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을 싸는 게 미안하다
나는 왠지 미안한 일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미안한 건 남편이 아침밥 먹을 때 똥을 싸는 것이다
안방 옆에 붙은 화장실에서 똥을 싸는 게 미안하다 남편
은 예의 그 사람 좋은 얼굴로 생리 현상인데 뭐 어떠냐고
어깨를 두드리지만 남편은 내가 밥 먹을 때 옆에서 똥을
싸지 않으니 나는 더 미안하다 남편은 똥도 한 때 밥이었
다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밥을 먹는데 ‥‥‥ 나는 어쩌자고
똥은 똥이고 밥은 밥일 뿐이라는 일념으로 남편이 아침상
받은 안방으로 그런 내 생각이 구린내 되어 솔솔 넘어가
게 하는지‥‥‥ 똥을 오로지 똥으로만 생각하는 내 외곬이
싸는 똥은 똥을 수밖에 없어서 남편에게 정말 미안하다
일전에 미국에 갔었을 때, 집집마다 제2출입문이 달린 것을 보고 꽤 놀랐더랬다. 미국에서는 집에 출입문을 두 개 만드는 게 법으로 정해진 거라 했는데, 그러고보니 미국영화를 보면 그렇게 뒷문이 있고 등장인물들이 철제 사다리로 왔다갔다(라기 보다는 거의 도망)했던 장면들이 종종 나오곤 했었다. 아, 그게 집집마다 있어서 그런 거였구나. 특별한 곳, 특별한 것이 아니었어.
문득 집집마다 화장실이 두 개인것도 법으로 정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집도 작은 집도 모두 화장실이 두 개인거다. 그러면 식구들이 밥 먹고 있을 때, 나는 똥냄새 안나게 저 쪽에 있는 화장실에 가서 마음껏 똥을 싸면 되니까...하아- 그러나 물론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안다. 땅덩어리는 좁고 사람과 차는 많아 지하를 파고 파고 또 파서 주차장을 만드는 이런 나라에서, 무조건 화장실이 두 개인 집을 만들 수 있을까. 많은 식구들이 아직도 한 방에 모여 자는 가구가 여전히 많은데, 그 사람들은 화장실보다 차라리 그 면적을 방으로 넓혀달라고 하겠지. 화장실이 두 개인 집에 살려면 어느정도의 평수가 되는 집에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작은 집보다 돈이 더 많이 드는 게 사실. 예의를 지키고 싶어도, 매너있게 행동하고 싶어도, 그게 돈이 있어야 가능해지다니, 슬프고 씁쓸하구나. 쩝.
미안해도, 어쩔 수없이, 똥은 싸야지. 별 수 있 나. 똥 참 으 면 얼 굴 노 래 져.
중학교시절, 아이들은 저마다 앙케이트 노트란걸 만들어 돌렸다. 아마도 지금 중학생들은 그런 유치한(?) 행동을 할 것 같진 않은데, 그 땐 참 유행이었다. 그러니까 질문이 있고, 거기에 답을 하는 노트인거다. 질문이래봤자 진짜 별 거없다. 좋아하는 연예인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은? 취미는? 좋아하는 노래는? 뭐 이정도. 나도 그 노트를 만들어 돌렸었고, 다른 애들의 노트에 답도 하고 그랬는데, 내 노트 였는지 다른 아이의 노트였는지 질문 중 하나가 '잘하는 것(특기)'을 묻는 거였다. 그 때 무척 예쁘게 생겼던 s 는 '손으로 하는건 뭐든지 다' 라고 답했었다. 그 문장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던 기억이 난다. 너무 근사해서. 그 때 그 대답이 어찌나 근사하던지. 그러고보니 그 아이는 글씨도 잘썼고, 그림도 잘그렸고, 피아노도 잘쳤다. 간혹 자신이 그림을 그려 엽서를 만들어서 내게 주곤 했는데, 그 때마다 글씨와 그림을 보며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그 대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나도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그간 다른 애들은 피아노치기, 그림그리기 등 평범한 대답을 했었는데 '손으로 하는 건 뭐든지 다' 라니. 그 때부터 사람들이 물으면 나도 별생각 없이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해. 라고 대답했다. 뭐,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으로 하는 것이 뭐 별거 있나. 못할거 없잖아? 난 피아노도 배웠고, 경필대회에서 상 탈 수준은 아니지만 글씨도 그럭저럭 쓰니, 뭐 다 되는거 아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대답했었는데. 하- 참 철이 없었다. 나는 이제는 안다. 나는
손으로 하는 건 뭐든지 못한다.
