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에 손가락 세 개가 없었다. 검지, 중지, 약지 손가락이 없었다.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은 그대로 있었다. 시체가 썩어가는 동안, 그 손은 악마의 뿔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리슨 벌판에서 빌리가 선물해 준 쌍안경을 통해 재즈가 본 바로는 시체의 손가락을 한 개밖에 찾지 못했다. 증거 봉투 안에 들어 잇던 바로 그 손가락 이었다.

살인자가 다른 손가락 두 개를 가져간 것이다. 한심할 정도로 얄팍한 보고서에 다르면 범인이 가져간 손가락은 검지와 약지였다. (p.47)

 

 

 

 

 

 

 

 

 

 

 

 

 

 

 

오늘 지하철 안에서 이 부분을 읽엇는데, 멘탈붕괴가 찾아왔다. 아니, 범인이 검지와 약지를 가져갔다니? 엄지손가락하고 새끼손가락은 남아있다며? 그런데 어떻게 검지랑 새끼손가락을 가져간단 거야? 나는 머릿속으로 엄지와 새끼만 남은 손을 그려보다가 살인자가 새끼손가락을 가지고 갔다고 하니 이게 뭔 말이야 하고 다시 읽다가, 검지,중지,약지, 란 말에 아니 둘째 셋째 새끼 손가락 이렇게 잘라간거면 첫번째랑 네번째만 남은건데 이게 대체 뭔 말이야, 하고 머리가 팽팽 돌았다.

 

 

그러니까 내가 알기론 그랬다. 다섯 손가락에 있어서 첫째는 엄지, 둘째는 검지, 셋째는 중지, 넷째는 장지, 다섯째는 약지. 나는 이렇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 책의 내용이 눈깔 돌아가는 내용이란 말인거다. 그래서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인터넷을 켜고 약지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아, 약지는 새끼손가락이 아니었다. 네번째 손가락이었다. 새끼와 가운데 손가락, 그 사이의 손가락. 헐. 그래서 어어, 그게 그러니까, 장지가 아니란 말이야? 싶어서 장지손가락을 찾아보니, 장지는 중지처럼 세번째 가운데 손가락을 일컫는 말이었다. 아 쉬바..언제부터 이랬던거야????? 대체 나는 어디서 이런 잘못된 정보를 습득해서 내것인듯 가지고 있었던거지? 혼란스러워. 이 세상은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니야...

 

 

 

 

오늘 아침 식탁에는 구운 고등어와 양념갈비구이가 있었다. 하아- 엄마. 날더러 어쩌란 말예요. 고등어와 갈비를 한 상에 차리시다니, 이건 너무나 사치스러워요. 나는 일단 뜨거운 고등어를 호호 불어가며 발라 먹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시더니 너 진짜 잘먹는다, 라고 하셨다. 고등어를 먹으면서 갈비를 먹을수는 없다. 그건 고등어와 갈비, 그 둘 다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은가. 나는 일단 고등어를 다 먹은 뒤에 남은 밥을 갈비와 먹었다. 틈틈이 김치찜도 먹었다. 김치 없이는 완벽한 밥상이 아니니까. 너무나 만족스런 밥상이라 출근하기가 싫었다. 내내 이렇게 하루종일 밥만 먹고 싶었다. 정말 그렇게 할 수도 있을것 같았다.

 

 

그리고 양재역에서 내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데 마침 641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카드를 대고 기사님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으려고 둘러보는데 저 쪽에서 과장님, 하는 소리가 들린다. 헐. 타부서의 L 대리다. 흐읍. 이렇게 버스 안에서 만나지는구나. 여튼 인사를 하고 앉았다. 그러자 L 대리는 다음정류장에서 내려 걸어가자고 한다. 그래서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내렸는데 누가 뒤에서 과장님 안녕하세요, 한다. 돌아버니 그 버스에서 신입직원 K 가 내린다. 헐. 이 버스 탔어요? 네. 나 봤어요? 네. 아 쉬바..나는 못봤는데..나는 이제 내 옷차림이 신경쓰인다. 나는 정장 원피스 차림에 ...                    운동화를 신고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orz

 

운동화 신으니 키는 난쟁이똥자루가 되어 땅바닥에 붙어 다니고, 원피스 밑에 신었으니 스타일은 구겨지고 아놔..카리스마 있고 지적이고 차분하고 섹시한 여자과장의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러고 싶었는데, 신입 직원에게 그런 과장으로 보여지고 싶었는데, 흑흑, 이건 만화캐릭터같아. 순정만화에 나오는 예쁜 여자주인공의 힘센 괴짜친구 캐릭터. ㅠㅠ 나는 몹시 기분이 나빠졌다. 출근길 버스안에서 이들 모두를 만나는 건 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이 길은 다른 직원들이 잘 다니지 않는다는 확신이 내게 있었다. 나는 다른 직원이 더 먼길인것 같다고 했던 길을 골라 다녔다. 그 길을 걸어다니며 그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다른 직원들이 나보다 좀 더 일찍 혹은 좀 더 늦게 나올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우리가 만날 일은 없어야 했다. 나는 중고샵에 팔 책을 몇 권 들고 와야 했기 때문에 가방이 무거웠고, 요즘엔 외근나갈 때나 결재 들어갈 때, 그리고 약속이 있을때만 힐을 신던터라 출퇴근길은 누가 보든말든 운동화를 신고 다녔는데-차림새야 어떻든!!- 하아, 이런식으로 만나다니. 나는 운동화를 신고 사람을 만나는 게 정말 싫다.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야. 이건 늘상 렌즈를 끼고 사람을 만나다가 안경을 끼고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과 같다. 나는 안경을 끼고 누군가를 만나는 걸 너무 싫어해서-정말 작아진다구!!- 눈깔이 아파도 렌즈를 끼도 나가곤 했는데, 하아, 운동화를 들켜버렸어. 안그래도 토요일에 친구들 만날 때 운동화 신고 나갔다가 또 작아진 느낌이 들어서 뷁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아, 파릇파릇한 신입 남직원 앞에서 이런 .. 말도 안되는 모습을 보여주다니. 흑흑. 뭔가 한껏 차려입고 힐을 신고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L 대리가 같이 스벅가서 커피나 한 잔하자는데, 나는 걍 들어가겠다고 마시고들 오라고 하며 와버렸다. 운동화 신고 커피를 마실 자신이 없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랑 간혹 술을 마시던 남자가 자신보다 열 살 아래의 여자와 막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오늘 아침에 들었다. 나는 그를 좋아한 것도 아니었고, 그와 사귀고 싶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지만, 헐, 열 살 아래의 여자라니, 뭐지, 이 무력한 느낌은....

