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무소녀』의 역사적 배경은 '과테말라 내전'이다. 세상에. 대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내가 너무 역사에 무지하기 때문일까. 과테말라 내전은 들어본적도 없는 것 같은데. 소녀가 혼자서 그 시간들을 견뎌내며 성장하고 하는 이 책을 읽으며 중간중간 가슴 아파하는데, 이 책의 마지막, 과테말라 내전에 대한 짧은 설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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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라의 열쇠』는 처음부터 울컥거리게 했고, 마지막, 사라의 일기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기도 했지만, 이것은 그러나 내게 충분히 만족할만한 소설이 되지는 못했다. 나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더 좋은 책이 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것 같아서 아쉽다. 

영화, 『사라의 열쇠』는 중간 이후까지 책보다 훨씬 좋았다. 나는 이미 책을 다 읽은 후라 결말까지 다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화의 처음부터 내내 눈물을 흘렸다. 동행은 중간부터 계속 눈물을 흘리고. 그러나 마지막의 어떤 장면에서 나는 집중력이 확 떨어지고 말았다. 아, 이 영화에 왜 저 장면을 저렇게.. 그게 너무 아쉬웠다. 책보다 나은 영화잖아, 라고 중간까지는 내가 얼마나 흥분햇었는데!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내가 저렇게 나이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근사했다. 영화를 보고나서 나는 이 긴머리를 잘라버리겠다고 생각했다. 단발로 가자고. 
 

 

지난주였나, 밤에 하는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를 잠시 시청했더랬다. 늘 보아 오던 프로그램이 아니어서 줄거리는 모르지만, 아마도 여자는 남자를 혼자 좋아했었고 남자는 여자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었던건지, 어쨌든 그래서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기를 그만두었었는가 보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하늘을 보며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남자는 소원을 빌었냐며, 무엇을 빌었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비밀이라고 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너는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었다. 남자는 처음에 비밀이라고 말하더니 이내 자신이 빌었던 소원을 얘기해준다. 

니가 나를 다시 좋아하는 것. 

 

다시 좋아하는 것은 여자에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 순간 놀랐던 그녀는 이제 그와 함께다. 물론, 그 뒤의 일들에 대해서는 나는 더이상 알지 못하지만. 

 

여름밤의 올림픽공원에 갔었다. 비가 온 후여서인지 평소처럼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심지어 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는 나와 나의 동행말고는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참 좋았다. 귀뚜라미가 울었고 매미가 울었다. 앞에는 호수가 있었고 밤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완벽한 순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자꾸만 다리에 벌레들이 붙어서 그 조용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방해했지만, 그럴때마다 손으로 그 벌레들을 치워댔다. 물론, 신경질을 내면서. 

 

 

아, 맞다. 임태경이 라디오 다시 진행하는데, 들어봤어요?  

라고 나는 동행에게 말하며 주섬주섬 가방에서 아이팟을 꺼냈다. 일전에 주변에서 모두들 팟케스트를 그리고 나는 꼼수다를 추천하던 터라 다운받아 놓으면서, 그러나 내가 이걸 듣게 될 날이 올까, 갸웃하면서, 이왕 다운 받는거 임태경이 한다는 라디오도 한번 받아볼까, 했던터였다. 나도 아직 안들어봤는데 우리 잠깐 들어볼까요? 하면서 나는 재생시켰다. 그 여름 밤, 귀뚜라미와 매미만 울어대는 밤에, 아이팟에서는 음악이 흘렀고, 그리고 임태경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는 비올리스트 킴 카쉬카쉬안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었다. 

아. 좋았다. 킴 카쉬카쉬안, 이라는 비올리스트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된건 임태경의 라디오를 들었기 때문이고,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건, 임태경의 목소리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설명하는 임태경의 목소리는 또 그의 모든 발음은 아주 조용했고 아주 기품있었다. 클래식을 임태경처럼 잘 소개해주는 남자를 나는 더 알지 못한다. 심지어 나는 클래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나는 클래식을 듣는 사람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임태경이 라디오를 진행하며 소개해주면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지는 것이다. 나는 그 밤에, 그 음악과 그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동행에게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아, 어떡해. 다시 좋아지려고 해요. 심장이 두근거려. 

나는 언제부턴가 임태경을 멀리했었는데, 더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그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도 안했는데, 그날 밤, 나는 다시 그를 좋아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한건 그래, 이런 것 때문이었지. 이러니까 내가 과거에도 이 사람을 좋아했었지,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래, 아주 오래전에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났을 때, 무심하던 마음으로 나갔다가 몇마디의 말들과 웃음들을 공유한 뒤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 이 사람은 역시 내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어. 이래서 좋았던거야. 과거에 좋아했던 것을 다시 좋아하는 것,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사랑하는 것, 그것은 쉽지도 않겠지만 그러나, 어렵지도 않다.   


어제 장소를 이동하기 위해 갈아탄 지하철 안에서 전화의 진동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오는 전화가 너무 오랜만이라 어어, 뭐지, 하고 잠깐 설레였다. 080이나 번호없음도 아니고 꽤 멀쩡해 보이는 번호였다. 뭘까, 살짝 기대하는 마음으로 여보세요, 라고 전화를 받았더니 뭔가 잔뜩 녹음된 말이 나오고, 이내 또다른 녹음된 말이 나왔다. 

방금 들으신 것 처럼 음성 자동인식 내비게이션을 구입하고 싶으시면 전화기의 버튼을... 

