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삶은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


양재역에서 내려 버스정류장을 향해 가면서 버스앱을 열었다. 내가 타야할 버스는 1분 뒤, 그리고 8분 뒤에 온다고 했다. 정류장까지는 한참 멀고, 그간 경험에 의하면 1분정도 후에 도착한다고 해도 바로 그때 도착하곤 해서, 1분이란 시간이 결코 여유롭지 않은 거다. 그 다음의 8분을 탈 수도 없는 게, 출근시간의 7분은 얼마나 소중한가 말이다. 아아, 이건 뛰어야 겠는데? 라고 생각하고 아직 뛰지는 않은 상태에서 뒤를 봤는데, 아아, 저쪽에서 내가 타야할 버스가 오고 있다. 이것이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시간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보다 빠를 터. 나는 그 다음 버스를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마구 뛰었다. 아침부터 마구, 마구, 마구, 마구 뛰었어. 아아, 인생은 얼마나 고단한가...

어쨌든 나는 헉헉거리면서 그 버스에 탈 수 있었고, 버스에서 내려서는 스벅에 들러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텀블러에 담았다. 아아, 점점 없어지는 나의 스벅카드 잔고... 이 잔고가 떨어지면....... 흙흙


















이 책을 어젯밤에 드디어 다 읽었다. 페이지수 엄청 많고, 부조리한 부자들에 대한 얘기가 너무 많아서 나중엔 읽다가 지치는데, 지난번 페이퍼에서 언급한 사랑과 성폭행이 연관된다는 부분 때문에 이미 정도 떨어진 터. 나는 그 부분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대체 이렇게 쓴 의도가 뭘까, 대체 왜 이 여자주인공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을까, 작가는 왜 이렇게 해놨을까, 작가는 정말 그런 생각을 하는걸까, 무슨 의도일까... 완전 멘붕이 왔던거다. 그때만해도 나는 작가가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다. '하녀'의 일기였으니까. 그래서 너무 이해가 안됐다. 왜 성폭행은 사랑에서 온다고 말하는건지. 그리고 성폭행범일지도 모르는 남자한테 왜 욕망을 느끼는지. 이 작가는 도대체 왜 이렇게 그려놓은건지. 설마 작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건지. 그럴 리가 없을텐데, 왜 그렇게 느끼는 여자를 만들어놨을까.



그러다 작가를 찾아봤더니 시부럴...... 남자였다.






권력비판과 사회참여에 앞장선 대단한 업적을 가진 프랑스의 예술가이신 이 분은, 여자주인공을 성폭행범에게 매력을 느끼는 캐릭터로 잡아놓아버렸다. 게다가 그 여자의 입으로 말한다. 성폭행은 사랑에서 온다고. 


책의 마지막에, 여자주인공 셀레스틴은 심지어 이렇게 말한다.



그가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무진 애를 썼음에도 나는 그의 제스처와 태도, 그의 침묵에서 평상시와는 다른 어색함을 느꼈는데, 그 어색함은 오직 나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이 같은 예감은 나를 너무나 만족시켰기 때문에 나는 굳이 그걸 떨쳐버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환희를 느꼈다. 마리안이 잠시 우리 두 사람만 부엌에 남겨놓고 나간 것을 틈타 조제프에게 다가간 나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북받쳐 애교 섞인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말해줘요, 조제프. 당신이 숲 속에서 꼬마 클레르를 강제로 범했다고. 말해줘요, 당신이 마님의 은그릇을 훔쳤다고."

이 말에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해진 조제프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느닷없이 나를 잡아끌어 꼭 망치질을 하는 것처럼 내 목이 휘어질 정도로 세게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 얘기는 하지마. 당신은 나랑 같이 그 작은 카페에 갈 테니까." 



책에서 성폭행과 살해당한 소녀는 십대 초반이라고 되어있다. 셀레스틴도 조제프에게 '꼬마'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가 그 꼬마를 강제로 범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셀레스틴은 흥분한다. 나는 여기에 아주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강제로 범하는 것'에 야성과 매력을 느끼는 여자라니, 그러니까 이게 바로 그거 아닌가. 여자가 '안돼'라고 하는 건 결국 '돼' 라는 식의 의식. 강제로 범하는 걸 여자들도 사실은 좋아하고 있다니까? 뭐 이런 거. 

