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tle Rain - Second Rain
젠틀레인 (Gentle Rain) 연주 / 강앤뮤직 (Kang & Music)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언젠가 한 청년이 내게 그런말을 했다. "나는 사귀지 않는 여자와는 키스해본 적이 없어요."  심지어 그는 '사귀자'고 말을 꺼내고 상대가 예스를 한 다음에, 그 다음에 손을 잡았다고 했다. 그에게 있었던 몇번의 연애는 언제나 그런 수순이었다고 했다. 사귀지 않는 여자와는 키스해본 적이 없는 것도, 사귀자고 말을 한뒤에야 비로소 손을 잡는것도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놀랐다. 충격에 빠졌다. 왜 그는 이토록 교과서적인 수순을 밟고 있는가.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나는 왜 이렇게 가장 기본적이고 충실한 순서를 밟는 남자와는 연애해본 적이 없는가. 나는 그의 '바른길로 가는 듯한' 모습에 매혹됐었다. 그의 연인이 되었었던 여자들 역시 정당하고 옳은 연애를 했을 것 같아 부럽기까지 했다. 그녀들은 알까. 그 기본적이고 흔한 패턴이 사실 다른 어떤 여자들에게는 전혀 흔하지 않을수도 있음을. 

[젠틀 레인]의 음악은 모든것의 기본인것 같다. 앞으로 재즈를 듣고 싶다, 그런데 정통 재즈는 어쩐지 어렵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들어야 할 연주. 재즈로 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들어야 할 음악.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기본에 충실하다. 하나의 악기가 조용히 먼저 연주되다가 잠시후 조용히, 또 다른 악기들이 화음을 이루어내며 멋들어지게 연주한다. 드럼도, 콘트라베이스도, 피아노도. 각자의 역할을 기본적으로 충실하게 이행하며 듣기 편안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또한 그들의 음악은 담고있는 내용까지도 기본에 충실하다.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며 작곡한 음악,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음악, 기존의 유명한 곡을 자기네 식으로 편곡한 음악. 그 편곡은 또 모나지 않아서 듣기에 어렵지 않다. [Just way you are]의 게스트 보컬 혜원의 차분한 음색은 맛깔스럽다. 음악같지 않은 음악, 그저 시끄럽기만 한 음악, 대체 의미를 알 수 없는 음악이 판치는 지금, 이정도의 '평범하고 기본적인'앨범을 만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그래서 그들의 시디를 걸어놓고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있자니 어쩐지 나도 '바른'여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은 앞으로 나도 정해진 수순으로 올바르게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앞으로 더 많은 재즈를 듣기 위해서 그들의 연주를 듣고, 그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어렵지 않음에 안심한다.  

사귀자는 말을 꺼내자는 남자에게는 노, 라고 말했던 철없던 시절과, 사귀지도 않는 남자와 키스를 해놓고 짜릿하다고 음흉한 미소를 지었던 치기어린 시절에 안녕을 고하련다. 앞으로는 나도 바른 남자를 만나 바른 연애를 해야지. 일단은 [젠틀 레인], 그들의 음악을 좀 더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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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1-17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리를 글로 옮기는 놀라운 재주. :)

다락방 2009-01-18 14:10   좋아요 0 | URL
그러나 놀라운 글은 아니죠, Jude님.
:)

비로그인 2009-02-02 15:06   좋아요 0 | URL
아니어요 놀라운 글 맞아요 :)

메르헨 2009-01-17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젠틀 레인...처음 들어보는걸요.^^그보다 지극히 당연한 수순으로 연애를 한 메르헨은 요즘 말이죠....
한때 좀 치기어린 시절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싶습니다요.하핫...
다음에 고딩이 되면 반드시 껌 쫌 씹고 침 쫌 뱉는 그런 류의 학생(?)이 한번 되고 파요.
저의 로망이죠 뭐...흠...