하아-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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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011-08-14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팟케스트를 드디어!(앞으로 많은 추천을 해드릴께요)

다락방 2011-08-15 00:03   좋아요 0 | URL
그렇지만 제가 별로 들을것 같지는 않아요. 하핫. 저는 사람들이 대체 언제 그 많은것들을 -이를테면 드라마라든가 라디오방송이라든가 하는것들요- 보고 듣고 하는지 아직까지도 모르겠어요. 하핫.

레와 2011-08-14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이별하기로 한 사람은 다시 만나면 안되요. 다시 빠질게 불보듯 뻔하니깐.

지나간 사랑도 사랑.

다락방 2011-08-15 00:05   좋아요 0 | URL
응 그게 미칠노릇인 것 같아요. 그래, 다시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은 다시 사랑하지 말자, 뭐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게 헤어지고 시간이 지나서 그사람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도, 다시 만나니까 참 다시 마음이 스멀스멀..해지기 쉬운 것 같더라구요. 뭐, 내가 최근에 그랬다는 건 아니에요.

마노아 2011-08-14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소녀를 읽으면서 살바도르 아옌데가 떠올랐어요. 미국은 전 세계에 걸쳐 저런 식의 만행을 참 많이 저지른 것 같은데 남미 쪽은 가깝기 때문에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나쁜 짓을 한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ㅜ.ㅜ

오늘 충무아트홀에서 뮤지컬을 보았어요. 계단을 오르면서 처음 다락방님을 만났던 게 생각났어요. 그때 먹었던 아주 맛났던 호두파이도 같이요. 커튼콜을 하는데 여배우 하나가 감독님의 와이프더라구요. 문득 또 임태경과 그의 전부인 생각도 났더랬죠. 여러모로 다락방님 생각이 났는데 여기서 겹치네요.^^

다락방 2011-08-15 00:10   좋아요 0 | URL
처음에 책을 읽는데 너무 전형적인 느낌이 나더라구요. 교훈적이랄까, 암튼 교과서적인 느낌이었는데 읽다보니 좀 괜찮아졌어요. 전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자꾸 울컥 거리게 하고 눈물나게 하잖아요. 소녀가 나무 위에서 강간하는 것들을 목격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의식을 느끼고 하는 것들이 참 가슴 아프더라구요. 어휴..

앗. 제가 마노아님 처음 본 그곳이 충무아트홀인가요? 마노아님이 저 만났다는 댓글 안달아줬으면 저는 충무아트홀 한번도 안가봤어요, 라고 했을거에요. 틀림없이. 전 제가 대체 어디에 갔다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을 못해요. 그쪽으로는 뇌가 거의 작동을 안하고 멈춰있는 듯 ㅜㅜ

2011-08-15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무 소녀도 사라도 임태경도 킴 카쉬카쉬안도 전부 모르는 이름 투성이지만요, 그래도 잘 읽었어요. :)

poptrash 2011-08-15 00:02   좋아요 0 | URL
근데 왜 댓글이 이렇게 달렸을까요? 나는 분명히 로그인을 하고 있었는데.

다락방 2011-08-15 00:05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 완전 뿜었어요. 누구지? 누굴까? 막 그렇게 생각하고 위에서부터 댓글 달고 있는데 그 순간 팝님이 펑, 하고 나타났네요. ㅋㅋㅋㅋㅋ

잘 읽어줘서 고마워요. 하하하하하

비로그인 2011-08-15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때였나요. 각 나라의 내전 이름과 지도상의 위치를 외우던 기억이 나네요. 내전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그걸 열심히 외워댔다니 좀 민망하네요.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은 언제 읽어도 가슴 아파요. 얼마 전부터 [사랑의 리퀘스트]를 다시 보고 있는데, 예전 같았으면 너무 마음 아파서 채널 돌려버렸을 일을 이제는 전화기 붙들고 잠깐이나마 보고 있어요. 이것도 이기적인 행위일 수 있지만 (괜히 그런 거 보며 안심하게 되고 고마워하게 되고...) 외면할 수만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웅산의 재즈 프로그램 이후로 라디오를 안 들었는데... 다시 들어봐야겠네요. 이번엔 클래식으로!

다락방 2011-08-16 08:46   좋아요 0 | URL
아, 각 나라의 내전 이름과 지도상의 위치를 외우던 교과 과정이 있었나요? 저는 국사 세계사 한국지리 세계지리 모두 다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서 어떤 교과 과정이 있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네요. 전 그쪽으로는 정말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었거든요. 하핫.
임태경의 목소리는 말없는수다쟁이님처럼 감성이 풍부하신 님께 참 좋을것 같아요. 씨익 :)

2011-08-15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6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1-08-15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임태경이 무슨 라디오를 다시 진행하나요? 저는 세음을 임태경이 진행할 때 진정으로 행복했는데 그리고 임태경이 부르는 '지금 이 순간'도 너무 좋았고요!!! 과테말라는 베프가 살았던 곳이라 관심이 가는데 그런 비극적인 일이 있었군요. 기억난 김에 메일이라도 보내 봐야 겠어요.

다락방 2011-08-16 08:44   좋아요 0 | URL
CBS 에서 아침 9시에 하는 [아름다운 당신에게]인가 하는 클래식 방송 진행해요. 저도 전방송을 들어본 적은 없구요, 팟케스트로 '이 음악 향기롭다' 코너만 들어봤어요. 저도 세음할때 엄청 좋아했어요. 잔잔하게 그 방송을 틀어두면 일할때도 혹은 다른일을 할때도 지장이 없더라구요. 저 거기에 사연 보내서 임태경이 읽어준 적도 있어요. 꺅 >.<

메일은, 보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