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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도 가족 ㅣ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10
샬레인 해리스 지음, 송경아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오래전의 어느 드라마에서 김현주는 장동건을 좋다고 쫓아다녔고 결국은 장동건과 연인이 되었다. 그 때 장동건은 다른 여자를 좋아하다가 이별의 슬픔을 감당하는 중이었고, 그래서 장동건의 친구는 김현주를 사랑하는 게 진심이냐, 그것이 가능했냐고 물었다. 그 때 장동건은 친구에게 '사랑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노력하다보니 정말로 사랑하게 됐어' 라고 말했었다. 사랑은 노력으로 되는걸까? 이 세상의 모든것은 노력으로 된다지만 사랑도 그런걸까? 아니, 그건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어제의 「맨발로 하이킥」「하이킥3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도 그랬다. 고영욱은 박하선을 정말로 좋아하고 박하선은 고영욱이 자신을 좋아하는 만큼 자신도 좋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고영욱은 박하선에게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자신처럼 못난 남자가 당신같은 훌륭한 여자를 좋아해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 추운 밤에 좋아해서 미안하다는 말에 박하선은 어쩔 줄 모르는 감정을 느끼지만, 그러나 정말 눈물이 날만큼 미안하게도, 박하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영욱을 사랑할 수가 없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걸 자꾸만 자꾸만 느낀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건 기도로 되는것이 아니니까.
장동건이 김현주를 사랑하게 된 건, 본인은 노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마음이 마음을 움직인 것이라고 보여진다. 김현주의 마음이 어느 순간 장동건의 마음을 사랑쪽으로 끌어당긴 것. 그러나 고영욱의 마음은 그것이 간절하고 진심이고 미안함을 포함한다 해도, 박하선의 마음을 사랑으로 끌어당기지는 못한다. 사랑은 노력으로도 기도로도 이루기가 불가하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되는 그 순간을 기적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그래서 우리가 연인이 되는 것은 가장 완벽한 길일까? 단 하나의 유일한 길? 나는 절대로, 절대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 책속의 수키와 에릭처럼. 수키와 에릭은 서로를 사랑한다. 서로를 갈망한다. 그래서 자신들이 연인임을 즐긴다. 서로의 기분을 느낄 수 있고 그리고 서로에게 강한 성적 매력을 느낀다.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지구상에서 가장 황홀한 섹스를 즐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완벽한 커플이냐고 하면, 나는 그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수키와 에릭만큼은 연인이 아닌 쪽이 서로에게 더 나은 길을 가게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진 남자와 여자가, 혹은 사랑까지 느끼는 남자와 여자가 연인이 아닌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부조리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연인이 아닌 쪽이 더 나은, 서로에게 더 행복한 그런 사이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모두가 운명이라면, 운명이란 게 존재한다면, 수키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함으로써 그 모든 육체적 고통과-다치고 피흘리고-, 그 모든 정신적 고통을 감당해야하는 게 맞을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상대를 선택할 때, 상대가 가진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해야 한다. 수키는 그런것들을 감당하고 사랑하려고 했던건지도 모른다. 내가 아니니까, 수키니까, 나는 이런것들을 극복하며 이 남자와 연인임을 택할거야, 라고 말할 수 있는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 수키와 에릭은 지금처럼 연인이 되기전이 가장 완벽하고 완전해 보였다. 그때가 서로가 최상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하는 애틋한 마음을 가진채로 있는것이, 그리고 상대에게 애정을 느끼고 신뢰하는 채로 따로 떨어져 있었던 것이, 그것이 관계를 좀 더 오래 유지하고 '최상의 나'를 유지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물론, 이것은 내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나였다면 수키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러나 나는 다시 말하지만, 수키가 아니다.
이 시리즈는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나는 언제나 재미있게 푹 빠져서 읽고, 언제나 수키에게 공감했다. 그러나 이번 시리즈인 『죽여도 가족』에서는 좀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뱀파이어의 연보를 알게 되는 것도 지겹고, 수키가 감당해야 하는 것들도 지겨웠다. 그 전의 연인인 빌도, 또 지금의 연인인 에릭도 그녀를 늘 위험에 빠뜨렸다. 이것들도 지겹다. 나는 수키가 가진 사랑에 대한 생각과 미움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것들을 표현하는 그녀의 성격에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그렇지만 이번 시리즈는 그동안의 시리즈만큼 흥미진진하지도 않았고 재미있지도 않았고 몰입도는 떨어졌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죽어나가는 것도 지겹다.
나는 그녀가 많은것들을 감당하지는 않아도 되는 그런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그런 남자가 과연 존재할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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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거나 무엇을 말하건 그건 변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내게 당신을 위해 시체를 묻어 달라고-아니면 시체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면 아무 거리낌 없이 그렇게 할 겁니다.」
「우리 사이에는 안 좋은 과거가 있어요, 빌. 하지만 당신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할 거예요.」 (p.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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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반드시 연인이라는 포지션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