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위증 3 - 법정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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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학교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고 이것이 자살이 아니라 살인이라는 고발장이 학교에 도착한다. 그 고발장은 그 학교의 유명한 불량학생 세 명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1,2권은 떨어져 죽은 학생과 고발장을 보낸 학생, 그리고 불량학생과 그 외 다른 학생들의 각자의 고독 혹은 아픔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이 책의 3권에서는 그 사건의 진실을 가려내기 위해 학생들이 재판을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실 나는 여전히 중학생들이 이렇게 재판을 '잘'해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받아들여지질 않는다. 재판 자체를 할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잘 해내다니, 이게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회의적이랄까. 이것은 작가의 무리수가 아닐까,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라면 좀 지나친 소설적 장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반드시 이 장치어야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장치를 통해서, 다시 말해 이 재판을 통해서야 비로소 속으로만 곪았던 아이들의 각자의 심정을 토로해낼 수 있게 되니까. 재판은, 그들에게 증인 혹은 피고인등의 역할을 부여하면서 그들의 심정을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외롭고 고독한 그들이 차마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들에게 질문을 하고 또 답함으로써, 그렇게 바깥으로 끄집어낸다. 이 재판의 목적은 애초부터 '잘잘못을 가려내 나쁜놈을 벌 주자' 가 아니었던만큼,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했던 것인 만큼, 우린 모두 각자의 사정 혹은 제 몫의 진실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이 하나하나 모두에게 알려지면서 이 재판은 커다란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3권에서는 눈물이 마를 시간이 없었다. 출근 시간 지하철 안에서도 내리기 직전까지 눈물이 자꾸 나서 코를 훌쩍였다. 그제서야 나는 미미여사가 대단한 작가란 생각이 들었다. 이래야만 했구나, 이래야만 했어. 이렇게 해야만 그들 모두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어. 이것은 지나친 장치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그래야만' 하는 장치가 되었구나. 재판을 함으로써 이 책은, 할 말을 하게 되고 가야할 곳을 가게 되고 봐야할 것을 본다. 그리고 책 속의 모든 인물들과 나는 모두 들어야 할 것을 듣게 된다.



"결국 자살방지 특효약이란 건 없는 거네."
눈에 깃들었던 분노의 빛을 지우고 야마노 가나메가 중얼거렸다. "음악가의 세계에도 비극은 무척 많아. 예술은 어떤 사람은 구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궁지에 몰아넣으니까." (p.630)


나를 구원해준 방법이 다른 사람도 반드시 구원해준다고는 보장할 수 없다. 내 방식의 문제 해결이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문제 해결 방식이 될 수도 없다. 누군가는 자신안의 깊숙한 곳에 숨겨둔 고독과 외로움을 바깥으로 끄집어내어 털어놓고자 할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는 그것을 털어놓았을 때 외려 나로부터 더 멀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말할 수 없게 된다. 


나라면 그 사실을 아는 순간 도망쳤을지 모른다. 저 간바라 가즈히코에게 그런 과거가 있었나 하며 겁을 집어먹었을지 모른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멀어졌을지 모른다. (p.571)


나는 언제나 죄책감에 약해진다. 죄책감이 인간을 인간이게 해주는 마지막 보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죄책감이란 게 있기 때문에 인간은 다시 또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도 있고 남을 도울 수 있게도 된다. 그러나 그것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강력한 것이라서 한 번 자리잡은 이상 도저히 자리를 떠날 생각을 않는다. 이 책에서도 중학생이 세상을 떠났고, 그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 마음들중 누군가의 것에 죄책감은 가서 박힌다. 그 죄책감은 그들을 후회로 이끌고 사슬이 된다. 이 책에서의 재판이 미처 말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발언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면, 거기엔 외로움과 고독과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과 더불어 죄책감을 드러내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죄책감, 그것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학생들은 '친구가 되어' 재판에 열중한다.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이 책을 읽었지만, 그렇다해도 나는 여전히 이 재판이 '현실성'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지금 여기에서 같은 상황이 발생해서 중학생들이 재판을 한다면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잘해낼 수 있을까? 공정한 판결이 나올까? 아니 판결이 아니라 진실에 다가설 수나 있을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를 털어낼 수 있다는 건 '소설이기에' 가능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재판이 혹여라도 열린다면, 이 재판에 참여한 사람들과 방청인들 중 누군가는 반드시 성장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만 우울하고 나만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비로소 주변에 눈을 돌릴 수 있게 될 거라고. 혹여 우울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사람이었다면 세상에 나같은 사람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걸 자각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현실에서의 대부분의 학부모는 자신의 자식이 이런 재판에 참여하지 않기를 바랄테고, 또 학생들 스스로도 그러려고 하지 않겠지만, 분명 참가하는 사람들중의 일부는 성장할 것이다. 어제와는 다른 내가 또 오늘과는 다른 내가 미래에 되어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을 하기 위해 재판을 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그 재판에서 누군가의 말을 들으려고 한다면 그렇게 듣게 된다면, 전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



