' 하는 듯이요.

 

 

표정으로 말하고 있네요.

"싫다." 라고요.

잘 가지고 놀다가 금세 심드렁해져서는 본 체 만 체 흥, 하는 모양이...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에게 삐진 짝꿍 같아요.

새침하고 도도하기 이를 데 없네요.

 

 

5년간 함께 살아왔다는 사르트르와 시몬.

어쩜 이름도 이렇게 잘 갖다붙였을까요?

이들이 싸워서 말 안하는 이유...

정말 고양이스럽습니다.

"내가 모래 화장실 밖에 똥을 싸고는  

걔가 대신 혼나게 했거든."

사뭇 철학적인 커플의 이름답지 않게

현실적인 걸로 싸웠네요. ^^

 

 

요즘 나온 책, <미스터 보쟁글스>를 읽으려는 참인데 고양이 이름이 "미스터 보쟁글스"네요.

보쟁글스다운 성격이 있어서일까요? 주인의 취향일까요?

 

자신이 신세대 고양이라며 사람처럼 말하는 게

좀 건방져 보이기도...

 

이 책을 읽고 나면, 고양이를 좀 더 오래 쳐다보게 될 것 같아요.

쟤는 나한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나? 알아내려고요.

사람과 동물의 교감이 이루어낸 멋진 책이네요.

고양이 집사라면, 너무나 공감하고 좋아할 만한 책이지요.

'우리 집 고양이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고양이들에게도 비밀이 필요하다, 아니다 로 투표를 하고 싶어지는 책이기도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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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13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
 
피시볼
브래들리 소머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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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 속 인생, 물고기의 눈으로 바라보다 [피시볼]

 

독특한 구성의 책을 만났다.

바야흐로 아파트 27층의 어항 속에서 자유를 갈구하며 탈출한 물고기 이언의 눈에 비친 "세빌 온 록시"라는 네모난 상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무 생각도 없고, 기억도 오래 가지 않는 물고기는 그저 자신이 지금 자유낙하 중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데 집중을 하고 있는 사이, 세빌 온 록시의 사람들은 각자의 생활을 살고 있을 뿐이다.

4초 남짓한 사이 가속도의 힘에 의해 좀 있으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바닥에 철퍼덕 떨어져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는 물고기 이언과 여전히 복닥복닥, 지지리 궁상맞기까지 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명료하게 대비되어 보인다.

물고기 이언은, 그래,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가치관을 지닌 채 살아가는 사람과는 명확히 다르다.

 

 

이언은 딱히 자기성찰을 하거나 우울했던 적이 없다. 깊이 생각하거나 한탄하는 건 그의 천성에 맞지 않는다.-18

 

생각이 없다는 게 축복일 수 있다는 점. 이언이 물고기라서 다행이다.

 

"그런데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어, 숨을 못 쉬겠어. 젠장, 지금 고층건물에서 떨어지고 있잖아! 그런데....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어......"-19

 

1976년에 지어진 세빌 온 록시는 공동주택이자 고밀도 고층 건물이다. 지하 주차장과 빨래방이 갖춰져 있는 방 한 칸짜리 임대 아파트. 이 곳의 각 칸들안에는 온갖 경험이 뒤죽박죽으로 엉켜 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인 이 곳을 물고기 이언의 눈으로 본다는 독특한 설정만으로도 이야기는 탄력을 받는다. 저자는 머리가 좋지 않아서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을 통찰하지는 못하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풍경이 훨씬 경이로워질 수 있다며 물고기 이언의 눈으로 관찰하는 데 대한 이유를 댄다. 인간들을 한데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로서 물고기를 택한 이유? 물고기의 지적 능력으로는 시간과 공간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란다.

그리하여, 바람둥이 코너 래들리가 진실한 사랑의 불가능성과 확실성을 발견하는 순간도

아파트 관리인 히메네스가 불난 엘리베이터를 고치고, 물이 새는 싱크대를 고치다 가스가 남장여자로서의 용기있는 첫발을 내딛는 순간을 함께하는 것도,

피튜니아 딜라일라가 혼자 아이를 낳는 순간에 기적적으로 은둔형 외톨이 클레어와 홈스쿨링을 하는 허먼의 도움을 얻는 것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이어질 수 있었다.

