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들은 9년전에 비해 확실히 더 나이들었고.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의 관계도 변했다. 배가 나오고 머리가 빠지고 온 몸에 살이 찐 것 말고도, 그들은 서로에게 '사랑안해'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더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말이 정말로 당신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나온 말은 아니다.


18년전, 기차에서 우연히 처음 만나 하루를 함께 보내고 서로 연락처도 모르는 채로 지내다가, 9년후, 그들은 기적처럼 재회한다. 비포 시리즈의 두번째 편인 《비포 선셋》에서는, 9년후 재회한 그들에게 열린 결말을 제공하고 끝나는데, 세번째 시리즈인 《비포 미드나잇》에서는, '제시(에단 호크)'가 그동안 썼다는 세 권의 책을 통해 그 후를 짐작할 수 있다. 제시는 비행기를 놓쳤고, 셀린느의 방에 커튼을 친 채로 몇 번이고 섹스한단다. 크- 좋구먼. 그런데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 커튼을 다 닫고 몇 번이고 섹스를 반복하는 일, 혹은 호텔에서 한 번도 안 나가고 며칠을 섹스하는 일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진 않는다. 어쩌면 평생에 한 번도 안 일어날 수도 있고. 그러니까 그 어쩌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경험이 평생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만약 그렇게 호텔에서 한 번도 안나가고 며칠을 섹스하면서 지내다가도, 그 둘에게 아이가 태어나면 더이상 그런 일을 하기가 힘들어지니까. 


영화속에서 셀린느가 제시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제 더이상 모닝섹스를 하지 못한다고. 아, 모닝 섹스....그걸 할 수 없다니..... 그러니 젊은 커플들에게 어쩌면 당연했을 것, 이를테면 영화에서 셀린느가 제안했던 것처럼 '밤새 자지 말고 섹스하자'는 것은, 그저 로망이 될 확률이 크다. 인생이여..


핵꿀맛 모닝섹스..



어쨌든, 둘은 이십년전 젊은 시절에 만나 서로에게 반했고 그런 서로를 잊지 못했으며 그래서 재회에 이르렀고, 그리고 지금은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단 하나뿐이었던 사랑을 현실에까지 연결시켜서 잘 지내기도 하는 것이다! 선셋에서 'you'를 자꾸 '자기'라고 번역해서 좀 오글거렸는데, 미드나잇 에서는 '참사랑'이란 표현이 나와서 또 헉 스러웠다. 참사랑... 참사랑? 나중에 나도 써먹어봐야지. 당신은 나의 참사랑이에요.



둘은 여전히 대화를 한다. 이제 생활에 찌들어졌고 둘 사이가 단지 둘만의 사이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 그랬던 것처럼 서로에 대한 얘기를 하는 일은 드물어졌지만, 그리스에 여행와서는 서로에 대한 얘기를 마치 젊은시절인 것처럼 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그리워하며 서로에게 예전 같던 애정을 표현하고 드러내던 것도 잠시, 금세 현실로 돌아와 싸우고 화내며 '너를 누가 견뎌!'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함께 지낸 시간이 오래된다면, 결국 서로에게 지치게 되는걸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과 함께 오래 살게된다면, 열정과 설레임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생활에 찌든 지친 모습만 남을까. 제시와 셀린느는 누가 봐도 낭만적인 사랑을 했던 사람들인데.


그러나 제시는 셀린느와 앞으로 56년을 더 살아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시의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70년 이상을 살았다는 얘기 끝에 나온 거였다. 만약 지금 기차안에서 처음 봐도 반했을 거고, 내리자고 했을 거라고 한다. 이들에겐 다른 부부들처럼 어느 한 쪽이 양보해야만 끝나는 문제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 일 때문에 자꾸 싸우고, '이것이 우리의 이별의 징조일까'하는 두려움도 갖게 되지만, 공통의 경험과 함께 겪어나갔던 중요한 일들이 많다.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들이 많다. 인상적이었던 대사가 그것이었다. 나는 너를 누구보다 잘 안다는. 20년전에는 서로의 존재도 몰랐던 사람들이, 한 번 보고 9년이나 떨어져 지냈던 사람들이, 어느 틈에 이렇게 '너를 누구보다 잘 알아' 라고 말하는 사이가 되었을까. 너무 좋다. 서로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게 된다는 것이. 