작가소개를 보니 당시에 꽤 유명하고 사회적 영향력도 있었던 사람인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이 이런 여주인공을 만들어뒀으니, 아.. 이 답답함을 어쩌면 좋을꼬. 셀레스틴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아무렇지도 않게 스며들었을까.

나는 '옥타브 미르보'가 왜 굳이 '하녀'를 등장시켰는지 모르겠다. 여기에서 하녀가 일하는 곳의 주인들이 하녀와 육체적 관계를 맺는 것을 하녀인 셀레스틴도 좋다고 쾌락을 느낀다고 하는데(주인하고 잤다고 좋아하는 하녀들이 나온다), 너무 많은 성폭행과 성추행이 책 속에서는 '여자도 사실은 원하는 것'이 되어있다. 옥타보 미르보가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서 쓴 이야기에 굳이 왜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여자하인을 등장시켜서 이렇게 아무말을 하는걸까. 그가 더 잘 짐작할 수 있고 더 잘 쓸 수 있는 건 '남자하인'일텐데, 왜 남자하인을 등장시키지 않고 여자하인을 등장시켜서는 꼬마를 강제로 범하는 거에 욕망을 느끼는 여자로 만들어놨나. 세상 어느 여자가 꼬마를 강제로 범하는 남자에게 욕망을 느낀다는 건가. 왜 여자로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여자의 입을 빌어 성폭행을 사랑에서 온다고 말하고 다니는건가. 


그러지말자 진짜.

그러지말자.





일전에도 페이퍼에서 쓴 적이 있는데, 나는 남자들이야말로 로맨스 영화를, 로맨스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호기심을 느끼고 사랑하고 또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남자들이 더 많이 읽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맨스 소설을 읽거나 로맨스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 대해서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다른 사랑의 방식과 형태를 지금보다 더 많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식의 갈등이 있는지, 그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는지를 더 많이 접해야 하고, 어떤 식의 배려가 있는지를 조금보다 더 잘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치녀와 꽃뱀이 무서워서 혹시 '이여자가 내 돈 뜯어먹을 꽃뱀 아닐까', '사치를 일삼는 김치녀가 아닐까' 하기 보다는, 더 많은 사랑이야기와 연애 이야기를 접하고 더 다양하게 사랑을 받아들이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시야가 넓어지는 것이 내가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허구헌날 같은 사람하고 같은 이야기만 해대서는 아무것도 발전하지 않는다. 그 안에 갇혀 있을 뿐이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은 남자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책을 읽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전에 '꼴페미를 극혐해서 페미니즘 책은 보지도 않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래가지고 그 사람에게 남는 건 계속해서 꼴페미를 극혐하는 것 뿐이다. 옥타브 미르보는 사회참여도 했고 정치비판도 했지만 여성의 삶에 대한 이해는 한없이 부족했던 것 같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약자의 인권에도 관심이 있다는 걸 보장하진 않는다. 저렇게 저명한 사람이 성평등 의식을 갖고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도 잘 되지 않는 것을, 과거의 옥타브 미르보에게 바라는 건 무리겠지.



얼마전에 나보다 나이가 훌쩍 많은 남자 어른을 만났다. 그 분은 그런 말씀을 하셨다. 만약 젊은 세대와 나의 의견이 다르다면, 젊은이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내가 거기서 내 의견만 고집한다는 것은, 내 고집에 갇히면서 퇴보하는 거라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거라고. 나는 이 말이 페미니즘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나 많은 여자들이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면, 그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혐오스러워 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가진 생각에만 갇히게 된다. 





최근 한 3주간 몹시 바쁘고 지쳤다. 책 읽을 시간도 에너지도 고갈됐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나아질지 사실 그도 잘 모르겠다. 일전에 사주를 봤을 때 8월달부터 내가 투잡을 뛴다고 했는데, 8월달부터 투잡 뛸 일은 나타나질 않고.... 지금 있는 회사에서 업무가 확 늘어났다. 게다가 내가 하는 업무는 육체보다 정신이 고단한 업무고, 그래서 매일 영혼이 너덜너덜해진다. 엊그제는 동료랑 갈비를 먹으면서, 내가 얼마나 고단한지에 대해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매일매일 영혼이 지쳐 쓰러져 ㅠㅠ 

그러자 사주쌤이 한 말이 떠오르면서, 아, 투잡을 갖는 게 아니라 일이 많아지는 거였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러면서 매우 슬퍼하고 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매일매일 나는 쭈그러들고 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에너지 딸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금도 이 페이퍼 창을 출근하자마자 열어놨지만, 그 사이에 임원1, 임원2 한테 자꾸 불려갔다 와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맥이 끊겼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 글 쓸 때 맥 끊기는 거 넘나 싫다. 왜냐하면 나는 삘받아서 글 쓰는 사람이라서 이렇게 맥 끊어버리면 그 삘이 다시 안나온단 말이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피로하다..점심 시간도 되기 전인데 피로가 극심하다..........



