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썩 훌륭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장면만큼은 정말이지 근사해서, 아마도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내가 앞으로도 두고두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여운도 길고 세다. 나는 비록 이 영화에 별은 셋 밖에 못줄망정-그러나 내가 준 별이 무슨 큰 영향을 미치겠는가!-, 계속 생각하고 떠올린다.  

이 영화를 보기전에 친구와 이런 얘길 했었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떠오르는 연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그러나 아쉽게도 이 영화속의 주인공과 같았던 연인은 내게 없었고, 이 영화속 현빈은 내게 아무도 떠오르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나의 연인이든 친구의 연인이든, 그리고 이 영화속의 훈(현빈)이든,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자, 나는 내가 지은 시는 아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떠오르는 시를 적어두기로 한다. 그리고 내가 지은 시도 아니면서, 거기에 감히 『만추에 바치는 시』라는 이름을 붙이련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시가 뜻하는 바를 알 수 있겠지. 이 영화를 보기전이라면 이 시를 한번 읽고 가서 보시라고 말해주고 싶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을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 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 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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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2-18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또 찌찌뽕!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이 시도 나오거든요. 시가 탄생하게 된 비화(?)도 같이 얘기해 줬어요. 시가 너무 좋아요.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상상이 갈 것 같은 그리움이에요.

다락방 2011-02-20 22:12   좋아요 0 | URL
기다림은요, 마노아님.
내가 연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것인듯 해요.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상대도 언젠가는 돌아올거라고 믿어요.
아, 가슴 시리네요. 후..

순오기 2011-02-18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지우 시는 이렇게 다가오는데, 만추는 어떨지...
내 나이면 정동환 김혜자 주연의 만추에 더 감정이입이 될 거 같아요.^^

다락방 2011-02-20 22:12   좋아요 0 | URL
현빈과 탕웨이의 만추는 영화로는 좀 허술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아름다운 영화에요. 게다가 탕웨이의 연기는 정말 근사해요!

레와 2011-02-18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보고 바로 이 시를 읽을려고 위에 '시' 폰에 저장했어요. :)

다락방 2011-02-20 22:13   좋아요 0 | URL
레와님께도 만추 마지막 장면에 이 시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전 마지막 장면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메르헨 2011-02-18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은 늘 제게 영화를 보고프게 만드록 책을 읽고 싶게 만들죠....
아웅...황지우님의 시...다시 들춰봐야겠습니다.^^

다락방 2011-02-20 22:13   좋아요 0 | URL
이 영화를 본다면 이 시가 더 아름답게 다가올수 있을텐데요, 메르헨님!!

프레이야 2011-02-18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부터 보고 정지우 시인의 시 읽으러 다시 올게요.^^

다락방 2011-02-20 22:13   좋아요 0 | URL
네, 프레이야님. 영화보시고 나면 꼭 다시 들러서 이 시를 한번 읽어주세요.

소나기 2011-02-19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무척 좋아하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란 시가 떠오르는 그런 영화인가요?
영화를 좋아하진 않지만 어쩐지 보고싶어지네요! :)

다락방 2011-02-20 22:14   좋아요 0 | URL
네, 홀릭제이님. 마지막 장면의 탕웨이를 보면 이 시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아요.
:)

세실 2011-02-19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사랑스러운 다락방님. 만추를 보고 어울리는 시를 콕 짚어주는 센스라니^*^
대부분 알아 들을 수 있는 쉬운 영어 대사라 좋았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어요.
시애틀의 아름다운 풍경도 좀 보여주었더라면, 현빈의 머리도 좀 거슬리고....
마지막 장면 눈물 나더라구요. 얼마나 아릴까요. 처량하게 떠날 뒷모습 생각하니 더더욱.

다락방 2011-02-20 22:18   좋아요 0 | URL
현빈의 헤어스타일은, 영화속 훈의 캐릭터에는 아주 적절한 헤어스타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가 하고자 하는건 그저 여자들이 원하는 남자가 되어 돈을 받는 것 뿐이었으니까요.
마지막 장면은요, 세실님. 저는 안타깝기도 하고 또 희망적이기도 하고 그래요. 그대로 끝은 아닐거라는 믿음이 저는 있어요, 세실님.

꿈꾸는섬 2011-02-19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만추에 바치는 시>라는 제목이 딱이에요. 다락방님의 센스는 정말 따라갈 수가 없어요.
추천을 안 누를 수가 없는 글이에요.^^

다락방 2011-02-20 22:18   좋아요 0 | URL
아니, 센스라뇨, 꿈꾸는섬님! 과찬이십니다. 저는 만추의 마지막 장면을 정말 잊을수 없을 것 같아요, 꿈꾸는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