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만나는 오빠는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끔 나의 장바구니를 털어주고, 먼 길을 오면서도 나에게 줄 와인을 잊지 않는 그런 좋은 오빠임에는 변함 없으면서, 대화의 기술을 더 늘려가지고 짠- 하고 나타난 것만 같았다. 오빠가 오는 날 나를 포함해 일곱명이 만났는데, 모임이 파하고나서 다른 친구 두 명과 그런 얘기를 했다. 오빠는 더 좋은 사람이 되었어, 라고. 한 명은 '대화할 때 배려가 정말 뛰어나지' 라고 말했고, '상대방을 정말 잘 생각해주는 것 같아' 라고 다른 한 명도 말했다. 나는 그것이 오빠가 갖춘 대화의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또 만나고 싶고,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주는 것,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 대화가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오빠는,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고,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는다. 그런 후에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 생각은 나의 생각과 다를 때도 있는데, 그럴때조차 전혀 기분이 나빠지질 않으니, 그야말로 대화의 기술을 완벽하게 마스터한 게 아닌가. 사실 가장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으려면 상대의 말을 끝까지 집중해서 든는 게 가장 중요하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호감도 여기에서 오는 게 아닐까. 이 사람이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구나, 하는 걸 알게되어야 친구도 되고 연인도 되는 게 아닐까. 정말 좋은 시간이었고,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했다. 2년후에도 '변한 게 없는' 사람이기보다는, '더 좋은 사람이 되었네'라는 말을 듣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미숙이가 '오빠는 더 좋은 사람이 되었어'라고 내게 얘기하는데, 그게 칭찬의 최대치가 아닌가 싶은 거다. 근사해...


오빠는 언제나처럼 내게 줄 선물을 잊지 않았다. 게다가 나에게 선물하는 사람들중에서 언제나 가장 맞춤한 선물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이것 봐라.




받자마자 꺅 하고 소리를 지르고 흥분해가지고 사람들이 다 웃었다. 역시 사람은 뭘 좋아하는지 말하고 다니는 게 진짜 중요하다. 내가 와인 좋아한다고 오만번도 넘게 말하고 다니고, 받으면 꺅꺅 거리고 좋아하니까, 이렇게 좋아하는 걸 또 선물 받는다. 언제 선물 받아도 질리지 않아요 ,와인!


2년 전에도 이 시기쯤에(10월이었다) 오빠로부터 와인을 받았다. 멀리, 비행기타고 온 와인이었다. 나는 그것을 나의 61년산 슈발블랑 삼고서는 옷장에 넣어두었다. 이건 마일스가 그랬듯이, 특별한 순간에, 특별한 사람과 마셔야지. 그렇게 오랜 시간을 나의 옷장에 있던 와인은, 그 다음해인 작년 7월에 개봉되었다. 적절한 순간에, 맞춤한 순간에!! 



이번 와인도 옷장에 넣어두었다. 이 와인은 언제, 어느 순간에,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개봉하게 될지, 나조차도 두근두근하다. 어쩌면 나는 마일스가 그랬듯이 혼자 마시게 될지도 모르겠다. 혼자 있는 걸 누구보다 잘하는 나이니, 혼자서 가장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건배!를 외칠지도 모를 일. 아니, 그 와인을 따는 순간이 특별한 순간이 되는 거라고, 마야가 말했으니까, 어쩌면 나는 가장 힘든 시간에 옷장에 숨겨둔 와인을 꺼내서는 내가 내 잔에 가득 채울지도 모르겠다. 






책이 읽히지 않아 그냥 읽지 않았던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읽히지 않으면 읽지 말자, 그렇게 나를 내버려두다가, 갑자기 '제인 오스틴'의 [에마]가 읽고 싶어져서 부랴부랴 사서는 오늘 아침 출근길부터 읽기 시작했다. 얼마전에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했는데 그 만남이 너무 좋았던 거다. 게다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잘맞고 케미가 폭발해서, 나보다 자기들끼리 더 친해졌어!!! 그러자 갑자기 아주아주 오래전에 본 '에마' 생각이 난거다 (아, 나에겐 '엠마'가 익숙한데....). 나는 그 만남이 너무 좋았고 짜릿했는데, 아아, 나는 이런 거에 진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주면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해야하나. 그게 나 때문은 아니어도 되는 것이고, 내가 어떤 발판을 마련해줄 수 있다면,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너무나 행복해하는 것이다. 문득, 에마가 그런 사람이었던 게 아닐까 싶어서 이 책을 급하게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하하하하, 탁월한 선택이었다. 재미도 있고 ㅋㅋㅋㅋㅋ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 모두가 다 나같어서 ㅋㅋㅋㅋ 일단 에마를 보자. 에마는 자신의 가정교사와 다른 남자를 결혼에 성사시키고는 뿌듯해한다. 이에 '나이틀리 씨'와 나누는 대화다.