 

물고기 이언의 눈으로 잠깐 들여다 본 '세빌 온 록시'라는 상자 속 이야기들은 그대로 우리네 삶의 이야기들이다. 물고기 이언은 단 몇 초 동안의 눈의 깜박임 속에 이 모든 혼란스러운 상황을 다 담았지만 금세 망각해버린다. 자신의 앞일도 알지 못하는데, 상자 속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 무엇하나.

세빌 온 록시라는 상자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경험은 상자만의 공기로 축적된 채 그저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무한한 시간과 공간의 흐름 안에서 그저 찰나의 깜빡임과도 같은 것일 뿐.

작가는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는 식으로 불교의 선과 같은 맥락을 전달하려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의 애달픈 달콤함, 가슴 찢어지는 증오, 음란한 육욕, 가족을 잃은 슬픔, 머릿속에 떠올랐던 온갖 생각, 입 밖으로 내거나 속으로 삼킨 모든 말, 탄생의 기쁨과 죽음의 슬픔,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이 이 하나의 통 안에서 경험될 것이다.-10

 

비록 남의 인생이나마 한바탕 들썩이는 소동처럼 요란하게 치러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이언처럼 그저 상관없는 일이려니 하고 넘기면 될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만약 저런 상태에 놓여 있다면, 하고 감정을 이입해보려는 "나"가 불쑥 고개를 들기도 한다.

물고기 이언이 될 것인가, 상자 속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일희일비할 것인가는 읽는 이의 선택이다.

다만, 인생에 이미 통달해버린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후자의 입장에서 책을 읽게 될 것이다.

한 번 웃고 말 일이 될지, 시크한 썩은 미소를 날리며 코웃음을 치게 될지는 각자의 경험이 좌우한다.

다같이 어우려져 사는 세상. 마음의 문을 닫아걸지는 말고 웬만하면 밝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슬금 슬금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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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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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기가 아쉬워.[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지금의 계절에 딱 어울리는 책이 아닌가, 싶다.

가끔 선선한 바람이 목덜미를 간지럽히며 불타는 지옥불 같던 그 여름의 맹위를 서서히 잊게 만드는 이 계절.

다시는 여름을 떠올리기도 싫다, 하며 여름 내 찾아대던 부채마저도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말지만 기억 속에서 여름은 어느새 또 찬란한 햇빛 아래 부서지는 탱글탱글한 물방울과 선연한 초록이 뿜어내는 아찔한 숲속내음이 담긴 선물상자가 되어 리본 아래 고이 모셔진다.

지글지글 , 치익~ 한낮의 포장도로 위에다 날달걀 하나 탁 떨어뜨리면 그대로 노른자를 잘 살린 "프라이"가 멋지게 완성되겠다,는 농담이 진실이 될 것도 같았던 여름은 가을의 문턱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각각의 계절은 그렇게도 자신들의 존재 당위성을 뿜어내며 해마다 때가 되면 찾아오곤 한다.

그 중에서도 "여름"은, 그래, 여름이 진짜 커튼 뒤로 사라져버리기 전에 이렇게 아스라한 추억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한 번 더 곱씹어줘야 제맛이다.

 

마쓰이에 마사시는 늦깎이로 데뷔한 작가라지만 그의 작품 속 문장은 너무나 아름답게 정련되어 있다.

평소 무심코 지나가곤 했던 건축 뿐만 아니라 자연이라든지 음식, 식물 , 곤충 , 새 등에 관한 문장이 나타나면 어디서 그런 찰나의 순간들을 잘도 잡아내어 쓴 것일까, 가 궁금해져서 문장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게 된다.

<설국>의 유명한 첫문장-“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민음사 본)이 한순간에 읽는 이를 겨울로 데려간다면,

이 작품은 읽는 이를 내내 여름에 머물게 만든다.

사실은 여름의 뜨거움이 우리를 한숨짓게 하고 땀을 훔치게 만들지만 그 치열함이 우리 정신의 소중한 것을 달구었다가 고갱이를 쏙 뽑아내고야 만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닌지.

