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에 무엇을 먹어야 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헤어진 그날에는 아무것도 넘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람이란 존재는 간사해서 곧 허기를 채울 무언가를 찾는다. 그것이 진짜 배고픔에서 기인하든 마음의 허기에서 비롯되든 말이다. 바로 그때, 아직은 무언가를 만들어 먹을 힘은 없지만 어김없이 배가 고파와 당혹스러울 때 국수만큼 어울리는 음식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왔네, p.120)





















'진유정'의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왔네』는 '그냥 한 번 읽어볼까' 하다가 완전히 제대로 낚인 케이스다. 저자가 국수에 자신의 사연을 실어 적어둔 글들도 무척 좋았지만, 저자의 애정이 가득 담긴 국수는 하나하나 모두 맛보고 싶어졌으니까. 동남아도 베트남도 나에게는 관심 밖의 여행지였는데, 이 국수여행 책을 읽고서 아, 베트남에 가서 국수를 먹어야겠다, 생각하게 된것이다. 어떻게든 일정을 내어 다녀오리라. 하다못해 그 흔하디 흔한 가장 기본적인 퍼pho 라도 한 그릇 꼭 먹고말테다, 하는 이상한 다짐 같은 것을 하며 나는 베트남 여행책자를 샀다.


『셀트프래블 베트남』에서는 내가 가야하는 베트남이라는 나라, 하노이란 곳에 가는 방법 같은 것들만 대략적으로 훑어보았다. 일전에 홍콩과 마카오에 갔을 때, 여행책자가 소개해준 맛집을 찾아갔다가 너무 끔찍했던 경험이 있었다. 사람이 줄 서 있었고 그 모두가 여행 책자를 들고 있었던 것. 아, 이런 거 여기까지 와서 줄 서서 먹어야 하나, 정말 싫다, 했었으므로 그 뒤의 여행들에서 나는 여행책자가 소개해주는 맛집은 가지 않기로 다짐했던 거다. 또한 관광지도 가지 않기로 했다. 관광지에 가면 여행객들만 가득해서 역시 딱히 즐겁지 않았던 것. 그냥 가서 그곳의 사람들이 밥을 먹는 곳에서 밥을 먹자, 가 나의 여행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철저히 혼자 하기로 했다. 나는 책을 읽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오롯이 혼자 준비했다. 혼자서 해외에 나가는 건,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처음이었다. 영어도 짧아서 내가 과연 갈 수 있을지, 가고 싶었지만, 아주 많이 쫄렸다. 으윽, 내가 비행기를 타고 내려서 호텔에 가고 밥을 먹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을...혼자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설레임 반 쫄림 반으로 그렇게 날짜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출발하는 당일에는 압도적으로 쫄림이 설레임을 눌렀다. 으윽, 이렇게 쫄린데, 남아있는 설레임을 붙들고 나는...가야하는 것인가. 그런데 웬걸, 하노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꺄울, 설레임이 점점 커졌다. 설레임이 커지고 커져서는 쫄림을 쫓아내고 있었다. 공항에 내려 미니버스를 타고 호텔에 들어가기로 계획했던 터라 사람들에게 버스가 서는 곳을 묻고, 그곳에 도착해서 버스 기사와 가격을 흥정하고 버스에 오르니, 아아, 졸 흥분되는 거다. 씐나, 짜릿해! 내 옆자리에 앉은 금발머리 여성과 '너 와이파이 되니?' 이런거 물어보면서 '공항에서는 됐었니?' 이런 거 대화하면서 바깥으로 베트남 풍경을 보는데 진짜 너무 좋은 거다. 내가 여기에 혼자 왔고, 버스도 탔고, 버스 값도 흥정했다!! 우하하하하. 물론 버스비는 고정이지만 기사가 호텔까지 데려다준다고 했고, 처음 불렀던 가격에서 절반까지 내려갔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싼감은 있던 터라, 만약 호텔 앞에서 내려주지 않는다면 나는 말한 가격을 다 주지 않겠다, 혼자 불끈 결심했던 거다. 나보다 먼저 내 옆자리 금발머리 여성이 내렸고, 나는 그녀에게 bye 라고 했고 그녀는 내게 good luck 이라고 했다. 아 씨발 졸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버스 기사는 호텔 앞에 나를 내려줬고, 나는 호텔의 픽업서비스의 삼분의 일 가격으로 호텔앞에 도착했다. 우하하하하. 호텔에 도착해서 룸에 들어갔는데, 와아아아아, 이건 잠시 후에 얘기하고, 나는 얼른 국수를 먹으려고 바깥으로 나갔다.