첫만남이 반드시 낭만적이거나 특이할 필요는 없지만, 첫만남은 그 자체로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만남이 그토록이나 특이하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꾸 떠올리게 되니까. 


제시는 이전보다 확실히 더 성숙해진 것 같다. 아마도 셀린느와 함께한 시간들이 그를 그렇게 만든게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있을까. 


《비포 미드나잇》에서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는 건, 제시와 셀린느의 대화 이외에 다른 사람들의 대화가 섞여든다는 데 있다. 아직 그들이 연인이 되기 전, 서로를 향한 설레임이라든가 기대 또 그리움으로만 가득했을 때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에 대한 대화를 지속하는 것만으로 영화 한 편이 시작되고 끝났다. 그러나 미드나잇 에서는 다른 연인들이 등장한다. 제시와 셀린느보다 더 어린 커플들이, 그리고 조금 더 나이 든 커플, 그리고 아주 나이 든 커플. 그들은 각자가 사랑하는 방식과 또 지금 삶의 모습, 오래오래 함께 했던 연인이 죽고난 후의 모습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하기 전에는 서로의 얘기만이 중요했지만, 그 두사람이 함께 하고 나서는, 다른 사람들의 얘기도 섞여들 수밖에 없다. 




영화 속에는 내가 아주아주 좋아하는 장면이 나온다. 둘이 내내 함께 걷는 장면, 그리고 그리스 휴가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술마시고 맛있는 걸 먹으면서 수다 떠는 장면.



얼마전에 생일선물로 여행기를 잔뜩 선물 받았는데, 함께 보낸 메세지에는 <너의 여행하는 삶을 응원한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앞으로도 여행 하면서 살고 싶다. 낯선 곳에 가고, 길을 묻고, 예상하지 못한 일 때문에 당황하다 그걸 해결하고, 맛있는 걸 먹고, 이곳에서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장면을 맞닥뜨리는 일은 정말이지 즐겁다. 이걸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건, 또 그만큼의 즐거움이 추가되는 일인 것 같다.


제시와 셀린느가 그리스 아름다운 곳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나란히 앉아 함께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게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서,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사람의 인생은 반쯤은 성공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단 하룻밤, 그리스의 아주 좋은 호텔로 찾아간다. 방해하는 사람 없이 둘만 있을 수 있는,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테이블에 선물로 놓여진 와인을 맞닥뜨리는 그들을 보는데, 내가 다 두근두근하더라. 와- 이게 뭐야, 너무 좋아! 나는 호텔을 좋아하고 와인을 좋아하고 함께 호텔에 갈 수 있는 남자를 좋아하는데, 지금 이들이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바로 몸소 실천하고 있어! 자, 커튼을 닫아, 호텔문을 잠가, 이제 이 하룻밤이 온전히 당신들 몫이라고! 하얗게 불태워, 뼈와 살을 불태워!



그러나 그 둘은, 오전에 싸웠던 문제로 다시 그 좋은 호텔에서, 와인을 앞에 두고, 큰 침대를 앞에 두고, 옷도 반쯤은 벗었다가, 다시 싸우고 만다.



아, 인생이여...........

아, 사랑이여...........




너무너무 좋은 영화였다. 이 시리즈 전체가 싹 다 좋다. 비포 선셋과 비포 미드나잇이 좋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비포 선라이즈가 존재해야만 했다. 그들이 만나야만 그 다음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누가 누군가를 만났다면! 


이미 그것은 하나의 작은 시작이라는 것이다.

괜히 만난 게 아니라는 거다.




