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이든 일이든 친구든 그게 뭐든, 그것은 나의 일부가 되어야지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것들 모두를 나의 '일부'로 가지고 있어야 내가 무너지지 않으니까. 사랑에 실패하면 일과 친구가 나를 붙들어 줄 것이고, 일에 좌절하면 사랑과 친구가 나를 위로해줄 테니까. 그래야 이 땅에 두발로 서 있을 수 있으니까. 가끔 휘청거려도.
전부라면 무너진다. 사랑이 전부이면 사랑을 잃었을 때 무너져버리고, 일이 전부라면 일로 좌절을 느꼈을 때 무너진다. 그것들을 전부로 생각하지 않아야 내가 나를 잃지 않고 나를 잊지 않는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안나에겐 사랑이 전부다. 사랑과 브론스키 혹은 브론스키에 대한 사랑. 3권에서의 안나는 브론스키가 자기를 미워할까봐, 자기에 대한 사랑이 흔들릴까봐 겁나고 두렵다. 안나는 닥치는대로 책을 읽기도 하고, 일에 빠지기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하지만, 브론스키의 눈빛이 하는 말을 그대로 읽어낼 수 있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안나는 브론스키를 잃는것이 전부를 잃는것이라 결코 잃고 싶지 않다는, 반드시 붙들어 두어야 한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휘둘리고 있다. 그녀에게 여전히 브론스키를 압도할만한 매력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하는 걸까. 그녀가 브론스키에게 열중하는 그 마음과 정신을 조금만 더 책과 일과 사람들에게 쏟을 수 있었다면, 어쩌면 그 모습을 보고 브론스키는 지치지 않을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건 내가 안나가 아닌, 안나를 '보는'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 쯤은 나도 알고 있다. 안나가 조금이라도 브론스키와 떨어져 있으면 조바심 내는것이, 모르핀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것이 몹시 안타깝다. 일전에 '소피 마르소' 주연의 영화로 본 적이 있어 결말을 알고 있지만, 그 결말로 가는 과정들을 지켜보는 건 슬프다.
'나는 남에겐,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에게까지 이만큼의 영향을 줄 수가 있는데 어째서 그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차가운 것일까? 아니, 차가운 건 아니다.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고 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뭔가 새로운 것이 지금 우리를 갈라 놓으려고 하고 있다. 어째서 그 사람은 하루 저녁 내내 집에 없는 것일까?' (p.302)
그녀는 다시 자기가 가여워져서 거의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만약 당신이 나에게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알아준다면! 지금처럼 당신이 나에 대해서 적의를, 그래요, 말 그대로 적의예요. 적의를 품고 있다는 걸 느낄 때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인지를 알아준다면! 그러한 순간에 내가 얼마나 불행에 가까워지는지, 얼마나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알아준다면!" (p.305)
나는 감히 안나에게 모르핀을 그만두라는 말을 할 수도 없고, 브론스키를 향한 사랑을 조금만 거두어 들이라고도 할 수가 없다. 그녀에게 전부라는데 내가 더 무슨 말을 할수 있겠는가! 그녀가 점점 비극으로 치닫는 것을 지켜볼 밖에 내게는 별 도리가 없다.
오전에 외근을 다녀오면서 걷는데, 문득, 내가 상대에 대해 이러이러하다, 라고 생각하는 건 결국 내 기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상대가 나에게 선을 긋고 있을거고, 나는 그 선에 맞춤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결국 그런 생각은 '내가 그러하기' 때문에 나온게 맞을거라는 거다. 내가 선을 긋고 있으니까. 딱 선을 그어놓고 그 선에 가까이 오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그 선을 넘으려고 하면 까칠해져버리곤 하니까, 상대도 내게 당연히 그러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어쩌면 상대는 내게 선을 긋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그저 활짝 열어두었을 지도 모르는데. 나를 믿지 못하는 것 같아 서운하다고 생각했던 건, 내가 상대를 믿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들었던 생각일 거라는 걸 나는 이제서야 조금쯤 할 수 있게 되었달까. 내가 이러니까 상대도 당연히 그러하겠지 라고 나는 나 좋을대로 생각해버렸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노래를 들었다.
밤새 방안엔 눈이 많이 쌓였어
난 자장가에 잠을 깨어 눈을 떴지만
넌 이미 없었어
밤새 마당엔 새가 많이 죽었어
난 종이돈 몇 장을 쥐고
전화를 걸어 천국을 주문했어
노래는 반쯤 쓰다 참지 못하고 태워버렸어
나는 재를 주워 담아 술과 얼음과 마셔버렸어
오 미안 오 이젠
작별 인사를 해야지
내마음을 닫을 시간이야
밤새 방안엔 꽃이 많이 피었어
난 종이돈 몇 장을 쥐고
전화를 걸어 끊어 버렸어
밤새 술잔엔 눈물이 많이 고였어
넌 내게 거절해달라고 애원했지만
난 끝내 거절했어
it's my close my mind
it's time to close
it's my close my mind
it's my close my mind
'내 마음을 닫을 시간이야', 라는 가사가 파고들어와 좋아했던 노래였는데, 우습게도 나는 오늘 이노래를 들으며, 열어야 할 시간이 아닐까, 싶어졌다. It's time to open. 내가 전화를 걸어 천국을 주문한다면, 그것은 마음을 열었기 때문이고 선을 지웠기 때문이지, 마음을 닫을 시간이 되서는 아닐것이다.
내 마음을 열어둘 시간이야, 라고 오.늘. 나는 내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