좋은 일만 생각해야겠다.

이를테면 오늘 저녁에 만날 친구 생각이라든가, 얼마전에 알라디너로부터 구입한 예쁜 손수건이라든가, 토요일에 만나 친구랑 함께 볼 아토믹 블론드라든가, 금요일에 에너지가 남는다면 만들어 먹을 오일파스타라든가...

이런 거 다 사고 보고 먹고 그러려면 돈을 벌어야 되고, 그러면 나는 또 버스를 타기 위해 다다다닥 뛰어야 하고, 글을 쓰다말고 불려다녀야 하는거겠지.. 역시 삶은 고단해. 아, 이런 것에 대해 장 그르니에가 말한 게 있었는데. 찾아보고 와야겠다. 여러분 잠깐만요.



찾았다! 















사람이 자기의 주위에 있는 것들을 무시해 버리고 어떤 중립적인 영역 속에 담을 쌓고 들어앉아서 고립되거나 보호받을 수는 있다. 그것은 즉 자신을 몹시 사랑한다는 뜻이며 이기주의를 통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신을 세상만사 어느 것과도 다를 바 없는 높이에 두고 생각하며 세상의 텅 비어 있음을 느끼는 경우라면 삶을 거쳐가는 갖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에 혐오를 느낄 소지를 충분히 갖추는 셈이다. 한 번의 상처쯤이야 그래도 견딜 수 있고 운명이라 여기고 체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날이면 날마다 바늘로 콕콕 찔리는 것 같은 상태야 참을 길이 없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보면 삶은 비극적인 것이다. 바싹 가까이에서 보면 삶은 터무니없을 만큼 치사스럽다. 삶을 살아가노라면 자연히 바로 그 삶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절대로 그런 것 따위는 느끼지 않고 지냈으면 싶었던 감정들 속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기것이 저것보다 더 낫다고 여겨지는 때도 있다. <이것>과 <저것> 둘 중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라고 말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그렇다라고 나는 말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야말로 고문이 아니고 무엇인가? (空의 매혹, p.31)




음... 딱히 이 타이밍에 적절하게 느껴지지는 않는군...




점심은 청국장을 먹기로 했다. 사실 청국장은 별로 안좋아하는데, 지금 너무 기대되는게, 이 집은 청국장정식 시키면 보쌈을 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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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7-09-07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작가라도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따위 글을 썼나 봤더니 19세기 유럽작가네요.아무래도 100년도 훨씬전에 살았던 남성에게 기대하기 힘든 일이겠지요ㅜ.ㅜ

다락방 2017-09-08 08:12   좋아요 0 | URL
네, 대부분의 남자들이 저 작가들과 비슷한 생각을 했을거라 생각해요. 지치는 독서였어요.

Forgettable. 2017-09-08 0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 보리밥과 청국장인가 거기 아녜요? 아 지금 한달째 한식 못먹고 약간 한계상태인데 ㅜ 암튼 맨날 먹는거에만 반응하는 덧글 남겨 죄송 ㅋㅋ

다락방 2017-09-08 08:1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먹는거에 반응하는 댓글 넘나 환영하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뽀가 말한 보리밥과 청국장 거긴 아니다. 여긴 뭐라고 해야하나, 양재 로컬푸드라 해야하나 ㅋㅋㅋㅋ 가격도 한 끼에 7천원인데 진짜 배터지게 줌. 보쌈 질도 엄청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중에 한국 오면 내가 데려갈게요 ㅋㅋㅋㅋㅋ

카스피 2017-09-08 13:36   좋아요 0 | URL
아 저도 매봉역 부근의 청국장집을 알고 있는데 보쌈을 주지 않더라고 밥+청국장+계란후라이+채소 세트로 3,500원에 판매해서 자주 가는 편이에요.저렴한 가격에 배부르고 맛있게 먹을수 있어 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