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반드시 동행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혼자여도 좋고 또 혼자여서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여행 타입이 맞는 친구가 있다면 그건 아주 좋을 것이다. 함께 걷고 함께 먹고 함꼐 마시다가 잠들기 전 그 날의 여행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그야말로 좋지 않은가.
그러나 여행은 그저 만나서 먹고 마시고 수다떠는 것과는 다르다. 만나서 먹고 이야기 나누는 걸 오래 함께 해온 친구라도, 막상 여행을 갔다가 서로에게 마음 상해 돌아서게 되는 경우들이 더러 있다. 동행과 내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뿐더러, 체력 또한 마찬가지. 한 쪽은 계속 걷고 싶어하는데 한 쪽은 걷는 걸 세상 힘들어하면 그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울 리가 없다. 한쪽은 호화로운 호텔에서 자고 싶어하는데 한 쪽은 그저 어디든 눈만 붙일 수 있다면 잠을 자는 데 큰 돈 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진 체력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것이 서로 같을 확률은 아주, 아주 적다. 그러니 동행이 있는 것보다 없는 게 편할 수도 있는 거다.
이 체력과 바라보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에게 나와 같기를 기대해서도 안되고 또한 그 바람은 이루어질 수도 없다. 다만, 상대를 애정하는 마음이 크다면 '아 이런 점이 다르구나' 하고 서로 다름을 받아인다면 또 문제는 의외로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도 있다. 그러면 너는 다녀와, 나는 숙소에서 쉴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대체적으로 싸움은 '야, 지금 바다 보러 가자니까 왜 너는 바다 안본다는거야' 하면서 일어난다. '야 외국 왔으면 현지식을 먹어야지 너는 왜 라면을 먹겠다는 거야' 하면서 일어나는 것이다.
여행을 다녀보고 여행 파트너도 겪어봤기에, 나는 이제 여행 파트너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과 한 번 해보는 것보다는 솔직히 혼자 가는 게 편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한 쪽이 빠르고 어느 한 쪽이 느린 속도를 맞추어나가는 것은 때로 큰 스트레스를 동반하니까. 가족들이어도 그렇고 친구들이어도 그렇고 애인이어도 그렇다. 우리의 속도는 늘 똑같을 수가 없다. 다른 속도를 기다려주고 맞춰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 여행이라는 게 다른 많은 것들이 섞여있는데 늘상 맞춰준다는 것도 웬만한 애정으로는 커버가 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혹여 내가 결혼을 해서 남편이 있다고 했을 때, 그 남편이 나처럼 여행을 좋아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본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장소에 가서 내가 원하는 걸 먹고 싶어하는 상대가 지구상에 얼마나 있을까. 나같은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어. 해서, 나는 혹여라도 결혼을 해서 남편이 있다 해도, '나 여행 좀 다녀올게' 라고 말하고 훌쩍 다녀오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도 같이 가자'고 그가 말해온다면 어 그래, 라고 같이 갈 수 있겠지만, 또 여행지에서의 일정도 늘상 함께 해야된다는 생각은 애시당초 갖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우리가 사이좋게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위의 책, 《라오스가 좋아》에서의 부부는 전생에 어떤 덕을 쌓았길래, 제일 근사한 여행파트너가 된다. 그들은 전셋집을 내놓고 그 돈으로 장기간 여행을 할 정도로 여행에 있어서 서로 합이 맞는다. 긴 시간의 여행이라는 건 큰 체력을 요하는 일인데, 그들은 관광버스를 대절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현지의 버스를 타고 현지의 속도로 움직이며 현지 음식을 먹고, 그렇게 여행을 즐긴다. 그곳에서의 기후와 풍경을 오롯이 즐기면서 사는 삶을, 둘이 함께 즐기고 있다.