"'성공'이라니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 나이틀리 씨가 말했다. "성공이라면 노력이 전제되는 건데. 이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당신이 지난 사 년동안 무슨 노력이라도 해 왔다면 시간을 적절하고 또 세심하게 쓴 셈이 되겠지. 젊은 여성이 마음을 쏟을 만한 가치 있는 일이겠고! 그러나 만일 내 생각대로 당신이 말하는 그 결혼 주선이라는 것이 그런 계획을 했다는 것, 어느 한가한 날에 '웨스턴 씨가 테일러 양하고 결혼한다면 테일러 양한테 참 좋을텐데.'라고 혼자서 생각하고 이후 가끔씩 그런 생각을 다시 떠올린 정도라면, 성공이니 뭐니 할 게 뭐 있겠소? 당신이 한 일은 뭐고, 자랑스러울 것은 또 뭐요? 어쩌다 짐작이 맞아덜어졌다는 것, 내세울 수 있는 점이라곤 그것 뿐이잖소."

"그렇담 당신은 짐작이 맞아떨어졌을 때 느끼는 기쁨과 승리감을 한 번도 맛보지 못하셨단 건가요? 참 안됐네요. 더 머리가 좋으신 줄 알았는데. 말씀드리지만, 짐작이 맞아떨어지는 것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랍니다. 거기엔 늘 뭔가 재능이 끼어들게 마련이죠. 또 제가 '성공'이라는 말을 썼다고 뭐라고 하시지만, 성공을 자임할 자격이 제게 아주 없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당신은 두 가지 그럴싸한 경우를 드셨는데, 그러나 제 생각엔 제삼의 경우가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다 하는 것 중간쯤 말이지요. 제가 웨스턴 씨한테 우리 집에 들르시라 권하지 않았다면, 여러 차례 조금씩 용기를 북돋아 드리고, 많은 사소한 문제를 매끄럽게 처리하지 않았다면 결국 아무 일도 안 일어났을지도 몰라요." (p.20-21)




















나는 에마의 말이 뭔지 너무나 정확하게! 알겠는 거다. 


나도 그랬다. 그러니까 a 와 b 를 만나기로 한 날, 나는 갑자기 이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c 생각이 났다. a 와 b 는 이러이러한 사람들이고, c 는 이러한 사람이니, 이들이 만나면 으음, 이런 식으로 좋지 않을까.. 하고. 그 머릿속의 생각을 a와 b 에게 말하니, 좋다고 하면서 '다락방님이 데려오시는 분이라면 믿고 만난다'고 하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휴 좋은 사람들 같으니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 에게는 이런 이유와 과정을 생략한 채, '나 오늘 a와 b라는 사람들 만나는데 같이 만날래?' 물었다. c 는 이유도 묻지 않고 '응 나갈게' 하고 나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사람들, 왜이렇게 나를 믿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그래서 다같이 만났는데, 처음에 명함을 돌리고 어색해하던 것도 잠시, 곧이어 이들의 케미가 폭발하는 거다. 결국 나는 '왜 내 편 안들어줘!!' 하는 말까지 해야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 시간이었다. 다들 내게 좋은 사람 알게해줘서 고맙다고, 즐거웠다고, 또 만나자고 했다. ㅋㅋㅋㅋ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오, a 가 내게 선물을 줬다.




꺅 >.<

인생은 무엇인가요?

와인을 선물 받는 내 인생은 축복 받은 삶 ♡

그러니까 집에 이 와인셋트가 선물이 들어왔는데 a 의 가족들은 아무도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며, 와인 좋아하는 내가 생각나서 가져왔다는 거다. 이거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입밖으로 소리내어 말하는 건 이렇게나 중요하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디로 갈지 몰랐을 와인이 주인을 찾아왔잖앙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만세!!



내가 정말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에마는, 아직 몇 장 못읽었는데, 재밌다. 다시 책읽기에 흥미가 생길 것 같다. 그건 그거고, 출근만 하면 퇴사하고 싶어지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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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후 2016-09-19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와인부자.. 사람부자.. 다락방님 ㅎㅎ 저는 허리디스크 땜에 2주간 약 먹느라 술을 못 먹었는데 이번엔 늑골에 염증이 있다고 해서 또 약 먹어서 와인도 못 마시고 있네유 ㅠㅠ

저도 요즘 책 읽기 싫어 죽겠어요 갖고 다니기도 귀찮고.. 이러면 안 된다 좀 읽자 읽자 막 채찍질하다가, 문득 이거 뭐 숙제해야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책 못 읽는 거에 죄책감 느끼고 괴로워하는지 웃겨서 ㅎㅎ 아유 그냥 싫을 땐 이렇게 내버려두자 하고 있습니다 ㅋ 다락방님처럼.. 갑자기 또 훅 땡기는 책이 있겠거니 하고.

