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알고 있듯이 뱀파이어다. 밤에 굳이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 그런 에드워드가 밤이면 벨라가 잠든 옆에서 벨라를 지켜본다. 벨라는 악몽을 종종 꾸는데, 그런 벨라 옆에 있어준다. 벨라는 자다가 깨면 에드워드가 자신의 옆에 있었음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다.
밤에만 에드워드가 벨라 옆에 있는 것도 아니다.
벨라가 에드워드와 헤어지고 깊고 깊은 수렁과 우울에 빠졌을 때, 자신을 내던졌을 때, 그래서 절벽에서 몸을 날렸을 때, 오토바이를 타고 미친듯이 달렸을 때, 그러니까 각종 위험한 순간에 또 에드워드가 있어준다. 에드워드는 벨라와 헤어졌지만, 벨라가 벨라 자신을 내던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절벽에서 깊은 물로 풍덩- 몸을 던지는 벨라 앞에 에드워드의 환영이 보인다. '그러지마' 라고 에드워드는 말한다. 벨라는, 산다.
어제 정희진의 강연은 무척 재미있었다. 책으로 읽었던 정희진과 강연으로 만난 정희진은 많이 달랐다. 책으로는 꽤 냉철한 분이라 생각했는데, 강연에서는 엄청 뜨거운 분이셨다. 재미있게 강연을 듣고, 또 그 강연을 들으면서 여러가지 생각도 했는데, 그래서 같이 들은 친구들과 강연 후기를 나누고 싶었다. 강연이 끝난 건 밤 열 시. 다음날 출근이라 그냥 집에 가자, 라고 다들 강연장을 나섰는데, 그래도 못내 아쉬워 결국 뼈해장국에 소주를 일 잔 하기로 결정하고 뼈해장국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네 명은 강연이 왜 좋았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소주잔을 부딪치며 얘기했다. 연신 좋았어, 오늘 강연도 좋았고, 여기에 같이 가자고 해줘서 고맙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서 좋고. 그렇게 신나게 얘기 하다가, 열한시를 조금 넘겨 일어섰다. 지하철이 늦게 온다면 버스가 차라리 빠르지 않을까,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려 탔다. 늦은 밤이니까 씽씽 달리면 빠르게 가지 않을까.
그런데 버스가 느릿느릿 가더라. 신호마다 다 걸리고, 차도 막히고, 안막히는 곳에서도 그냥 천천히 가는 거다. 아아, 왜때문이야 ㅠㅠ 지하철 타고 갈걸, 뒤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고...하는 수 없이 여기에서 내려서 택시를 탈까, 하고 둘러보니, 지나가고 있는 곳에는 사람도 없고 어둡기만 하다. 아아, 카카오택시를 불러도 여기서 기다리는 건 무리야. 일단 탔으니까 가자, 하다가, 어차피 이 버스는 집까지 가지도 않는 터라 중간에 갈아타는 버스를 검색해봤다. 내려서 얼른 그 버스로 갈아타고 싶었다. 어차피 늦는다면 집앞까지 가는 게 좋을테니까. 그런데 내가 갈아타야 할 버스는 막차가 출발했다는 거다. 제기랄 ㅠㅠ
하는수없이 버스 안에서 내가 내릴 곳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바깥을 보면서, 이 늦은 밤에 이 낯선 곳을 지나는 거 너무 싫다...생각하면서, 에드워드 생각이 났다. 아, 이럴 때 에드워드가 있다면 좋을텐데! 에드워드라면 이 늦은 밤 쫄아 있는 내 옆에서 나를 지켜봐줄텐데! 그러다가 혹여라도 내게 어떤 위험이 닥친다면 갑자기 나타나서 으르렁- 거려줄텐데!!! 왜 나는 벨라가 아니고 왜 내게는 에드워드가 없는거지? 왜지? 왜때문이지?
에드워드, 컴온!!!
그러나 내가 에드워드 컴온, 이라고 이천번 외쳐봤자 에드워드는 내게 와주지 않았고, 나는 내릴 곳에서 내려 허둥지둥 택시를 잡아타고 자정이 넘어 귀가했다. 귀가하는 내내 긴장하고 있다가 집에 와서 탁- 하고 풀어져버려가지고 씻고 뻗어버렸다. 아침은 언제나 그렇듯 너무 빨리 왔고.... 아, 아침이여!