자...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냐..... 나는 여행책자우 국수책자를 모두 들고 나왔다. 무거웠다. 날도 더우니 땀이 나고, 지도를 봐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더라. 하는 수없이 앞에 보이는 약국에 들어가 여기가 이 지도상에서 어디니?를 물어야 했다. 약사들 세 명은 달려들어 아주 친절하게 here 하며 지도에 표시해주었지만, 지도에 표시해준 걸 한참을 들여다봐도 나는 이 지도에서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이내 지도를 접었다. 아니, 내가 지도가 뭐가 필요해? 나는 찾는 음식점도 없잖아? 음식점 정해둔 거 아니잖아? 그냥 걷다가 국숫집에 들어가면 되는거잖아? 그래서 나는 그냥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쉽게 발견할 수 있을것 같았던 국숫집은 좀처럼 눈에 띄질 않았다. 왜냐하면...그건 말이야....내가 베트남어를 모르기 때문이야.


하는 수없이 국수를 파는 것 같은 가게 앞에 서서 국수 책을 펴가지고는 국수의 이름과 간판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대조해보았다. 여기다, 이거야, 이거 국수야! 그리고 이거, 내가 먹고 싶어서 체크해뒀던, 바로 그 국수야. 분보남보!!



분보남보(Bun Bo Nam Bo)

볶은 소고기와 숙주, 상추, 그리고 땅콩이 들어가는 분보남보는 비빔국수다. 주문을 하면 바로 소고기를 자작하게 볶아 국수 위에 얹고, 볶은 땅콩과 얇게 저며 튀긴 샬롯을 아낌없이 올려준다. 비빔국수지만 막 볶은 소고기의 육즙이 국수를 적당히 데워줘 차갑지 않다. 함께 씹히는 고소한 땅콩과 바삭한 샬롯은 입 안에서 경쾌한 춤을 춘다. 분보남보가 나를 들뜨게 한다. 마치 여행을 떠나는 기차 안처럼. (p.97)







아아, 나는 내가 이것을 홀로 찾아냈다는 만족감에 도취되어 춤이라도 출 것 같았다. 분보남보를 한 그릇 시키고는 내친김에 맥주까지 시킨다. 여긴 더웠고, 나는 땀을 흘렸고, 나는 즐기러 왔으니까!!

분보남보는 저 밑에 자작하게 육수가 깔려 있다. 땅콩이 가득 들어 있어서 비벼 섞어 먹으면 입안에 땅콩맛도 가득한데, 고기와 야채 그리고 국수까지 따뜻하게 씹힌다. 정말 맛있어서, 아, 너무나 맛있다, 라고 막 좋아했다. 어느 정도로 좋아했냐면, 이런 정도로.



아, 맛있어. 다 먹고 너무나 맛있어서, 그냥 다른 국수 찾아 돌아다니지 말고 이곳을 떠날 때까지 이것만 먹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국수를 다 먹고 신이 난 나는 바깥으로 나와서는 동네를 하염없이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가 로비에서 우체국의 위치를 물었다. 우린 지금 어딨어? 우체국은 어디야? 그렇게 우체국의 위치를 듣고는 걷기 시작한다. 월요일에 우체국에 가서 엽서를 부쳐야지, 계획했던 터다. 아직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 없던 직장동료1이, 자신의 소원은 외국에서 날아오는 엽서를 받는 것이란 얘기를 일전에 했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트남에 가기전부터, 그거 해줘야겠다, 생각했었다. 천천히 우체국 방향으로 걸으면서, 도중에 세 명에게 더 길을 묻고, 엽서 파는 가게를 봐두고, 그렇게 우체국을 향해 걸었다. 한참을 걸려 찾아낸 우체국 앞에서도 엽서를 팔고 있더라. 엽서를 사고 우체국은 몇 시에 문을 여냐 물었더니 월요일 여덟시에 연다고 하고는 지금도 열었다는 거다. 그래서 우체국에 들어가보니 토요일저녁에는 여섯시까지 근무한다더라. 내가 도착한 시간은 여섯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었고, 나는 아직 엽서를 쓰지 않은 터라, 그렇다면 월요일에 여덟시에 오픈하는지 재차 묻고는 우체국을 나섰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아, 이곳에서 길을 건너는 것은 너무나 무섭다. 신호등 자체가 별로 없고 그냥 자신이 알아서 건너야 하는데, 진짜 오토바이들이 너무 많이 떼를 지어서 다니고 있는 거다. 흑흑. 건너면서 으윽, 하는 소리를 얼마나 많이 냈던지..아아.......그러나 이렇게 많은 오토바이들이 다니기 때문인지 이 오토바이들의 속도가 빠르지 않더라. 길을 건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비켜갈만큼의 속도로 운전들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여기서 길을 건너는 것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여전히 길을 건널 때면 심장이 콩알만해 졌다.



