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야 한다, 진실의 부스러기[바퀴벌레]


표지는 역시 비채의 한국판이 가장 예쁘다.
<해리 홀레 시리즈>의 서막인 [박쥐]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출현했던 해리 홀레가 2편 [바퀴벌레]에서는 방콕을 선택했다.
고요함과 신성한 사원을 방콕의 상징으로 떠올렸다면, 이제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방콕 이곳저곳을 누비는 해리 홀레와 함께 미처 그려보지
못했던 방콕의 민낯을 맞닥뜨려보기를...
요 네스뵈는 노르웨이 대사 중 한 명이 방콕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실은 아주 불가사의한 정황에서 살해당했다는 소문을 소재 삼아
[바퀴벌레]를 썼다고 했다.
소문보다 훨씬 더 기묘한 현실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도무지 적응될 것 같지 않은 요즘의 이 찜통더위가 방콕에서는 일상이라면 서슴없이 방콕 여행을 택할 수 있겠는가? 방콕에서는 에어컨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연신 얼음이 가득 담긴 음료를 입에 달고 있어야 겨우 그 후끈한 열기를 참아낼 수 있을 터이다. 기록적인 폭염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 때에 방콕에 발을 내딛은 해리 홀레가 쏟아내는 방콕의 날씨에 대한 푸념이 절로 이해된다.
몬순이, 비가 간절했다. 그러다 홍수가 나고 길바닥이 진창이 되고 빨래에 곰팡이가 피면 이내 다시 건조하고 바람 한 점 없는
계절을 그리워하겠지만. -17
끈적거리고 습하고 찌는 듯이 더운 방콕, 그 곳에 해리 홀레는 왜 왔던가?
여동생 쇠스의 성폭행범을 찾는 수사에 몰두할 시간을 벌고 조력을 요청하고자...덥석 이 사건을 맡은 것이다.
여동생에게 일어난 불행한 사건,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은 해리 홀레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짐빔에 찌들어 살게 했다. 이제는 자신을
일으켜세워야 할 때임을 자각한 듯, 맥주 외에는 술을 입에 대지 않으려 하는 해리 홀레가 오히려 안쓰러워보인다. 소중한 사람들을 잠시 가슴 속에
묻어두고 해리 홀레는 방콕으로 향했다.
태국 주재 노르웨이 대사가 사창가에서 칼에 찔린 채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해리는 방콕 현지 경찰과 노르웨이 경관을 합쳐 다섯 명의 인원으로
수사팀을 꾸리고 사건을 수사해 나간다. 강렬한 인상의 대머리 여경위 리즈와 냉소적인 교사 스타일의 랑산은 생각보다 해리와 합을 잘 맞춰나간다.
우선 대사의 등에 찔린 특이한 모양의 칼을 조사하고 사창가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대사의 성적 취향을 파악한 뒤 특히 소아성애자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해나간다.
하지만 대사의 가족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대사의 취향은 소아성애가 아니라 동성애였음이 밝혀진다.
모두의 묵과하에 대사의 아내는 옌스 브레케라는 통화거래인을 애인으로 두고 있었다는 사실도.
노르웨이의 경찰청과 외무부에서는 이 사건의 진상을 덮고 입맛에 맛는 줄거리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글 동안 해리 홀레를 파견한 것이었다.
총리의 친구였던 노르웨이 대사가 사창가에서 현행범으로 발견된 사실,거기다 살해된채라는 것이 밝혀지면 총리의 신뢰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진실을
당분간 덮어두려는 의도였다.
우리의 해리는 누군가 교묘하게 놓아둔 덫에 보기좋게 걸려들면서 사건의 진짜 범인을 오히려 보호하고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기에 이른다.
다해히 해리는 자신보다 먼저 범인을 알아챈 이바르 뢰켄이라는 늙은 정보 장교의 조력을 얻어 넘어지고 엎어지면서 험하고도 험하게 범인에게
다가간다.
바퀴벌레는 누가 다가오는 진동을 듣고 숨어버려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눈에 띄면 적어도 열 마리가 숨어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어디에나 있다는 뜻이었다. -113
요 네스뵈가 언뜻언뜻 흘려놓은 진실의 부스러기를 눈여겨 본다고 했지만 엉뚱한 쪽을 열심히 찔러 대는 해리 홀레를 따라다니다 보니 진짜
범인이 자신의 자취를 드러내고 있어도 그 쪽을 쳐다볼 생각을 못했다.
방콕의 음습한 뒷골목에 흘러넘치는 폭력, 마약, 악취의 기운에 어느새 감염된 노르웨이인의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아동학대를 일삼았던 방콕 최대의 거부였던 클리프라도 그렇고 오로지 돈과 관련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인과 사기를 일삼았던 범인도
그렇다.
숨어서 바스락거리는 바퀴벌레 같은 진범은 양심의 가책 없이 대사의 딸마저 죽이고 만다.
잔인함이 극에 달한 범인은 마지막 회합을 꾀하던 해리 홀레 무리 중에서 먼저 이바르 뢰켄이라는 늙은 정보 장교를 주저앉히고 비밀장소를 찾아
해리마저 없애려 한다.
마침내 범인의 정체를 눈치챈 해리 홀레와 범인의 마지막 대결이 볼 만하다.
인간이 견딜 수 있을 만큼의 폭력은 어디까지인지 실험이라도 하는 양, 도발하는 말투와 최후의 일격들이 난무한다. '제발, 조금만 더
견뎌요...'어쩔 수 없이 두 손을 꼭 쥐고 해리 홀레가 견뎌주기를 기원하게 된다.
언제나 극한 상황까지 내몰리고 나서야 사건이 종료되고 해리 홀레는 결국 부활하고야 만다는 것이 이 시리즈의 뻔하고 뻔한 스토리이지만
읽을 때마다 온몸에 힘을 들여 긴장하고 해리 홀레의 무사함에 안도하게 되는 것은 왜, 때문일까?



"아저씨는 오래 살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주 오래. 저보다도 더 오래."
"그런 소리 마. 그럼 불운한 일이지."
"영원히 살고 싶지 않아요?"
해리는 눈을 깜빡거리면서 그의 뇌가 그 순간 거기서, 사람들이 양쪽에서 분주히 오가고
번쩍이는 바다뱀이 발밑으로 지나가는 육교 위에서 그들의 스냅사진을 찍은 것을 알았다.
순간 얼굴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망고 소나기예요. 가끔 와요. 망고가 익었다는 뜻이에요. 좀 있으면 퍼부을 거에요. 어서
가요..."-182
힘든 일을 겨우 겨우 버텨내고 있는 해리 홀레에게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먼 훗날 세월이 흘러도 들춰볼 수 있을 만한 장면이 좀 더 많이 남아
그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생채기가 많이 난 해리 홀레의 내면은 이렇게 또 상처나고 아물어가는가보다.
해리 홀레의 시리즈는 이렇게 또 계속된다.

해리 홀레 시리즈 중 <레오파드>를 아직 못 모았다.
마지막 줄의 <아들>, <블러드 온 스노우>, <미드나잇
선>은 해리 홀레 시리즈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