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다가 다른 소설을 알게 되고 만나게 되는 일은 종종 있지만, 나는 내가 이 책을 읽다가 소설가를 그리고 그의 소설을 궁금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건 예상외의 일인데, 오, 그러고보니 이 책은 예상외의 것들을 내게 참 많이도 가져다 주는구나.













60년 전 존 스타인벡과 그의 친구였던 생물학자 에드 독 리켓은 이 조석 간에 존재하는 생물의 다양성에 매료되었다. 당시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집필을 막 끝내고 휴식이 필요했다. 그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전쟁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최근 문학적으로 성공한 것이나 실패로 끝난 결혼에 대해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1939년 10월 16일 일기에 스타인벡은 이런 글을 남겼다. "지금 내게는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던 《포도》를 탈고했다. 정부와 관련해 해야 하는 간단한 일이 하나 남았을 뿐이다. 그게 끝나면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새로운 곳으로 가서 새로운 뿌리를 찾아야 한다. ‥‥‥그게 무엇이 될지 나도 모른다. 다만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조수웅덩이(해안의 조간대에서 간조시에 해수가 잔류하여 웅덩이에 괴어 있는 곳)와 현미경 슬라이드에서 찾아질 거라는 것만은 안다."

스타인벡은 세상에 변혁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고, 과학이 해답을 줄 거라 믿었다. 그는 생물학자였던 친구 에드 독 리켓에게서 그 가능성을 엿보았다. 리켓은 세계를 조 더 가까이에서 연구하기 위해서라면 시카고에 있는 안정된 자리도 마다하고 미국 최남단으로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독학으로 해양생물학자가 된 사람이기도 했다. 이제는 유명해진 '통조림 공장 골목(스타인벡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에 생물학 용품점을 세우기도 했던 그는 생태적 지위나 서식환경, 먹이사슬, 포식자와 먹이 관계 같은 개념들이 아직 생소했던 그 당시부터 벌써 생명을 생태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중략)


1940년, 몬테레에베이에서 캘리포니아 만을 향해 출발하면서 스타인벡과 리켓은 멕시코의 무척추동물에 관한 역사상 가장 방대하고도 객관적인 연구를 시행하기로 계획한다. (pp.73-74)



나는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한 권도 읽어보질 못했다. 다만 그가 분노의 포도 작가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사실 그 책에 대해 별 관심도 없었는데, 나는 이 책의 이 부분을 읽고 분노의 포도를 사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작품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독학으로 해양생물학자가 된 사람' 이라니, 그런 사람이 작가라니. 그런 작가는 작품으로 무슨 말을 할까? 생물의 다양성에 매료되는 사람이며, 무척추동물에 관한 연구를 시행하기로 하는, 그런 사람이 작가라니. 나는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더불어, 그가 작품을 빌어 하려는 말이 궁금하다.
















이제 이 책(거인을 바라보다)을 거의 다 읽어가는데, 이 책은 여러가지로 내게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모르는 고래의 삶] 이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나는 고래의 삶에 대해 그 전보다 더 알게 되기는 했지만, 그건 내가 이 책에서 얻은 소득이라 보기엔 극히 미미하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 나름의 깊은 생각을 가지고 산다는 것을 알게됐고, 그들이 저마다 선택한 방식은 달랐으나 그 방향이 한 곳으로 향한다는 것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고래의 몸에 위성위치추적장치를 다는 사람도, 헬기를 타고 바다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도, 잠수를 해서 고래 곁으로 다가가 관찰하는 사람도 모두, 고래를 위해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비단 고래때문만이 아니라, 해양생태계, 더 나아가서는 이 지구를 위해서도.








아주 젊었을 때 찾아올 수도 있지만 어쩌면 스스로가 더이상 사랑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하며 사랑을 포기했을 때라도, 누구에게나 생에 한 번 잊지 못할 사랑은 찾아온다. 그 사랑은 일주일 낮과밤을 모두 발가벗고 함께 지내는 열정적 행위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가벼운 입맞춤 한 번만이 행위의 전부일 수도 있다. 앞으로 더 얼마를 살게 되든, 그리고 어떤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든, 그 사랑은 잊지 못하는 법이다. 이 영화속에서 마릴린은 콜린에게 작별을 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날 잊지 말아요.


이 말을 듣는 즉시 나는 콜린의 대답을 정확히 예측했고, 내 예측은 틀림이 없었다. 콜린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떻게 잊겠어요.



콜린은 마릴린을 이해하는 남자였고, 짧은 시간 마릴린의 옆에 있어주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마릴린을 향했고, 마릴린은 그런 그에게 아낌없는 신뢰를 주었다. 그들은 한 침대에 눕기도 했고, 발가벗고 물가로 풍덩 들어가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그 몸이 엉키는 것으로 드러나진 않았다.






이 사랑을 떠나보내는 그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몇 인치는 더 자란것 같군." 그래서 『스타킹 훔쳐보기』에서 엘리자베스 게이지도 주인공의 이름을 빌어 이렇게 얘기했는가 보다.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는 것보다 사랑을 잃는 쪽이 훨씬 낫다.


콜린은 한동안 아프겠지만, 그 기억으로 평생을 살 수도 있을것이다. 앞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하든 안하든, 그녀와 보냈던 그 짧은 시간은 내내 가슴 한켠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콜린이 지금의 아픔을 겪을 가치가 있다. 아, 이 영화가 정말 너무 괜찮아서, 만약 내가 올해 『우리도 사랑일까』를 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올해의 영화로 꼽게 됐을 것 같다. 올해 내게는 미쉘 윌리암스가 아주 새롭게 다가오는구나.





