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을 한지 아직 한달밖에 안됐지만
난 2학기 시작이 5개월밖에 안남았다는 걱정을 한다.
영화를 보여줘 물의를 빚었던 비교해부학이라는 과목 때문.
나 빼고 다른 이들은 다 태평한 듯 보여서 얄밉기도 한데,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자고 할까 하다가
나만 상처받을까봐 관뒀다.
중요한 건 또다시 영화를 보여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
강의평가에서 “가장 보람있는 수업이었다”라고 한 학생이 있었고
생물과 선생이 하던 시절보다 평가가 후했지만
또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난 작년 말, 교과목을 개설하는 워크샵에 참석했었고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배운 터였다.
여기서 살짝 공개하자면
난 술을 강의 주제로 택했다.
학생들로 하여금 술 마시는 실태조사를 시키고, 술로 인한 질병에 대해서 강의하고
병리학에선 술 먹고 변한 장기를 보여주면 될 것이고
교통경찰에게 음주운전에 대해 특강을 부탁하고...
술 때문에 비타민이 부족해져 오리엔테이션이 없어지는 베르니케-코사코프 증후군 환자의
비디오도 보고(구할 수 있으려나?)
술 때문에 인생이 망가진 사람을 그린 책이나 영화도 보여주고
이런 식으로 대충 계획을 짜 놨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술에 관한 책을 구입했고
집에 있던 것도 학교에 가져다 놨다.
웃겼던 것 하나.
뿌리와 이파리라는 출판사에서 ‘사용설명서 시리즈’라는 걸 냈다.
한 주제에 대해 세계 각국의, 시대를 망라한 사례들을 모은 책으로
1권이 섹스, 2권이 죽음, 3권이 술 4권이 마약인데 우리집엔 앞의 세권만 있다.
난 술에 대한 책을 가방에 담았다.
근데 학교 가서 보니까...내가 가져온 건 술이 아니라 ‘섹스’였다.
평소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