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일어난 일, 그에겐 일어날 수 없는 일
먼댓글로 연결한 페이퍼는 무려 2010년에 작성한 것이다. 내가 기적은 일어난다는 내용의 페이퍼를 썼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고, 그것을 영화 《워크 투 리멤버》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저 오래된 페이퍼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댓글을 읽다가 '사랑은 키스로 오는가봐요' 라고 써놓은 걸 보고 갑자기 빵 터져버렸다. 나란 여자, 2010년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사랑은 키스로 오기도 하지만, 키스가 반드시 사랑을 불러오는 건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나는 그만큼 더 늙었다.
아, 이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고.
남자 주인공은 자신과는 많이 다른 여자주인공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시한부 인생임을 알게 되면서 그녀가 가진 소원들을 이루어주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죽고난 후 그가 여자의 아버지를 찾아와서는 '다 해줬는데 기적을 보는 것을 해주지 못했다'고 하자 여자의 아버지가 '자네가 그 애의 기적이었네' 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나는, 기적이란 게 일어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기적은, 간절히 바랐을 때 이루어지는 거라고 생각하고.
저 오래된 페이퍼에도 인용되었지만, 원서에서 기적은, 남자의 이런 독백으로 끝맺는다.
I now believe, by the way, that miracles can happen.
남자가 지금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처럼, 나도 믿는다. 그리고 그 기적을, 나는 최근에 본 영화 《비커밍 제인》에서 만난다.
제인은 엄청난 부자 '위슬리'로부터 청혼을 받는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어느새 가난한 남자 '톰'에게로 향해있다. 가족들은 제인이 위슬리와 결혼하기를 원한다. 그녀가 위슬리와 결혼한다면 돈 걱정 없이 평생 여유롭게 잘 살 수 있으니까. 그러나 톰과 결혼하게 되면 제인은, 아침부터 잠들기전까지 노동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인은 사랑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돈이 아니라 사랑으로. 돈은, 스스로도 벌 수 있는 것이니까.
청혼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는 무도회를 간다. 그곳에서 어쩌면 떠나버렸을 남자, 톰을 찾는다. 위를 보고 뒤를 보고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보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표정은 어둡다. 그녀는 자신의 파트너로 앞에 선 남자 위슬리와 춤을 춘다. 춤을 추는 그녀는 즐겁지 않다. 무도회에 왔고, 누군가의 파트너가 되었고, 춤을 추고 있고, 그 춤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다수의 것이었으니,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스텝을 밟는다. 빙그르르 돌고 파트너를 바꾸고, 그렇게 사람들 틈 속에 끼어서 다음 동작을 하며 파트너를 바꾸던 중, 자신의 눈앞에 어느새 톰이 와있음을 보게 된다. 그가, 내 눈앞에 있다, 는 것을 그녀가 알아챈 바로 그 순간, 그녀의 표정은 환해진다. 와- 내가 다 가슴이 벅차가지고 두근두근했어. 이건, 기적이야!
그는, 없었다. 그녀가 눈을 들어 찾던 그 모든 곳에 그는, 없었다. 그러나 그를 포기하고 체념하고 시간을 버티고 있던 그 때에, 그는 그녀의 앞에 나타난다. 나타나서 말을 건다. 나타나서 말을 걸고, 그녀로부터 사랑 고백을 듣고, 자신 역시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말한다. 내 심장과 영혼은 당신의 것이라고.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좋은 장면이 바로, 눈 앞에 그가 나타나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찾아 헤맸던 그가 보이지 않아 체념했을 때 그때 불쑥, 눈 앞으로 나타나는 남자. 와- 이게 바로 기적이라고. 소리내서 나는 꺅꺅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때 제인이 눈앞에서 톰을 보면서, 와- 이건 기적이야- 라고 나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가슴 벅참이, 그 순간의 행복이, 그 기적의 실현이 내게는 몹시도 행복했다. 사랑은, 순간을 기적으로 만드는 것. 눈앞에 나타난 남자가 톰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결코 기적일 수 없었을 것이다. 기적은, 사랑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로구나. 나는 그녀의 기적 앞에 박수를 보낸다. 그녀의 기적의 순간, 나는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그녀의 기적과 함께 한다. 두둥실- 내 마음이 떠돈다. 너의 마음 나의 마음 울렁울렁 두근두근 쿵쿵!!
그러자, 이 기적을 마주하지 못했던, 그 순간이 비참하고 처참했던 한 남자가 떠오른다. 그는, 《시작은 키스》에 등장했다.
남자는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그녀를 만나고 싶어 그녀의 사무실 앞에서 하염없이 서성인다. 왔다갔다, 어떻게든 그녀를 마주치고 싶어 기다리는데, 직장 동료가 전하는 소식은 '그녀는 출장중' 이라는 거였다. 하아-
그의 전략은 훌륭했다. 계속해서 복도를 서성일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어딘가 향하는 것처럼 걷기란 어려운 일이다. 정확한 행동으로 집중하고 있는 듯 보여야 했다. 가장 힘든 일은 짐짓 서두르는 척 움직이는 것이었다. 오후 끝 무렵이 되자 그는 지쳐버렸고, 바로 그때 클로에와 마주쳤다. 클로에가 그에게 물었다.
"괜찮아? 좀 이상해 보여 ‥‥‥"
"응, 괜찮아. 다리 근육 좀 푸느라고. 그러면 생각이 잘 돌아가거든." (pp.103-104)
"난 108호 때문에 골치가 아파. 나탈리 팀장님하고 상의 좀 해보려고 했는데, 오늘 안 계시네."
"그래? 팀장님이 ‥‥‥안 계셔?"
"응‥‥‥지방 출장 가신 것 같아. 난 그만 가볼게. 골칫거리를 해결해봐야지."
마르퀴스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오늘 왔다 갔다 한 거리를 합한다면 그 역시 너끈히 지방에 갈 수 있었다. (p.104)
마르퀴스에게 '그 순간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르퀴스는 결국, 그녀의 옆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제인은, 그 순간의 기적에 놀라고 행복하고 감격했지만, 그의 옆에 앉을 수 없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기적이 얼마만큼의 크기, 얼마만큼의 지속성을 가지고 나타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기적은, 일어나는 그 순간 놓치지 않고 꽉 붙들어야 한다. 기적은, 기적의 특성상, 수시로 찾아들지 않으니까. 전 생을 통틀어 단 한 번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꽉 잡고, 놓지 않기. 그것이 기적을 마주한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워크 투 리멤버》에서의 기적은, 그녀가 노래를 부르던 그 순간이 존재했으므로 시작됐다.
☞ http://youtu.be/9CVbe00lK9I
(유튭 이전소스 보기가 안돼..왜죠? ㅜㅜ)
150데니아는 이제 춥구나. 기모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