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의 제목은 이 책의 소제목 중 하나를 인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아, 남자들을 대체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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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에는 ‥‥ 딸기파이가 먹음직해서 빵집에 들어갔는데 빵집 청년이 내 미소가 아름답다고 칭찬하지 뭐니. 그러자 등이 아픈 것도, 온갖 불행도 잊게 되었단다. 나는 곧 공격할 태세의 뱀처럼 몸을 곧추세웠지. 청년이 덧붙여 말하더구나.
"유혹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에요. 제 할머니뻘이신걸요."
아, 콩스탕스 ‥‥ . 남자들은 다정할 때 조차도 잔인해.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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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부분이다. 참으로 다정하게 잔인하구나. 천국과 지옥을 찰나에 오고가게 만드는게 바로 남자들의 힘이로구나.
책의 제목은 남자의 부드러움이고, 이 책속에는 한 할머니의 인생동안 등장한-아니, 연애한- 숱한 남자들이 얘기되지만, 그 남자들이 딱히 매력적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나한테는. 게다가 책 자체도 딱히 재미있다거나 한건 아닌데 그래도 눈에 들어오는 표현들이 많다. 게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는 내내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이 떠오르는데, 그건 이 책속에서 할머니와 손녀-친손녀는 아니지만-가 같이 여행을 다니며 사랑과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얘기를 하고, 손녀는 거의 듣는쪽인데, 아마도 여든이 넘은 할머니의 이야기라 그럴까, 이런 문장들은 사랑에 있어서 진리인 듯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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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비밀을 알려줄게. 네가 눈물을 흘릴 가치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어느 날 네가 이 예외적인 경우를, 네가 눈물을 흘릴 만한 존재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은 너를 울게 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아둬. 아마도 네가 그를 울게 만들 거야.
두번째 비밀은 이거야. 사랑에 빠지는 데는 아주 짧은 시간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바람이 불거나 혹은 약간 고독하고 무료한 날, 햇살 좋거나 혹은 때 아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충분해. 요컨대 그다지 큰 사건이 없어도 충분하단 말이지. 하지만 사랑에 빠지고나서 밀려오는 파도를 막으려면 자기 시간을 모조리 쏟아부어야 하지. 그래도 결국 막지는 못해. 희미해지긴 해도 그대로 남아 있지. 거기에 속아선 안 돼. 그건 너의 일부가 되지. 네 기쁨과 네 눈물의, 네가 이긴 싸움과 지게 될 싸움들의 일부가 돼.
마지막 비밀은 이거야. 네가 이 두 가지 상태를 경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거야."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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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첫번째 비밀은,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 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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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서 잠들게 만드는 사람을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p.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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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지, 울면서 잠들게 만드는 사람을 친구라고(혹은 연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 특히, '눈물을 흘릴 만한 존재는 나를 울게 하지 않을거'라는 말이 아주 마음에 든다. 그래, 그럴거야. 나를 울게 만들지 않겠지.
내 앞에서 울었던 남자들이 갑자기 떠올랐는데, 그중에 한명은 술 취해서 그냥 지가 운거고, 또 다른 한명은 내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울었다. 내가 안받아준다고. 음.. 나는 그때 엄청나게 당황해서 무섭기까지 했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난 참 고집이 센 여자구나 싶다. 그런데 그렇게 울었던 남자가,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울고, 수십통의 부재중 전화를 만들고, 끼니를 거르며 나를 기다리던 그가, 결국 3주만에 나보다 여섯살 어린 여자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그의 눈물은 고작 3주짜리..음.. 아, 그만하자 이런 찌질한 얘기는. 그리고 또 한명이 울었던 건, 에이, 이유는 구질구질하니까 생략하고. 암튼 그 또 한명은 삼겹살 집에서 나랑 삼겹살 먹다가 울었다. 나는 그때 울던 그에게 물수건을 건네줬었는데, 그러고보니 나는 내 앞에서 울던 남자들을 한번도 안아준 적이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할머니가 '아마도 네가 그를 울게 만들거야' 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만약 내가 앞으로 남자를 울게 만든다면 (응?), 그게 순수하게 나 때문이라면, 그러니까 내가 너무 싫다거나 재수없다거나 하는게 아니라, 나를 너무 사랑해서 혹은 그와 비슷한 이유로 울게 된다면, 그의 머리통을 내 가슴에 품어주고 싶다는 로망이 생겨버렸다. 두 팔로 그의 머리통을 안고 어깨를 두드려줘야지. 미안, 앞으로 안그럴게, 라고. 너를 울게 하지 않을게, 라고.
