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대화가 모린에게 오래 남았다. -레이철 조이스,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中

 

 

 

 

 

 

 

'매튜 맥커너히'가 분한 남자 주인공 '쿠퍼'는 뛰어난 파일럿이며 우주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가 집 앞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장인어른에게 '우주를 생각하면 흥분돼요'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나는 정말 놀랐다. 나는 우주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므로. 물론 나도 알고 있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가 다른 모두에게도 관심 분야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의 관심 분야와 내 관심 분야는 아예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책에 관심이 많고 영화에 관심이 많고 남자에 관심이 많지만(응?), 누군가는 애니매이션에, 인형에, 축구에, 야구에, 암벽등반에, 동물에 관심이 많을 수 있다는 걸 지극히 잘 알고 있단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에 나는 '우주'를 끼워두질 않았다. 우주는 내게 아주 먼 곳에 있는 것이었고, 먼 곳에 있으므로 먼 것이었다. 우주선 이라는 단어, 외계인이라는 단어는 내 귀에 와 닿는 단어가 아니었고, 그런 소재로 만들어진 책이나 영화를 나는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저기 저 스크린 속에서 맥주를 마시는 저 초섹시한 남자가, 우주를 생각하면 흥분된다고 말한다. 와- 뭐지, 우주를 생각하면 흥분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쿠퍼의 말이 내게 오래 남았다. 지금까지도.

 

 

영화속에서 나오는 대화를 모두 다 이해할 순 없었다. 왜 어느 행성에서의 한시간이 지구에서의 칠년과 같은지, 그 시간의 상대성 이론에 대해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더라. 다만, 그 행성에서 사고로 시간을 지체했을 때, 그래서 이십년이상을 잃어버렸을 때, 그때 눈물이 났다. 어린 딸에게 '돌아온다'고 약속했는데, 이십년 이상이 이미 훌쩍 지나버렸다는 사실을 알게된 그 허망함 앞에서, 아빠가 돌아오겠다고 한 약속을 잊을 거란 그 절망 앞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무엇보다 그 잃어버린 이십년 동안, 자식들의 중요한 일 앞에, 그는 있어줄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 아들과 딸을 사랑했지만, 아들이 졸업을 하고 아이를 낳을 때도 아빠는 거기 없었고, 딸이 박사가 됐을 때도 아빠는 거기 없었다. 누구보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아이들이 커가는 걸 볼 수 없는 아빠라니. 맙소사.

 

 

가지말라고 말하는 어린 딸아이의 울부짖음이 가슴 아팠고, 지구로부터 아주 먼 곳에 떨어져서 이십년 이상이 훌쩍 지나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아버지 앞에서도 울었다. 나는 우주에 대해 쥐뿔도 모르고 칠판 가득 쓰여진 수학인지 화학인지 모를 공식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며, 시간의 상대성 이론은 무슨 변종괴물들이나 쓰는 말 같았지만, 그 이론들 틈틈이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배신하고 구원하려고 하는 모습들 때문에 자꾸만 마음이 움직였다.

 

게다가 이 영화속 매튜 맥커너히가 보여주는 '아버지'의 모습은 내 로망의 실현이었다. 강하고 자상한 아버지. 아...정말 이런 아버지를 갖고 싶다, 라고 말하고 그의 프로필을 검색해보니 나랑 별로 차이가 안나는구나..내 아버지가 될 수가 없는 나이야. 나는 아마 앞으로 자식을 가질 일이 없을것 같지만, 만약 내가 자식을 갖게 된다면, 내 아이의 아버지는 반드시 저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런 사람이 아니라면 내 아이의 아버지로 만들어주지 않을테닷, 하는 굳건한 의지 같은 게 생겼달까. 만약 저기에서 조금 부족하다면 '인터스텔라 보고 배워' 라고 해야겠다. 아버지가 아이를 보호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건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 강하고 큰 아버지가 어린 딸을 보호해주는 사소한 장면들에 마음이 휘청휘청했다. 먼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안아서 데리고 가는 장면, 차안에서 잠든 딸아이에게 한 손으로 운전하며 조심스레 한 손으로 이불을 덮어주는 장면 같은 것들. 그런 아버지인걸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우주에서 까먹은 이십년에 너무 분한 마음이 생겼다.