그 녀석은 악마다. 나는 안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세상에는 그런 인간이 있다. 남들과 공존하지 못하는. 항상 자신이 특별한 존재여야 직성이 풀리는. (p.635)


우리 모두는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특별하길 원한다. 가끔은 특별하다는 착각도 하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되면 좌절감과 절망감에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특별하다. 우리 모두는 특별한 존재다, 자기 자신에게는. 그러니 내가 생각하는 특별한 인간이 아닌 것 같아 좀 더 깊은 고독속으로 침잠하게 될 때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결국 미미 여사가 하고 싶었던 말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내가 태어난 의미를 찾는 건 나 자신이다. '시시한 인간'인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을 찾아낼 것이다. (p.638)



그러나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가 특별한 존재임을 아무리 인식시키려고 해도 부족할 때가 가끔은 찾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 사실을 잊을 때, 그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줄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은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해 우리가 절망하고 외토리가 되어버리고 마니까. 그래서 이 책속에서 가전제품점 아저씨의 괜찮냐는 말 한마디가 눈물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물어주면 좋을텐데, 괜찮냐고, 정말 괜찮은거냐고, 그렇게 한 번 더 보아주고 물어주었다면, 그랬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덜 고독하고 덜 외롭고 죄책감도 줄어들 수 있을텐데.


"너, 괜찮겠니?"
고바야시 슈조가 질문을 던진 '너'는 후지노 검사가 아니었다.
"정말 괜찮겠어? 응?" (p.536)



<모방범>, <마술은 속삭인다>, <낙원>, <이유>, <화차>, <눈의 아이>, <스텝파더 스텝>, <이름 없는 독>, <스나크 사냥>, <지하도의 비> 까지, 내가 그간 읽어온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꼽아보니 몇 권 되는데, 이 책, <솔로몬의 위증> 1,2 권을 읽으면서 이 책들중 어딘가에 끼어도 억울하지 않을 그동안의 미미여사의 책들과 별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 <솔로몬의 위증> 3 권을 읽으면서 내 생각은 바뀌었다. 그간 내가 읽어온 미미여사의 책 중에 이 책이 최고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내 귀로 정확히 들어왔고 그리고 정확하게 마음에 스몄다. 가장 많이 내 마음을 움직였고 가장 많이 울었다. 등장인물들의 그 마음들에 공감하는 내 자신이 미울 정도로 나는 그들이 되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책 속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말할 수 있도록 해줘서. 그들 모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해줘서. 그게 바로 내가 바라는 바였으니까.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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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 2014-01-15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이거 제 일정상 읽는 데 좀 걸렸는데 정말 좋은 책이었어요.
보고 재밌어서 본가에 가져다 드렸더니 엄마가 이런 걸 좀 써보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4-01-15 17:17   좋아요 0 | URL
오, 어머님이 이걸 다 읽으셨어요? 멋져 ♡.♡

1,2권까지는 무섭고 좋고 그랬는데 3권에서 아주 그냥 사람을 훅 빨아들이네요.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어요. 좋은 책이다 좋은 책이야, 라고 말이지요. ㅎㅎ

유부만두 2014-01-15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그래요? 전 1, 2권을 읽고 나서 3권은 포기했어요.... 3권 출간이 늦은 탓도 있지만 2권에서 이야기를 너무 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아, 어쩌나...

다락방 2014-01-15 17:17   좋아요 0 | URL
아니, 어떻게 포기할 수가 있죠? ㅎㅎㅎㅎ 저는 3권이 너무 궁금했는데요. 그리고 읽어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로요. 유부만두님, 3권 도전하세요!

얼음장수 2014-01-15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고 바빠서 못 읽던 차에
누나한테 빌려준 책이네요.
어서 받아서 읽어야겠어요!

다락방 2014-01-16 08:47   좋아요 0 | URL
저는 사놓고 남동생이 먼저 읽었어요. 남동생은 <모방범>이 더 재미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이 책이 훨씬 더 좋았어요. 책장은 모방범이 더 빨리 넘어갔던 것 같긴 하지만.. ㅎㅎ

어서 읽으세요. 그나저나 잘 지내고 계신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