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놈될 안될안,자기 확신의 생[수능대신 세계일주]

황경신의 에세이 [초콜릿 우체국]을 읽다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던 "곰스크로 가는 기차"라는 단편을 만났다.
"곰스크"라는 이상향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남자와 현실에 정착하고 싶어하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떠나고 싶어하지만 기찻값이 없어서, 아내가 임신해서, 교사로 일하게 되어서...자꾸만 주저앉는 남자는 끝내 "곰스크"로 떠나지
못하지만 가슴 속으로는 항상 "곰스크"를 바라고 바란다.
황경신은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차에서 내리지 않았으면 곰스크로 갈 수 있었을까?"
"모르겠어. 인생에는 어차피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는 거니까.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소중하고 가치가 있지 않을까?"-36
오래 전에 읽었던 이 이야기가 마음속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다가 가끔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치 아무런
위험도 없어 보이는 사화산이 갑자기 폭발하듯이. 그럴 때면 불에 덴 듯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곰스크, 라고 말하게
된다는..고백으로 마무리지어져 있었지만 이 부분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걸어들어와서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를 그 곳, 곰스크를 자꾸만
되뇌게 된다.
대한민국 미친 고 3, 702일간 세계를 떠돌다 돌아온 박웅은 그 "곰스크"를 다녀왔노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두 권의 책을 들고 떠나 두 권의 책을 들고 돌아왔다는 그였는데, 그 중의 한 권이 바로 [곰스크로 가는 기차]였다. 세계일주라는 이상향,
자신만의 곰스크를 정복한 그에게는 곰스크란 노력 끝에 갈 수 있는 세상일 뿐. 정말 진정으로 이상향을 원했다면 어떻게든 갔겠지, 라고 말하는
그에게선 뿌듯함과 함께 성취한 자의 당당함이 묻어난다. 거기서 끝냈다면 어쩌면 오만한 놈, 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터였다.
넓은 세상을 남들보다 빨리 경험하고 자신의 선택을 관철한 사람답게 그는 한 발짝 물러날 줄도 알고 여유롭게 포용할 줄도 안다.
이제 나의 곰스크는 어디가 될 것인가. 곰스크는 도착했다고 사라지는 곳이 아니다. 끊임없이 먼발치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그렇게 다시,
나는 곰스크로 갈 것이다. -191
금수저는 아니고, 그저 이해심 많은 중산층 부모님 아래 자라 자유롭게 세상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라는 그는, 남들처럼 사는데 그냥
좀 또라이처럼 튀어본 거라 말한다.
화끈하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남들 눈치 안 보는 상남자다.
영화 평론가가 되고 싶어 씨네21에 보낼 평론을 들고 우체국을 찾았던 소년은 졸업도 전에 한국을 떠나 2년간 세계를 떠돌았다. "그래서
이제 뭐 할 건데?"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중인 그는, 아주 오래 살아 생을 달관한 사람처럼 올라가는 와중에 내려갈 일을 염려하고, 내려가는
와중에는 다시 위로 올라갈 일을 생각한다고 했다.
아주 영리한 친구다.
22살의 이 청년은 아직까지는 제법 마음대로 사는 중이라며 어차피 먹고 살기 힘든 삶이라면 마음대로 사는 편을 택하겠다고 한다.
결정하고 책임 지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삶의 진리를 터득한 바에야 속시원하게 이렇게 소리친다.
할 수 있다라기 보다는 해낼 것이다 라고 주문을 걸며 나아가다보면 정말로 거기에 닿을 수 있다고.
될 놈과 안 될 놈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바로 '자기 확신' 이라고.

인생의 화양연화를 지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를 스물 한 두 살에 걸친 이 남자는
유럽은 지방색이 굉장히 강하다,
뉴질랜드와 호주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사이고 좋은 이웃 나라일 것이다,
삼성은 월드 플레이어다,
선진국의 물가는 신뢰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문제는 쉽게 논할 수 없는 문제다
같은 사실을 직접 배우고 느꼈다.

여행을 통해 성장해가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기 확신이 이렇게 확실한 사람이라면, 대학의 어느 강의실에서 얻은 지식보다도 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혜를 얻은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