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점심을 같이 먹는 동안 미자는 밝고 명랑했다.
친구도 생겼고 해서 마음이 놓였다.
그런 걸 방심이라고 한다.
이렇게 가끔 안부나 물어 주면 무난히 졸업시킬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 미자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화요일, 이날은 생리학 시험을 보는 날인데, 미자는 역시 학교에 오지 않았다.
전화를 안받기에 어머니에게 전화걸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미자가 많이 아픕니다. 계속 잠만 자네요.”
오후에 미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디 아파요?”
“사실은...마음이 아파요. 학교 가기가 무서워요.”
“내일 오면 연락해요. 저랑 얘기 좀 해요.”
알았다고 그랬다.
하지만 수요일에도 미자는 학교에 오지 않았고
목요일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아예 제껴버린 첫주와 달리 이번주가 중요한 건
첫 시험인 생리학 퀴즈가 있는데다
해부학 실습이 이번주에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때그때 보지 못한 건 다시 볼 수 없다, 이게 실습의 냉정한 법칙이었다.
난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음을 자책했다.
미자는, 내 생각보다 훨씬 강적이었다.
결심했다. 내 관리 어쩌고를 떠나서
스캔들이 나건말건 신경쓰지 말고
이 학생을 무조건 의사로 만들자,고.
금요일 오후 4시 30분, 미자는 내 방에 있었다.
“학교에 가있으면 괜찮은데, 집에 있으면 학교 가기가 무서워요..
월요일날도 천안에 왔다가 무서워서 돌아갔어요.
하루 종일 울고...“
내 얘기를 해줬다.
“저도 본과 2학년 때 우리 과에 스토커가 있어서 학교를 안갔어요.
그랬더니 학교에서 엄마한테 전화가 와서는 아드님이 왜 학교 안오냐고 했는데
전화한 사람이 바로 그녀였어요.“
해놓고나서 이 얘기가 학생에게 아무 도움이 안된다는 걸 알았다.
어쨌든
미자한테 말했다.
“제가 여기 온지 9년쯤 되었거든요. 돌이켜보면 연구도 못하고
강의도 잘 못하고, 학생지도도 잘하지 못하고...
제가 딱 하나 잘한 게 상조회 때 사회를 보며 교수들을 즐겁게 한 건데
그건 교수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아니죠.”
그녀에게 부탁했다.
“이제 전 학생을 의사로 만드는 걸 평생의 보람으로 알고 살고 싶어요.
너 거기 가서 뭐했냐 그러면 미자가 의사 되는데 도움을 줬다,라고 말할 수 있는.
좀 도와주면 안될까요?”
그녀와 난 일요일 오후 6시에 만나기로 했다.
학교 옆에 있는 원룸에서 자면 서울에서보다 학교 오는 게 덜 무서울 테니까.
해부학 선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미리 얘기를 해놨던 터라 해부학 선생은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겠다.”고 한다.
길고 긴 본과 4년 중 미자가 제낀 3주는 별 건 아니다.
문제는 이제부터고, 내가 옆에서 지켜봐주는 길은 조금은 견디기가 수월할 거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나도 모른다.
“그 학생 안되겠네”라고 혀를 차주고 내 할 일을 한다고 뭐라 그럴 사람은 없겠지만
길 잃은 어린 양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교육자의 가장 큰 보람 아닌가.
미자는 내 승부욕을 자극한 첫 번째 학생이다.
그리고 이건 내 자신을 위한 싸움이다.
교육자로서의 보람을 느끼기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