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에서 회사까지 걸으면 정확히 십 분이 걸린다. 오늘은 그 시간동안 에피톤 프로젝트의 『믿을게』를 들었다. 노래가 무척 가슴을 후벼파서 울려고 마음먹으면 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런 청승은 떨지 않았다. 대신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아침 출근길의 상상을 했다. 이 노래가 백뮤직으로 깔리는 나의 상상은 아주 먼 곳에 가서 과거에 내가 좋아했던 한 남자를 만나는 것이었는데, 그것만으로는 성에 안차서, 그를 만나고 있는 까페 옆자리에, 그 낯선 나라에, 내가 좋아했던 또 다른 남자가 앉아있어서, 우연히 그를 마주치는, 결과적으로 말해 나는 그 먼 곳에서 바로 그 순간에 내 삶에서 결코 잊지 못할 두 남자를(응?) 동시에 만나게 되는거지. 그 우연이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리는......
그래, 어제 술을 마셨다. 아직 안깼나보다.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눈을 뜨면』을 들었고 지금 몹시 피곤하다. 좀전에 남동생으로부터 메세지가 왔는데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메세지였다. 여동생은 남동생에게 어떻게해야 널 위로할 수 있을까, 라고 말했고, 나는 남동생에게 홀가분하지 않느냐 물었다. 헤어짐은 눈물을 주지만 그 시기만 지나면 죄책감이 들정도로 홀가분한 마음도 준다고도 덧붙였다. 나는 아름다운 구속보다는 홀가분한 자유쪽을 조금 더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남동생의 이별앞에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