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켄트의 연애와 결혼의 원칙
마거릿 켄트 지음, 나선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이 책이 인문서인줄 알았다. 아니, 인문서 비슷한(?)것이라고 생각했다. 제목이 그냥 『연애와 결혼의 원칙』이 아니라 그 앞에 『'마거릿 켄트의' 연애와 결혼의 원칙』이라 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론이라든가 연구 결과 라든가 하는건줄 알았단 말이다. 정말이지, 이런 책일줄 몰랐다.


이 책은 누가 봐도 평범함 여자들이 좋은 남편감을 갖게 된 비밀을 알려 준다. 남자를 만나고 관계를 발전시키고 당신이 선택한 그 남자와 결혼에 이르는 특별한 전략을 배워 보자. (프롤로그, p.16)



오, 맙소사! 내가 지금..무슨 책을 읽으려고 하는거야? 남자를 유혹해서 결혼하는 기술..을 책을 통해 배우려고 하는거야, 내가, 지금? 멘탈 붕괴가 찾아왔다. 이게 이런 연애 실용서일줄은 몰랐다. 나로 말하자면 자기계발류의 서적 읽기를 꺼려하고, 연애지침서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시큰둥한 사람인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책 소개좀 자세히 읽어볼 걸, 제목만 믿고 너무 내 마음대로 생각했잖아! 그래서 나는 잠깐 고민했다. 출근길 버스안이었다. 이걸 계속 읽을 것인가, 말것인가. 일단 출근길 버스안에서 내가 준비한 책은 이 책 한 권 뿐이라 출근하는 동안만이라도 읽기로 했다.



이 책의 결혼 전략을 활용하면 많은 남자들이 당신 주위에 모여들 것이다. 단 당신이 원하는 남자에게만 지속적으로 활용하라. (중략) 이 전략은 18세 이상의 모든 연령 대 여성들이 언제든지 활용 가능하다. (pp.30-31)



그래, 한 번 읽어보자 싶었다. 연애와 결혼이 삶의 목표가 아니라한들, 많은 남자들이 내 주위에 모여든다면 뭐, 별로 나쁠것도 없고. 많은 남자들과 재미있게 인생을 사는건 유쾌하지 않겠는가 말이지. 게다가 하하하하, 이 작가의 조언을 듣고 결혼에 성공하게 된 사람들의 수가 어마어마하단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뭐, 어쨌든 그래서 이 책을 계속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물론 유용한 부분들도 많았고. 특히나 남성들과의 대화를 어려워하는 여성들에게 '이국의 여행자처럼 대하라' 고 하는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내가 아는 한 친구는 여행 광인데, 여행 중에는 어떤 남자에게든 쉽게 다가가 방향을 물어보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길을 안내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그의 습관이나 꿈, 문화에 대해 물을 수도 있다. 외지에서 낯선 여행자가 되면 고향 땅의 비논리적인 금기 사항에서 자유로워진다. (p.64)


정말 괜찮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엔 수줍어서 남성들과 말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는 여성이지만 여행가서는 그게 얼마나 자유로운가. 마찬가지로 본국에 돌아왔을 때도 마치 여행자인 듯 행동해보라는 거다. 그래서 차츰 이 책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꽤 실용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최대한 많은 남자를 만나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지만, 가능한 한 빨리 솎아내는 과정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p.67)는건 지나치게 결혼 지향적인듯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를 거침없이 차버려야 하는건 기정사실이다. 정에 이끌리고 동정심에 이끌리는건 상대와 나에게 둘 다 못할짓이니까. 


그러니까 이 책은 기본적으로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생각한 그대로를 보여준다. 이러한 사항들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을만큼 당연한 얘기들을 수록해두고 있다. 문제는 언제나 '실행'이지 '알고 있는 지식' 이 아니니까. 게다가 내가 가장 절실하게 공감하는 부분은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게 중요하다는 부분과 또 하나, 교제하는 남자와 여자의 활력이 비슷한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싶어 하는데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경우에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p.131)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몸이 약한 남자들과 교제를 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보다 먼저 술에 취해서 헤롱거리는 걸 보면 일종의 죄책감마저 든다. 아, 나만 쌩쌩해서 완전 미안하네, 하는 기분. 같은 거리를 걸었는데 남자가 먼저 다리 아프다고 하면 한숨부터 난다. 무얼하든 나보다 먼저 지치는 남자라면 나는 그 남자와 오래 지속할 마음이 별로 없다. 달리는 모습이 '총총'과 가깝다고 느꼈을 때도 나는 순간, 애정이 식는걸 느꼈다. 겨울에 늘 스노보드를 타러가자는게 아니라, 허구헌날 조깅을 하자는게 아니라, 기본적인 체력 만큼은 갖추어야 그나마 스트레스 받지 않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체력이 딸리는 다른 한 쪽을 언제나 눈감아 주는건 연애 초기뿐이다.



물론 이 책에 실린 말들이 다 맞다고 생각되어지는 건 아니다. 세상천지에 어떻게 다른 사람의 모든 말이 구구절절 옳을수가 있겠는가. 열두번쯤 데이트했을 때 섹스하기에 적당하다는 말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고, 내가 관심있는 남자의 직업에 대해 조금은 알아두라는 것도 고개가 끄덕여지진 않았다. 물론 나는 내가 정말 좋아했던 남자의 직업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았던 적은 있다. 그의 모든걸 알고 싶었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게 필요할까?