앗. 이런 얘기를 쓰려던게 아닌데 왜 갑자기...orz
다시,
할머니는 젊은 시절 가장 사랑했던 남자에게 이런 고백을 받고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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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장에서 당신은 꽃병 하나와 책 더미와 그리고 내 마음을 쓰러뜨렸소. (p.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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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앗. 신선하다. 내 마음을 훔쳤다는 표현은 흔하고 내 마음에 들어왔다는 표현도 질리는데, 꽃병 하나와 책 더미와 그리고 내 마음을 쓰러뜨렸다니. 아, 사랑에 빠진 남자들은 -아니 사실 예쁜 여자를 본 남자들은- 그 순간 시인의 본능이 튀어나오는가보다.
나는 아직도 어느 일요일,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울던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순간을. 또한, 누군가에 대한 마음 때문에 뒤척이며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숱한 날들을 경험해본 바 있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이런 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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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속에서 뛰는, 너무 심하게 뛰어 밤잠을 깨우는 이 심장에 지쳤다. (p.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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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쳤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미치도록 심하게 뛰는 심장, 그게 남자 때문이다. 아, 이런 빌어먹을 남자들.
나는 한번도 남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한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것도 그렇고 감정적인것도 그렇다. 요구라는 걸 해본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연애시절에도 그들과 싸우지를 않았었다. 이걸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잘한거든 못한거든 나는 앞으로도 어떠한 요구도 하지 못할 것 같다. 물질적으로는 내가 필요한 건 내가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고, 만약 감정적인 걸 원한다면 그들이 내 요구대로 해주지 않았을 경우, 내가 받게 될 상처가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 때문에 아프고 싶지는 않다. 물론, 내가 아팠던 많은 순간들이 남자 때문이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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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싸우고 싶지 않았고, 그가 내게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았다. (그가 줄 수 없을까봐 두려워서였을까?)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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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줄 수 없을까봐 두려워서, 라는 쪽이 맞다고 본다, 나는. 그러니까, 내 경우에는.
'임태경'의 노래 「옷깃」이라고 있는데, 그 가사중에 '내게 신앙같고 내게 형벌같았던 그대의 옷깃을' 이라는 부분이 있다. 신앙과 형벌, 그 극과 극이 한 사람의 옷깃에서 비롯된다. 이 책속에서 할머니가 젊은 시절 사랑했던 또 하나의 남자, '니겔' 에 대한 묘사는 바로 임태경의 옷깃에서 말했던 신앙과 형벌, 그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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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겔은 춤이면서 벌이고, 애무이자 폭력이고, 번민이자 절망이며, 분노이면서 광기 어린 웃음이고, 그 밖의 또 다른 무엇, 내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 내가 아닌 모든 것이었어. (p.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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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에 빠지게 된 남자를 이토록 잘 설명한 말이 있을까. 특히나 '내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에 나는 형광펜으로 구멍날때까지 밑줄을 긋고 싶은 심정인데, 취향을 맞춰보고 사소한것들에 대한것까지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거기에 대한 답을 들어도, 그는 영영 내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일것 같다. 물어볼때마다 그는 언제나 답을 해주고, 나는 그의 답을 듣고 울다가 웃다가 하지만, 나는 그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내가 어떻게 그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는 내가 아닌 모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는 내가 '아니'라는 거다. 내가 아닌 모든 것.
자, 한숨 한번 쉬고, 나는 이제 일이나 해야겠다. 사랑을 아무 데서나 만날 수 없다는, 딱히 공감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 책 속 필립의 말을 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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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면 상대의 발밑에서 얼쩡거릴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래야 합니다. 사랑을 하면 상대의 귀에다 대고 사랑한다고 외치지 않을 권리가 없어요. 설령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 . 길을 가다 아무 데서나 사랑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p.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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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이 책은 딱히 추천할 만큼 재미있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덧붙이자면 지금 반값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