버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어제 나는 광화문에서 우리 동네까지 가는 버스가 지나가는 걸 보고 '저 버스정류장에서 저 버스가 서는걸까?' 하고 궁금해해서 찾고 싶었다. 그런데 도무지 어떻게 찾아야할지를 모르겠는 거다. 일단 네이버를 켜고 광화문 버스정류장..이런 거 검색하고 있었더니 옆에서 D 가 버스 어플로 찾으라는 거다. 버스 어플에 버스 번호를 입력하면 버스 정류장이 뜨지 않냐고. 오! 그래서 그렇게 하는데 내가 잘 못찾으니까 줘봐, 이러면서 후루룩 넘기더니 찾아줬다. 아, 여기가 거기구나. 그러면 이 버스정류장 번호 외워야지, 하고 중얼거리며 외우려고 하니, 또 D 가 그런다. 그냥 별에 체크해, 그러면 즐겨찾기가 되고, 이따가 버스 오는 거 보려면 그 별에만 들어가면 돼......
?????????????????!!!!!!!!!!!!!!!!!!!!!!!!!!!!!!!!!!
아, 나는 얼마나 스마트하지 못한 인간인가. 나는 진짜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하지 못해서, 그 좋은 아이폰을 가지고도 그냥 전화하고 메세지하고 북플 들어오고 트윗 들어가고 메일 확인하고.....아, 사진도 찍는구나. 그게 전부다. 똑같은 걸 검색할 때도 나는 언제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남동생이나 친구들이 결과를 들이밀때마다 놀란다. 넌 어떻게 찾았냐???? 하아- 이 D 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지도를 봐도 길을 못 찾을 때, 그 지도를 보고서는, 음 이게 이 방향이니까 이 쪽에서 저 쪽으로 가면 돼, 하고 언제나 척척 알려주곤 한다. 뭐 검색할 때도 원하는 결과를 착착 링크해주고, 어제 버스 어플을 매우 스마트하게 사용하기도 하고... 문득, D 는 전체를 보는 눈이 뛰어나구나, 싶더라. 지도를 보는 것도, 앱을 스마트하게 사용하는 것도, 원하는 걸 얻어내는 검색까지도, 전체적으로 볼 줄 아는 시야를 가져야 되는 게 아닐까. 나는 너무 부분에만 집중하고, 배타적인 게 아닐까. 왜 버스정류장을 즐겨찾기 할 생각을 안하고 번호를 무조건 외우려고만 했을까. 왜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하질 못해, 왜, 대체 왜.....
일전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의 전화번호는 외우고 다니자고 글을 쓴 적이 있다. 내가 이러다가 며칠전에 완전 바윗덩어리에 머리 받은 상태가 된 적이 있어서, 이제 이걸 주장할 수가 없게 됐다.
그러니까, 퇴사하는 직원의 송별회였다. 몇몇만 참석하는 소규모 회식이었는데,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고나니 부장님과 대리 한 명이 오질 않았더라. 부장님 어디쯤 오시는지 전화해보고 음식을 주문하자, 라는 얘기가 나왔고, 옆에서 다른 직원이 제가 전화할게요, 하는데 나는, 내가 할게, 하고서는 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부장님 이름 검색해서 안누르시고요? 라는 직원에게, 아 난 그냥 다 외워서 해, 하고는 번호를 눌렀는데... 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씨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당연한듯 꾹꾹 척척 번호를 눌러놓고 초록색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앗차! 헤어진 애인의 이름이 떴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것도 지금 번호가 아니라 한 6년전쯤의 옛날 번호. 미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핸드폰에서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그 번호도 지우지 않고 있어서 이름이 떴기에 망정이지, 안떴으면 어쩔뻔했어. 그냥 통화 누르고서는 통화할 뻔 했잖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봤자 이미 없는 번호긴 하겠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순간 너무 멘붕이 와서 멍- 했더니 옆에서 직원이 왜그러세요, 한다.
-어...헤어진 애인한테 전화했네.
-받았어요?
-아니, 통화 버튼 안눌렀어.
-차장님, 제가 전화할게요.
.....................이 멍한 사건을 앞에 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부장님 번호가 몇 번이더라, 하고 생각하는데, 생각이 진짜 1도 안나는거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옆에서 직원이 통화를 마치고 이제 이름 검색하고 전화하세요, 라고 해주는데, 하하하하하, 나 부장님 저장 안해놨어, 외우니까....