여름이라는 계절은 인생의 한 고비 중에서도 "청춘"에 비견하게 되고야 만다.

 

갓 대학의 건축학과를 졸업한 청년 사카니시 도오루는 자신이 존경하던 건축가 무라이 슌스케의 설계 사무소에 운좋게 채용된다. 칠십대 중반의 스승은 더이상 제자를 들이지 않지만 때마침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에 참여하기 위해 인원을 채우려던 참이었던 것이다. 아마 주인공의 자기소개서와 졸업 작품, 그리고 면접 등을 통해 테스트한 그의 사람됨이 합격점이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여름이면 건축설계소 사무실은 가루이자와의 여름 별장으로 옮겨간다.

화산 활동이 이어지고 있는 화산 기슭의 여름 별장 생활 이야기가 참으로 마음을 끈다.

늙은 스승과 여러 선배들과 아직 신참인 도오루, 거기에 마리코와 유키코들의 사소하면서도 잔잔한 일상이 별 것 없어 보이게 흘러가지만 건축하는 사람들 특유의 멋스러움이 곳곳에서 베어나온다.

 

선생님이 만드는 공간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것으로 느껴진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선생님은 외부에는 거의 얘기하지 않았지만 우리 직원에게는 도면을 가리키면서, 또 설계실 벽이나 천장을 올려다보고 벽에 대나무 자를 갖다대기도 하고, 때로는 장지문이나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해보이면서, 정서적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형태로 전달하려고 했다.

"침실은 너무 넓지 않은 편이 좋아. 천장까지의 공간이 너무 넓으면 유령이 떠돌 여지가 생기거든."-20

 

"겨울 풍경 속을 덜커덩 덜커덩 달려서 저 아래 세계가 점점 멀어지는 것은 뭔가 저세상으로 향하는 것 같아 쓸쓸하지. 그런데 선생님은 그렇게 빙글빙글 한가하게 돌아가는 것이 참 좋다고 아주 진지하게 말씀하시거든."-32

 

외국의 유명 건축가에게서 사사받았지만 일본 전통의 기본을 고수하고 있는 노스승의 건축 철학이 차분한 대화 속에 깊은 울림을 내며 전해진다. 그런 스승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건축사무소의 설계에까지 녹여내는 제자들의 이해도 완벽하다.

이들이 마음을 모아 국립현대미술관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흥미진진하다.

스웨덴의 아스플룬드라는 건축가가 만들었다는 '숲의 묘지' 이야기가 꽤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걸 보면

아마도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건축이 완성되지 않을까, 싶었다.

 

 

 

 소나무 숲이 차지하고 있는 광활한 황무지를 화장터, 예배당을 포함하는 공동묘지로 조성하는 프로젝트는 건축 뿐 아니라, 풍경 디자인을 포함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169

 

 

 

 

스웨덴 스톡홀름의 도서관

 

국립현대도서관 경합에 응모할 설계를 마치고 각층의 책장, 열람대, 의자의 배치와 사람들의 미니어처 인형까지 제작한 단계에서 스승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만다.

결국 프로젝트는 다른 사무소에 넘어가고 이들이 여름내 별장에서 동고동락하며 만들어냈던 결과물인 건축모형은 여름 별장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남겨진다.

 

건축은 준공되고 나서 비로소 생명이 부여된다.

선생님의 국립현대도서관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래도 흘러, 지나간 세월은 이 모형에 사소한 숨결조차 부여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 플랜의 가치가 훼손된 것은 아니다. 선생님 플랜에 생명이 불어넣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모형 앞에서 잠시 망연자실한 채 서서, 나는 내 안에서 무언가가 억누를 수 없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415

 

사소한 디테일이 모여 철학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음식도, 난간의 장식도, 문고리 하나도, 의자의 둥그스름한 마감도...

화산 기슭, 여름 별장에서 청춘을 바쳐 무언가를 이루고자 했던 이들은

스승의 목숨이 스러져가는 것을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과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날에 대한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 하리라는 것을 배웠다.

이루어지지 못하고 모형으로 남은 건축은

생명을 불어넣을 이의 의지만 있으면 언젠가는 부활하리라.

