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식사는 자유로워서 좋다. 내가 원하는 시간, 내가 원하는 메뉴를 정할 수 있고, 얼마만큼의 시간을 이 식사에 투자할 것인지도 내가 결정할 수 있다. 그건 그것대로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가끔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식사를 하는것이 즐거울 때가 있다. 좋은 사람과 좋은 메뉴, 그리고 함께 하는 이야기와 웃음들이 행복을 선사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같은 메뉴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충족된 기쁨을 준다. 내가 맛있어 하는 이것을 당신도 맛있어하고, 함께 이것이 맛있으니 이야기는 더욱 무르익을것 같다.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자와 나와 비슷한 입맛을 가진자와 동시에 약속을 잡아야 한다면, 어쩔 수없이 후자로 기울고야 만다. 먼 길을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 나는 언제나 그 길을 내 친구 D와 함께하고자 한다. 그 친구가 지도를 잘 보고 내가 길을 묻는등의 역할 분배도 그렇지만, 우리는 그 낯선곳에서 '이것 먹자' 라고 했을 때 '그래 좋다'라는 답을 서로 할 수 있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잘도 먹는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다는 즐거움이 이 책에도 잘 나타나 있다.
"내가 자랄 때는 외가나 친가의 온 가족들이 브런치를 먹으러 모일 때가 많았어요. 베이글과 훈제 연어, 참치, 다른 훈제 생선과 키쉬를 먹었지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모두들 모여 있다는 건 참 좋아요." -일라이 서스맨 (p.30)
언젠가 [무한도전]의 '못친소'에서 김제동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부시시 일어나 함께 아침을 먹는데 김제동이 '아 좋다' 한거다. '다같이 모여서 아침을 먹으니까 좋다' 며. 혼자 먹는게 나빠서가 아니라, 정말이지 가끔은, 소중한 사람 여럿과 함께 먹고 싶어지니까. 그 때 행복함이 물씬 생겨나기도 하니까.
언젠가는 크리스마스 즈음에 파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내 집으로 초대하는 것. 그들이 내 집에 도착했을 때, 초대받은 모두가 서로를 아는 사이인 건 아니지만, 이 파티를 계기로 서로 알게되고 친근해졌으면 좋겠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다면, 그들이 서로를 싫어할 리 없을 것 같다. 우리는 한데모여 즐거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거창한 파티를 준비하려는 게 아니다. 한 테이블에 모인 사람 모두가 둘러 앉아 술과 음식을 한껏 즐기며 이야기 나누고 싶은거다. 따뜻하고 정겨운 저녁 식사 한 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책장을 넘기다가, 내가 꿈꾸던 바로 그런 식사 장면이 등장하는 것 같아서 행복해졌다. 아, 이렇게 말이야, 이렇게.
내가 초대할 인원은 열명이 조금 넘어갈 것 같은데, 그렇다면 흐음, 음식을 서빙할 도우미가 있어야 할까. 잠깐 생각해 보았지만 우린 서로가 서로의 도우미가 되는 것이 파티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그리고 이 테이블에 어떤 음식들이 놓이면 좋을까. 이런 음식들이면 정말이지 좋지 않을까.
하아- 이 사진들은 예술이며 고문이다. 음식 사진만 화면에 꽉 찬 게 아닌데도 얼마나 맛있을까 침을 흘리게 만드니 고통스러워. 이 모든 음식들을 내가 다정한 벗들을 초대할 저녁 식사 메뉴로 내고 싶은데, 나는 요리 머저리..도무지 자신이 없다. 이 책에는 당연히 혹은 친절하게도 레시피가 나와있다. 그러나 나와있다고 다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재료중에 한두가지 이상씩은 꼭 외계어(다진 붉은 러시안 케일 1다발 p.32, 아루굴라 4컵 p.74)같은 게 등장해서 멘탈이 잠시 멈추고, 그나마 이건 가까스로 준비할 수 있겠다 싶으면 무슨 오븐을 몇 도로 예열을 해놓고 어쩌고 해야하고...
