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그에게'
이 책은 이 단 한줄의, 단 한명에게 바치는 헌사로 시작한다. 두근두근. 역시 마음을 담은 말은 어느 한명만을 향할때 가장 가치있다. 누구에게나 어떤상황에서도 뱉어지는 말들이라면, 그 가치는 쪼개지고 쪼개지고 쪼개진다. 모두의 그 무엇 보다는 나만의 그 무엇이 가장 좋은 이유다. 내게만 향하는 것, 나에게만 말하여 지는 것.
아, 그런데 이렇게 두근두근 시작했건만, 79쪽까지 읽은 지금, 이 책을 더 읽을지 말지 망설여진다. 79쪽까지 읽으면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었다. 이 책에 쓰여진 말들이 대체 뭔말인지 모르겠다. 내가 알 수 없는 언어로 알 수 없는것들을 말하고 있는것 같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ㅠㅠ
뱀파이어, 늑대인간, 변신인간에게 모두 사랑받는 수키를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솔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고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솔직함. 또 그녀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말하지 않아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상처를 줄 것 같은 말들은 참아내는 것.
나는 음, 누군가에게 전화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전화를 걸었을 때 상대방이 반갑게 받아주지 않는다면 꽤 상처받을 정도로 소심하다. 그래서 내가 전화하는 사람들은 한정되어있다. 거의 식구들 뿐이다. 내 핸드폰요금에서 순수하게 '통화료'가 차지하는 금액은 5천원도 채 안되곤 한다. 언제나 반갑게 받아줄거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쯤 통화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아질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확신을 그다지 잘 받질 못한다.
이 책속의 수키는 늑대인간 알시드에게 전화했고, 사무실에 찾아갔는데, 알시드가 무척 바빠보였다. 그래서 자신이 전화를 한 상황이 미안해졌다.
「당신 바쁘네요. 전화하지 말걸.」
나는 금세 주눅이 들어 말했다.
「농담해요? 당신 전화는 하루 종일 내가 겪은 일 중에서 최고로 좋은 일이었어요!」(p.139)
아이참, 이렇게 말해준다면, 앞으로는 자주 전화해도 될거라는 확신이 생길텐데. 어쩐지 마구마구 따뜻해지고야 말잖아. 이런 말을 듣는다면, 아, 나 참으로 괜찮은 여자사람이구나, 라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까지 같이 생겨버릴텐데.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발가벗은채로 비가 퍼붓는 강남대로를 뛰었다. 그렇게 뛰다가 걷다가 하고 있으니 당연히 길거리에서 나를 보는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했고, 그중에 몇몇 남자들은 내게 지저분한 농담을 했다. 그러나 아무도 곁으로 다가와서 차마 내게 손을 대지는 못했다. 나는 창피해서 곧 울음을 터뜨릴것만 같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강남에서 집까지 뛰다가 걷다가 했다. 뉴스에서는 발가벗고 뛰는 내 모습이 나오고 있었고, 집에 도착한 나는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받는다.
"뉴스에서 봤어. 너 강남에서 발가벗고 뛰는거. 아무도 너인지 알아보지 못할거야. 괜찮아. 비 맞아서 춥지? 얼른 밥하고 국 먹어."
그런데도 나는 울지 않았다.
그 꿈을 꾸고나서야 나는 내가 힘들때 엄마를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와 여동생과 남동생. 언제나 내 편일 수 있는 사람들은 가족들이 유일하다. 기쁘고 즐거울때, 칭찬받고 싶을때는 간혹 타인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힘들때는 한번도 타인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타인으로부터 받게 될 상처와 실망이 두렵다. 나는 꽤 강한 사람이고 모든것들을 이겨내고 극복하고 참아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처를 받거나 실망하게 되는 일이 두렵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타인에게 힘든걸 고백했을 때는, 그 모든 상황이 끝나버리고 난 후다. 그래서 아주 많이 타인들로부터 욕을 먹었다. 왜 너는 힘든 순간에 함께 할 기회를 주지 않느냐고, 모든걸 혼자 끝내버리고 나서야 이야기를 하는거냐고. 그렇게 욕을 먹었건만, 그점에 대해서는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힘들때 정말, 타인에게 기대해도 되는걸까? 타인을 생각해도 되는걸까?
여전히 그 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만약 내가 비를 맞고 비참하고 우울한 기분에 가득 차 있을 때, 따뜻한 밥과 국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 몸을 녹히라며 따뜻한 차를 내어주고 담요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 마른 수건으로 내 머리를 말려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힘들 때 그 사람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사람이라면 그것이 우정이든 사랑이든 그 관계 안에 더욱 굳건한 믿음이 존재하고 있어야겠지. 그러나 나는 좀처럼 비를 맞고 비참한 기분이 되었을 때, 타인을 찾아갈 수 있다고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자, 다시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A Reading Diary)로 돌아가보자면, 이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C는 책 스물다섯 권을 어깨에 지고 파리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차 한 대가 와서 멈추더니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여자가 가려던 곳은 근처였지만 C의 사정을 듣고는 집 앞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단다. 온 인류의 도서관에서는 그 여자의 너그러움이 책방 주인의 인색함을 상쇄한다.(p.61)
내가 『율리시스』를 낑낑대며 들고 갈때, 『반 고흐』책을 가지고 가느라 토할뻔 했을때, 그때 아무도 내게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고 묻지 않았었다. 것봐, 역시 타인에게는 그 무엇도 기대해서는 안된다니까. -_-
그러나 어느 비가 많이 오는 날, 우산도 없고(난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것이 아주 싫다. 무척 싫다.), 전화도 할 수 없어서 무작정 맞아야만 했을 때, 그때 비를 맞고 가고 있는데 한 청년이 우산을 씌워주면서 집 까지 바래다준적이 있었다. 내게 왜 비를 맞느냐고 물었고, 나는 우산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이렇게 비를 맞을 정도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그는 또 물었는데 나는 역시 그저 우산이 없어서라고 답했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아무도 우산을 씌워주지 않더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의 집이 어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내가 사는 아파트의 출입문까지 나를 바래다 주었다.
어쩌면,
타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해도 좋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