그래봤자 필요한 전화번호가 맞춤하게 기억도 안나고 ㅠㅠ
전화번호를 외운다는 건... 뭘까?
이제 외우지 말자.
전화번호 외우는 거,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안외워!! 를 결심하며 소고기를 씹었다.
이제와 안외운다고 소리치면 뭐하나, 하아, 이미 머릿속에 있는 번호를 어쩔 거야. 몇 년 전의 번호까지 튀어나오는데, 이걸 어떡해.....
인생은 뭘까?
인생은 뭘까, 하니까 생각나는데,
어제 점심을 같이 먹은 직원이 나 때문에 '인생은 뭘까'가 입에 붙어서, 엄마랑 톻화하는 와중에 '엄마, 인생은 뭘까?' 하고 물었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며칠전에 함께 술을 마신 직원2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인생은 뭘까? 하고 친구들에게 물었다고. 친구들이 너 왜그러냐고 깜짝 놀라서 물었다는데, 그 직원은 '우리 차장님하고 같이 있으면 철학자가 다 된다니까' 했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맨날맨날 질문하고 돌아다닌다. 인생은 뭘까? 남자는 뭘까? 우정은 뭘까? 연애는 뭘까? 섹스는 뭘까? 다이어트는 뭘까? 돈은..뭘까? 이러면서 ㅋㅋㅋㅋ 직원2는, 차장님 때문에 자꾸 질문을 하게 돼요,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친구의 블로그에서 이런 인용문을 봤다.
“아무 것도 하지마! 일하지 마! 그냥 집에 있어! 돈은 내가 벌 테니 너는 그냥 집에서 놀아!”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신구가 양동근에게 한 말이란다. 아...너무나 멋지고 근사한 말이다. 정말 들어보고 싶은 말이다. 일전에 회사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관둘지 말지를 심히 고민하고 있으려니, 엄마가 내게 그랬더랬다. '야, 관둬, 엄마가 너 설마 밥 굶기겠냐, 관둬' 라고... 크- 멋진 엄마야.
저 대사를 어제 읽어보면서, 아, 누가 저렇게 말해주면 진짜 영혼을 송두리째 맡기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것도 하지마, 일하지 마, 집에 있어, 돈은 내가 벌 테는 너는 그냥 놀아, 라고 해준다면...아아, 내 영혼은 당신의 것. 날 그냥 가져버려요...
라고 한참 상상하다가,
그렇지만 이 세상에 그 누가, 나를 나만큼 사랑할 것이며, 이 세상에 그 누가, 나를 나만큼 잘 먹일 것이냐.....라는 현실적인 물음 앞에 닥치게 되는 것이다. 누가 나를 먹여 살린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내가 나한테 하는 것만큼 잘 먹일 순 없을거야... 그렇게 나는 내 영혼을 사수한다.....
지난 주말에 조카랑 놀아주고 있는데, 칠 살 조카가 '이모 똥머리 해줘' 하며 머리끈을 내민다. 어? 이모 똥머리 할 줄 모르는데??? 했더니, 이모가 나 이렇게 해줬었잖아, 하고는 손으로 머리를 잡고 모양을 만든다. 이모도 하는 거, 하면서. 아, 그거! 그건 똥머리라는 거창한 이름 붙일 건 아니고, 그러니까 조카가 놀고 있는데 머리가 목에 닿아 더워보여서, 내가 머리 목에 닿는 거 너무 싫어라 해서, 조카 머리를 묶어주었는데, 꼬랑지가 목에 닿을까봐, 난 또 그것도 넘나 싫어해서, 마지막에 머리끈을 두르면서 남은 머리까지 함께 묶어버린 거다. 그걸 다시 해달란 거였다.
바로 이런 머리다.
예쁜 조카의 사진을 찍었다면 조카 사진 올렸을텐데, 이 머리 모양 잘 설명은 안되고, 조카 머리 사진은 찍어둔 게 없고, 그래서 그냥 내가 나 찍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런 머리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머리통 엄청 크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머리를 조카 해줬는데, 내 조카는, 누굴 닮아 그런지, 머리통도 너무 예쁘고 얼굴도 너무 예쁘고 그냥 다 예뻐가지고, 머리를 저렇게 해줘도 또 찬란하게 예쁜거다. 아유 예뻐 ㅠㅠ 우리 이쁜이 ♡
어휴..이제 그만 쓰자. 너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