 

빨리 점심시간 되서 점심이나 먹었으면 좋겠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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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7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9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3-05-07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손가락은 원.래.부.터. 그.러.한. 이,름.으.로.불.려.졌.답.니.다.

2. 네꼬님이 다락방님의 아침밥상을 싫어하십니다.

3. 아니 저렇게 자세히 다락방님의 출근 노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놓으시면....어쩌실렵니까?

다락방 2013-05-09 09:04   좋아요 0 | URL
1. 누구도 내게 일러주질 않았네, 라는 이아립의 노래 가사가 생각납니다.

2. 인생은 어차피 홀로왔다 홀로 가는것, 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노래 가사도 생각나는군요. 네꼬님은 네꼬님의 밥상을, 다락방은 다락방의 밥상을... ( ")

3. 너무....적나라했나요? 에이, 그래도 뭐,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까, 설마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그게 저인줄 알겠습니까?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무개 2013-05-07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읭? 다락방님 작은 키도 아닌데 운동화 신어도 상관없겠던데 왜요???
그리고 뭐 저는 잘 모르지만 뉴요커들이 정장에 운동화 신고 다닌다던데요 뭐. 중요할때만 힐을 신고 나머지는
활동적인 운동화~~어디서 줏어들이 이야기라 정확성은 없지만 ㅋㅋ

혹시 광화문에 유명한 김찌찜 하는곳 가보셨나요? 가보고 싶은데 그런곳은 정말 혼자 갈수가 없어요ㅜ..ㅜ
한번 갑시다. 어디든 맛난거 묵으러~

다락방 2013-05-09 09:02   좋아요 0 | URL
작은 키는 아닌것 같긴하지만, 어, 음, 작은것도 같고...킁킁. 안그래도 아무개님의 이 댓글 읽고 어제 만나는 사람한테마다 내 스타일이 뉴요커 스타일이라고 하고 다녔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이렇게 빠숑을 알아, 하면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뉴요커 다락방 이라고 불러주세요. ㅋㅋㅋㅋ

광화문 김치찜..이라.. 그건 잘 모르겠네요. 네, 여튼 만나서 술 한 잔 합시다!!

Forgettable. 2013-05-07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 보.

아무개 2013-05-07 15:3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아이쿠야

Mephistopheles 2013-05-07 16:5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이거 굉장히 공감하는.....댓글..이랄까..

다락방 2013-05-09 09:01   좋아요 0 | URL
아- 뭔가, 다락방에 대한 뽀의 절절한 애정이 느껴지네요. 뽀는 다락방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가봐요.
=3=3=3=3=3=3=3=3=3=3=3=3=3=3=3

무스탕 2013-05-07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운동화밖에 안 신고 다니는데.. ㅠㅠ
원래 157을 달랑말랑하는 키에 운동화도 키높이는 절대사양이라서 제 키는 죽어도 160을 안 넘는데.. ㅠㅠ

건 글쿠, 점심은 맛나게 드셨어요? :)
저녁은 뭘 드실 계획이신가요? 아니, 지금쯤 드시고 계실까요?

다락방 2013-05-09 09:00   좋아요 0 | URL
운동화가 문제라기 보다는 정장스커트 아래의 운동화, 라서 문제가 되는거죠. 안어울리는 조합...그치만, 져스틴 팀버레이크도 수트에 운동화 신더라고요. (읭?) ㅎㅎㅎㅎㅎ

벌써 5월 9일이네요. 7일의 점심과 저녁은 건너뛰고 보자, 어제 저녁엔 황태구이정식과 매운갈비찜을 먹었어요. 집에 돌아와서는 간식으로 치킨을 먹었고요. 물론 모든 음식엔 술이 빠지질 않았습니다. ㅋㅋㅋㅋㅋ

잘 지내고 계신거에요, 무스탕님?

섬사이 2013-05-09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오랜만에 뜬금없이 와서 이렇게 웃고 가도 되죠? 잘 지내셨어요? 다락방님이라면 어쩐지 정장원피스에 운동화라도 자신있게 새로운 유행으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데...작아지지 마세요!

다락방 2013-05-09 08:59   좋아요 0 | URL
네, 작아지지 않겠습니다!
안그래도 계속 운동화 신고 다니고있어요. 에이 뭐, 그러든지말든지, 하면서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정말 오랜만이에요, 섬사이님. 안그래도 어제였나, 섬사이님 페이퍼보고, 어어, 오랜만에 오셨네, 했거든요. 그런데 여기에서도 뵙네요. 반가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