그 남자가 목수라면 우선 그가 사용하는 톱의 종류를 알아라. 나중에 드릴에 끼우는 날이나 목재, 금속과 디자인에 대해서도 알아보라. (p.156)



목수, 변호사, 피자 가게 직원, 치과 의사, 실업자등에 대한 식으로 남자의 직업에 대해 어느 정도의 상식을 보유하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건 음, 물론 알면 좋을 것 같지만, 딱히 수긍이 되지는 않는다. 나도 내 일에 대해서 상대에게 시시콜콜 알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이건 그러니까 나의 개인적인 성향 탓인걸까? 어떤 사람들에 있어서는 그들의 직업에 대해 기본 지식을 쌓고 대응해준다면 감동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건 아니지만. 가장 뜨악했던 부분은 그를 비난할 때 그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이용하라는 부분이었다. 그러니까 만약 동료 한 명을 그가 꽤 인식하고 있다면, '당신이 그 고객을 놓친 걸 알면 동료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p.198) 라는 등으로 시도하라는 거다. 이건 아무리봐도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가끔 풋- 하고 웃게 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의사라면 의학용어의 아주 기초적인 것들쯤은 알아두라고 저자는 조언하는 부분에서도 그랬다. 의사들이 전문적인 용어를 쓰는 이유를 얘기하면서 이런 예를 든다.



"당신의 유방이 부어 있는데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당신이 젖꼭지를 긁었거나 안에서 뭔가 잘못 되었을 수 있다." 라고 말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유선염이 있는 것 같군요. 유륜의 찰과상이나 세균 감염이 그 원인일 수 있습니다." 확실히 전문적인 인상을 주지 않는가? (p.158)



음..확실히 전문적으로 느껴지는구나. 



게다가 이런 말들은 무섭기까지 하다!


스물다섯 넘은 여자가 아직 처녀이고 결혼할 때까지 순결을 지키겠다고 주장한다면, 처녀로 죽게 될 가능성이 있다. (p.226)



이 책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재미만으로 읽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그렇게 확 재미를 보장해주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이 책을 정말로 '연애와 결혼은 내 인생의 최고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연애를 늘 원해왔지만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것 같다. 또한 연애과정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어떤말을 해야할지 혹은 하지 말아야 할지를 알려주니 역시 도움이 될 수 있을것 같다. 결혼하고 싶어 미치겠는 여성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읽지 않는 것보다 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연애와 결혼이 내 인생의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는 여성이라면, 이 책 대신 [레 미제라블]을 읽는 쪽이 오백 배쯤 낫다.



나름 유용할 것 같은 이 책에 자꾸 인상이 구겨지는건 간혹 튀어나오는 멍청한 문장들 때문이다. 


넣을 때건 와인을 구입할 때건 가격이 가장 중요한 구매 기준인가? (p.124) 


뭘....넣는단 말인가? 앞에 주어가 빠진것 같은데, 주어가 빠진 다음의 단어가 이상야릇한 상상을 불러오는 단어다. '넣을 때건' 이라니. 삼십대 중반의 여성은 이럴때 자꾸만 이상한 상상을 하게된다.


사랑을 다치지 않는 언쟁의 요령 (p.206)


이 문장은 이백 번 읽어도 이해 안된다. 사랑을 다치지 않는, 이라니. '사랑을 다치게 하지 않는' 쯤으로 고쳐야 하는게 아닐까. 이렇게 괴상한 문장들이 여럿 있는데 이 책이 1판 9쇄이더라. 다음번에는 교정을 다시 보고 내는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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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2-10-10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의 리뷰가 재미있네요! 그래도 난 [레미제라블]을 읽겠어요. ^^

다락방 2012-10-10 13:01   좋아요 0 | URL
[레 미제라블]이 훨씬 더 좋아요. ㅎㅎㅎㅎㅎ 뭔가 이상한 비교이긴 하지만, 뭐, 내 맘이니까. ㅋㅋ

비로그인 2012-10-10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제목만 봤을때 타라 파커포프의 연애와 결혼의 과학으로 착각했었어요. 전략,지속,활용 등등의 단어만 봐도 좀 무서운데요~ㅎ 현실은 잔인할 뿐이고...ㅋ

다락방 2012-10-10 13:02   좋아요 0 | URL
프롤로그 읽으면서 완전 패닉이었어요. 내가 어쩌자고 이런책을 읽고 싶어한건가...하면서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책 소개라도 조금 읽어볼걸 그랬지 뭐에요.

사람들은 외로운결 견딜 수 없는것 같아요. 책을 읽어서라도 찾으려고 하는걸 보면 말이지요. 뭔가 슬프기도 한것같고..

댈러웨이 2012-10-10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오, 맙소사! 내가 지금..무슨 책을 읽으려고 하는거야?' 그러셨다면, 저는 이 리뷰 읽으면서 '오, 맙소사 다락방님이 무슨 책을 읽으신 거야?' 그랬어요. ㅎㅎ 에너지 넘치는 분들이 많이 부러운데 다락방님을 봐도 역시 답은 육고기라는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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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10-10 13:04   좋아요 0 | URL
저는 막 운동을 좋아해서 달리고 산에 오르고 보드타고 그러는 사람은 결코 아니지만(!!!!) 체력만큼은 좀 빵빵한것 같아요. 그게 다 고기의 힘(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ㅎㅎ 먹어도 너무 먹으니까요.

그나저나 이 책은 말이죠, 댈러웨이님, 지하철에서 출퇴근길에 읽으려니 조금 부끄럽더라구요. 구석에 숨어서 읽고 싶었어요. 하하하하하

무해한모리군 2012-10-10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보다 다락방님 리뷰가 더 재미있다는데 오백원 겁니다 ㅎㅎ (심지어 더 유용할지도...)

다락방 2012-10-11 10:25   좋아요 0 | URL
음..제가 생각하기에도 제 리뷰가 더 재미있는것 같긴해요.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