 

 

어린 딸은 어쨌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우주로 가는 아버지를 말린다. 울면서 가지말라고 말한다. 그 장면이 나는 또 무척이나 좋았다. 제 할머니가 집에 돌아가겠다고 하면 내 조카도 어김없이 가지마, 라고 울면서 소리친다. 이제는 제법 참기도 하지만 엉엉 울며 가지말라고 말할 때는 진짜 가슴이 찢어지는데, 나는 내 조카가 그랬듯이, 영화속에 딸이 그랬듯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여과없이 그대로 드러대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마냥 좋았다. 그래, 슬프면 슬프다고 말하고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게 싫으면 떠나보내는 게 싫다고 엉엉 우는 거, 그게 맞는 거지. 그런데 왜 나는 그렇게 못할까.

 

 

무엇보다 인간을 구원하는 게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이 이 영화의 큰 미덕이다. 나는 그런 메세지들에 아주 크게 기댄다.

 

 

 


매튜  맥커너히를 사랑하게 됐다.

 

 

 

 

 

 

이 영화는 재미있다. 많이 웃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미덕은 '평범한' 남자와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거다, 라고 쓰고보니 남자는 의사..가 됐고 여자는 어린 나이에 팀장의 자리에 올랐으니 안평범한가...여튼 남자와 여자가 그간 로맨스 영화에서 보여졌던 것처럼 미남 미녀가 아니라는 사실에 공감이 크게 된다.

 

남자는 여자를 보고 반했지만 여자에겐 애인이 있었다. 그런 여자가 친구가 되자고 내미는 손을 남자는 잡는다. 그들은 사이좋게 지내고 대화도 잘 통해 아주 친한 사이가 되는데, 감정이란 게 언제나 그렇듯이 '그렇게 오래' 숨길 수는 없는 법이다. '권여선'의 소설 《레가토》에서도 그런 말이 나온다. '그렇게 오래 숨길 수 있는 건 없어.' 라는. 자신을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남자가 한 말이다. 그래서 이 친구들에게도 위기가 닥친다. 여자는 남자에게 '처음부터 나를 여자로 봤으면서 나를 속였'다고 화를 내며 남자 앞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러다가 자신이 그를 좋아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 둘이 재회했을 때 남자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 관계가 뭐든간에 나는 지금 이걸 잃고 싶지 않아.

 

 

 

 

 

 

 

 

잃고 싶지 않은 사람, 잃고 싶지 않은 관계가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대화를 나누며 미소를 짓는 남자와 여자를 볼때마다 매우 흡족해진다.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사실 이런 게 아닌가 싶어진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대화할 수 있는 관계. 그것이 거창하게 세계 평화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도, 단순히 오늘 면도하지 않은 턱수염에 대한 것이어도, 들어줄 수 있고 맞받아 대응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물론 그 대화가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것이어도 좋고 말이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라면..

우주에 대한 얘기에는 드립력이 발휘될 수 없어....ㅠㅠ 매튜 맥커너히, 안녕... ㅠㅠㅠ

 

 

 

 

 

 

 

 

하아- 자정을 넘겼으니 지금은 월요일...인건가.....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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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4-11-17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머피가 브레이킹던 시리즈의 르네즈미더라구요. 많이 자랐어요. 총명하고 이쁜 얼굴로~
인터스텔라를 보고 돌아오는 길, 얼마나 벅차던지요. 아, 쿠퍼 짱...
아, 그리고 앤 해서웨이 짱 예뻤어요. 짧은 머리가 훨씬 낫더라구요. 전성기 때 데미 무어 같아요.^^

다락방 2014-11-17 10:37   좋아요 0 | URL
르네즈미 폭풍성장 했죠!! 그리고 똘똘한 역할이 아주 잘 어울렸어요. 그 나이에 풀어내는 모스부호라니..난 뭔 말인지도 모르겠더만...나중에 `유레카` 외치는 나이든 머피도 참 근사했어요. 저는 똑똑한 사람한테 진짜 무한 매력 느끼는 것 같아요. 모르는 거 물어봤을 때 대답해주는 남자가 섹시한 것처럼요. 히융