아름답고 찬란했던 여름 별장에서의 나날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수는 없다는 걸 알지만

새들의 울음소리로 새의 이름을 맞힐 수 있을 만큼 자연과 동화된 그 여름날이

스러져 가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책장을 덮기가...

아쉽다.

 빨간 숯의 열기가,

끼이, 하는 쇠딱따구리의 소리가,

안쪽 미닫이문을 닫고 버팀목을 거는 덜컹덜컹 하는 소리의 울림이,

명아주 나물과 붉은 차조기를 잔뜩 올린 소면과 여름 채소, 두부 샐러드가,

매미 소리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뒷마당이.

사각사각 스테들러 연필을 깎는 소리가...

자꾸만 자꾸만 뒤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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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대신 세계일주 - 대한민국 미친 고3, 702일간 세계를 떠돌다
박웅 지음 / 상상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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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 안될안,자기 확신의 생[수능대신 세계일주]

 

 

 

황경신의 에세이 [초콜릿 우체국]을 읽다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던 "곰스크로 가는 기차"라는 단편을 만났다.

"곰스크"라는 이상향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남자와 현실에 정착하고 싶어하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떠나고 싶어하지만 기찻값이 없어서, 아내가 임신해서, 교사로 일하게 되어서...자꾸만 주저앉는 남자는 끝내 "곰스크"로 떠나지 못하지만 가슴 속으로는 항상 "곰스크"를 바라고 바란다.

 

황경신은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차에서 내리지 않았으면 곰스크로 갈 수 있었을까?"

"모르겠어. 인생에는 어차피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는 거니까.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소중하고 가치가 있지 않을까?"-36

 

오래 전에 읽었던 이 이야기가 마음속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다가 가끔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치 아무런 위험도 없어 보이는 사화산이 갑자기 폭발하듯이. 그럴 때면 불에 덴 듯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곰스크, 라고 말하게 된다는..고백으로 마무리지어져 있었지만 이 부분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걸어들어와서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를 그 곳, 곰스크를 자꾸만 되뇌게 된다.

 

대한민국 미친 고 3, 702일간 세계를 떠돌다 돌아온 박웅은 그 "곰스크"를 다녀왔노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두 권의 책을 들고 떠나 두 권의 책을 들고 돌아왔다는 그였는데, 그 중의 한 권이 바로 [곰스크로 가는 기차]였다. 세계일주라는 이상향, 자신만의 곰스크를 정복한 그에게는 곰스크란 노력 끝에 갈 수 있는 세상일 뿐. 정말 진정으로 이상향을 원했다면 어떻게든 갔겠지, 라고 말하는 그에게선 뿌듯함과 함께 성취한 자의 당당함이 묻어난다. 거기서 끝냈다면 어쩌면 오만한 놈, 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터였다.

넓은 세상을 남들보다 빨리 경험하고 자신의 선택을 관철한 사람답게 그는 한 발짝 물러날 줄도 알고 여유롭게 포용할 줄도 안다.

 

이제 나의 곰스크는 어디가 될 것인가. 곰스크는 도착했다고 사라지는 곳이 아니다. 끊임없이 먼발치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그렇게 다시, 나는 곰스크로 갈 것이다. -191

 

금수저는 아니고, 그저 이해심 많은 중산층 부모님 아래 자라 자유롭게 세상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라는 그는, 남들처럼 사는데 그냥 좀 또라이처럼 튀어본 거라 말한다.

화끈하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남들 눈치 안 보는 상남자다.

영화 평론가가 되고 싶어 씨네21에 보낼 평론을 들고 우체국을 찾았던 소년은 졸업도 전에 한국을 떠나 2년간 세계를 떠돌았다. "그래서 이제 뭐 할 건데?"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중인 그는, 아주 오래 살아 생을 달관한 사람처럼 올라가는 와중에 내려갈 일을 염려하고, 내려가는 와중에는 다시 위로 올라갈 일을 생각한다고 했다.

아주 영리한 친구다.

22살의 이 청년은 아직까지는 제법 마음대로 사는 중이라며 어차피 먹고 살기 힘든 삶이라면 마음대로 사는 편을 택하겠다고 한다.