다락방 2009-01-18 14:10   좋아요 0 | URL
음, 그렇다면 우리는 저마다 각자 가보지 못했던 길을 열망하는 셈이로군요. 지극히 당연한 수순으로 진행됐던 연애이야기는 언제쯤 풀어놓아 주실건가요? 하하

2009-01-18 0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8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L.SHIN 2009-01-18 0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역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키스를 한 경험이 여러번이죠.
모르겠어요. 애시당초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녀석이라서 '스킨쉽' 정도로 생각했거나,
'떼어내기 귀찮아서' 였는지도.(긁적)

째즈..정말 좋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즉흥곡이자 깊이가 가장 있는 영혼의 음색들이죠.
어쨌거나 제게 있어서 가장 대단한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니까.
[사신 치바]가 인간들의 음악에 심취해 있는 것을 절대 공감한다니까요.(웃음)

다락방 2009-01-18 14:14   좋아요 0 | URL
[사신 치바]가 좋았던 건 정말 그가 이 세상의 음악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에요. 다른게 아니라 음악에. 그래서 말씀하신대로 저 역시 공감한게 아닌가 싶어져요.

자신이 정해놓은길로 가고, 한눈 팔지 않고, 신념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요. 그래서 사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키스를 한 경험쯤은 누구나 갖고 있을법한데, 그러지 않을수도 있다니, 대단해요.

그런데 저는 앞으로도 스킨쉽이 반드시 감정의 교류 다음에 올거라는 장담은 할수가 없어요. 그건 좀, 어려워요. 휴.

L.SHIN 2009-01-19 06:15   좋아요 0 | URL
저는요, 요즘 같으면, '정말 싫은 사람' 혹은 '이 사람은 절대 안돼' 정도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좋으니까 키스하고 싶다는..ㅋㅋㅋ
키스만 할 수 있는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아, 그런데 제 주변의 누구는 술 마시고 기분 좋아지면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한테 뽀뽀를
하더라구요. 저도 술을 핑계로 확- 그래볼까요? ㅋㅋ

다락방 2009-01-19 10:49   좋아요 0 | URL
으윽.
L.SHIN님의 마음이 마치 제 마음과 같군요.
키스만 할 수 있는 애인이라니, 으윽, 제가 다 부끄러워요 ㅎㅎ

야클 2009-01-18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년에는 부디 사귀자는 말을 꺼내는 맘에 드는 바른남자에게 예스, 라고 말하고 키스 후 짜릿하다고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시길. ^^

다락방 2009-01-18 20:00   좋아요 0 | URL
아이쿠. 언제나 제게 그렇게 응원해주시지만, 저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군요. 고맙습니다, 야클님.
:)

레와 2009-01-19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젠틀레인] 앨범은 자켓이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서, (특히 저 색이욧!!)
아무 정보도 없이 그냥 보관함에 담아두었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다락방님의 음반 리뷰예요!
Jude님 말씀처럼 "소리를 글로 옮기는 놀라운 재주"를 가진 리뷰에 나도 추천!


다락방 2009-01-19 17:33   좋아요 0 | URL
그치요? 앨범 자켓색이 너무 예뻐요. 심플한 디자인도 맘에 들거요. 요즘 시디사면 쓸데없이 화보 넣어주고 상자케이스에 넣어주고 이런거 너무 싫어요 정말 ㅠㅠ

추천 고맙습니다. 으흐흐흣 :)

순오기 2009-01-20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9년의 소원은 이것으로~~~ 저도 같이 기원할게요.^^

다락방 2009-01-20 17:03   좋아요 0 | URL
하하.
그러게요. 이게 갑자기 소원이 되어버렸네요.
부끄러워라 ㅎㅎ

Jade 2009-01-28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페이퍼 보고 피츠제럴드 단편들 읽었어요. 민음사에서 나온 단편집이랑, 이번에 나온 벤자민 버튼이랑.
다락방님이 좋아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ㅎㅎ

아 근데요 다락방님. 그 단편들 읽다보면 왠지, 허무해져요. ㅜㅠ

다락방 2009-01-29 14:08   좋아요 0 | URL
앗. 그렇지요? 민음사에서 나온 첫번째 단편집이 특히 좋지요?
허무해진다....네, 그런것 같기도 해요. 사실은 저도 제가 왜 좋아하는지를 모르겠어요. ㅜㅡ