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썩 훌륭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장면만큼은 정말이지 근사해서, 아마도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내가 앞으로도 두고두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여운도 길고 세다. 나는 비록 이 영화에 별은 셋 밖에 못줄망정-그러나 내가 준 별이 무슨 큰 영향을 미치겠는가!-, 계속 생각하고 떠올린다.
이 영화를 보기전에 친구와 이런 얘길 했었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떠오르는 연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그러나 아쉽게도 이 영화속의 주인공과 같았던 연인은 내게 없었고, 이 영화속 현빈은 내게 아무도 떠오르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나의 연인이든 친구의 연인이든, 그리고 이 영화속의 훈(현빈)이든,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자, 나는 내가 지은 시는 아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떠오르는 시를 적어두기로 한다. 그리고 내가 지은 시도 아니면서, 거기에 감히 『만추에 바치는 시』라는 이름을 붙이련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시가 뜻하는 바를 알 수 있겠지. 이 영화를 보기전이라면 이 시를 한번 읽고 가서 보시라고 말해주고 싶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을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 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 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