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 브리스트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8
테오도어 폰타네 지음, 한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을 때도 그리고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를 읽었을 때도, 나는 만약 내가 그 때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를 생각해보곤 한다. 귀족이거나 혹은 귀족이 아니거나, 나는 아마도 자유분방함과는 거리가 멀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 가족의 구성원이라 내게 부모와 형제자매가 있었다면, 나는 사회의 틀에 얽매인채로 규범과 규칙을 어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것이다. 내가 그렇게 사는것에는 내 개인의 불만이 자리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사는 모습을 봤을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게됐을까?  안나를 손가락질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을까?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안나의 편이 되어 변명을 해주는 삶을 살았을까? 정말이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내가 안나를 손가락질하는 무리중의 하나가 되지는 않기를 바랄뿐이다.



이 책의 에피 브리스트 역시 마찬가지. 이 소설은 19세기에 쓰여진 소설이다. 그때의 결혼과 명예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결혼을 했다면, 외간남자와 즐겁게 농담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바람둥이라고 소문난 남자를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열일곱살에 결혼한 에피 브리스트, 그녀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육 년이나 지난 뒤에 남편에게  들통나고만다. 이미 그녀가 죄책감의 세월을 보내고 난 뒤에.



내가 그 시대에 살지 않았으면서 대체 왜 열일곱에 결혼을 하는거냐고 따져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안다. 혼자인 삶을, 한창 피어나는 젊음을 왜 그때 사회적 계약으로 묶어두어야 했냐고 따져봤자 부질없다. 또한, 그때이든 지금이든 '이 남자와 평생 살겠다'고 약속한 것을 깨뜨려버린 에피가 결코 잘했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잘못을 했을 때 그 사람의 잘못을 비난하기는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한다. 그러니 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졌을때, 모두가 나에게 잘못했다고 비난할 때, 누군가 한 명쯤은 내 편을 들어줘도 되지 않을까? 이미 스스로도 충분히 생채기를 내고있는 마당에, 가장 의지하고 싶은 사람들마저 나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잔인하지 않은가.



가장 슬픈 건 우리도 널 받아줄 수 없다는 거야. 우리는 네게 호엔크레멘의 조용한 장소를 제공할 수 없고, 우리집에 은신처를 마련해줄 수 없단다. 그러면 우리집을 온 세상으로부터 고립시켜야 하는데 우리는 그러고 싶지가 않구나. 우리가 세상에 너무 집착하거나 '사회'라는 것과의 결별을 도저히 견딜 수 없기 때문이 아니란다. 아니, 그것 때문이 아니란다. 이런 말을 안 할 수가 없구나.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네 행동이 잘못이라고, 사랑하는 단 하나뿐인 우리 아이의 행동이 잘못이라고 온 세상에 천명하고 싶기 때문이란다 ‥‥‥ (pp.355-356)



모두가 잘못했다고 말하는데,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는데, 굳이 에피의 부모님까지 나서서 너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걸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말할 필요가 있었던걸까. 내게는 남편의 복수보다도, 에피와 딸의 헤어짐보다도, 결국은 부모도 받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아프게 다가왔다. 게다가 나를 받아주지 않겠다고, 오지 말라고 말하는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은 계속 받아야 한다니. 이 모든것들이 끔찍했다. 



그 시절을 에피 브리스트가 살았다.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그런 협회에 들어가고 싶어요. 하지만 꿈도 꿀 수 없지. 부인들이 나를 받아주지 않을 테니까. 받아줄 수도 없을 거예요. 온 세상이 문을 닫아 걸고 좋은 일도 못 하게 하는 게 가장 끔찍해." (p.370)




물론 재미없는 남편하고 산다고 해서, 나와 아주 많이 다른 성향을 가진 남자와 산다고 해서 바람을 피는것이 '합법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다른 남자와 연애를 했다고도 확신할 수는 없다. 어떤것들은 다가오지 못하게 이를 악물어도 침투해 버리니까. 에피 브리스트가 한 일이 정정당당하고 떳떳한 일이라고도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에게 세상은 너무 가혹했다. 만약 결혼이라는 둘 사이의 약속이, 사회적 제도가 없었다면, 그때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게될까. 남편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버려진채로 죽을때까지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며 혼자 보내는 것이 인생인가? 그걸 과연 자업자득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명예가 걸린 일이기에 세상과 사회의 기대에 미치는대로 행동해서 결국은 불행해지는 남편은 남은 삶을 대체 어떤 재미로 살아가야 할까. 그들이 결국은 헤어져서 행복이 찾아왔나?



책장을 덮고나서 한없이 답답했는데, 내게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에피를 둘러싼 사회를 원망만 하는 내가 싫다. 나는 이제 에피 브리스트가 살던 시대에 내가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내가 그때 어떤 사람이었을 것이다, 라는 확신은 없지만, 나는 그녀의 편이 되고 싶어서도 아니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그녀가 불쌍하다는 동정심 때문도 아니고, 그저 순수하게 에피 브리스트를 인간대 인간으로 그리고 여자대 여자로 만나서 가끔 차를 마시는 친구가 되고 싶다. '남편이 있는데 다른 남자랑 연애한 여자'로만 그녀를 대하는 사람들중에 하나가 되고 싶지 않다. 너는 지금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나는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어, 라는 대화를 하고 싶다. 그런데 친구가 된다한들, 한없이 쓸쓸한 그녀를 내가 웃게해줄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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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8-29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인물의 일생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나라면 어땠을까' 고민해보는 것. 이거야말로 문학을 읽고 사유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충실한 방법이 아닌가, 새삼 느꼈어요. 저라면 어땠을까요. 제가 [고통]의 여주인공이었다면, 안나였다면, 에피였다면 어땠을까요. 아니면 그 주변의 사람이었다면... 저도 장담할 수가 없네요. 위로를 해줄 수나 있을지, 비난이나 하지 않을 수 있을지, 농담으로 웃게 만들 수 있을지. 다른 사람의 입장을 두고 만약에 나라면, 이라고 생각해보는 습관을 들여야겠어요. 그러고 보면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없다면 소설을 제대로 읽을 수도 없을 것 같아요. 그동안 저의 소설 읽기를 뒤돌아보게 되네요. 글 잘 읽고 가요, 다락방님 ^ㅡ^