당신은 왜 하필 그 날, 그 시간에 거기에 있었으며

어쩌다 나는 그런 당신을 만나게 된걸까.


그러려고 그런 거다. 

우리가 만나려고.


 






아니, 이런 게 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쩌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살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쩌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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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6-08-18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이 좋아하니까 저도 덩달아 더 좋네요. 흐.
오래전, 이혼을 해야 하나...고민하는 중에 콕 짚어 어떤 외부적인 문제라고는 말할 게 없다면서 상담을 하자, 어떤 아저씨가 그랬어요. ˝너희에겐 너희만의 추억이라는 게 있니?˝ 그 질문을 듣고 곰곰히 생각했고, 바로 깨달았죠. 아, 이 순간 즉답이 안 나오는 나에겐, 우리만의 추억이 없는 거구나...
셀린느와 제시에겐 그게 있었죠, 그것도 아주 극적으로.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별로 믿지 않지만, 한 평생을 버틸 만큼 소중한 추억을 둘만이 공유할 수 있어야 커플이 해로할 수 있다는 점 만큼은 그렇지 싶어요. 그리고 비포미드나잇이 그걸 너무나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수많은 대화로 보여주어서 너무너무 좋았어요.

다락방 2016-08-18 08:59   좋아요 0 | URL
치니님, 저도 그게 너무 좋았어요!
일전에 지금은 헤어진 애인과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거든요. 어디서 어떻게 처음 만났느냐가 의외로 꽤 중요하다고요. 반드시 처음 만남이 인상적일 필요는 없지만, 나중에 돌이켜 그 장면을 자꾸 함께 떠올리게 되는 건 관계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축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물론 함께 오래 관계를 유지할 사람들이라면, 그런 중요한 첫만남이 없었어도 일상 속에서 굳건함을 충분히 쌓았겠지만, 그래도 그런 인상적인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다는 거, 너무 좋더라고요. 결국 그 둘이 싸우다가도 화해하는 방식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그 방식은, 그 둘에게만, 서로에게만 통할 수 있는 것이고요.

이 둘은 첫만남이라는 아주 중요한 요소를 함께 갖고 있고, 그 만남에서 갖게된 인상적인 장면들을 계속 가지고 있죠. 아직도 제시의 붉은 수염을 얘기하는 거, 그거 너무 좋아요. 첫 만남에서 제시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하는데, 사실 저는 기억 안나거든요. 후훗.


저는 제시와 셀린느가 진짜 사랑에 빠진 순간은 9년후 재회하고 나서인것 같아요. 다시 만난 그들이 서로에게 사랑이란 감정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 처음 만났을 때는 호감과 호기심이었던 것 같고요. 그러나 그 인상적인 만남으로 인해 잊지 못하고 재회를 꿈꿨다가, 재회하고나서 서로 상대와 얘기하며 그때 더 깊이 빠져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관계로 만들 수 있게한 선라이즈가 좋아요. 그들이 만나게 된 거요.

이 영화 너무 좋아요!
디브이디 다 살까..고민하고 있어요. ㅋㅋㅋㅋㅋ

2016-08-18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8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lavis 2016-08-18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깤..에서 완전 하트 뿅뿅..저는 락방님 책 샀습니다~!!지르세요 지르는게 인생♡♡

다락방 2016-08-19 09:29   좋아요 0 | URL
결국 지름이 답인겁니까? ㅎㅎ
어쨌든 클래비스님은 현명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lavis 2016-08-20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려고 그런거다...
아놔 이런 미친 명문ㅋㅋㅋ짱 좋아요 락방님 좋은거 마니마니 드시고 좋은곳 마니마니 가시고 늘늘 행복해지셔서 우리에게 이런 기쁨과 즐거움을 마니마니 주세요 책 읽는 기쁨.기다리는 설렘..아이 좋아ㅋㅋ

다락방 2016-08-22 13:17   좋아요 0 | URL
우후후후 네네, 클래비스님. 제가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아서 더 행복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