결정하고 책임 지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삶의 진리를 터득한 바에야 속시원하게 이렇게 소리친다.

할 수 있다라기 보다는 해낼 것이다 라고 주문을 걸며 나아가다보면 정말로 거기에 닿을 수 있다고.

될 놈과 안 될 놈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바로 '자기 확신' 이라고.

 

 

 

인생의 화양연화를 지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를 스물 한 두 살에 걸친 이 남자는

유럽은 지방색이 굉장히 강하다,

뉴질랜드와 호주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사이고 좋은 이웃 나라일 것이다,

삼성은 월드 플레이어다,

선진국의 물가는 신뢰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문제는 쉽게 논할 수 없는 문제다

같은 사실을 직접 배우고 느꼈다.

 

 

여행을 통해 성장해가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기 확신이 이렇게 확실한 사람이라면, 대학의 어느 강의실에서 얻은 지식보다도 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혜를 얻은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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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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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야 한다, 진실의 부스러기[바퀴벌레]

 

 

표지는 역시 비채의 한국판이 가장 예쁘다.

 

<해리 홀레 시리즈>의 서막인 [박쥐]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출현했던 해리 홀레가 2편 [바퀴벌레]에서는 방콕을 선택했다.

고요함과 신성한 사원을 방콕의 상징으로 떠올렸다면, 이제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방콕 이곳저곳을 누비는 해리 홀레와 함께 미처 그려보지 못했던 방콕의 민낯을 맞닥뜨려보기를...

요 네스뵈는 노르웨이 대사 중 한 명이 방콕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실은 아주 불가사의한 정황에서 살해당했다는 소문을 소재 삼아 [바퀴벌레]를 썼다고 했다.

소문보다 훨씬 더 기묘한 현실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도무지 적응될 것 같지 않은 요즘의 이 찜통더위가 방콕에서는 일상이라면 서슴없이 방콕 여행을 택할 수 있겠는가? 방콕에서는 에어컨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연신 얼음이 가득 담긴 음료를 입에 달고 있어야 겨우 그 후끈한 열기를 참아낼 수 있을 터이다. 기록적인 폭염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 때에 방콕에 발을 내딛은 해리 홀레가 쏟아내는 방콕의 날씨에 대한 푸념이 절로 이해된다.

 

몬순이, 비가 간절했다. 그러다 홍수가 나고 길바닥이 진창이 되고 빨래에 곰팡이가 피면 이내 다시 건조하고 바람 한 점 없는 계절을 그리워하겠지만. -17

 

끈적거리고 습하고 찌는 듯이 더운 방콕, 그 곳에 해리 홀레는 왜 왔던가?

여동생 쇠스의 성폭행범을 찾는 수사에 몰두할 시간을 벌고 조력을 요청하고자...덥석 이 사건을 맡은 것이다.

여동생에게 일어난 불행한 사건,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은 해리 홀레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짐빔에 찌들어 살게 했다. 이제는 자신을 일으켜세워야 할 때임을 자각한 듯, 맥주 외에는 술을 입에 대지 않으려 하는 해리 홀레가 오히려 안쓰러워보인다. 소중한 사람들을 잠시 가슴 속에 묻어두고 해리 홀레는 방콕으로 향했다.

태국 주재 노르웨이 대사가 사창가에서 칼에 찔린 채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해리는 방콕 현지 경찰과 노르웨이 경관을 합쳐 다섯 명의 인원으로 수사팀을 꾸리고 사건을 수사해 나간다. 강렬한 인상의 대머리 여경위 리즈와 냉소적인 교사 스타일의 랑산은 생각보다 해리와 합을 잘 맞춰나간다.

우선 대사의 등에 찔린 특이한 모양의 칼을 조사하고 사창가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대사의 성적 취향을 파악한 뒤 특히 소아성애자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해나간다.

하지만 대사의 가족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대사의 취향은 소아성애가 아니라 동성애였음이 밝혀진다.

모두의 묵과하에 대사의 아내는 옌스 브레케라는 통화거래인을 애인으로 두고 있었다는 사실도.