걷다가 마사지샵을 발견해 전신마사지를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봤다. 한시간동안 마사지를 받고 바깥으로 나와보니 밝았던 하늘이 어둑해졌고, 오오, 어딘가에 들어가있었던 젊은이들이 이때다 싶어 다같이 바깥으로 뛰쳐나온 것 같았다. 낮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훠어어얼씬 더 많은 오토바이들이 사방팔방에서 나오더라. 그러자 갑자기 너무 씐나는 거다. 좋아. 짜릿해. 씐나!!! 졸 흥분돼!!!!!!!!!! 덥고 목이 말랐고 흥분한 나는, 이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갈증을 가시게 하기 위해, 눈앞에 있는 맥줏집으로 들어갔다. 맥주는 잘 마시지 않지만 아아, 정말 목이 말랐으므로 일단 맥주를 한 잔 시켜 꿀꺽꿀꺽한 뒤에, 여유롭게 와인을 한 잔 더 주문했다. 그리고 샌드위치와.



이곳에는 외국인들이 많았고, 나는 너무 더워서 헐벗은 채로 다니고 있었고, 바깥에는 낯선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었으니, 크, 이 분위기 자체에 혼자 취하겠더라. 정말 신이났고, 나는 이런 거 너무 좋아해! 하면서 팔짝팔짝 뛰고 싶어졌다. 그리고, 동료에게 보낼 엽서를 이 곳에서 적었다.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한 후에 호텔 바bar 에 가서 와인을 더 마시고 싶었지만, 진짜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잤다. 그래, 고생했다, 그리고 기절해버렸는데,

아무래도 여행지에 와서 혼자 자는 게 긴장이 된 탓인지, 한 시간에 한 번씩 깨게 되더라. 푹,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덕분인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있었고, 그래서 나는 호텔 조식을 먹으러 호텔 레스토랑으로 내려간다. 하노이 여행 블로거들이 하나같이 '호텔 조식으로 먹는 퍼도 기본 이상을 한다'고 하길래, 나 역시 퍼를 한 그릇 말아달라 했다. 물론, 퍼가 말아지는 동안 스크램블 에그와, 베이컨과, 치킨 카레와, 볶음밥을 먹고 있었지만... 그리고 그렇게, 퍼가 내 앞에 놓였다.



퍼(Pho)

호찌민의 하숙집 할머니도 일요일이면 손주들 먹일 국수를 만드셨다. 똑똑 방문을 두드려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내게도 한 그릇 나누어 주셨다. 나는 일요일 오전, 할머니의 국수가 주는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을 좋아했다. 정성스럽게 만든 따뜻한 국수가 있는 완벽한 일요일이 내게 잠시 찾아왔던 것이다. (p.71)



아, 정말 맛있다. 너무나 맛있다. 이건 기본 이상이라는 표현이 실례가 될 것 같다. 진정 맛있다. 이렇게 맛있을 줄 알았다면 치킨카레와, 볶음밥과, 스크램블 에그를 먹지 말것을...그리고 이걸 두 그릇 먹을 것을.... 아.... 너무나 맛있다. 여긴 뭐가 이렇게 다 맛있냐.....


나는 이게 너무나 맛있어서 다음날 조식은 바깥으로 나가 다른 국수를 먹을 계획을 세웠었지만, 다른 국수 먹기 전에 가볍게 한 번 더 먹기로 하고 다음날 아침 역시 퍼를 한 그릇 주문한다. 이번에는 딸려나온 라임과 고추를 넣었다.