연휴 뒤라 힘들지만 오늘도 무사히 보냅시다 다락방님. 월요병도, 이것도, 저것도, 그냥 다 잘 견디시길... ^^

다락방 2016-09-19 14:3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 와인 부자이면서 사람 부자네요.
아니, 디스크 ㅠㅠ 늑골 염증 ㅠㅠ 우째요 ㅠㅠㅠ 건강 관리 잘해요, 건조기후님. ㅠㅠ 와인은 넘나 좋지만, 아픈 거 치료하는 게 우선이니깐요.
저도 명절 연휴를 전후로 해서 2,3주간 쉬지 않고 술을 마셨더니 슈퍼뚱뚱이가 됐어요. 어휴, 이제 술 좀 적당히 마셔야겠어요. 일주일에 3회정도로 줄여야할 듯 ㅠㅠ

네, 우리는 즐겁자고 독서를 하는거니까, 즐겁게 책을 읽도록 합시다. 즐겁게 책을 읽다가 지치면 때려쳤다가...그러다가 읽고 싶어지면 또 읽고 말이지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니 숙제로 해치울 필요도 없고요. 저는 [에마]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ㅎㅎㅎㅎㅎ

고마워요, 건조기후님. 잘 견딜게요. 이것도, 저것도, 다요!!

스윗듀 2016-09-1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드디어 올라왔네요 다락방님 글! 잠깐 권태로우신가 하고 기다렸습니당 헤헤 다락방님 옷장으로 들어가고싶다능!

다락방 2016-09-19 14:40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저는 참 행복한 것입니다! ㅎㅎㅎ

제 옷장으로 들어오세요. 반짝반짝 와인이 빛나고 있을 겁니다. ㅋㅋㅋㅋㅋ

비연 2016-09-19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책읽기에 흥미가 생길 것 같다니, 굿!이에요~ 그나저나 저 와인들... *.*
출근만 하면 퇴사하고 싶어지는 마음도 저랑 딱 들어맞으시는군요...ㅜㅜ 으앙...

다락방 2016-09-19 16:29   좋아요 0 | URL
아직 집에 남은 와인이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우하하하하.

오늘도 퇴사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힘겹게 사무실에서 버티기 하고 있습니다...하아-

시이소오 2016-09-19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들레르의 시를보면 armoire를 대다수 번역가들이 옷장으로 번역합니다. 한국에는 대응가능한 가구가 없는데 굳이 번역하자면 찬장일것같은데 그래서 윤영애 역자는 찬장이라고 번역하기도 했죠.

옷장이란 역어를 보면서 ` 아니. 도대체누가 와인을 옷장에 넣겠나` 말도 안되는 번역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허걱, 있었군요. 와인을 옷장에 넣어두시는분이. ㅋ

저도 와인 환장하는데 부러워요 ^^

다락방 2016-09-19 16:31   좋아요 0 | URL
와인을 옷장에 넣어두는 사람, 여기 있습니다. 손 번쩍!! ㅎㅎㅎㅎㅎ

그러니까 저는 소중히하고 숨겨두고 싶은데 숨겨둘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말이지요. 아하하하하. 감출 수 있는 곳이라곤 그저 옷장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에 와인 창고 같은 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언젠가는 그런 집에서 살 수 있게 될까요? 아하하하하.

이름 2016-09-19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어쩌다 모여 이야기할 때, 그 순간 케미가 막 돋을 때 너무 좋아요 :)! 저는 언젠가 그렇게 만나게 된 친구들에게 `너희 원래 아는 사이 아니니..?` 물어봤을 때도 있었욬ㅋㅋ

다락방 2016-09-19 16:33   좋아요 0 | URL
그쵸그쵸, 이름님! 이름님도 그 기분 아시는구나! 우하하하하. 반가워요!
반대로 제가 그런 경우도 있어요. 누가 소개시켜줬는데 정작 제가 더 친해지고 소중해지고 케미 돋는 경우요. 낯선 사람을 만나서 잘 맞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인 것 같아요. 우히히히.
이십대에 편의점에서 알바할 때 새로 들어온 세살 연하 남자 아이하고 첫날부터 너무 신나게 놀아서 다른 알바들이 `니네 아는 사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어요. 우린 그 날 처음봤는데.... 좋아하는 사이가 됐죠. 꺅. 난몰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줍은 기억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16-09-2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경험 많아요.
제가 여럿이 어울리는 걸 좋아해서 이런저런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소개시켜주면,
나중에 자기들끼리 더 친해져서 저 빼고 만나기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다락방님도 혹시 마일스처럼 와인 종류마다 맛과 향을 구별하고 막 그러시나요?
와인을 무척 좋아하시니 그렇지 않을까 궁금하네요. ^^

다락방 2016-09-22 16:05   좋아요 0 | URL
어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저는 와인 종류와 맛을 구별하는 건 전혀 못합니다. ㅎㅎ 저에게 와인은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져요. 구별 못해요. ㅎㅎ 달다 안달다는 구별합니다만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