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톤 프로젝트 (Epitone Project) - 긴 여행의 시작
에피톤 프로젝트 (Epitone Project) 노래 / 파스텔뮤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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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사귀고 싶지 않은 스타일의 남자들이 있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나는 삼겹살이 익기도 전에 조급하게 먹어 치우는 남자들이 싫고, 뭔가를 먹을 때 고개를 처박고 먹는 남자도 싫다. 걸핏하면 욕을 하는 남자들도 싫다. 좋아하고 편하다는 이유로 말을 함부로 하는 남자들과도 사귀고 싶지 않으며, 어리광을 피우는 남자들과도 별로 만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런 남자, 이렇게 감성적인 가사를 써대는 사람, 이런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다. 

나는 혼자 잘 살아내는 사람들이 좋다. 혼자서 밥도 잘 먹고 혼자서 놀기도 잘 노는 사람. 혼자서 여행도 잘 다니고 혼자 있는게 심심해도 그 심심함을 잘 견뎌내는 사람. 혼자 산책도 잘 다니는 사람. 혼자 건강도 잘 챙기는 사람. 나는 '니가 없으면 나는 무너져버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예뻐할 수가 없다. 그들을 감당할 수가 없다. 일전에 친구가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자 횡단보도를 건너는 강아지를 보았어요' 라는 문자메세지를 보낸적이 있는데, 나는 그런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 (강아지 얘기는 갑자기 왜..) 자, 다시,  

그러니까 에피톤 프로젝트는 감성적이다. 음악도 가사도 사람을 후벼파기 위해 만들어낸 것 처럼, 듣고 있다 보면 아득해지고 힘들어진다. 추억에 잠기게 되고 또 회상에 젖어들게 된다. 누군가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이 감성적인 남자 에피톤 프로젝트다. 그가 하는 일이다. 이런 남자랑 사귀게 된다면 얼마나 힘들까.  

불의 앞에서 내가 분노 하고 있을때 나를 다독이기 보다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주먹을 휘두를지도 모르고, 슬픈 영화를 보며 내가 눈물을 글썽일 때 옆에서 펑펑 울어대고 내게 안기려 할지도 모르잖아. 그런 사람을 대체 어떻게 감당해. 게다가 헤어지면, 헤어지고 나면? 감성적인 남자, 감성으로 똘똘 뭉친 남자는 헤어지고 나서 한동안 허우적 대겠지. 술을 퍼마신다거나, 머리를 안감는다거나, 몹시 앓아 눕는다거나, 그러겠지. 방 한구석에 처박혀 눈물로 밤을 지샐지도 모르고. 난, 그런거, 싫다. 너가 떠나고 나서 내 삶은 황폐해지기 시작했어 라는걸 온 몸으로 드러내는 남자. 그런 남자를 대체 어떻게..어휴. 

나에게 이런 감성적인 남자는 그저 예술가로 남는 쪽이 좋다. 후벼파는 음악을 만들어 주는 쪽. 후벼파는 가사를 써주는 쪽. 나는 감성적인 남자들은 그런식으로만 알고 싶다. 내 옆에서 나랑 같이 살을 섞기 보다는, 마음을 주고 받기 보다는, 그저 내가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든다거나, 내가 읽을 수 있는 글을 써주는 쪽이, 내게는, 편하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1집은 2집에 비해 조금 촌스럽다. 그러나 그 촌스러움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다. 세상에, 노래 제목이 『그대는 어디에』라거나 『나는 그사람이 아프다』이다. 제목만 봐도 얼마나 청승스러울지 짐작이 되질 않는가. 게다가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의 가사는 구구절절 아주 난리가 났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 떨려
수줍게 넌 내게 고백했지
내리는 벚꽃 지나 겨울이 올 때까지
언제나 너와 같이 있고 싶어

아마, 비 오던 여름날 밤이었을거야
추워 입술이 파랗게 질린 나, 그리고 그대
내 손을 잡으며 입술을 맞추고
떨리던 나를 꼭 안아주던 그대
이제와 솔직히 입맞춤보다 더 떨리던 나를
안아주던 그대의 품이 더 좋았어

내가 어떻게 해야 그대를 잊을 수 있을까?
우리 헤어지게 된 날부터
내가 여기 살았었고
그대가 내게 살았었던 날들

나 솔직히 무섭다
그대 없는 생활 어떻게 버틸지
함께한 시간이 많아서였을까?
생각할수록 자꾸만 미안했던 일이 떠올라

나 솔직히 무섭다
어제처럼 그대 있을 것만 같은데
하루에도 몇 번 그대 닮은 뒷모습에
가슴 주저앉는 이런 나를 어떻게 해야 하니?

