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의 어느날, 여자친구들 몇이 모여 이성과의 스킨십중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게 뭔지 얘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손 잡는것' 이라고 말해서 모두의 야유를 한 몸에 받았었다. 그 많은 스킨십중에 가장 초보적인게 아니냐며. 그렇지만 나는 정말로 그렇다고 했다. 손 잡는거야 말로 은밀함의 시작이며 절정이 아닐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손을 잡는건 그것대로 또 모두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둘만 알아채게 탁자 밑으로 잡으면 그것대로, 둘만이 있을 때 잡으면 또 그것대로. 그리고 나는 오래전의 내 생각을 여전히 바꾸지 않았음을 이 영화를 보고 알게됐다.
영화속에서 여자는 남자의 손을 잡는다. 다른 좀비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이 행위에 손을 잡힌 남자도 놀라고 그를 보는 좀비들도 놀란다. 그들은 그 뒤로 자신들도 예전에, 살아있는 인간이었을 때 손을 잡았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건 바로 그 기억이다. 손을 잡았던 그 때를 떠올리는 순간, 쿠쿵- 심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영화가 생각보다 괜찮아서 놀랐다. 구석구석 물론 유치하고 어설픈 부분이 있었지만, 뭐 그쯤이야 하고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오, 이게 이렇게 재미있다니! 게다가 이 젊은 좀비는 심장도 뛰지 않으면서 아이팟 대신 낡은 엘피를 듣는다. 영화의 초반부터 그가 듣는 음악이 좋아서, 나는 부랴부랴 가방안에서 스맛폰을 만지작거리며 음악을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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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time I think of you
I
always catch my breath
And
I'm still standing here and you're miles away
And
I'm wondering why you left
And
there's a storm that's raging
Through
my frozen heart tonight
I
hear your name in certain circles
And
it always makes me smile
I
spend my time thinking about you
And
it's almost driving me wild
And
there's a heart that's breaking down this long-distance line tonight
I
ain't missing you at all
Since
you've been gone away.
I
ain't missing you
No
matter what I might say.
There's
a message in the wire
And
I'm sending you this signal tonight.
You
don't know how desperate I've become
And
it looks like I'm losing this fight.
In
your world I have no meaning
Though
I'm trying hard to understand
And
it's my heart that's breaking down this long-distance line tonight.
I
ain't missing you at all
Since
you've been gone away.
I
ain't missing you
No
matter what my friends say.
And
there's a message that I'm sending out like a telegraph to your soul
And
if I can't bridge this distance
Stop
this heartbreak overload
I
ain't missing you at all
Since
you've been gone away
No
I ain't missing you no matter what my friends say
I
ain't missing you
I
ain't missing you
I
can lie to myself.
And
there's a storm that's raging
Through
my frozen heart tonight.
I
ain't missing you at all
Since
you've been gone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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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 이런 음악을 듣는 좀비라니. 게다가 좀비로 나오는 이 주인공이 드라마에 출연한 유명한 배우라는데 나는 아는바가 없어 좀 전에 검색해봤더니, 오,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그 꼬맹이란다. 와우- 꼬마야, 잘 컸구나. 키 189센치의 멋진 청년이 되었어. 뭐, 좀비로 나와서 그런지 쑝가게 멋지지도 않고 그다지 내가 호감을 느낄만한 외모는 아니었지만, 오, 잘 컸다!