아아, 진짜 너무나 좋은맛. 너무나 훌륭한 맛. 영혼이 위로되는 맛. 결국...또 이렇게 만들고 말았다.



국수는...대체 뭐죠? 네?




호텔 조식을 먹고 룸으로 돌아와 조용히, 책을 좀 읽었다. 가져온 책들이 많으니 좀 읽어야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고, 오늘은 어제처럼 돌아다니기 너무 힘들다, 라고 생각했던 터다. 책을 얼마간 읽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자, 이제 다른 국수를 찾아 헤매이자. 나는 어제 갔던 방향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해 무작정 걷는다. 얼마 안걸었는데 또 땀이 쏟아진다. 이곳은 정말이지, 엄청나게 덥다. 그래서 걷다가, 이따 여기와서 시원한 거 마셔야지, 하고는 까페를 봐둔다. 그리고 또 걷는다. 국숫집 몇 개를 찾아낸다. 아, 여기엔 이게 있고, 멈춰서서 책자를 들춰보며 글자 하나씩 대조해가며, 여기엔 이게 있고...한다. 그러다가 어느 국숫집 앞에 멈춘다. 오, 여기는. 분보후에가 있다. 책을 뒤져본다. 내가 먹고 싶다고 표시해놨던, 바로 그 국수다. 꺅. 일단 이걸 맛보기 전에 까페로 다시 돌아갔다. 그 시간동안 길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저 간판을 기억하자, 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방향치가 그걸 죄다 기억할 리가 없다. 내가 여기로 왔던가? 이리로 가면 거기가 나오는건가? 그러다 한바퀴 뺑 돌기도 하고, 침착하자, 라고 나를 다독이며 간신히 아까 봐둔 까페를 찾았다. 까페에 들어가서는 시원한 아이스카푸치노를 시키고 좀 쉰다. 


그리고 이제, 분보후에를 먹으러 간다. 오예, 분보후에!



분보후에(Bun Bo Hue)

살짝 데친 야채를 넣고 맛본 첫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힘줄이 섞여 쫄깃쫄깃한 소고기는 또 얼마나 맛있던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싹 비워버렸다. 학교에 가기 전이라 땀을 그렇게 쏟으면 안 되는데 화장이 지워지는 것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 이후로 분보후에를 혼자도 먹고, 학생들과도 먹고, 호찌민에 놀러 온 친구들과도 먹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먹으면서도 질린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이렇게 차려진 상. 가만있자, 살짝 데친 야채를 넣어서 먹는 거라고 했지? 나는 식당 직원에게 따로 나온 야채를 가리키며, 이거 여기다 넣어 먹는거냐 물었다. 직원은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다 쏟아부었다.




역시 맥주가 함께했다. 매운 고추가 들어있어서 맛이 화끈했는데, 분보후에는 내가 하노이에서 먹어본 국수중에 가장 별로였다. 그렇다고 맛이 없는 게 아니고, 다른 국수들이 워낙 뛰어나서...



자, 이게 이틀차의 마지막 국수였다. 나는 가기전에 꼭 맛보고 싶은 국수가 있었다. 퍼싸오보가 그것인데, 그래서 분보후에를 먹고나서는 호텔로 돌아와 또 가보지 않았던 다른 길로 들어가 걸어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퍼싸오보 집을 찾아냈다. 좋았어, 너는 내가 내일 아침에 먹으러 와주겠어!


그리고 다시 우체국엘 가본다. 이번엔 길을 아니까 호텔에서부터 얼마나 걸리나 재보기로 한다. 내일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열한시전에 호텔에서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그전에 우체국에 가서 엽서를 보내고, 퍼를 한그릇 더 먹고, 퍼싸오보까지 먹어야 하니, 시간을 재보는 건 필수다. 이 모든 걸 빠짐없이 해야해. 그렇게 우체국에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보고 돌아와서는, 머릿속에 시간표를 짠다. 좋았어. 일어나서 일단 호텔 조식으로 퍼를 먹고, 우체국에 가서 엽서를 보내고, 돌아와서 샤워를 한 다음에, 퍼싸오보를 먹자!!


