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만나는 날은 언제나 술이 떡이 됐다. 다음날 일상을 지내기가 불편할 정도로. 물론, 언제나 우리는 만나면 살살 마시자는다짐을 하곤 했다. 그러나 그건 말 뿐. 또다시 우리는 떡 되는 술자리를 갖곤 했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면서 뭘 그리 할 말이 많았을까. 우리의 코스는 별다를 것도 없었다. 1차는 삼겹살이고 2차는 꽃청년서빙 정종집. 2차의 정종집에 가서 맥주를 시키고(그렇다, 우리는 정종집에서 정종을 마시진 않았다) 서비스를 받을때 쯤이면, 우리는 필름이 끊기곤 했다. 아, 진짜 서비스 받을때까지 마시지 말아야지, 이거야 원.
그녀는 예쁘다. 청바지를 입어도 예쁘고 치마를 입어도 예쁘다. 특히 그녀가 활짝 웃으며 얘기를 할때면, 와- 홀딱 반해버릴 것만 같다. 어쩌면 저렇게 예쁠까. 저 표정을 보고 눈웃음을 친다고 하는걸까? 저런걸 보고 애교있다고 하는걸까? 나는 그녀가 얘기할때마다 그녀의 예쁜 표정에 반해버렸다. 아마도 그래서 다음의 만남을 자꾸만 약속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예쁜데, 그게 다가 아니다. 그녀는 현명하다.
나는 그녀와 나누었던 그 모든 대화들을 기억할 수는 없다. 당연하다. 술이 취해 나눈 얘기들까지 기억하기에 나는 지나치게 늙었다. 나는 가끔 그녀에게 물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쩌겠어요? 이런 상황에 이렇게 대응하는 거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녀는 내가 베른하르트의 입장이 될 수도 있다고 좌절했을 때,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최선이라고 얘기해줬다. 나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을 바꾸게 됐다.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그녀는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녀는 감정을 숨기는 것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고, 나는 감정을 숨기는 것에만 연연해했다.
그런 그녀가 정종집에다 우산을 두고 갔다고 했다. 그녀를 닮은 예쁜 우산을.
덕분에 나는 이 맑은 날, 이 맑은 주말, 우산을 가지고 걸었다. 종로를 지나 광화문에 가서 친구를 만났을 때 친구는 나를 보고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웬 우산이에요? 오늘 비온대요?"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았다. 비가 올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종로의 까페에서 내일, 그녀를 위한 환송회가 열린다. 사람들은 거기에 모일것이고 그녀에게 잘가라는 인사를 해줄것이다. 나는 그자리에 가지 않을것이고, 그러나 그녀에게 우산을 건네기 위해 하루전에 까페에 들러 우산을 맡기고 왔다. 그녀를 닮은 예쁘고 밝은 그리고 젊은 우산을.
Forgettable 님, 잘 다녀와요. 나는 여기에서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마도 당신이 돌아왔을 때에도 나는 별로 달라진 건 없을거에요. 여전히 초라하고 한심하고 늙고 못생기고 뚱뚱한, 그렇게 나이만 먹어버린 여자사람으로 변함없이 여기 있을거에요. 나는 뭔가 크게 변화해서 당신을 기다린다고 약속할 순 없지만, 그렇지만 당신이 돌아와서 또다시 정종집에 가자고 하면, 또다시 그곳에 가서 가츠동과 맥주를 마시자고 하면 활짝 웃으면서 그러자고 할게요. 나는 눈웃음도 칠 줄 모르고, 사실 내 미소는 꽃미소와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자고 하면, 그렇게 할게요.
당신은 내가 알라딘 서재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이고 가장 많은 얘기를 내게 해준 친구에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그만, 정이 들어버리고 말았어요. 매주마다 만나는 건, 음, 그러지 말아야 했던 것 같아요.
내일 환송회 잘 하고, 그리고, 예쁜 우산 찾아가요.
그곳에 가서도 지금처럼 예쁘게 살아요. 지금처럼 예쁘게 옷을 입고 예쁘게 웃고 예쁘게 말 한다면, 거기서도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한다고 몰려들거에요. 뜨겁게 사랑하고 뜨겁게 살아요. 뜨겁게 공부하고 뜨겁게 즐기길 바랄게요.
잘 다녀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