여자주인공은 벨라 닮아서 놀랐는데, 이 영화속에서 암튼 엄청 뛴다. 자신을 잡아 먹으려고 오는 좀비떼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뛰고 또 뛴다. 계속 뛴다. 잘 뛴다. 문득 그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사람에게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이 세상 역시 어떻게 변해갈지 모른다. 반드시 좀비가 아니어도, 나는 나를 더이상 세상에 살아남지 않게 하려는 어떤 무리로부터 도망가야 할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종말이 오는 그 순간에도 잘 뛴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잘 뛰고 잘 숨는건 살아남기 위한 기본 수칙이 아닐까. 그런데 이런 육중한 몸으로는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몸뚱아리로 어떻게 저렇게 저 여자주인공처럼 다다다다다 뛸 수 있단 말인가. 아마 나는 가장 먼저 좀비들에게 잡아먹히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좀비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잡아먹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나는 사람이고 싶고, 사람인채로 죽고 싶다. 그러니 살아야 한다. 좀비에게 먹혀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이어트를 해야겠다. 잘 뛰기 위해서. 언제어디서나 잡히지 않고 잘 도망치기 위해서, 이 육중한 살들을 좀 덜어내야겠다. 킁킁.
영화 속에서 남자(좀비)와 여자가 좀비 무리들로부터 탈출해 차를 타고 도망가는 장면이 있다. 그러다 춥고 배가 고파 폐가에 들어가게 된다. 그 안에는 단 둘뿐이고, 그 둘은 사진을 찍고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잠을 자고 꿈을 꾼다. 그 둘은, 아니 확실히 남자쪽은 여자에게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내내 마음에 걸리는 고백도 했고. 멀리 동떨어진 곳,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단 둘만 남겨진 이들을 보니, '이스마일 카다레'의 책, 『사고』가 생각났다. 한동안 나를 어지럽혔던 부분이.
이를테면 어느 저녁 모임 식사 자리에서 알게 된 지 일주일 만에 중부유럽 어느 도시로 사흘 동안 여행을 가자는 그의 제안만 해도 그랬다.
(중략)
잠을 통 이루지 못하던 그 기나긴 밤에, 똑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초대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의 초대를 에로틱한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그럴 거야. 그게 아니라면 다른 뭐가 있겠어? 호텔에서 단둘이만 지내자는 거야. 사흘 그러니까 사흘 밤. 아직키스도 해보지 않은 남자와 단둘이서. 하느님 맙소사,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어.
그러다 로베나는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같은 방을 쓰는 게 아니라면? 아냐, 그럴 리 없어. 방은 하나만 잡을 게 분명해. 침대도 마찬가지고. (p.80)
이 책, 『사고』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단 둘의 여행을 제안한다. 여자의 말처럼 키스도 한 번 해보지 않은 사이인데. 그러니 이 여행이 무엇을 뜻하는지 잠 못 자며 고민하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이 책을 읽을 당시의 나는 어쩐 일인지 이런 제안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었다. 사귀지 않는 남자에게 이틀밤 정도의 여행을 제안하는 일, 에 대해서. 그렇다면 상대는 그 여행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 책속의 여자처럼, 이 제안이 에로틱한 제안인지, 혹은 방을 두 개 잡을 것인지에 대해 잠 못자며 고민을 하게 될까? 그러다가 결국은 수락을 하게 될까? 그렇다면 내가 그렇게 제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키스도 안해본 남자에게 단 둘이 먼 곳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는 건, 대체 무슨 뜻이 될까? 이 생각 후에 맞닥뜨린 이 책속의 이 장면은 그래서 나를 오랫동안 사로잡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는 잊고 지냈는데, 웜바디스를 보다보니 다시 생각이 나.....뭐, 그렇다는거다.
얼마전, 경기가 안좋을 때는 립스틱이 많이 팔린다는 뉴스를 봤다. 마침 나도 립스틱을 살까 말까 계속 생각하던 터라 오호, 하며 들었었다. 나는 그저 립스틱을 사본 지가 너무 오래되었고, 그래서 하나 새로 사고 싶었는데, 이왕이면 진한색으로,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한 게 나뿐만이 아니란말인가. 얼마전에 백화점에 가서 다 떨어진 영양크림을 사면서도 립스틱을 하나 살까, 심하게 흔들렸었다. 그런데 요즘 자꾸만 이 광고가 눈에 띈다.
나는 화이트 셔츠를 입지 않고 이 광고속의 여자처럼 화사하지도 않은데...이 립스틱을...사고 싶네? 흐음. 입술 예쁘다. 흐음.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