전셋집을 빼서 여행을 가는 것 자체는 혼자여도 큰 결심이 필요하다 생각되는데, 그걸 둘이 같이 해낸다. 나같은 경우에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것도 역시 좋아한다. 아, 여행가고 싶다, 하는 마음과 꼭 같은 크기로 '아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안정적이어야 하는 사람이다. 돌아갈 집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 다음의 계획이 있어야 행동이 가능한 사람. 아무리 여행을 좋아하는 나지만, 나의 경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전셋집 빼서 그 돈으로 우리 여행다니자, 라고 제안해 온다면 나는 반드시 "그 다음은?" 이라고 물을 사람인 거다. "그 다음은 될대로 되겠지"라는 식의 대답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야...그러니 아무리 여행을 좋아해도 전셋집 빼서 여행갈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외국에 있는 남자를 사랑할 때,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외국에서 살 생각을 했다. 그는 내가 이곳의 모든 것들을 버리고 그곳으로 오는 삶은 쉽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당연히 그건 쉽지 않지, 나는 애초에 '버리고' 간다는 생각 자체를 안.했.다. 왜 버려? 안버릴건데? 나는 여기에도 그리고 거기에도 동시에 정착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많은 시간을 그와 보내면서 또 훌쩍 잠깐 이곳으로 와서 나의 가족들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고 이곳의 집에서도 머무르고.. 나는 그렇게 살 생각이었던 거다. 내가 여기에 있으면서 외국에 다녀오는 삶을 사는 것처럼, 그곳에 있으면서 외국 여행을 가듯이 간혹 이곳으로 찾아드는 삶을 살고자 했어. 일년에 한두번쯤 여기 들러서 한 열흘쯤 있다가 가면 되잖아. 나는 무언가를 버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여기를 버리고 거기를 택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도 나 있고 거기에도 나 있으면 되지~ 했던거다. 아... 너무 멋지지 않나? (또 내가 나에게 반했다)
아무튼 그렇게 어딘가로 돌아다니는 삶, 그러나 한 곳에 뿌리 박는 삶을 사는 것을 나는 원한다. 외국에서 내가 살고 그곳에 뿌리를 박는 삶을 살되, 그러나 이곳으로 계속 흘러들었다 나가고 하는 그런 삶. 내가 어디에 단단하게 딱 박고 살든, 일단 그런 곳이 한 군데 있다면, 그런 후에야 나는 비로소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훌쩍 갔다가 또 훌쩍 오고..하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쓰다가 생각한건데, 어쩌면 내게 사람도 그랬던 것 같다. 이 사람도 만나고 저 사람도 만나고 훌쩍 훌쩍 사람도 옮겨 다니지만, 계속 뿌리박고 단단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던 삶. 중심은 언제나 있었던 것 같고, 그 중심이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중심을 두고 여기도 갔다 저기도 갔다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중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돌아오는 게 가능했고. 내게는 이런 삶이어야 했다. 이런 삶이어야 하고.
내게는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돌아갈 곳이 있어서. 나에겐 늘 돌아갈 곳이 필요한 것 같다.
이 책속의 부부는 서로가 최상의 파트너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그럴 수 없을텐데, 이들은 그렇게 했다. 그걸 둘이 함께 할 수 있다니, 게다가 함께 떠나고 함께 돌아다니는 게 그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그 합이 맞는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이 마흔에 수능공부로 대학을 간다는 생각을 누가 할 수 있을까. 그 드문 걸 생각하고 해내는 것도, 서로가 서로의 파트너였기에 가능한 것 같다. 와, 어떻게 덕을 쌓았으면 이렇게 생활패턴이 같은 사람,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을 서로의 배우자로 맞아들일 수 있었을까? 대단하다. 인간은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 부부를 보면서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아직 다 읽기 전이지만) 라오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질 않는다. 이 부부야 여행이 익숙한 사람이고, 금세 현지의 속도에 맞추고자 자신들을 컨트럴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그게 될까? 나는 저렇게 버스가 생각보다 지연되고 지연되고 느리고 느리고 하면... 아아, 나의 과민한 방광이 버텨낼 수가 없을 것 같아. 세상 초조해서 나는 정말...어휴..... 내 방광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찰 것 같아. 역시 .. 라오스 안되겠다....... 내 방광을 위해 나는 좋은 호텔이 있는 곳을 여행하겠어....... 이것이 내 방광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야.....
주말에는 안산에 다녀왔는데, 안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남동생은 자기 USB 에 담긴 노래를 틀어두었다. 요즘 노래보다는 옛날 노래들이 더 많은데, 마침 '태사자'의 <도>가 나오고 있었다. 대학시절 태사자의 <Time> 을 노래방에서 종종 부르곤 했었는데, '도'가 나오니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됐다. 그런데 노래 가사중에 이런 부분이 있다.
태사자 in the house~
아무생각없이, 습관적으로, 입에서 나오는대로 그 부분을 따라 부르는데, 남동생이 그러는 거다.
"야, 태사자 인 더 하우스가 대체.. 가사가 이게 뭐냐. 무슨 뜻이야."
아, 이 말을 들으니 갑자기 너무 웃긴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게 태사자 인 더 하우스..이게 무슨 맥락에서 나온 말이야 대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갑자기 너무 웃겨가지고,
"그러게. 태사자는 집에 있다. 이런 건가봐."
이러면서 둘이 빵터져서 웃었다. 가사 보면 '니가 다시 돌아올거라 생각했어 난' 이런 게 있던데...그러니까, 니가 다시 돌아올 거니까 나는 집에 있을게...이런 맥락인건가. 아니면 영어라고 그냥 막 넣었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돌아오는 거라면, 나도 한다.
다락방 in the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