피아노는 6년을 배웠지만 외우는 악보가 없고 손은 악보와 따로 놀았다. 글씨는 개떡같고, 그림은 때때로 기본 점수를 간신히 받는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맛없을 수가 없는 김치를 재료로 김치찜을 해도 맛이 없어지는 게, 내 손이 하는 일이었다. 손으로 못하는 것의 절정은 매니큐어 바르기에 있었다. 헐.
엊그제. 갑자기 매니큐어를 바르고 싶어졌다. 집에 있는 매니큐어들의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아 퇴근길에 화장품 가게에 들렀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색을 발견. 집에 돌아가서 밥을 먹고 텔레비젼 앞에 앉아 룰루랄라~ 매니큐어를 바르기 시작했다. 빨간색 계통이라 전체를 다 바르면 회사에서 너무 튈 것 같아, 프렌치로 바르자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프렌치를 했는데, 하아- 삐뚤빼뚤 정말 무슨....어휴..발로 칠한 것 처럼 되는거다. 게다가 손톱 옆으로 다 번졌어. 다 바르고 마른 뒤에 한참을 들여다봐도 이걸 도무지 봐줄수가 없는거라, 아세톤을 이용해 다 지웠다. 흑. 그런데 ㅠㅠ 내가 얼마나 못발랐으면 ㅠㅠ 손톱 사이로 매니큐어가 다 들어가 있는거다. 이게 어떻게도 수습이 안돼 ㅠㅠ 지우고 나니 손에 때 낀 뇬이 되어 있었다. ㅠㅠ
다음날 회사 오니 동료가 자지러지게 웃고..뭐한거냐고 ㅠㅠ 저게 사진으로는 약간 붉게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 보면 검정에 가까워 보인다. 진짜 때같아...이제 나이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 손톱에 때가 덕지덕지 낀 것처럼...이게 뭐야 ㅠㅠ 손에 때 끼는 건 머리 안감던 초딩시절에나 일어나는 일 아닌가 ㅠㅠ
어제 직장상사에게 보고 드릴 게 있어 들어갔다가,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켜야 해서 초난감했었다. 손톱에 때 낀 과장.. ㅠㅠ
난..손으로 하는 건, 그게 뭐든, 다 못해!
오늘 아침에 새삼 깨달은 바가 있으니, 그건 바로,
평일날 아침 식탁에서 갈치반찬은 곤란하다
이다. 뜨거운 밥 옆의 튀긴 갈치가 반가워, 젓가락을 들고 갈치살을 바르기 시작했다. 조기 같은 건 무섭게 발라내 두 마리 먹는게 일도 아닌 터라, 고등어 역시 슁슁슁 가시를 발라내 맛있게 밥을 뚝딱 금세 비워낼 수 있는터라, 갈치 역시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가시바르기 신공으로 두 토막을 먹어치우자, 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가시 바르는데 오천년 걸리는거다. 아..너무 짜증나. 나는 가시를 발라 살을 밥 위에 얹으면서-그 부서지는 살들!- 계속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이거 뭐야, 갈치는 아침에 먹으면 안되겠네, 두 토막 먹을라 그랬는데 가시 바르느라 시간이 너무 오래걸려, 한토막 밖에 못먹겠잖아, 갈치 두 토막 먹겠다가 회사 지각하겠네..........
그러면서 먹으니 엄마가 맞어, 이러면서 엄청 웃으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한테 말했다.
갈치는 이제 저녁에 튀겨.
갈치는 저녁에 튀겨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