그나저나 『거인을 바라보다』를 다 읽으면 무슨책을 읽을까? 오늘 도착한 『목사의 딸들』을 읽을까, 쉽게 책장이 넘어갈 듯한 『착해도 망하지 않아』를 읽을까? 『늦여름』을 시작할까,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을 읽을까? 사두고 안 읽은 숱한 책들중 한 권을 골라 읽을 예정이긴 한데, 아, 어쩐지 아무래도, 오늘 장바구니 한 번 털고 그중에서 읽게 되는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침부터 틈틈이 장바구니를 일단 다 비웠다가(너무 많이 넣어놔서), 다시 새롭게 구성했다가 다시 몇 개 삭제했다가 다시 또 다른 책 넣었다가 하고 있다. 내년까지 안지를라고 했는데, 하아, 모르겠다. 몸살기운이 있어 타이레놀을 한 알 먹었는데, 괜찮겠지?




토요일엔 드디어 커피소년 콘서트를 갔다왔다. 뜻밖의 위로를 받고왔는데, 그건 노래로 인한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하나도 안 불러줘서 공연 자체로는 그렇게 대만족 이런건 아니었는데, 그가 거기서 자신의 나이를 밝혔다. 자신이 의외로 나이가 많다며, 늦은 나이에 데뷔를 했다고 했다. 그렇게 공개한 그의 나이는 삼십대 초반이었고, 물론 나보다 어렸지만, 나는 그가 '이 나이에 데뷔한 자신이 좋다'고 말하는데에서 위로가 됐다. 그러니까, 나는 물론 그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도, 뭔가 시작해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던거다. 두려워하지 말고 시작하자고, 괜찮을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이 나이에 시작했음을 좋아하게 될거라고. 진실된 위로는 억지로 위로하는 데서 오는건 아닌것 같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진심을 말하는 순간, 상대에게는 그것이 행복으로 다가가기도 하고 기쁨으로 다가가기도 하는 것처럼, 위로로 다가가기도 하는거다. 나는 그 날, 커피소년의 그 말이 참으로 위로가 됐다. 그러나, 실제 눈 앞에서 본 그는, youtube 영상에서 본 것처럼 훈남은 아니었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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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12-10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영화쿠폰 안쓰시는 분은 저 좀 주세요.

2012-12-10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2-12-10 16:55   좋아요 0 | URL
땡큐 땡큐!!

2012-12-10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2-12-11 11:12   좋아요 0 | URL
역시나 땡큐 땡큐!! ㅎㅎ

2012-12-10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1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2-12-10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만큼은 다락방님 페이퍼가 미괄식이었군요. 책은 "미친 항해"를 읽으셔야죠. 그래야 합니다.

다락방 2012-12-11 11:13   좋아요 0 | URL
미친 항해를 읽어야 하는데 ㅎㅎㅎㅎㅎ 책은 내년에 살 거라 ( ")

커피소년이 글쎄, 제 생각만큼 훈남은 아니더라구요. 역시 옆모습과 앞모습은 좀 거리가 있어요. 쿨럭. --;;

dreamout 2012-12-11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에도 춥고 밤에도 추워요. 아우. @@

다락방 2012-12-11 11:14   좋아요 0 | URL
와, 드림아웃님. 저는 몇년만에 몸살에 걸려 앓아 누웠더랬습니다. 열이 펄펄 끓어서 눈 튀어나오는 줄 알았어요. 휴..

moonnight 2012-12-11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반가와요. 분노의 포도는 중학생 때 읽었다가 최근에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요. 내용이 새롭더군요. 쿨럭 ;; 1권 읽다가 접어놓고 레미제라블 읽습니다만은. ;; 독학으로 해양생물학자. 놀랍네요. (세상엔 역시 훌륭한 사람들이 많군요. -_-;;;;;)

브로크백마운틴 봤을 땐 미셸 윌리엄스가 예쁜 줄 몰랐는데 볼수록 매력적인 것 같아요. 저 영화는 못 봤지만 캐스팅만큼은 최고란 평을 읽었어요. 보고 싶네요. ^^ 그나저나, 내가 어떻게 잊겠어요. 라는 대사 맘을 파고들어요. 그 심정이 막 이해가 되네요. ㅠ_ㅠ
어제 라디오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에 대해 나왔어요. 콜드플레이의 음악도 함께. 문득 그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더라구요. 조쉬 하트넷과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다면 정말, 내가 어떻게 잊겠어요. 라는 대사가 절로 나올 듯 ^^; 디비디나 사 봐야겠어요. (한숨;)

다락방 2012-12-12 08:36   좋아요 0 | URL
오, 문나잇님 역시 독서의 내공이 상당하시네요. 중학생때 분노의 포도라뇨! 저도 조만간 사둬야겠다(읽겠다가 아닌;;)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 역시 브로크백의 미쉘은 잘 기억도 나지 않아요. [블루 발렌타인] 보면서 저 여자를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했는데 필모그라피를 보니 브로크백 마운틴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아, 그여자구나 했을 정도에요. 그런데 제가 올해 본 좋은 영화 두 편 모두에 미쉘 윌리암스가 나오네요. 아, 아니구나, 세 편이구나. [블루 발렌타인], [우리도 사랑일까],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아 이 배우, 영화를 선택하는 눈이 있는걸까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는 보면서 참 씁쓸했던 기억이 있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역시 나를 사랑할 확률은 정말이지 높지 않아요. 그래서 그런일을 기적이라 부르는가봐요. 저는 평생 잊지 않게 제이슨 스태덤하고 함께 살고 싶어요. 오래오래 오래오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