이런 계획을 세워두고 호텔로 돌아와 땀에 젖은 몸을 씻는다. 그리고 스쿼트를 한 다음에 땀을 흘리고 또 씻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스테이크를 먹을 거거든!!!!!!!!! 그전에 일단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볼까. 나는 호텔 bar 로 내려가 화이트와인 한 잔을 시키고 책을 읽는다.




크, 여행지 호텔 바에서의 독서와 와인이라니..졸 근사해... 그리고 와인을 다 마시자 직원이 와서 한 잔 더할래? 묻는다. 나는 아니라고, 디너가 되냐고 묻는다. 직원은 당연하다고 말하고 메뉴판을 가져다주고 나는, 호주산등심을 주문한다! 꺄울 >.<


스테이크가 나오기 전에 전채음식으로 이런 걸 준다.



그동안 국수에 들어있던 고수는 무리없이 맛있게 잘 먹었는데, 이렇게 생야채를 곱게 쌓아둔 것에 들어있는 고수는 좀 당황스럽다. 못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앗, 당황스럽네? 정도랄까. 그리고 오른쪽에 튀긴 말이는 정말 맛있더라. 레드와인을 시켜 이것들을 먹고 있노라니 스테이크가 등장한다. 두둥-



어? 비쥬얼이..초큼...마음에 안드네? 

나는 와인을 마시고 고기를 먹어본다.



어? 맛이...없네? 무슨 스테이크가 이렇게 맛이 없지? 하하하하하. 나는 맛없는 스테이크에 당황한다. 얼마나 맛이 없냐면, 스테이크를 남길 정도로 맛이 없었다. 당황스러워.....내처 와인만 더 시켜 마신다.



와인을 세잔쯤 마셨는데 호텔 레스토랑에서는 케니지의 색소폰 연주가 들린다. 그러자 갑자기 슬퍼졌다. 아, 이건 위험하다. 이건 위험해. 이런 슬픔, 위험해. 취기가 가져온 슬픔. 이건 곤란해. 그러면 나는 망가질지도 몰라,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쯤에서 술을 그만 마시자. 절제하자. 절제녀.... 나는 계산서를 가져다달라 말하고 룸으로 올라간다.



다음날 아침, 계획했던 대로 퍼를 먹고(사진은 저 위의 퍼사진) 우체국에 가서 동료직원에게 엽서를 보내고, 사실 배가 고프지 않지만, 그래도 퍼싸오보를 먹으러 간다. 이걸 안 먹을 수가 없어. 너무 먹고 싶었다고!! 그렇게 시킨다, 퍼싸오보!!



퍼싸오보(Pho Xao Bo)

재빨리 소고기를 볶고, 라우까이Rau Cai라고 불리는 야채를 숨이 죽을 정도로만 살짝 볶고, 거기에 미리 볶아둔 면을 넣어 한 번 더 볶아 수분을 날려준다. 이 과정으로 면발은 더 쫄깃해진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삭힌 고추 소스를 더해주면 금상첨화다. 입 안에 퍼지는 달콤하고 매콤한 자극에 야채의 신선함까지. (p.150)




아 이것도 너무나 맛있다. 이건 아이들도 좋아할 맛일 것 같다. 그러니까..음...뚝불에 국수 말은 느낌..하고 비슷하다고 해야하나. 맛있다. 야채가 많아서 너무 좋아. 야채를 듬뿍듬뿍 먹었다. 맛있어!! 나는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계속 먹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마지막,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에서까지. 있는 돈을 싹 다 털어서 국수를 한 번 더 먹고!!






내가 갔던 호텔은 2박에 12만원 정도였다. 나는 혼자였지만, 혼자 잘 거였지만, 더블침대를 예약했다. 나는 나에게 원나잇의 가능성을 열어두었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영화나 그런 거 보면 여행지에서 만나가지고 이국의 남자와 하룻밤을 격렬하게 보내기도 하고 그러든데, 어디, 나에게도 그런 가능성을 열어둬보자, 하고는 더블침대를 예약했던 거다. 와, 침대는, 내가 여태 자보았던 그 어떤 침대보다 컸다. 너무 컸다. 정말이지 컸다. 진짜 컸다.