안그래도 앤 헤서웨이 나오는 [비커밍 제인] 요즘 다운 받아 보는중이거든요. 글쎄 굳 다운로더에서 무료더라고요! 그거 보던 중에 인터스텔라 보니까 앤 해서웨이가 또 나오지 않겠어요? 숏 컷 잘 어울리더라고요. 난 안될거야..라고 생각했어요. -0-

마태우스 2014-11-17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 배우가 매튜 메커너히군요 전 뜬금없이 밴 애플릭인 줄 알았다는.... 글구 전 딸이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됐다˝고 하는 데서 마음이 아팠어요. 아무튼 참 재미있게 봤고, 보면서 이 극장은 왜 3D가 아니냐고 흥분했더랬지요. 저역시 다락님처럼 우주에 대한 관심이 없어요. 잘 모르는 곳은 가지 않는 주의라 전 절대 안갔을 거에요. 가장으로서는 제가 더 좋지 않을까 싶네요. 인류를 구원하는 사람은 될 수 없는 그런 인간형이 바로 저...^^ 님도 그러신 거 같은데, 같이 지구를 지켜요

다락방 2014-11-18 09:15   좋아요 0 | URL
저도 인터스텔라 보기 전에 왜그런지 모르겠는데 벤 어플렉 주연이라고 생각했어요. 진짜 왜그랬는지 모르겠네요.
맞아요, 마태우스님. 딸이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됐다` 고 할 때 어휴, 막 진짜 마음이 무너지더라고요. 마태우스님 말씀처럼, 훌륭한 파일럿 아버지 보다는 옆에서 내가 자라는 걸 봐주는 아버지가 더 좋다는 생각을 저는 했어요. 실상 나에게 필요한 건 전 인류를 구원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나 하나 잘 구하고 식구를 잘 보살피는 가장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요.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을 한 아버지는 자랑스럽긴 하지만, 무척 야속하고 원망스러울 것 같아요. 그 시간 동안 내 옆에 없었다는 사실이 말이지요.

네, 지구를 지킵시다, 마태우스님!!

그렇게혜윰 2014-11-1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남은 아니지만 매튜메커너히는 쭉 멋이 있는 것 같아요.아~~ 영화보고싶다.^^

다락방 2014-11-18 09:16   좋아요 0 | URL
아니, 그렇게혜윰님!! 저는 매튜 맥커너히야 말로 미남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완전 근사하지 않아요? 이렇게 나이 드는 남자라니, 이런 남자가 아빠라니, 딸이 부럽던데요! ㅎㅎ
이 영화 좋습니다, 그렇게혜윰님!! >.<

푸른바다 2014-11-18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링차변에서의 매튜 메커너히가 훨씬 더 잘 어울리더군요. 솔직히 인터스텔라 별로였어요. 질소를 잔뜩 넣어서 크기는 빵빵한데 정작 먹을 과자는 별로 없는.^^;

다락방 2014-11-20 11:58   좋아요 0 | URL
저는 우주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으므로 어떤게 질소이고 어떤 게 과자인지 구분이 안되서 잘 모르겠어요. 다만 인간들의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링컨차에서의 매튜는 진짜 최고죠!

2014-11-18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0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1 0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4-11-18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습니다. 우주라는 것이 사전적 의미를 부여하기보단 주관적 판단으로 따진다면 어디에도 있는게 우주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면 겹겹 둘러친 살코기와 비계의 앙상플이나 소고기의 불규칙적인 방사형 마블링에도 우주는 존재하는 것이겠죠. 고로 쿠퍼가 말하는 ˝우주를 보면 흥분돼요˝ 란 말을 듣고 다락방님이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퍼의 말은 곧 다락방님이 말하는 ˝고기를 보면 흥분돼요˝ 와 전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락방 2014-11-20 11:5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뭔가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싶으면서도 뭐 아닐 건 또 뭐람? 하게 되는 댓글이네요, 메피스토님? ㅎㅎㅎㅎㅎ 저를 흥분시키는 건 많죠, 메피스토님. 고기도, 술도, 재이슨 스태덤도... ( ˝) 그들은 제게 우주입니다. 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