다락방 2012-08-30 09:44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의 댓글을 읽으니, 어제 제가 책에 대해 생각했던것과 통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해요. 저도 어제 내내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좋은 책이란 끊임없이 나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게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새삼 (좋은)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삶의 기쁨일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

네꼬 2012-08-29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락에 있는 외로운 사람 옆에 있어주겠단 결심은 나머지 모두와 싸우겠다는 큰 결심일 거예요.
(비밀 댓글을 클릭하고) 이어서 긴 문장들을 썼다가 지웠어요.
아무튼 뭐, 그렇다고요. 다락님 술 깼어요?

다락방 2012-08-30 09:46   좋아요 0 | URL
술은 진즉에 깼죠, 네꼬님. 뭐 그쯤 가지고. ㅎㅎㅎㅎㅎ

음, 썼다가 지운 긴 문장은 뭘까요? 궁금해요. 왜지웠어요!!
나머지 모두와 싸우겠다는 큰 결심을 할만한 인물은 제가 되지 못하구요, 다만 누가 뭐라든 내가 좋아하는 사람 옆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꿋꿋이 살아갈 수는 있을것 같아요. 그쯤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12-08-29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30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8-30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이 내린 가장 가혹한 형벌은 부부, 그리고 가족이다ᆢ 대학살의신,에 나온 대사에요. 가식으로 사는 부부 두쌍이 나오는데, 그렇다고 가식으로 살지않을 수도 없고 그걸 책망할 수도 없고요. 에피는 벼랑에서 아주 외롭고도 두려웠을거 같아요. 그런 여자의 친구가 돼주고싶다는 다락방님은 정말 다정한 사람이에요.

다락방 2012-08-30 09:4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도 [대학살의 신] 봤어요. ㅎㅎ 케이트 윈슬렛과 조디 포스터를 비롯하여 '연기 잘한다'는게 뭔지 새삼 깨닫게 된 영화였어요.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인물들 만으로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80분이 짧게 느껴질만큼 아주 재미있게 봤답니다.

에피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기보다는, 그녀가 어떤 잘못을 했든 저는 그녀를 그저 있는그대로 대하고 싶어요. 잘못은 에피도 하고 저도 하고 세상 모두가 다 하잖아요. 세상이 그녀를 벌 줄 필요는 없는건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그냥 에피를 만나고 얘기하고 싶어요.

기억의집 2012-08-30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그래요. 얼마나 사람들이 관습적인데요. 결혼전에는 몰랐는데 결혼하면 사회적 규범과 규칙에 대해 확 느껴져요. 그리고 남성위주의 사회라는 것을.

결혼 제도란 게 규범과 규칙 그리고 사회적 관습을 존속시키는 끈이라고 생각이 되요. 하지만 저는 이제 사회적 규범이나 관습에 얽매어 살지 않으려고요. 아마 제가 과학책을 읽지 않았다면 저는 사회적 인습에 묶여 살았을 거에요. 저는 한 예로 나중에 제사는 다 없앨 거거든요. 하더라도 아주 간소하게 서로 스트레스 받지 않게 할 거구요. 명절도 딸이든 아들이든 그 날에 여행가고 싶다고 하면 명절끼고 갔다오라고 삶을 즐기라고, 명절이라는 관습에 얽매이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그리고 울 아들이 딸 하나밖에 없는 집하고 결혼 한다면 굳이 우리집에 먼저 와서 명절 준비 하라고 하지 않을거에요. 명절에 며느리 집에 먼저 보내고 나중에 우리집에 와도, 안 와도 상관 없다고 말할 거에요. 이젠 딸 하나 낳고 사는 세상에 출가외인이란 말은 있을 수도 없고 없어져야 할 말이거든요. 사회가 변화도 우리의 관습이나 규범 이런 것도 다 변해야 하는데, 참 안 변하더라구요. 그리고 결혼 제도가 그 더딤에 한 몫하고요. ㅋㅋ 너무 썰을 풀엇죠.

다락방 2012-08-31 13:04   좋아요 0 | URL
네, 기억의집님. 결혼이 관습이나 규범에 얽매이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것 같아요. 게다가 그런 부조리한 제도속에 살아온 우리의 부모님들 조차 거기에서 후손들을 해방시키려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묶어 두려고 하니까요. 나쁜 줄 알아도 '나도 다 겪었어!' 가 '그러니 너도 해!' 가 되는 것 같아서 불편해요. 그래도 요즘엔 좀 나아지지 않았나, 그리고 기억의집님 처럼 그 속에서 빠져나오려는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늘어나면 앞으로는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에피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이 남자랑 살겠다, 하고 세상에 대고 약속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일은 없었을텐데, 하는 생각에 결혼이 악습이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끔찍하게 느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