가로로 누워도 세로로 누워도 대각선으로 누워도 공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아아, 이런 침대라면 남자랑 끌어안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해도 충분하겠다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틀 내내 혼자 뒹굴었다. 가로로도 누워보고 세로로도 누워보고 대각선으로도 누워보고...그 모든 걸 그냥 혼자 다 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나 역시 그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 레스토랑도 가고 bar 도 가고, 술도 계속 시켜 마셨었지만, where are you from? 하면서 웃으며 다가오는 꽃청년은 내겐 없었다. 덕분에 저 큰 침대에서 그냥 혼자 마구 뒹굴었다.


원나잇은....뭐에여?




혼자 하는 여행은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스스로가 뿌듯했고 그래서 즐거웠으며 그래서 행복했다. 어디든 또 가도 이제 괜찮을거란 생각도 했다. 그러나 혼자 잠드는 것은 아직 내게 편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대화 상대가 없는 것은 아쉬웠다. 혼자 가니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내가 가고 싶은 시간에 갈 수 있어서 좋았지만, 대화 상대가 없으니 하루종일 몇 마디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갔고, 아마도 그래서 한국에서보다 소화가 덜 된게 아닌가 싶다. 배고픔을 잘 느끼지 못했어.... 내가 베트남에서 한 말이라고는, 하우 머치? 웨얼 이즈 레스트룸? 원 비어...같은 것이 전부라......대화가 그리웠다. 대화를 할 수 있었다면 소화가 잘 되어서 더 많이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나는 혼자 되게 잘 노는 사람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대화를 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비행기를 타고 인천 공항에서 내렸다. 짐을 찾고 공항리무진을 타러 갔는데 아뿔싸, 좀전에 출발해서 30분을 기다려야 하더라. 그래, 기다리자, 하고 기다리는데, 버스 도착 4분을 남기고 배가 꾸룩꾸룩 했다. 화장실을 급하게 갔다. 설사였다. 아아, 공항에 내리자마자 화장실가서 설사..했는데 또...이게 대체 뭔일이지. 내가 배가 안고픈데도 너무 먹어댔나..하는 후회가 찾아왔다. 그래도 버스 시간이 되어 얼른 뛰어가니 버스가 도착 나는 잽싸게 탔다. 버스에 앉자 진정되지 않은 배가 너무나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식은 땀이 막 흘렀다. 아아 다음 버스를 탈 걸 그랬나, 아주 늦더라도 지하철을 탈 걸 그랬나.... 나는 이제 어쩌지...버스는 이미 공항을 출발했고, 이제 국도를 달리고 있다. 밤이 깊었다. 내 배는 잔뜩 긴장한 채였다. 여기는 사람도, 택시도 다니지 않는 숲길...나는 설사....화장실.......멘붕이 왔고 울고 싶어졌다. 머릿속에서 여러가지 해결방법을 찾았다. 일단 버스안에서의 설사가 가장 안전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냄새를 어쩔 것이냐. 모두에게 지독한 피해를 준다. 그렇다면 내려서 일을 보는 게 답이다. 그러나 여긴 국도, 사방에 나무들만 있고 사람은 지나다니지 않으며 신호도 주유소도 없는, 택시도 다니지 않는 곳이다. 무섭다. 내리고 싶지 않아. 길바닥에 설사하고 싶지 않아. 진짜 울고 싶었다. 그래서 기사님께 말씀드릴 생각을 했다. 가다가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세워주세요, 그 다음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라고. 사람이 있는 곳이면 거기가 어디든 일단 내려서 설사를 한 뒤에, 경찰 차를 부를 생각이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니 무작정 남동생에게 데리러 오라고 할 수도 없고, 히치 하이킹을 하자니 더럭 겁이 나니, 경찰을 불러서 나 좀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까지 데려다달라 하자, 라고 생각을 한 거다. 경찰아저씨, 저 좀 살려주세요, 의 심정으로. 그래, 이 방법이 가장 안전하다. 무섭지만 안전해. 울고싶다.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러면서 자꾸 시간을 체크했다. 어느덧 공항을 출발한지 삼십분이 지나고 사십분이 지나고..이제 서울이 나올 때가 됐는데, 어쨌든 서울로만 가면, 그러면 어디서든 내려도 되는데... 나는 계속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하고 있어, 잘참고 있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뎌보자, 하며 자꾸만 나를 쓰다듬는다. 내심 혼자라서 다행이란 생각도 했다. 이 고통을, 이 괴로움을, 이 걱정을, 이 두려움을 누군가에게 같이 하자고 하기는 미안하니까...



