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무소녀』의 역사적 배경은 '과테말라 내전'이다. 세상에. 대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내가 너무 역사에 무지하기 때문일까. 과테말라 내전은 들어본적도 없는 것 같은데. 소녀가 혼자서 그 시간들을 견뎌내며 성장하고 하는 이 책을 읽으며 중간중간 가슴 아파하는데, 이 책의 마지막, 과테말라 내전에 대한 짧은 설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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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내전에 대하여
과테말라 내전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내전으로, 유엔 발표에 따르면 내전 과정에서 20만 명 이상이 숨지거나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지원하는 과테말라의 반민주적 군사 정권에 대항하는 반군의 투쟁으로 시작되었으며, 1996년 반군 세력인 과테말라 민족혁명연합(URNG)과 과테말라 정부가 평화 협정을 체결하면서 마침내 피로 물든 36년간의 내전이 끝이 났다.
내전 기간에 450개 이상의 인디오 마을이 불에 타 사라졌고 수만 명이 학살당했다. 먼저 남자들이, 그 다음 여자들이, 그리고 아이들이 죽음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아이들이 만행을 목격했고 일부는 탈출해서 자신들이 본 것을 증언했다. 미국인 대부분이 이 사건을 그저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치부하고 말지만 미국인들도 책임이 크다. 미국 정부가 과테말라 마을을 습격한 군대를 훈련시키고 무기를 공급했기 때문이다.
미군은 의회 청문회에서 공산주의에 대항해 싸운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학살을 옹호했지만, 죽은 사람들 대부분이 공산주의가 뭔지도 몰랐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이들을 무장시켰다는 것도 거짓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가족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겨우 마체테나 작대기만을 든 채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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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라의 열쇠』는 처음부터 울컥거리게 했고, 마지막, 사라의 일기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기도 했지만, 이것은 그러나 내게 충분히 만족할만한 소설이 되지는 못했다. 나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더 좋은 책이 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것 같아서 아쉽다.
영화, 『사라의 열쇠』는 중간 이후까지 책보다 훨씬 좋았다. 나는 이미 책을 다 읽은 후라 결말까지 다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화의 처음부터 내내 눈물을 흘렸다. 동행은 중간부터 계속 눈물을 흘리고. 그러나 마지막의 어떤 장면에서 나는 집중력이 확 떨어지고 말았다. 아, 이 영화에 왜 저 장면을 저렇게.. 그게 너무 아쉬웠다. 책보다 나은 영화잖아, 라고 중간까지는 내가 얼마나 흥분햇었는데!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내가 저렇게 나이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근사했다. 영화를 보고나서 나는 이 긴머리를 잘라버리겠다고 생각했다. 단발로 가자고.
지난주였나, 밤에 하는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를 잠시 시청했더랬다. 늘 보아 오던 프로그램이 아니어서 줄거리는 모르지만, 아마도 여자는 남자를 혼자 좋아했었고 남자는 여자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었던건지, 어쨌든 그래서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기를 그만두었었는가 보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하늘을 보며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남자는 소원을 빌었냐며, 무엇을 빌었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비밀이라고 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너는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었다. 남자는 처음에 비밀이라고 말하더니 이내 자신이 빌었던 소원을 얘기해준다.
니가 나를 다시 좋아하는 것.
다시 좋아하는 것은 여자에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 순간 놀랐던 그녀는 이제 그와 함께다. 물론, 그 뒤의 일들에 대해서는 나는 더이상 알지 못하지만.
여름밤의 올림픽공원에 갔었다. 비가 온 후여서인지 평소처럼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심지어 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는 나와 나의 동행말고는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참 좋았다. 귀뚜라미가 울었고 매미가 울었다. 앞에는 호수가 있었고 밤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완벽한 순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자꾸만 다리에 벌레들이 붙어서 그 조용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방해했지만, 그럴때마다 손으로 그 벌레들을 치워댔다. 물론, 신경질을 내면서.
아, 맞다. 임태경이 라디오 다시 진행하는데, 들어봤어요?
라고 나는 동행에게 말하며 주섬주섬 가방에서 아이팟을 꺼냈다. 일전에 주변에서 모두들 팟케스트를 그리고 나는 꼼수다를 추천하던 터라 다운받아 놓으면서, 그러나 내가 이걸 듣게 될 날이 올까, 갸웃하면서, 이왕 다운 받는거 임태경이 한다는 라디오도 한번 받아볼까, 했던터였다. 나도 아직 안들어봤는데 우리 잠깐 들어볼까요? 하면서 나는 재생시켰다. 그 여름 밤, 귀뚜라미와 매미만 울어대는 밤에, 아이팟에서는 음악이 흘렀고, 그리고 임태경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는 비올리스트 킴 카쉬카쉬안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었다.
아. 좋았다. 킴 카쉬카쉬안, 이라는 비올리스트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된건 임태경의 라디오를 들었기 때문이고,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건, 임태경의 목소리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설명하는 임태경의 목소리는 또 그의 모든 발음은 아주 조용했고 아주 기품있었다. 클래식을 임태경처럼 잘 소개해주는 남자를 나는 더 알지 못한다. 심지어 나는 클래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나는 클래식을 듣는 사람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임태경이 라디오를 진행하며 소개해주면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지는 것이다. 나는 그 밤에, 그 음악과 그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동행에게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아, 어떡해. 다시 좋아지려고 해요. 심장이 두근거려.
나는 언제부턴가 임태경을 멀리했었는데, 더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그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도 안했는데, 그날 밤, 나는 다시 그를 좋아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한건 그래, 이런 것 때문이었지. 이러니까 내가 과거에도 이 사람을 좋아했었지,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래, 아주 오래전에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났을 때, 무심하던 마음으로 나갔다가 몇마디의 말들과 웃음들을 공유한 뒤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 이 사람은 역시 내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어. 이래서 좋았던거야. 과거에 좋아했던 것을 다시 좋아하는 것,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사랑하는 것, 그것은 쉽지도 않겠지만 그러나, 어렵지도 않다.
어제 장소를 이동하기 위해 갈아탄 지하철 안에서 전화의 진동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오는 전화가 너무 오랜만이라 어어, 뭐지, 하고 잠깐 설레였다. 080이나 번호없음도 아니고 꽤 멀쩡해 보이는 번호였다. 뭘까, 살짝 기대하는 마음으로 여보세요, 라고 전화를 받았더니 뭔가 잔뜩 녹음된 말이 나오고, 이내 또다른 녹음된 말이 나왔다.
방금 들으신 것 처럼 음성 자동인식 내비게이션을 구입하고 싶으시면 전화기의 버튼을...
하아- 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