노르웨이의 경찰청과 외무부에서는 이 사건의 진상을 덮고 입맛에 맛는 줄거리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글 동안 해리 홀레를 파견한 것이었다. 총리의 친구였던 노르웨이 대사가 사창가에서 현행범으로 발견된 사실,거기다 살해된채라는 것이 밝혀지면 총리의 신뢰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진실을 당분간 덮어두려는 의도였다.

우리의 해리는 누군가 교묘하게 놓아둔 덫에 보기좋게 걸려들면서 사건의 진짜 범인을 오히려 보호하고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기에 이른다.

다해히 해리는 자신보다 먼저 범인을 알아챈 이바르 뢰켄이라는 늙은 정보 장교의 조력을 얻어 넘어지고 엎어지면서 험하고도 험하게 범인에게 다가간다.

 

바퀴벌레는 누가 다가오는 진동을 듣고 숨어버려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눈에 띄면 적어도 열 마리가 숨어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어디에나 있다는 뜻이었다. -113

 

요 네스뵈가 언뜻언뜻 흘려놓은 진실의 부스러기를 눈여겨 본다고 했지만 엉뚱한 쪽을 열심히 찔러 대는 해리 홀레를 따라다니다 보니 진짜 범인이 자신의 자취를 드러내고 있어도 그 쪽을 쳐다볼 생각을 못했다.

방콕의 음습한 뒷골목에 흘러넘치는 폭력, 마약, 악취의 기운에 어느새 감염된 노르웨이인의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아동학대를 일삼았던 방콕 최대의 거부였던 클리프라도 그렇고 오로지 돈과 관련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인과 사기를 일삼았던 범인도 그렇다.

숨어서 바스락거리는 바퀴벌레 같은 진범은 양심의 가책 없이 대사의 딸마저 죽이고 만다.

잔인함이 극에 달한 범인은 마지막 회합을 꾀하던 해리 홀레 무리 중에서 먼저 이바르 뢰켄이라는 늙은 정보 장교를 주저앉히고 비밀장소를 찾아 해리마저 없애려 한다.

 

마침내 범인의 정체를 눈치챈 해리 홀레와 범인의 마지막 대결이 볼 만하다.

인간이 견딜 수 있을 만큼의 폭력은 어디까지인지 실험이라도 하는 양, 도발하는 말투와 최후의 일격들이 난무한다. '제발, 조금만 더 견뎌요...'어쩔 수 없이 두 손을 꼭 쥐고 해리 홀레가 견뎌주기를 기원하게 된다.

언제나 극한 상황까지 내몰리고 나서야 사건이 종료되고 해리 홀레는 결국 부활하고야 만다는 것이 이 시리즈의 뻔하고 뻔한 스토리이지만

읽을 때마다 온몸에 힘을 들여 긴장하고 해리 홀레의 무사함에 안도하게 되는 것은 왜, 때문일까?

 

 

 

"아저씨는 오래 살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주 오래. 저보다도 더 오래."

"그런 소리 마. 그럼 불운한 일이지."

"영원히 살고 싶지 않아요?"

해리는 눈을 깜빡거리면서 그의 뇌가 그 순간 거기서, 사람들이 양쪽에서 분주히 오가고 번쩍이는 바다뱀이 발밑으로 지나가는 육교 위에서 그들의 스냅사진을 찍은 것을 알았다. 

순간 얼굴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망고 소나기예요. 가끔 와요. 망고가 익었다는 뜻이에요. 좀 있으면 퍼부을 거에요. 어서 가요..."-182 

 

힘든 일을 겨우 겨우 버텨내고 있는 해리 홀레에게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먼 훗날 세월이 흘러도 들춰볼 수 있을 만한 장면이 좀 더 많이 남아

그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생채기가 많이 난 해리 홀레의 내면은 이렇게 또 상처나고 아물어가는가보다.

 

 

해리 홀레의 시리즈는 이렇게 또 계속된다.

 

해리 홀레 시리즈 중 <레오파드>를 아직 못 모았다.

마지막 줄의 <아들>, <블러드 온 스노우>, <미드나잇 선>은 해리 홀레 시리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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