너에게 내 불안한 미래를 함께 하자고 말하긴 미안 했기에... (신해철,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중에서)




얼마나 지났을까. 버스에서는 이제 곧 수서역이라고 안내방송을 해준다. 만세! 해냈어! 나는 울지 않았어! 중간에 내리지 않았어! 안전한 곳에 이르렀어! 이제 됐어! 여기서부터는 편안해!! 이제 아무데서나 내려도 된다는 생각에, 어디에서 내려도 어떻게든 해결 가능하단 생각이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하철역도 있고 까페도 있잖아.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도 되고 여기서는 택시를 타도 되고. 익숙한 곳이니 얼마나 좋아. 마음이 편안해지자 중간에 내리지 않아도 되었고, 그렇게 결국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열한시였는데, 나는 짐을 풀고는 내가 가져갔던 옷을 다 꺼내어 세탁기를 돌렸다. 빨래야 내일해도 되는 거지만, 내가 땀낸 옷, 여행 다녀온 옷, 당장 오늘 다 빨아 널고 자고 싶었던 거다. 빨래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나와 빨래가 다 되기를 기다리며 나머지 짐들을 풀었다. 빨래가 다 되자 널었고, 그렇게 잠이 든 시간이 새벽 한 시경. 아...지친 하루였고, 지독한 하루였다. 다음날인 어제도 피로가 풀리지 않아, 집에 돌아가 아빠와 남동생과 삼겹살을 먹고 혼자 소주 한 병을 마신 다음에 바로 쓰러져 자버렸다. 열시도 안 된 시간에. 일어나니 어제 먹은 삼겹살이 그대로 배 안에 있는 느낌이더라. 



그래도 오늘은 오늘의 식사를 했다.


베트남에서, 인천공항에서, 그리고 집까지 오는 길에서, 내가 노브라로 다닌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후훗. 브라를 벗어 던져버리자!!



난 진짜 버스가 싫다. 이제 안탈거야 진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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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6-13 08:23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저도 베트남 여행 생각해본 적 없었다가 국수 책 읽고 완전 쑝 가서 다녀왔네요. ㅋㅋㅋㅋㅋ 가실거라면 저 국수책 보고 가세요. 어떤 국수 먹고 싶은가 미리 체크해보고 가시길 조언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버벌 2016-06-14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담고 ... 베트남 검색을 하고 있어요. 정말 가고싶어요. 베트남 여행은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왜 이리 가고싶죠? ㅠㅠ

다락방 2016-06-14 10:28   좋아요 0 | URL
저는 성수기에 다녀와서 비행기값이 비쌌지만 ㅠㅠ 버벌님은 비수기를 선택하신다면 비행기도 저렴하게 다녀오실 수 있어요. 호텔비, 베트남에서의 식비..모두 저렴해서 한 번 가볼만 합니다, 버벌님. 국수여행 책 사서 한 번 훑으시고, 마음에 드는 국수를 찜하신뒤에, 떠나세요!! ㅋㅋㅋㅋㅋㅋ

버벌 2016-06-14 15:51   좋아요 0 | URL
책 구입해서 저녁에 받아볼 예정입니다. 국수를 찜하겠어요 ㅋㅋ

다락방 2016-06-14 20:20   좋아요 0 | URL
꺅 >.< 버벌님이 거기서 어떤 국수를 찜하게 될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이힛. 다 읽고 말씀해주세요.

잠자냥 2019-06-0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저 분보남보 집은 제가 갔던 분보남보 집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철판 테이블 비주얼이 비슷하네요. 분보남보 먹으러 하노이 또 가고 싶네요 ㅠㅠ 그나저나 더블침대와 설사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큰 거 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06-08 12:28   좋아요 0 | URL
분보남보 너무 좋지요? 저는 한국에서는 쌀국수 잘 안먹은데 이상하게 쌀국수 먹으러 베트남은 정기적으로 가고 싶고 그래요. 어디에 들어가든 다 너무 맛있어요! ㅠㅠ 감동 ㅜㅜ 제가 작년에만 베트남을 세 번인가 네 번 다녀왔어요. 네, 쌀국수 먹으러요. 인생... ㅠㅠ

많이 먹는 싱글에게 침대와 설사의 간극은 늘 생기기 마련입니다. 엣헴.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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