그댄 다 잊었겠지 내 귓가를 속삭이면서
사랑한다던 고백
그댄 알고 있을까?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또 얼마를 그리워해야 그댈 잊을 수 있을지

난 그대가 아프다 언제나 말없이 환히 웃던 모습
못난 내 성격에 너무도 착했던 그대를 만난 건
정말이지 행운 이었다 생각해 난 그대가 아프다
여리고 순해서 눈물도 많았었지 이렇게 힘든데
이별을 말한 내가 이 정돈데
그대는 지금 얼마나 아플지...
 
   

 

어휴- 이런 사람하고 사랑하다 헤어지면 헤어지고 나서 그를 잊는데 오만년쯤 걸리지 않을까. 뭐, '지금 생각해도 가슴 떨려, 언제나 너와 같이 있고 싶어' 라고 말한다면, 도무지 피할수는 없겠지만. 아, 물론 에피톤 프로젝트가 나한테 사귀자고 한건 아니다. 그는 나의 존재 조차 모른다. 뭐, 나를 안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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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올해의 음반, 에피톤 프로젝트, 오 베이비!!
    from 마지막 키스 2010-12-21 13:48 
              아, 나는 올 한해 에피톤 프로젝트의 『눈을 뜨면』, 『이화동』, 『오늘』, 『그대는 어디에』, 『나는 그사람이 아프다』등을 들으면서 얼마나 쩔어(!)있었던가. 대체 갑자기 튀어나온 에피튼 프로젝트, 그는 누구인가, 왜 이다지도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가, 왜 나를 후벼파는가, 기타등등의 절절한 감정으로 그의 노래를 얼마나 장시간 들어왔던가! 올해의 음반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에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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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7-01 09:00   좋아요 0 | URL
아니 뭐 이건 리뷰도 아니고, 일종의 음악듣고 생각난 수다 쯤? ㅎㅎ
삼겹살이랑 소주로 고문하는건요 무스탕님, 변태한테 채찍으로 때린다는 것과 다르지 않잖아요. ㅎㅎ
삼겹살과 소주 고문이라면, 아잉, 좋잖아요! ♡

sweetrain 2010-06-30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길에 침 뱉는 남자를 정말 싫어하구요, 욕 하는 남자도 싫어해요.
그 외에도 참 수많은 이상형들이 있었는데, 말로 표현이 잘 안되네요. ㅡ.ㅜ

다락방 2010-07-01 09:01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길에 침 뱉는 남자도 싫어요. 대체 왜 길에다 침을 뱉는걸까요? 에잇.
전 술 취해서 시비거는 주사를 가지고 있는 남자들도 싫어요. 뭐, 싫은 남자를 꼽자면 끝이 없겠네요. 좋은 남자도 그렇지만.
:)

pjy 2010-06-30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걸 용서할 수 있어요! 어쨌든 시키는대로 말만 잘듣는다면!!!

다락방 2010-07-01 09:01   좋아요 0 | URL
저는 저 위에 쓴 것들은 용서할 수가 없어요. 말 잘듣는건 기본으로 깔고 가야죠. 후훗

웽스북스 2010-07-01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힛. ^_______________^

다락방 2010-07-01 09:02   좋아요 0 | URL
우.리.들.은. 블.랙.베.리! ㅎㅎ

유리날개 2010-07-06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이번 연작앨범의 선인장..을 심규선씨가 아닌 차세정씨 목소리로 듣다가..
이남자는 뭐하는 남자길래 이런 노래를 만들고 이런 가사를 쓰고..하다못해
목소리마저 사람을 울리나..싶어서 아티스트로만이에요..
참고로 언니가 말하자면 예술하는 남잔 애인감으로 안좋다네요..
음악하는 언닌데..같이 음악하는 사람들도 동종업계는 사양한다더군요..

다락방 2010-07-06 23:3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대체 이 사람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뭘 느끼고 살길래 이런 노래를 만드는거야, 하는 생각이 절로 들죠. 역시 아티스트로만...이런 사람은 애인으로는 무서워요. 많이 힘들것 같아요. 어휴. 그렇지만 노래를 들을줄은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감상조차 제대로 못한다면 윽, 그것도 별로에요. 하하

유리날개 2010-07-07 11:3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감성..그게 뭐야? 먹는건가? 타입의 제 남친 말하시는거에요?
ㅋㅋㅋ 농담이구요..깝깝하긴해요..저두 감성적 인간인데..
이렇게 감동적음악보단 걸그룹에 열광하는 이남잔..-_-;;;

다락방 2010-07-07 13:20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걸그룹에 열광하는 남자라면 지극히 평범하고 보통의 남자가 아닙니까! 음, 제 생각에는 예술을 하는 엄청난 감성을 가진 남자보다는 걸그룹에 열광하는 남자쪽이 좀 편할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걸그룹..열광... 아, 뭔가 신나요! (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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