위의 사진은 <스페인 오믈렛 토르티야>인데, 이건 큰 마음 먹고 언젠가 한 번 만들어 보리라, 는 다짐을 하게 됐다. 그러다 이내, 이 음식을 만들어 먹는 저 남자의 거친 손을 보며, 아 젠장, 이런거 만들어주는 남자가 나 좋다고 하면, 그 때는 앞뒤볼것 없이 확- 결혼해 버리는거야, 라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닌가! 나는 늦잠자고 부시시 일어났는데, 아침에 저렇게 스페인 오믈렛 토르티야를 내게 내민다면, 우와- 진짜 짱행복할 것 같다. 마음놓고 잘난척할 수도 있겠지. 나, 이런거 아침마다 먹어, 라고.
사진 한 장 한 장이 아름다운데, 오, 아름다운 문장들도 툭툭 튀어나온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툭, 툭.
색깔이 예쁘고 맛이 신선한 이 샐러드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송가와도 같아요. (p.35)
이런 낭만적인 문장의 주인공인 샐러드는 이런 비쥬얼이다.
뭔가 진짜 여름의 송가 같다. 크- 몇 개의 문장을 더 옮겨보자면,
어느 날 로마의 노천카페에서 완벽한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며 이 오래된 열망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 순간 그녀는 이 세상 어디에서나 삶은 머그잔과 프렌치 프레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p.50)
매년 7월 말, 뉴햄프셔야 있는 호수 주위로 야생 블루베리가 익을 때가 되면 우리 가족은 블루베리를 따서 잼을 만들었어요. (중략) 아침에 리코타 치즈와 함께 통밀 토스트에 발라 먹거나 요거트에 넣어 먹어보세요. 일 년 내내 여름을 간직하는 좋은 방법이에요. (p.60)
브루클린과 코펜하겐에서의 저녁 식사 모임을 찾아간 이 책의 저자 '네이선 윌리엄스'는, 그러나 '여유있는' 사람들만 찾아갔던 건 아닐까 싶다. 가끔 그들이 요리하는 환경이 혹은 거주하는 환경, 밥을 먹는 그 환경이, 지나치게 '환상적' 이란 느낌이 들기도 했으니까. 물론 그들과 내가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공간은, 그림속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내가 이렇게 안살어서 그렇지, 사실 저게 그렇게 꿈의 공간은 아닌건가. 얼마든지 저렇게 살 수 있나? 암튼 이쁘다.
아, 저녁 식사를 초대하게 되면 빠지지 않고 꼭 생굴과 연어를 차려두고도 싶다. 화이트 와인과 함께하면 대박이지 않을까. 이렇듯 정갈한 연어를 보노라니 당장이라도 집어 먹고 싶어..
물론 내가 가장 먹고 싶은건, 바로 이 구운 토마토 였다.
이건 뭐 보기만 해도 미쳐버릴 것 같아. 술도둑..될 것 같다. 와인도둑.. 하아- 이런것들을 차려두고 멋진 남자들을 단체로 불러서 함께 술을 마시고 깔깔거리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그들을 초대할 때, 내 집에는 방이 아주 많았으면 좋겠다. 화장실도 물론 여러개 였으면 좋겠고. 그나저나 저 토마토 옆의 메뉴는 레몬을 올린 닭가슴살인가, 뭐 그런 이름인데. 저것도 좋아 보인다. 히융 ㅠㅠ 매일 이것들을 먹기만 하고 회사에 출근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구나.
아름다운 음식과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진들이 책장을 넘길때마다 펼쳐져서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책장에 꽂아두고 간혹 꺼내보면 훈훈한 기분이 될 것 같아,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보다 더 좋은게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책을 다 보고나서야 2권을 예약판매중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아, 이게 앞으로 계속 나오는 시리즈라면, 나는 이제 어쩌면 좋아. 계속 정기적으로 돈을 지불하게 되겠구나. 이 사진들을 보느라고.
아 빨리 돈 모아서 커다란 집을 하나 사야겠다. 방이 많은 커다란 집. 부엌도 커다란 집. 그래서 파티를 하고 싶다. 배터지게 먹고 마시고 싶다. 웃다가 너무 좋아서 울고 싶을것 같은, 그런 밤을 만들고 싶다. 내 시선이 어딜 향해도, 그곳에 소중한 사람들의 시선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런 나의 욕망을 부채질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 를 줄 게 아니라면, 이 책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 물론 두 권 다 줘도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